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임꺽정 1권 (20)

카지모도 2022. 9. 25. 06:20
728x90

 

3

그날 밤에 돌이와 삭불이가 선이의 집 안방에서 자게 되었는데, 선이 내외가

돌이를 유심히 보는 까닭에 돌이가 얼마 동안 겸연쩍어서 말이 적었으나 선이의

안해가 “총각, 이리 가까이 오구려.” “총각, 이야기 좀 하구려.”하고 연해 ‘

총각, 총각’하며 다정하게 구는 까닭에 돌이가 마침내 조심성이 풀리어서 너털

웃음을 치며 반죽 좋게 이죽거리게까지 되었다. 삭불이가 간간이 실없는 말을

던지어 여러 사람을 웃기었는데 돌이를 가리키며 “저 함흥 떠꺼머리가 인제 양

주 대적이 될 터이야. 요지왕모 같은 색시를 훔치려는 것을 보지.”하고서 ‘하

하’하기도 하고 “저 떠꺼머리가 맘속에 큰 걱정이 있는 모양이야. 옥황상제하

고 벗 못하는 걱정.”하고서 ‘하하’하기도 하고, 선이의 안해가 돌이더러 총

각, 총각 하는 것을 보고 “총각은 다 무어야. 고만 사위라고 하지. 그래도 사위

라기는 좀 이를까? 그러면 밋사위라고 하지. 민며느리가 있는데 밋사위라고 없

으란 법 있나.”하고서 ‘하하’하기도 하여 그 하하 할 때마다 돌이든지 선이

내외든지 따라서 ‘허허’ ‘허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선이의 안해가

“고단들 하실 걸 고만 주무시지.”하고 건넌방으로 건너가고 삭불이와 선이와

돌이가 차례로 누웠다. 돌이는 누운 뒤에 바로 코를 골기 시작하였고 삭불이와

선이는 전날 이야기도 하고 지금 이야기도 하는 중에 대사를 지낼 이야기까지도

얼추 작정하고 닭 울 무렵에 잠들이 들었다. 밤 늦게 잠든 까닭으로 삭불이가

이튿날 해가 한나절이 지난 뒤에 일어났다. 일찍 일어난 돌이가 삭불이를 보고

“김서방도 서울 사람이라 게으름뱅이로 한골 나갈 만하구려.”하고 웃으니 삭

불이가 “암만, 함흥 사람은 모두가 부지런하지. 서울 사람은 게으름뱅이 사위로

조명이 났다니까 인제 함흥 사람은 부지런뱅이 사위로 유명할걸. 아따, 이 사람

아, 자네 코 까닭에 나는 잠 못 잤어. 그리고 무슨 염치에 남더러 게으름뱅이라

나?”하고 웃었다. 선이의 안해가 밥이 굳어 떡이 되었다고 말하며 밥상을 갖다

놓았다. 삭불이와 돌이가 늦게 아침밥을 먹고도 다시 한동안 주춤거리다가 선이

내외를 작별하고 떠나서 그날 해지기 전에 서울로 돌아왔다.

돌이의 혼인날이 사월 스무날로 작정되었다. 혼일은 주팔이가 받았고 혼수는

이승지 부인이 장만하였다. 삭불이는 신부의 집 일을 거들려고 며칠 전기하여

양주로 내려가고, 주팔이는 위요가 되어 혼인 전날 신랑과 같이 떠나 내려갔다.

귀엣머리를 푼 애기의 태가 색시 적과 달리 아리따운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고

상투를 쪼진 돌이의 모양도 떠꺼머리 때와 달라서 의젓하게 보이었다. 신랑 신

부를 구경 왔던 사람이 “신부가 참말 이쁘군.” “신랑도 그만하면 훌륭하지.”

