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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권 (7)

카지모도 2022. 9. 10.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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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서방 내외가 자려고 누워서 겉잠도 채 들지 아니하였을 때 횃불빛이 창에

비치며 삽작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김서방이 “화적인가?” 의심하며 일어나려

고 하니 그 안해가 “가만히 누워 계세요. ” 남편을 말리고 “우리 집에 무슨

화적이 들겠소. ” 하고 자기부터 천연하게 누워 있다. 조금 있더니 삽작문을 열

어젖히는 소리가 나고 뒤미처 안방문 앞에서 두런두런 사람의 말소리가 났다.

봉단이는 그제야 비로소 일어나서 벗어놓았던 치마를 찾아 입은 뒤에 창문을 바

스스 반쯤 열고 내다보더니 “고원댁 오빠요?” 소리를 높여 물으며 바깥으로

나가고 김서방은 ‘돌이가 어째 밤중에 왔노?’ 의심하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돌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또 장모와 장인의 말소리가 들리고 얼마 있다가 여러

사람의 신발소리가 나고 또 삽작문 닫는 소리가 나더니 안해가 방으로 들어오며

“주무세요?” 묻는다. 이때껏 자는 것같이 누웠던 김서방이 “아니. ” 하고 일

어나 앉으며 “돌이가 어째 왔던가?” 물으니 봉단이는 등잔불을 다시 켜며 “

고원댁 아주머니가 지금 곧 운명하실 것 같대요. 그래서 어머니를 뫼시러 왔세

요. 아버지하고 내외분이 다 가셨세요. ” 대답하였다.

그날 밤은 젊은 내외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마음놓고 웃고 이야기하다가 밤

을 밝히다시피 하고 이튿날 김서방이 코가 비뚫도록 늦잠을 자고 나 보니 해는

벌써 아침때가 기울었고 봉단이는 집안을 깨끗하게 치위놓고 앉아 있다. 김서방

은 너무 늦게 잔 것이 염치없이 머리를 긁으며 “오늘이야말로 별명을 들어 싸

군. ” 혼잣말하듯 하니 봉단이가 세숫물을 떠다 주며 “얼른 세수하시고 점심

좀 잡수시지요. 나는 배가 고파요. ” 하고 상글상글 웃었다. 돌이가 상게 되는

덕에 김서방은 단지 며칠 동안이라도 장인 장모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맘 편히

지내었다.

주삼의 내외가 상가에서 돌아오던 날 저녁때 주삼의 안해가 양식이 없어진 것

을 보고 “연놈이 들어앉아서 밥만 해처먹었니? 양식이 어째 이렇게 없어졌니?

” 야단치는 것을 봉단이가 “한 끼에 두 끼 밥 먹지 않았어요.” 조금 불쾌히

대답하였더니 그 어머니가 하늘이 낮다고 뛰면서 “이년, 서방맛을 되우 안다.

그 게으름뱅이가 양식 도적놈이야! 감추려면 감추어지니?” 욕설을 내놓다가 봉

단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쪽쪽 울기는 왜!” 하고 혀를 차면서

도 딸을 불쌍히 생각하였던지 욕설은 그치고 “여보, 원수의 양식이 떨어지게

되었구려. 내일 장날 키 죽이나 갖다 내서 서속 몇 말을 바꾸어 와야겠소. 죽을

채우자면 키가 몇개나 부족이오?” 주삼을 보고 물었다. “만든 것이 반 죽밖에

없어.” 하는 남편의 대답을 듣고 딸을 돌아보며 “우리가 둘을 맡을 터이니 둘

은 네가 맡고 나머지 하날랑은 게으름뱅이더러 밤내로 결어노라고 해라. 못 해

놓으면 내일 아침밥은 다 먹을 게니 알아 하래라!” 구별하는데 봉단이가 상을

찌푸리며 “나는 오늘 골머리가 아파 일 못하겠어요. 만일 억지로 하라시면 하

나나 맡지요. ” 앙탈하다시피 하여 주삼의 내외가 세 개를 맡고 젊은 내외가

각각 하나씩을 맡게 되었다.

일거리를 각각 나눠 가지고 방으로 들어간 뒤에 김서방은 봉단의 전하는 장모

의 말을 들고 “나는 내일 아침밥을 안 먹을 작정하지, 밤을 꼬박 새우더라도

다 겯기는 틀렸으니까. ” 하고 채를 골라놓는 안해의 시중을 들어주다가 “골

머리가 아프다더니 어떻소?” 하고 머리를 짚어보려고 하니 봉단이가 살그머니

짚으러 오는 손을 막으면서 “관계찮아요. 개수를 줄이려고 아프다고 했어요.”

