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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에 이승지가 손님도 없고 한가하여 다시 주팔의 방에를 내려왔다.
삭불이는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이승지가 거기 앉으라고 말하여 주팔의 옆에 쪼
그리고 앉았다. 이승지가 주팔을 보며 “어린 놈이 푸른똥을 눈다니 간기겠지?
무엇을 먹일까?” 하고 어린아이 먹일 약을 의논하니 주팔이는 “대단치는 않지
요?” 묻고 나서 “포룡환 한 개쯤 먹여 두시지요.” 말하는데 주팔의 말이 끝
나자, 삭불이가 아는 체하고 나서서 “아기네 간기에는 떨어진 배꼽을 살라 먹
이는 것이 제일이랍니다.” 말하니 이승지는 대답이 없이 웃기만 한다. 삭불이는
자기의 말을 그 웃음 속에 묻어버리지 아니하려고 “상약이 방문약보다 나은 수
가 많습니다. 우선 무사마귀 같은 것도 방문약으로야 뗄 수 있습니까만, 마늘쪽
에 낙숫물을 받아서 문지르면 곧잘 떨어진답니다.” 하고 상약의 효험을 주장한
다. 이승지는 듣기 싫은 눈치를 보이면서
"그래 그래." 하고 삭불의 말을 대답하고서 잠자코 앉았는 주팔을 보면서 "자네
묘향산 간 동안에 약 때문에도 자네 생각 많아 하였네. 우선 어린 놈 날 때만
하더라도 초산이라 그랬든지 아이가 커서 그랬든지 산모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을 두고 산고하는데 그때도 자네 생각을 많이 했네. 자네만 있었더면 의원 댈
까닭도 없지". 하고 잠깐 동안 말을 그치었다가 "이 사람 묘향산 구경 같은 길
은 다시 할 생의도 말게. 참, 그때 내가 편지해 준 것은 왜 전하지도 않았던가?"
하고 나무라듯이 물으니 주팔이는 저으기 웃으면서 "편지를 해주시기에 가지고
는 갔습니다만 영변절도사 영문에 발 들여놓기가 무서워서 고만두었습니다. 그
편지는" 말이 채 끝나지도 아니하여 승지가 "그 편지는 어째? 찢었거나 물에
띄웠거나 했겠지. 에이 사람. 자네 소식은 그치고 궁금해서 내가 영변에다 알아보
기까지 했었네. 이 사람 다시는 구경 못 갈 줄 알게. 삼각산을 간대도 혼자는 안
보낼 테야." 하고 허허 웃으니 주팔이는 "그러면 일평생 나수를 당한 셈이 되겠
습니다그려." 하고 역시 허허 웃었다. 이승지가 웃음을 그치고 "여보게, 아까도
말하다 두었지만 자네 장가 말일세.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당하게 재취 장가를
들려면 여러 가지 비편한 일이 많아서 얼른 상당한 데를 구하기가 어려우니 헌
계집이라도 하나 얻어가지고 살림을 시작해 보게나. 사람이 맘에 들지 않거든
버리고 다른 것을 얻어도 좋을 것이 아닌가? 그래 자네 생각이 어떤가?" 하고
주팔의 얼굴을 바라보니 주팔이는 "헌계집이고 새계집이고 간에 긴할 것도 없거
니와 더구나 급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재취고 첩이고 모두가 아니할 의사를
보인다. 이승지는 고개를 흔들며 "안 되네, 안 되네." 하고 곧 이어서 "재취장가
를 들겠느냐, 우선 첩이라도 얻겠느냐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정해 말하게."
하고 '응' 소리로 주팔의 대답을 재촉하니 주팔이는 대사로 여기지 아니하는 모
양을 보이면서 "이것이나 저것이나 매양 일반입니다. 살림살이를 하고 엎드려 있
기가 싫달 뿐입니다. 계집을 얻는다면 버리기 쉬운 첩이 나을는지도 모릅니다.
이렇든 저렇든 영감께서 해주시면 해주시는 대로 가지요. 나수된 죄인의 신세로
만 생각하면 고만 아니겠습니까?" 하고 웃었다.
