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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2권 (5)

카지모도 2022. 10. 2.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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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덕순이가 김사성 앞으로 가까이 가서 “벌써 왔습니다. 사랑 뒤로 피하시지요.

” 하고 나직이 말하니 김사성이 눈을 부릅뜨며 큰소리로 “지각없는 것 같으

니, 어디를 피한단 말이냐?” 하고 꾸짖었다. 이러할 때 선전관 하나가 금위군사

십여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김사성의 외사촌이 놀란 가슴을 간신히 진정하고 나서서 “웬일이오?” 하고 물

으니 그 선전관이 “웬일?” 하고 뇌며 어깨를 으쓱하고 “대사성 김식이 여기

왔지?” 하고 호기 있게 묻는데 김사성의 외사촌이 무어라고 대답하기 전에 김

사성이 방 밖으로 나와서 “내가 김식이오.” 하고 나서니 그 선전관이 어명을

받들고 나왔다고 말한 뒤에 금위군사를 지휘하여 김사성을 끌어내리어 전후좌우

로 에워싸고 중문 밖으로 나가는데, 덕순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전신을 부르

르 떨다가 잡혀가는 부친의 뒤를 따라나섰다. 뒷전에서 가는 군사 하나가 돌치

어서며 “이놈아, 따라오지 말아!” 하고 호령하는데 덕순이가 “아무더러나 이

놈이야. 따라가면 어찌할 테냐?” 하고 맞호령하다시피 하였더니 “이놈 보아라.

”하고 덕순에게 달려들어 손찌검을 하려는 것을 옆에서 가던 다른 군사가 “고만두

게 이 사람아, 잡혀오는 이의 자질인가 보에. 인정에 따라오고 싶지 않겠나? 이

사람 고만두고 어서 가세.” 하고 말리어서 그 군사는 “양반의 자식은 법도도

모른단 말이냐, 봉명한 사람에게 호령질을 하다니. 내일쯤은 연좌로 경치게 될 것

이니 어디 보자.” 하고 벼르고 돌아섰다. 덕순이는 그렇지 않아도 분통이 터질

지경이라 주먹질과 발길질을 한두 번에 그 군사를 반쯤 죽여놓고 싶었으나 억지

로 참고서 광화문 앞까지 따라왔다. 궐내는 따라들어갈 길이 없는 까닭에 광화

문 밖에서 미친 사람같이 왔다갔다 하다가 수문장에게 “누구냐? 저리 가거라”

하는 꾸지람까지 받았다.

얼마 동안 지난 뒤에 금부도사가 앞을 서고 그 뒤에 금위군사 한 떼가 덕순의

부친 이외 여러 사람을 둘러싸고 나오더니 의금부로 향하였다. 군사 속에 싸여

서 끌려가는 그 부친의 얼굴을 언뜻 보고서는 이때껏 말똥말똥하던 덕순의 눈에

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금부 앞까지 따라 오기는 왔으나 황토마루 큰길로

돌아왔는지 수진방골 사잇길로 내려왔는지 덕순이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이때

달이 대낮같이 밝아서 기어가는 개미도 보일 만하였으나 달이 밝은지 날이 밝았

는지 덕순이는 요량하지 못하였다. 그날 밤에 궐내에 입직하였던 승지며 옥당들

도 잠깐 금부에 내려 갇히었다가 바로 놓이었는데, 두서너 사람이 놓여나올 때

마다 덕순이는 그 부친도 섞이어 나오나 하고 번번이 쫓아가서 보았다.

금부 안에서는 잡히어 온 사람들이 넓은 뜰에 늘어 앉았는데 금부도사의 인정

으로 공석 한 닢씩을 주어 깔고 앉았으나, 언 땅에서 올라오는 찬기운과 기왓골

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에 몸이 벌벌 떨리었다. 잡혀온 사람들은 대사헌 조광조와

형조판서 김정과 대사성 김식과 부제학 김구와 우승지 윤자임과 좌부승지 박세

희와 동부승지 박훈과 응교 기준 등 여러 사람인데 무슨 죄로 잡히었는지는 알

지 못하지만, 죽음을 면치 못할 줄은 다 각기 짐작하였다.