하고 잠깐 방그레 웃었다. “꾀병이 일쑤구려. ” “언제 누가 꾀병합디까?” “

우리 혼인 전날 밤에는 그게 무슨 병이오? 능청스럽게 꿈 이야기까지 꾸며가지

고, 보기에는 그렇지 않으면서도 하는 짓은 여...” “여... 무어요?” “호. ” “

잘하시오 잘해. 당신 그러다간 지각 나자 망녕 나겠소. ” 젊은 내외의 속살거리

는 말은 밤이 이슥토록 그치지 아니하였다.

이튿날 식전에 주삼의 안해가 아랫방에서 나온 키 두 개를 한두 번 뒤치고 제

치고 하더니 “서방 대신 해주려고, 여호 같은 년 아프다고 어미를 속여!” 딸에

게 귀먹은 욕을 해붙이었다.

 

3

김서방이 아침밥을 먹은 뒤에 그 장모가 부르더니 장인과 같이 가서 장을 보

아 오라고 하여 김서방은 키 한 죽과 고리 몇 짝을 지게에 짊어지고 주삼의 뒤

를 따라가게 되었다.

함흥은 대처라 장이 크다. 각 촌에서 모여드는 장꾼들이 길이 메어 가는데 그

중에는 숯짐이며 장작짐을 지고 가는 두메 사람도 있고 새끼 걸빵으로 곡식말이

나 무명필을 걸머지고 가는 촌 농군도 있고 소를 네뎃 바리 혼자서 몰고 가는

소장수도 있다.

“감사 행차냐? 길 중간을 잡고 오게. 키짐 저리 비켜라!” 소장수의 볼멘 소

리에 김서방은 놀라서 길을 피하다가 등에 잘붙지 아니하는 지게가 삐딱하며 길

옆으로 오던 농군의 머리가 킷불에 스치었다.

“이 자식, 정신 차려!” 농군의 호령을 듣고 김서방은 미안한 듯을 말한다는

것이 “다쳤어?” 무심히 반말을 하였더니 그 농군이 대번에 얼굴을 붉히며 “

이놈의 새끼! 백정놈이 반말은... 버릇을 배워라!” 하고 껑청 뛰어 김서방의 뺨

을 갈겼다. 김서방이 난생 처음으로 당하는 일이라 기도 막히거니와 슬그머니

분이 나서 그 농군을 떠다박지르니 “백정놈이 사람 친다!” 농군이 외치며 “

백정놈이 사람 치다니?” “백정놈이 무어 어째?” 하면서 두메 장꾼이며 촌 장

꾼들이 김서방의 옆으로 모여들었다. 활 반 바탕 가량이나 앞섰던 주삼이가 이

때 마침 길가 밭고랑에서 똥을 누다가 밑도 채 씻지 못하고 괴츰을 움켜쥐고 쫓

아와서 “이 사람 무슨 짓인가?” 일변 김서방을 나무라며 “몰라서 그렇소이

다. 난데 사람을 사위로 얻었더니 위인이 데퉁궂어 걱정이올시다. 용서하여 주십

시오. ” 농군에게도 절을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도 절을 하고 꾸벅꾸벅 정신없

이 절을 하였다. 주삼의 절 덕으로 뭇매질이 나지 않고 여러사람이 헤어지는데

“백정의 사위놈이 양민에게 손을 대다니 무엄하기도 짝이 없지. 도대체 세상이

망했어. ”

소장수가 지껄이니까 그 농군은 더러운 손자국을 털어 없애려는 것같이 옷을

털며 지껄이는 소장수를 쳐다보고 나서 “제기. 간밤에 꿈자리가 사납더니 마수

거리로 창피 보았네.” 혼자 중얼거리었다.