이승지는 주팔의 의향을 잘 알지마는 주팔이를 서울에 붙들어 두려고 맘을 먹
은 터이라
"그만하면 자네 말은 더 들을 것이 없네." 하고 말을 자르고 주팔이와 삭불이에
게 잘들 자라고 말하고 일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승지는 그날 밤에 내외 공론
하고 이튿날 삭불이더러 한치보의 첩노릇하던 계집을 불러오라 하여 이승지 내
외가 같이 선을 보고 아직 가서 있으라고 돌려보내고 나서 이승지는 "그것이 기
생 퇴물 같군." 말하고 부인은 “눈이 단정치 아니해요." 말하여 이승지 내외 맘
에는 그다지 들지 아니하나, 삭불이가 '사람이 신통하다, 일을 잘한다, 부지런하
다, 알뜰하다' 갖은 칭찬을 다 하다시피 하여 이승지는 그 계집을 주팔에게 얻어
주기로 작정한 뒤에 주팔을 보고 "사람이 삭불의 말과 같이 신통해 보이지는 아
니하나 우선 그대로 데리고 지내 보게나." 말하니 주팔이는 "영감께서 사람을
갖다 공연한 생고생을 시키시렵니다그려." 하고 별로 다른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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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지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어느 실골목 안에 조그마한 초가집을 사서 주팔
의 살림을 차려 주었다. 주팔이가 남의 대어 주는 시량으로 놀고 먹는 것이 맘
에 미안하여 고리일을 시작하였더니 그 골목에 전에 없던 고리장이가 남의 눈에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불과 얼마 동안에 골목 안에 사는 사람은 고사하고 골목
밖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고리장이 고리장이 하게 되고 고리장이가 산다고 골목
이름까지도 고리장골이라고 부르는 사람까지 생기게 되었다. 상없는 아이들은
떼를 지어 가지고 고리백정, 시골백정, 대보름 뒤, 윷노는 백정. 하고 노래를 부
르면서 주팔의 집 문밖으로 돌아다니었다. 주팔의 첩이 창피한 것을 참지 못하여
그 골목을 떠나자고 주장한즉 주팔이는 어디를 가나 일반이라고 잘 듣지 아니하
는데, 그 첩이 이승지의 부인을 보고 말하고 이승지의 부인이 이승지를 보고 말
하여 이승지는 성균관 동편 반수 건너로 주팔의 집을 이사시키었다. 이리하여
고리장이는 반 년 남짓이 살고 떠났건만 골목 이름은 고리장골로 남아 있게 되
었다. 주팔이가 이승지에게 누를 많이 끼치지 아니하려고 고리일을 시작하였으
나, 서울에서는 버들을 구하기가 극난하여 역시 이승지의 힘을 빌게 되는 까닭
으로 내처 계속할 생각이 적던 차에 고리장이가 말썽이 되어 이사까지 하게 되
니 고리 일이 더욱 재미없어서 그만두기로 하고 새집으로 옮아온 뒤에 새로 갖
바치 일을 시작하였다.
주팔이가 동촌 한구석에 떨어져 살게 된 뒤에는 집에 들어앉아 신을 만들거나
성균관 뒷산으로 소풍하러 다니거나 하고 북촌 이승지 집에 발이 뜨게 된 까닭
에 이승지가 미복으로 찾아오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일부러 사람을 보내서 불러
가게 되었다. 삭불이는 자주 찾아다니는데 주팔이가 없을 때는 주팔의 첩과 시
시덕 거리다가 저녁 준비가 되면 주팔이와 겸상으로 밥까지 먹고 가는 때가 흔
하였다.
함흥에 있는 돌이는 삼년상 금법이 풀린 뒤에 새삼스럽게 거상을 입기 시작하
여 주팔이가 살림을 시작하던 해 겨울에 삼년상을 마치고 봄이 되거든 서울 간
다고 한두 번 말하지 아니하더니 개춘하며 곧 간다고 주척대는 것을 주삼의 안
해가 일기나 더 따뜻하거든 떠나라고 붙들었다. 삼월이 보름이 지난 뒤에 돌이
가 인제는 간다고 말하고 길 떠날 행장을 차리는데, 그 고모를 보고 "아주머니,
이번 내가 서울 가서 누이 덕에 장가나 들면 함흥은 고만 하직이오." 말하는 것
을 옆에 있던 주삼이가 "네가 서울 가서 어름어름하다가는 누이 얼굴도 보지 못
할라." 말하니 "못 보면 고만이지요.” 하고 돌이는 증을 냈다.