하고 구석구석 모여서 칭찬들 하였다. 과년한 신랑 신부의 첫날밤 이야기는 자

세히 말할 것이 없으나, 그날 밤 신방 지키던 사람이 나중까지 두고 웃음거리로

이야기하게 된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신랑이 신부 옷 벗기던 사단이다. 돌

이가 첫날밤에 옷 벗긴다는 말만 들었지 어떻게 벗기는지를 몰랐던 까닭에 애기

의 옷을 속속들이 발가벗기려고 들어서 속적삼의 단추 고가 쪼개지고 속속곳의

고름이 떨어졌다. 애기가 손으로 밀막아서 잘 벗기지 못하게 하니까 돌이가 무

식스럽게 애기의 팔목을 꽉 쥐었다. 애기가 무심결에 “아야.”하면서 팔을 뿌리

친다는 것이 돌이의 면상을 후려치게 되어서 돌이도 무망결에 “아이구”하고

볼멘 소리로 “팔목 좀 쥐었다고 사람의 얼굴을 치는 법이 어디 있어?”하고 물

러앉았다. 애기가 암상이 나서 입속말로 “무식스럽게...”하고 종알거리니 돌이

는 골이 나서 “누가 무식스러운지 모르겠네.” 하고 두덜거렸다. 그리하여 신랑

신부가 한참 동안 소가 닭 보듯 닭이 소 보듯 하고 있다가 나중에 돌이가 “첫

날 저녁부터 쌈질은 재미가 없는데 내가 지지.”하고 단추를 끼지 못한 속적삼

과 고름을 매지 못한 속속곳은 입은 채로 애기를 들어다가 자리에 누이었다. 신

방을 지키던 사람들이 이것을 알았다. 그중에 “변이야, 첫날밤 색시가 신랑과

말다툼을 하다니.”말하는 여편네도 있었고 또 “애기가 제법 무어라고 종알거

리니 망측도 하지.”말하는 여편네도 있었다. 첫날밤에 신랑 신부가 말다툼하였

다는 것이 나중까지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주팔이는 성례한 그 이튿날 곧 서울

로 올라가고 삭불이는 뒤떨어져서 잔치 나머지 술에 취하여 신랑 신부를 못살게

굴다가 이삼 일이 지난 뒤에 서울로 올라갔다.

 

4

돌이가 장가 온 뒤 처음 얼마 동안은 하는 일이 없었다. 장모와 같이 앉아 이

야기하는 이외에는 애기 뒤를 쫓아다니었다. 애기가 우물에 물 길러 가면 붙어

가서 두레박질을 하여 주고, 애기가 부엌에서 밥을 안치면 따라들어가서 불을

지펴 주었다. 이리하여 애기가 돌이를 보고 “너무 쫓아다니지 마시오. 남이 부

끄럽소.”하고 말한 일까지 있었다. 어느 장 안날 식전이다. 선이가 소를 잡으러

포줏간으로 나가기 전에 돌이를 불러서 “너도 인제는 일을 좀 배워라. 사나이

자식이 밤낮 계집의 궁둥이만 쫓아다니면 쓰겠느냐.”하고 이른 까닭에 선이의

뒤를 따라나가서 소 잡는 것을 구경하였다. 그날 잡은 것은 큰 암소였다. 처음에

선이 집의 심부름꾼이 그 암소를 끌고 포줏간으로 들어오는데, 그 암소가 외양

간으로 끌려오는 줄로 아는 것같이 순순히 따라오다가 포줏간 가까이 와서 포줏

간에 배어 있는 피비린내를 맡고야 죽는 줄을 짐작하였는지 들어오지 아니하려

고 머리를 흔들고 뒷걸음질을 치려고 하였다. ‘메, 메’하는 소리가 사람 같으

면 ‘살려 주시오, 살려 주시오’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힘으로 말하면 심부름

꾼 열이나 스물이 덤비어도 끌어들이게 될지말지한 암소가 고삐를 몇 번 채치다

가 웅숭그리고 끌려들어왔다. 짐승이라 죽는 것을 잘 모르리라 하나 그렇지도

아니하였다. ‘메, 메’하는 소리와 웅숭그리는 모양은 고사하고 그 눈이 사람을

원망하는 것같이도 보이고 신세를 슬퍼하는 것같이도 보이고 또 미련하게 ‘잡

아 잡수’하는 눈치도 없지 아니하였다. 아무리 암소라도 힘이 있는 대로 날뛴

다고 하면 포줏간에서 죽게 되지 아니할 것인데 힘을 써볼 생각도 못하고 죽기

를 기다리는 것이 짐승이다.