그때부터는 주삼이가 가끔가끔 뒤를 돌보아 김서방이 조금만 떨어지면 “빨리

오게. ” 불러가지고 앞뒤에 붙어 가는데, 김서방의 고개는 줄곧 아래로 숙이었

다. 읍 어귀에 들어서자, 주삼이가 길을 비켜 우뚝 섰다. 뒤에 오던 김서방이 따

라서 멈추고 고개를 들어 보니 갓을 쓰고 소매 달린 옷을 입고 지팡이를 짚은

한 오십 된 채수염 자리 하나가 아이 하나를 뒤에 따리고 천천한 걸음으로 이편

을 몇 걸음 앞으로 나가다가 채수염 자리가 가까이 온 뒤 허리를 구부리고 공손

히 “집강 나으리, 주삼이 문안드립니다. ” 하니 수염 자리가 구부린 주삼의 등

을 내려다보며 대답은 “오오. ” 뿐이다. 그 수염이 그대로 지나가려고 몇 걸음

나가다가 무슨 생각이 나는 듯이 돌아서며 “이애 그 동안 댁의 따님이 근친을

와서 계시다가 수이 가실 터이다. 그런데 댁 안에서 엿을 담을 그릇이 없다고

하시더라. 이삼일 안에 동고리 몇 벌을 댁으로 가져오너라. ”주삼에게 분부한

다. 주삼이가 “녜에. ” 대답하고 “저기 가지고 오는 것이 있었는데 물건을 보

시겠습니까?” 말하여 “어디 이리 가져오너라. ” 수염의 분부가 떨어진 뒤 “

여보게, 짐을 이리 가지고 오게. ” 김서방을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 김서방이

지게를 버티어 놓는 것을 보고 “문안 여쭙게. 향곳말 도집강 나으리시어. ” 일

러주며 곧 일변으로 수염에게 “사위올시다. ” 여쭙는다. 김서방이 말없이 허리

를 구부리는데 고개는 치어들이었다. 그 고개가 수염의 비위에 맞지 아니하든지

“오오. ” 한마디도 없이 “그놈 낫살이나 먹었구나. ” 하며 수염을 쓰다듬고

주삼이가 지게에서 내려놓는 동고리를 아이더러 집어오라 하여 받아들고 보더니

“이것은 장치구나. 굵어 못 쓰겠다. 맞춤으로 해오너라. ” 말은 주삼에게 하고

물건은 아이에게 도로 준다. 그리하고 주삼이를 바라보며 “네 아우놈 지금도

공부하느냐?” 묻고서 미처 대답도 듣지 않고 “백정놈이 공부하여 무엇하노.

” 또 수염을 쓰다듬이며 “허허, 허허.” 틀스럽게 웃고 돌아서서 다시 천천한

걸을음 내놓았다.

 

4

주삼이가 초장에 행패 잘하기로 유명한 감영 장교 하나를 만나서 고릿벌과 킷

개를 공히 빼앗기고 파장머리에 나머지 물건으로 콩과 서속 몇 말을 바꾸어서

김서방을 지워 가지고 어두컴컴한 때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상을 치운 뒤에 주

삼이가 안해와 마주 앉아서 김서방의 봉변하던 일을 이야기하고 “내가 조금만

늦게 갔어도 뭇매질이 났지. ” 괴춤쥐고 쫓아간 공로를 자랑하니 그 안해는 사

위가 봉변하여 가엾다고는 말할 생각도 아니하고 “족가리가 성해서 걱정이든가

경을 치든 말든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 시비를 말렸다고 도리어 남편을

나무랐다. 주삼이는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여편네란 종시 소견이 부족해. 사람

이 경을 치면 물건이 성할까. ”

꾸벅꾸벅 절한 것이 사위보다도 물건을 중히 여긴 까닭이라고 말하였다.

일기가 추워졌다. 사람마다 겹옷을 입고 오륙십만 된 사람이면 도톰한 가을

차렵을 입을 때다. 김서방은 아직도 홑것을 입고 식전 저녁으로 벌벌 떨고 지내

는데, 남의 이목도 좀 보아야 하지 않느냐고 주팔이가 형수에게 간곡히 말하여

새 무명으로 겹옷을 짓게 되었다. 그러나 그 옷을 짓는 동안에 장모의 입에서

나오는 “키는 경치게도 크다. ” “안팎 쉬인뎃 자나 드니 옷도적놈이다. ” 이

따위 말에 김서방의 귀는 따갑기도 하고 가렵기도 하였다.