"보지도 못하면 장가를 들여달랄 수가 있어야지." "아저씨도 딱하오. 그래 누
이의 힘이 아니면 장가 못 들 줄 아시오?" 하고 돌이는 큰소리를 하였다. 돌이가
고모의 내외에게 하직하고 길을 떠난 지 십여 일 만에 서울 안에 들어왔다. 길
을 욱걸은 까닭으로 발병이 나서 걸음을 잘 못 걸었다. 돌이가 동소문 안에서부
터 대안동을 물어 오자니 묻기도 여러 차례 물었거니와 처음 오는 길에 멀기가
몇십 리나 되는 것 같았다. 돌이는 주팔이가 동촌에서 사는 것을 알았다면 가까
운 것만 취하더라도 대안동을 찾아오지 아니하였을 터인데, 주팔이가 대안동 있
는 줄로 알고 온 터이다. 돌이가 마침내 대안동을 찾아왔다. 이승지 집 솟을 대
문 앞에 서서 대문 안을 들여다보니 넓기가 마당질할 만한 행랑마당에 말도 매
였고 보교도 놓이었다.
돌이는 들어서기가 서먹서먹한 것을 억지로 참고서 문간을 들어서니 문간 옆
에 있는 하인청에서 벙거지 쓴 사람 하나가 나서며 "너 어디서 왔니?" 물었다.
돌이가 "나 함흥서 왔소. 이승지 보자면 이리 들어가오?" 하고 안중문을 향하여
들어가려고 하니 그 사람이 "건방진 녀석일세. 어디로 들어간단 말이야?" 하고
그 말씨가 좋지 못한 바람에 돌이가 돌치어서며 새삼스럽게 "이승지를 보자면
어디로 가야 좋소? 이승지 좀 보게 해주시오." 말하였다. "지금 손님이 많이 기
시어 보입지 못한다." "손님이 있으면 잠깐만 이리 나오라고 말해 주시우." "이
자식이 누구하고 말을 해보자나? 누구더러 나오래? 이 자식." "왜 이 자식 저 자
식 하오? 그저는 말 못하오?" "무엇이 어째! 이 자식." 언왕설래하던 끝에 그 사
람이 "아따, 이 자식." 하며 무식한 손으로 돌이의 귀싸대기를 내갈기었다.
18
돌이는 분하였다. 사촌 매부의 집에 와서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맘에 분하였
다. 분김에 나는 생각으론 이승지의 멱살을 들고 한번 휘둘렀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돌이는 그 하인보다 이승지가 미워서 "제미." 하고 침을 뱉었더니 그
하인이 자기에게 욕하는 줄로만 알고 "망할 자식 누구더러 욕이야!" 하며 슬슬
피하는 돌이에게로 달려드는데 갓 쓴 사람 하나가 하인청에서 나와서 "이 사람
고만두게." 하고 그 하인을 말리고 돌이에게 향하여 "함흥서 왔다지?" 하고 물었
다. 돌이가 "함흥서 왔기에 함흥서 왔다지요." 하고 온공스럽지 못하게 대답하니
그 사람은 "말이 대단히 퉁명스럽구나." 하고 웃고서 "날 따라 이리 오너라." 하
고 돌이를 데리고 수청방으로 들어와서 함흥서 온 총각이 영감마님을 뵈려 한다
고 말하였다.
젊은 수청 청지기가 "이 사람아, 지금 손님이 계신 줄 알면서 그러나. 하인청
에라도 들여앉혀 두지." 하고 데리고 온 사람을 나무라는데, 나이 지긋한 청지기
가 그 젊은 청지기를 보고 "하인청에 들여앉혀도 좋을지 잠깐 여쭈어 보고 나오
게나." 말하여 그 젊은 청지기가 상을 찡그리면 큰사랑으로 들어갔다. 돌이가 이
승지가 사랑에 손님이 있어 들어오라기가 어려우면 자기가 쫓아나오기라도 하려
니 생각하고 기다리는데 젊은 청지기가 나오더니 "김서방 있는 방에 데려다 앉
혀 두시라네." 말하여 데리고 들어온 사람이 "총각 이리 오게." 하고 하게로 말
하며 돌이를 삭불이 있는 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돌이는 분하였다.