심부름꾼이 고삐를 잡고 있는데 선이가 넓적한 도끼를 둘러메었다가 도끼 머

리로 벼락같이 내리쳤다. 눈썹 있는 사람이면 양미간이라고 말할 곳을 똑바로

내리쳤다. 단 한번에 암소가 ‘끙’하며 넘어졌다. 눈을 껌벅거리고 몸을 벌떡거

리는 것이 아직 다 죽지는 아니한 것이다. 어느 틈에 고삐를 놓은 심부름꾼이

선이의 도끼를 받아들고 도끼질을 익히듯이 바로 비뚜루 여러 번 내리쳐서 소가

영영 꿈쩍 못하게 되었다. 돌이는 죄도 없이 참혹히 죽은 소를 불쌍히 여기느니

보다 힘도 못 써보고 허무하게 죽는 소를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선이가

칼을 잡고 나서서 멱을 질러 선지를 뽑고 뱃가죽을 다 젖히어 놓고 가죽을 벗기

는데 가죽에 뒷고기 한점이 붙지 아니하고 선뜻선뜻 놀리는 칼이 실룩거리는 살

결을 따라들어가서 뼈마디에 다치지 아니하였다. 돌이는 도끼질을 심부름꾼보다

낫게 하기는 용이하지만, 칼질을 장인같이 능란하게 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하

였다. 돌이는 소 한 마리를 다 잡도록 서서 보다가 소머리, 족, 갈비, 양지머리,

등심, 내장 등속을 심부름꾼과 함께 날라 옮기고 선이 손 씻은 물에 손을 씻으

려고 하니 선이가 “이애, 한 그릇 물에 손을 씻으면 싸움한단다. 너는 안에 들

어가 씻어라.”하고 말하여 돌이는 피묻은 손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선이의

안해가 그 손을 보고 “일했네그려. 장인이 좋아하겠네.”말하고 나서 “이애 아

가, 네 남편 손 씻게 물 떠다 주어라.”말하여 애기가 옹배기에 물을 떠가지고

와서 돌이 앞에 놓으려고 할 때, 이때껏 두 손을 거북살스럽게 내밀고 섰던 돌

이가 손바닥을 벌리어 애기의 얼굴을 만져주려고 하니 애기가 “에그머니!” 하

고 소리를 지르며 뒤미처 “미쳤나? 무슨 짓이야.”하고 포달스럽게 말하였다.

돌이가 허허 웃고 앉아서 옹배기 물에 손을 넣으며 "쇠피 묻은 손이 눈에 익었

을 터인데 그래도 보기가 끔찍스러운가?"하고 섰는 애기를 치어다보니 애기가 "

끔찍스럽지 않대도 얼굴에 칠하는 것이 좋을 게 무어야. 내가 좀 칠해 주리까?"

하고 씽긋 웃는데 돌이는 "아니, 나는 쇠피 묻히기가 처음이야. 일은 망했어. 이

에다 대면 고리일은 정하지. 그리고 고리일은 사내 여편네 어른 아이 할 것 없

이 다같이 하는 것이 좋거든. 빙부님더러 고리일 하자고 해볼까?"하고 의논성 있

이 말하였다.

애기의 어머니가 이 말을 듣고 애기가 대답하기 전에 "이 사람아, 그런 말은

할 생각도 말게. 자네 고향에서는 그렇지 않다데만 여기서는 고리일을 세우지

않네. 고리일 한다면 대접이 떨어질 지경일세."말하니 돌이는 "백정이면 대접이

끝가는 세상에 올라가고 떨어지고 할 대접이 무어 있어요! 고리백정이나 개백정

이나 백정은 마찬가지지요."하고 두덜거리었다.

 

5

돌이가 일을 배우기 시작한 뒤 한 달이 못 되어서 선이의 집에 의외의 큰일이

생기었다. 유월 초하룻날의 일이다. 아침에 선이가 볼일이 있어서 같은 포주하는

사람의 집에를 갔었다. 그때 그 사람은 상제요, 그 포줏간은 객사 너머 큰거리에

있었다. 선이가 볼 일을 보고 곧 일어서려고 하다가 주인 상제에게 붙들리어 삭

망 지낸 음식을 얻어먹게 되었다. 선이가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여러 잔 받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까 갈 때까지 평탄하던 길이 갑자기 울퉁불퉁하여져

서 걸음을 바로 걷지 못하였다. 이때 양주목사가 객사에서 망배하고 나오다가

앞길에서 길을 휩쓸고 가는 술 취한 사람이 있는 것을 바라보고 남여에 올라앉

으며 "아침부터 큰길에 비틀걸음을 치며 다니는 놈이 있단 말이냐? 네 저놈 붙

잡아 가지고 들어가자."하고 분부하여 전배사령 하나가 분부를 시행하려고 비틀

걸음치는 사람에게로 쫓아왔다. 선이가 뒤에서 나는 "게 있거라!"하는 소리에 발

을 단단히 디디고 서서 뒤를 돌아볼 때, 사령이 달려와서 "이놈아, 무슨 술을 아

침부터 처먹었니?"하고 어깨에 손을 대니 선이는 술김이라 "내게 생긴 술 내가

먹는데 무슨 상관이요?"하고 코방귀를 뀌었다. "이놈아, 무어 어째! 무슨 상관?