그러나 조광조 외에는 모두 일없는 사람같이 웃고 이야기하고 윤자임이 금부

도사에게 사정하여 술을 사다가 돌려 마신 뒤에는 시까지 읊조리는 사람이 있었

는데, 조광조 한 사람은 이야기도 하지 아니하고 술도 마시지 아니하고 처음부

터 통곡하여 그칠 줄을 모르니 여러 사람들이 “효직이 울지 말게.” 하고 말리

기도 하고 “효직이 창피하지 아니한가?”하고 조롱하기도 하는 중에 기준이가

“죽음을 당하여는 끝까지 옹용한 것이 글자 배운 보람인데 통곡할 까닭이 무어

있소?” 하며 책망하니 조광조가 목메인 소리로 “낸들 그걸 모르겠나? 나는 우

리 임금을 뵙고 싶어. 우리 임금이야 이렇게 하실 리가 없어.” 하고 다시 울음

을 내놓았다. 조대헌이 깔고 앉은 공석은 떨어진 눈물이 얼어붙어서 달빛에 번

쩍거리니 나졸 중에 한 사람이 이것을 보고 새 공석을 한 닢 가지고 와서 “이

것을 깔으십시오.” 하고 조광조를 붙들어 일으키고 새 공석을 덧깔아 주니 조

광조가 그 나졸을 돌아보며 “필묵을 좀 얻어주겠소?” 하고 청하니 그 나졸이

“도사 나리께 말씀을 여쭈어 보리라.” 하고 가더니 필묵과 벼루를 가져왔다.

조대헌이 눈물로 묵수 삼고 웃옷자락으로 종이 삼아 상소 한 장을 써놓았다.

 

7

여러 사람이 조광조의 써놓은 상소를 보니 말은 간단하나 뜻은 곡진한데, 끝

으로 말한 소원은 임금이 친히 한번 심문하여 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는 것이

었다. 성미 괄괄한 윤자임이 이것을 보고 대번에 “친국 당하기가 소원이란 것

은 좀 우습소그려.” 하고 옷자락 상소를 손등으로 밀어치우니 조광조가 그것을

정성스럽게 접어서 품에 품으며 “우리 임금은 잘못된 일을 아시고 고치시지 않

을 리가 없으셔.” 하고 또 눈물이 방울방울 옷깃에 떨어지는데 눈물 자국이 완

연히 불그스름한 물이 묻는 것 같았다.

김식이가 이것을 보고 “여보게 중경이!” 하고 윤자임의 옆구리를 지끈거리

어 윤자임이 자기를 돌아다보게 하고는 할 말이 별로 없으니까 김구를 가리키며

“저 대유의 글을 들었나? 명월장천야 구가 좋지?” 하고 말한즉 윤자임이 “아

까 같이 듣고 들었느냐고 묻는단 말인가? 노천도 정신이 빠졌네 그려.” 하고

허허 웃으니 김식이는 “그랬던가?” 하고 저으기 웃었다. 김식이가 말하고 웃

고 하는 모양으로 윤자임도 조광조의 맘을 더 상하게 하지 말라는 눈치를 알고

다시는 옷자락 상소에 대하여 말을 내지 아니하였다.

잦은 닭이 울 무렵에 덕순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덕순이는 금부문 밖에서 돌

아다닐 묘리도 없지마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역시 없었는데 어찌하다가 집에

있는 어머니의 생각이 나며 발이 제대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처

음에 선전관이 금위군사를 지휘하여 집 안을 뒤지는 틈에 덕순이는 슬그머니 사

랑 뒷담을 뛰어넘어서 한달음에 그의 부친이 있는 진외가로 갔었는데 그 어머니

와 그 형님까지도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도록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지만,

덕순의 안해 이씨는 사람을 보내고 싶었으나, 그 시어머니가 수족에 자개바람이

나서 맏동서와 같이 시어머니 옆에 붙어 있느라고 틈을 타지 못하였다. 덕순이

집에를 돌아왔을 때 이씨와 그 동서는 아직도 시어머니 방에 있었는데 중병을

치른 사람같이 얼굴이 해쓱한 덕순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형수가 “아이

구!” 하고는 곧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시어머니에게 “서방님 오셨습니다.” 하

고 말하였다. 덕순의 어머니가 기운 없이 눈을 뜨고 한번 둘러 보더니 “너의

아버지 오셨느냐?” 하고 묻는 것이 정신이 깨끗한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 덕순

이는 그 형수가 가까이 있는 것도 헤아리지 않고 어머니 앞으로 달려들어서 그

안해가 주무르느라고 쥐고 있던 어머니의 손을 빼앗는 것같이 당겨 쥐고 “어머

니, 아버지가 금부로 가셨어요.” 하고 눈물이 텀벙텀벙 떨어지니 그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이 고개만 가로 흔들 뿐이었는데, 그 고개가 남편의 일이 글렀다는

뜻인지 또는 아들더러 울지 말라는 뜻인지 알지 못할 고개이었다.