이승지가 잠깐이라고 나와서 잘 왔느냐 말 한마디를 아니하고 하인 시켜서 이
리 갖다 앉혀라, 저리 갖다 앉혀라 하는 것이 아까 하인에게 뺨맞은 것보다 더
분하였다. 돌이가 솟아나는 분을 억지로 참고 앉았을 때 삭불이가 "총각." 하고
말을 붙이며 이 댁 영감을 잘 아느냐? 부인과 어떻게 되느냐? 여러 가지 말을
물으니 돌이가 간단간단히 말을 대답하다가 여보시오, 양주팔이란 이가 지금 어
디 있나요?”하고 물었다. "내가 지금 주팔이게 놀러갈 터일세. 같이 갈라나?"
말하여 삭불이가 돌이를 데리고 주팔의 집에를 오게 되었다.
주팔이가 돌이를 보고 반겨하여 함흥 떠난 날을 묻고 형의 안부를 묻고 또 여
러 가지 이야기를 묻는데 돌이는 대강대강 이야기하고 나서 오늘 이승지 집에서
분한 일 당한 것을 말하며 "이런 법이 어디 있소?" 하고 주팔에게 하소연하니
주팔이는 "이승지가 너 올 줄 알고 미리 하인더러 뺨을 때리라고 이르기야 안
했겠지." 하고 이승지를 두둔하는 것같이 말하였다. 돌이가 새삼스럽게 증을 내
며 "손질하는 것을 하인의 잘못이라고 합시다. 그래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온 사
람을 잠깐 내다도 보지 못한단 말이오? 내다보고 잘 왔느냐 말 한마디 물으면
양반이 떨어지우?" "점잖은 손하고 이야기하다가 일어서 나오기 쉬운가? 네가
몰라서 원망이지, 이승지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김서방 적부터 두둔하기에 골
이 배겼구려. 당신이 무어라고 하든지 내가 그놈의 집에 다시 발을 들여놓으면
개자식 쇠자식 말자식이오." "너무 과하다." "과하기는 무엇이 과하단 말이오?
누이 보고 싶은 생각까지 천리만리 달아났소." 하고 돌이가 주팔의 말을 뒤떠가
며 떠들었다. 옆에 앉았던 삭불이가 "총각이 골날 만도 하지." 하고 돌이의 비위
를 맞추며 "그놈 저놈 할 것이야 없지." 하니 돌이는 "양반놈들을 놈이라고 아니
하면 누구를 놈이라겠소?" 하고 눈망울을 굴리었다.
그 뒤에 돌이는 주팔이의 집에서 유숙하면서 서울 구경을 다니는데 삭불이가
맘이 내키면 같이 다니며 모르는 것을 일러주었다. 그리하여 돌이는 며칠 돌아
다니는 동안에 종각 속에 달린 인경도 들여다보았고 경복궁 대궐 앞에 있는 해
태도 구경하였고, 또 중부 경행방에 있는 원각사와 서부 황화방에 있는 홍천사
도 돌아보았다. 홍천사에서는 태조대왕이 수라를 진쪼시려고 저녁종을 일찍일찍
이 쳤었다는 이야기고 들었고, 해태는 과천 관악산의 불기운을 진압한다는 이야
기도 들었고, 또 종각 창살을 빼지 않고 겹세지 않고 외로 한 번, 바로 한 번 두
번만 세면 학질이 떨어진다는 말과 인경 속에 어린 아이 피기 들어서 어미 부르
느라고 인경 소리가 어밀레, 어밀레 한다는 말도 들었다.
돌이가 이와 같이 서울 안을 돌아다니면서도 이승지 집에는 가지 아니하였다.