김서방이 새옷을 얻어 입던 날이다. 전날부터 아프다고 머리를 동이고 다니는

주삼이가 김서방을 불러서 “도집강이 아랫말 사람 편에 동고리 재촉을 하고 오

늘 안으로 가져오라더라네. 내가 갔으면 좋겠으나 몸살이 나서 못 가겠으니 자

네 좀 갔다 오소. 향곳말 가서 도집강댁이 어디냐고 물으면 어린아이라도 잘 알

것일세. 고리를 받고서 쌀말을 주거든 황송합니다 하고 받아가지고 오소. 그리고

내가 아파 누웠단 말도 잊지 마소. ” 이르는데 옆에 있던 장모는 “새옷 값으

로 남이 주는 쌀이나 잘 가지고 와야 해. ” 쌀을 내버리고 오기나 할 것같이

미리 사살하고 봉단이는 김서방의 뒤를 따라 삽작문 밖에까지 나오면서 “고분

고분히 구세요. 첫째 말씨를 조심하세요. 혹 또 봉변하시리다. ” 김서방이 언어

행동이 공손치 못한 것을 걱정하여 다정한 말소리로 신신히 당부하였다.

김서방이 도집강의 집을 찾아왔다. 문간에 들어서서 사람을 찾으려고 이리저

리 둘러보자니 “누가 왔나 부다. 좀 내다봐라.” 큰방에서 도집강의 목소리가

나고 아랫방에서 “녜.” 대답 소리가 나며 하인인지 머슴인지 세차 보이는 사

나이 하나가 아랫방에서 뛰어나왔다. 그 사나이가 김서방의 아래위를 훑어보더

니 “어디서 왔어?” 반말을 하건마는 김서방은 존대하여 빰맞는 법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양주삼이게서 동고리를 가져왔습니다.” 대답하였다. 그 사나이가

튼방 앞에 나아가서 이 뜻을 말하자, 큰 방 창문이 열리고 도집강이 내다보며

“인제 가져왔단 말이냐? 주삼이놈 어디 있느냐?” 말에 체증기가 있다. 김서방

이 뜰 앞으로 나아가서 “주삼이는 앓아 누워서 대신 왔습니다.” 하고 허리를

구부리니 도집강이 한번 큰기침하고 “동고리 몇 벌이냐?” “세 벌이올시다.”

“이리 가져오너라.” 하여 그 사나이가 두손으로 드리는 동고리를 받아가지고

위짝과 밑짝을 한두 번씩 들었다 놓았다 하더니 “일껏 맞춤으로 해바치란 것이

이 모양이란 말이냐!” 말에 호령기가 있고 “이니마 그대로 두고 가래라.” 하

고 창문을 갑자기 도로 닫았다.

김서방은 두고 가라고 하지만 쌀 주기를 바라고 주저주저하고 섰다가 “왜 아

니 가고 섰어?” 묻는 사나이의 옆으로 가까이 가서 “쌀은 아니 주십니까?”

말하였더니 창문이 화닥닥 열리며 “ 그놈 무엇이라니? 쌀? 이따위로 물건을 해

바치고 쌀을 달라?” 하고 동고리들을 집어서 마당으로 동댕이치며 “이놈, 무

엄한 놈 같으니! 쌀을 달라?” 개 꾸짖듯 꾸짖는데 김서방은 안해의 고분고분하

라는 말을 생각하고 속을 썩이어서 붉어진 얼굴빛을 보이지 아니하려고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잘못했습니다.” 사과하였더니 도집강이 “이놈, 그래도 무슨

잔소리야!” 호령하고 아무개를 불러라, 멍석을 말아들여라, 매를 해오너라, 채수

염을 흔들며 야단치기 시작했다.

 

5

이교리인 김서방이 도집강의 강호령을 받고 멍석말이 매를 맞게 되었다. 매를

맞는 것도 유만부동이다. 멍석말이에 볼기를 맞는 것은 회초리로 종아리 맞는

것과는 물론 다르고 형문으로 정강이를 맞고 난장으로 발끝을 맞는 것과도 서로

같지 아니하여 어려서부터 늙어 죽기까지 양반으로 당할 까닭이 없는 일이다.

당할 까닭이 없는 일을 꼼짝없이 당하게 된 김서방이 기가 막히어 얼빠진 사람

같이 서 있자니 “그놈을 거기 굻려 엎지 못한단 말이냐!” 도집강의 호령이 내

리며 그 수하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상투를 잡고 끌어다가 뜰 앞에 꿇리었다.