주릿대 밀 놈 같으니."하고 선이의 빰을 보기좋게 내갈기니 선이는 비슬비슬하다

가 간신히 비스듬히 서서 "뉘게다 함부로 손질이야? 제미." 말이 입에서 떨어지

자마자 사령의 발길이 선이의 앞정강이에 다닥치며 선이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창 받은 미투리 신은 발에 선이는 차이고 밟히고 하여 "에구, 사람 죽인다." 소

리가 입에서 그치지 아니하였다, 좌우에는 구경하는 사람이 웅긋쭝긋 섰었으나,

사령이 백정을 치는데 나서서 말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또 다른 사람 하나가

쫓아와서 두 사령이 선이를 잡아 일으켜 양쪽 팔죽지를 갈라잡아 들고 달리어갔

다.

선이의 집에서 소문을 듣고 선이의 안해와 돌이가 숨이 턱에 닿도록 달음박질

하여 와서 보니 벌써 관가로 들어간 뒤라 돌이가 관가로 쫓아들어가려고 하니

선이의 안해가 "자네는 집에 가서 있게. 내가 알아보고 감세." 하고 돌이가 가려

는 것을 말리었다. "왜 그러세요?" "자네 같은 곰살궂지 못한 사람이 갔다가는

말도 못 붙여보고 귀퉁배기나 쥐어백히네. 아무 말도 말고 집에 가서 있게." 돌

이는 장모의 말을 유리하게 생각하여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선이의 안해는 친

한 아전에게 가서 알아본즉 식전 술 먹고 길에서 주정한 까닭이라 좀 있다 매깨

나 맞고 나가게 되리라고 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딸과 사위에게 이야기하고 남편

이 나오기를 기다리었다. 해가 다 저녁때가 되어도 선이는 나오지 아니하였다.

선이의 안해는 남편이 이때나 나올까 저때나 나올까 기다리다 못하여 이방의 집

을 쫓아가서 어찌된 일을 알아보았다.

선이의 안해가 이방 집에서 돌아왔을 때 애기가 내달아서 "아버지 어떻게 되

었답디까?" 하고 물으며 어머니의 얼굴을 치어다보니 그 어머니는 대답이 없이

고개만 가로 흔들고 눈에 눈물이 고이었다. 마루에 있던 돌이가 마당에 섰는 모

녀에게로 뛰어내려와서 어서 마루로 올라가자고 말하여 애기 모녀와 돌이가 마

루에 올라앉은 뒤에 애기 어머니가 애기를 향하여 듣고 온 일을 이야기하는데 "

너의 아버지가 오늘 곤장을 삼십 개인지 사십 개인지 맞고 옥에 갇히었단다." 하

고 비칠비칠하다가 다시 말을 이어서 "안전께서 처음에는 식전 주정한 죄로 매

깨나 때려 내보내려고 하셨는데, 너의 아버지를 잡아간 사령놈 그 망한 놈이 무

슨 원수가 졌는지 너의 아버지가 욕설을 했다고 안전께 고자질을 해서 안전 말

씀이 관포주 백정놈으로 관 하인을 능욕하다니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옥에 가두

라고 하셨단다. 이방 말을 들으면 지금 안전이 인정이 없는 이라 자칫하면 귀양

가기가 쉽겠다고 하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 하고 눈물을 떨어뜨리니

애기는 소리를 내서 울고 돌이는 입맛을 다시었다. 애기 어머니가 눈물을 씻으

며 돌이를 향하여 "여보게, 자네가 서울 가서 이승지의 편지 한 장을 맡아 부치

게. 그러면 혹시 놓을 수가 있을 것일세." 하고 돌이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돌이

는 "이승지요?" 하고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주팔이나 삭불이를 보고 말하면 이승

지의 편지 한 장쯤은 얻으리라 생각하고 "그래 보지요." 하고 이왕 서울을 갈 바

에는 오늘 밤으로 간다고 돌이는 총총히 저녁밥을 먹은 뒤에 밤길을 떠나갔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1권 (22. 完)  (0) 2022.09.27
임꺽정 1권 (21)  (0) 2022.09.26
임꺽정 1권 (19)  (0) 2022.09.23
임꺽정 1권 (18)  (0) 2022.09.22
임꺽정 1권 (17)  (0) 2022.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