이승지가 불러도 가지 아니하고 이승지 부인이 만나자고 청하여도 가지 아니하
였다. 어느 날 저녁에는 이승지가 상노아이 하나만 데리고 주팔의 집에를 찾아
왔는데, 상노아이가 영감마님 오신다고 선통한즉 이때껏 방에 앉아 너덜대던 돌
이가 뒷문으로 나가버리었다. 주팔이가 나가지 말고 거기 있으라고 말하는데도
듣지 아니하고 나가버리었다. 이승지가 주팔을 보고 "돌이 어디 갔나? 그놈 나를
아니 와보는 법이 있나? 자네가 좀 꾸짖게그려." 하고 말하는데 주팔이가 "일르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던 길로 댁에 가서 하인에게 업신여김을 당한 까닭으
로 골이 난 모양입니다." 하고 빙그레 웃으니 이승지는 "그랬다네. 나중에 알아
본즉 새로 들어온 구종놈이 손찌검까지 했다네. 그놈도 모르고 한짓이니까 큰
죄 될 것이야 없지만 마누라의 청으로 일전에 내보냈네." 하고 허허 웃었다.
돌이는 뒷문 밖에서 방안의 수작하는 말을 들었다. 구종인지 별배인지 자기에
게 손질한 사람이 손질한 죄로 내 쫓기었다는 것은 맘에 싫지 아니하였다. 자기
를 푸대접한 이승지가 푸대접한 죄로 조정에서 내쫓기기까지 하였으면 두말할
것 없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지금도 이승지가 자기 말하는 데로 그놈, 그 구
종 말하는 데도 그놈 하는 것이 자기를 구종과 같이 여기는 까닭이라고 생각하
였다. 이승지가 돌아간 뒤에 돌이가 주팔을 보고 말한즉 주팔이는 "네가 몰라 그
러는 것이다. 어디 이 다음 두고 보자." 말하는데 돌이가 "당신이 몰라 그렇소.
이 다음 볼 것은 무어요? 그는 그리고 나는 나지." 말하니 주팔이는 “너의 입으로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할 때가...” 하고 웃음으로 말끝을 흐리었다.
몇 날 뒤의 일이다. 주팔이가 소풍하러 나간 사이에 삭불이가 와서 돌아와 같
이 이야기하다가 주팔의 첩이 얌전하고 다정하다고 칭찬하는데, 돌이가 저 보기
에도 그렇다고 동의하고 나서 “이승지가 얻어 주었겠지요?” 하고 물으니 삭불
이가 “내가 얻어 준 셈이다.” 하고 자기가 중매한 것을 일장 이야기하여 돌이
가 이야기 들은 끝에 “여보 김서방, 나도 장가 좀 들어보게 이쁜 색시하나 중
매해 주시우.” 하고 웃으며 청하였다. 삭불이가 “자네 장가 늦었지. 그래 이쁜
색시라야만 하겠나. 이쁜 색시? 가만 있거라, 어디 생각해 보세.” 하고 혼처를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옳지 되었다. 좋은 데가 있다.” 하고 무릎을 치고 나서
자기가 전에 동무 장사하던 사람이 있는데 성은 피가고 이름은 선이고 별명은
작대기다. 사람이 꿋꿋하고 남의 말은 잘 듣지 아니하고 게다가 키가 커서 작대
기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 사람이 무남독녀의 외딸이 있는데 이름이 애기다. 자
기가 여남은 살 되기까지 보았는데, 얼굴이 이쁘기라니 보는 사람이 꼴딱 집어
삼키고 싶도록 이뻤다. 그 피작대기가 양주 본바닥 백정인데 서울 와서 살다가
장사에 밑천을 대던 주인이 죽어서 장사를 못하게 된 까닭에 고향으로 도로 내
려갔다. 자기가 못 만난 지가 오륙 년 되니까 애기가 시집갈 나이가 넘었을 것
이다. 그 동안 시집만 안 가고 있으면 자기의 중매로 꼭 될 것이다. 삭불이가 길
게 이야기하고 나중에 “내가 틈이 나거든 한번 양주를 갔다 옴세.” 하고 돌이
를 보고 웃으니 돌이는 “내 눈으로 색시를 보아야만 맘을 놓을 터이니까 나하
고 같이 가십시다. 내일 떠나시려우?” 하고 말하자, 주팔이가 들어왔다. 돌이가
혼처 이야기를 하려고 한즉 주팔이는 “노총각이 장가들 수가 터지는 게지.”
하고 앞질러 말하고 돌이가 “밖에서 들으셨구려.” 한즉 주팔이는 “그래” 하
고 허허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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