김서방이 분한 것도 참고 부끄러운 것도 참고 또 가소로운 것도 참고 찬찬한

어조로 발명하여 보았다. “동고리를 갖다 드리라고 해서 가지고 왔고 쌀을 주

시거든 받아오라고 해서 주시지 않느냐고 하인에게 물어본 것이 무슨 죄입니까?

대체 양반은 ...” 발명이 미처 끝나지 못하여 도집강의 입에서 “ 그놈의 주둥

이를 쥐어지르지 못하느냐!” 하고 호령이 떨어지며 세차 보이던 사나이가 주먹

으로 김서방의 볼을 쥐어질렀다. 김서방은 아픈 것보다도 창피에 창피를 더 당

하지 아니하려고 입을 다물었다.

“그놈을 올려매라!” 도집강의 호령 한마디에 거행하는 꾼들이 김서방을 끌

어다가 말아노은 멍석 위에 잡아 엎지르고 무명 바지를 무릎깨가지 까뭉기었다.

“되우 쳐라!” 연하여 신칙하는 매가 하나, 둘, 열 개에 그치었는데 김서방은

엄살 한마디도 아니하고 곱게 맞고 일어났다. 도집강이는 ‘죽을 때라 잘못했습

니다.’ ‘살려 줍시사’ 비는 소리를 못들어서 양반의 세력이 깎인 것같이 생

각하였던지 “ 그놈은 저 기둥에 붙들어 매놓고 주삼이놈을 가서 잡아오너라.

앓아 누웠거든 떠메어라도 잡아오너라! 수하 사람에게 분부하여 보내더니 보리

밥 두어 솥 지을 동안이나 지난 뒤에 주삼이가 죽을 상을 하고 잡히어 들어왔

다.

도집강의 불호령 소리가 주삼의 애걸하는 소리를 내리누르며 주삼이는 김서방

이 맞던 멍석 위에 너부죽이 엎드리게 되었는데, 주삼이가 발둥질을 치니까 “

잔뜩 동여매라!” 라는 호령이 내리고 주삼의 팔다리가 새끼로 동여매지니까 “

매를 쳐라!” 호령이 내리었다. 매가 늦은 볼기살에 떨어질 때마다 주삼의 입에

서 ‘애구, 애구’소리가 입에 벅차게 쏟아져서 ‘되우 치라’는 호령이 없이

매 열 개를 맞고, 나중에 장독예방으로 짚신발이 맷자리를 밟아 비빌 때에 주삼

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듯이 앞머리를 멍석에 비비었다. “너희의 사위는

관가로 보내서 더 족칠 것이나 십분 용서한다. 동고리는 가지고 가거라!” 도집

강이 호령기가 남은 목소리로 이르니 쭈그리고 앉은 주삼이가 “황송하온 말씀

이오나 해 바친 물건을 도루 가지고 가옵느니 이 자리에서 매를 열 깨 더 맞아

지이다.” 애걸하다시피 하여 동고리는 바치고 쌀은 구경도 못하고 김서방과 함

께 도집강의 용서를 받았다.

주삼이는 다리를 끌고 김서방은 고개를 숙이고 도집강의 집에서 나오니 주삼

의 안해가 남편의 뒤를 쫓아와서 문 밖에 서 있다가 뒤에 나오는 김서방을 붙잡

고 “이 자식, 이 길로 다른 데로 가거라!” 내 딸이 사위 없겠니? 관비박지, 관

비 박아 염려 마라. 나 같은 사위 두었다간 우리가 비병에 맞아죽겠다. 천하에

망할 자식! 우리 따라오지 말고 어서 다른 데로 가! 장모의 욕설에는 귀가 익은

김서방이지만 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하릴없이 그 내외의 뒤를 따라가노라

니 얼마 아니 가서 주삼의 안해가 들쳐서며 “이 자식, 다른 데로 가라니까 왜

따라와! 그래도 안 갈테냐!” 하며 김서방을 떠다민다. 김서방이 주삼이가 혹시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주삼의 얼굴을 다라다보나 주삼이는 입을 떼지 아니한다.

“갈 데가 있어야지요. 그리하고 가더라도 봉단이하고 같이 가야지요.” 김서방

이 말을 하자, 주삼의 안해의 손이 번개같이 김서방의 귀밑을 올라오며 “무엇

이 어쩌고 어째! 봉단이하고 같이 가? 봉단이는 내 딸이야. 경칠 자식, 망할 자

식! 쇠껍데기를 쓰고 도리질을 칠 놈의 자식!” 갖은 욕설이 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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