덕순의 형 덕수가 들어왔다. 덕수는 울어서 눈이 부었었다. 그 어머니는 덕수

를 보고 또 알지 못할 고개를 흔들었다. 이씨가 슬그머니 일어서서 시어머니의

발치로 가서 섰으니 맏동서가 “여보게 앉게. 어머니 발을 주무르세.” 하고 자

기도 발치로 가서 두 동서가 시어머니의 발을 하나씩 갈라 쥐고 주무르기 시작

하고 덕수는 계수가 내놓고 일어선 자리에 와서 덕순과 나란히 앉았다. 앉았는

사람의 속을 답답케 할 만큼 조용하였다. 소리는 어린 덕무의 코고는 색색 소리

와 등잔불의 심지가 타는 빠지직 소리 뿐이고 움직이는 것은 두 동서의 흰손들

뿐이었다. 이때 광경을 갑자기 보게 된 사람이 있다면 아들 며느리가 어머니 임

종에 모이어 앉은 것으로 잘못 보기 쉬울 만하였다.

동이 틀 때 그 어머니가 깨끗한 정신이 돌아나서 아들들을 보고 “너희들이

이리하여서는 아니 된다. 큰일을 당한 사람일수록 잠 잘 자고 밥 잘 먹어야 한

다. 나가서 눈들을 좀 붙여라.” 하고 또 발치에 있는 며느리들을 보고 “너희들

도 방으로들 가거라.” 하고 말한 뒤에 아니들 나가는 것을 야단치다시피 하니

이씨의 두 동서가 먼저 나와서 상직군과 아이종을 들여보내고 그 뒤에 덕수의

형제들도 일어서 사랑으로 나왔다. 덕수는 기질이 약한 까닭에 앉아 배기지 못

하고 목침을 베고 눕고 덕순은 손으로 턱을 고이고 앉았는데 밖에서 “작은서방

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8

덕순이가 문을 열고 내다본즉 박연중이가 댓돌 위에 올라서 있었다. “왜 부

르니?” “이리 좀 오시오.” 덕순이가 마루 끝에 나와 앉은 뒤에 “소문은 더

러 들으셨소?” 하고 연중이가 물으니 덕순이는 듣지 못하였다고 고개를 흔들었

다. 연중이가 “소인이 몇 군데 다니며 알아보니까 예조판서 남곤이가 일을 꾸

며낸 모양입디다.” 하고 “오밤중에 어디 가서 알아보았단 말이냐?” 하고 덕

순이가 의심하는 것같이 말하니까 연중이는 “어젯밤에 문 닫고 잠잔 댁이 어디

있단 말씀이오.” 의심하는 것을 나무라듯이 말하고 우선 알아본 데를 대려고

“소인의 친구가 회동 정정승댁의 청지기를 다니고 소인의 일가가 흥인문 밖 이

판서댁의 별배를 다니지요.” 하고 말하니 덕순이가 “그래 고만두고 알아본 이

야기나 해라.” 하고 연중의 이야기를 재촉하였다. “정정승댁 청지기의 이야기

를 들으니까 어제 새벽에 남판서가 패랭이를 쓰고 헌 베옷을 입고 걸어서 정정

승댁에를 왔더랍니다. 정정승이 중문간에 나가 보는데 그 청지기가 부축하고 나

갔더래요. 남판서 말이 남의 이목이 무서워서 이 모양을 하고 왔노라고 하고 지

금 위에서 조광조 당을 없이 하시려고 하시는데 위에서 대감께 문의하시거든 아

무쪼록 위의 뜻을 거스르시지 마십시오. 그 사람들을 하나라도 뒤에 남겨두면

해가 무궁할 것이라 씨를 없애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잘못하다가는 나중에

후회하게 되실지도 모르니 깊이 생각하십시오. 말하고는 잘하면 큰 수가 생길것

이요, 잘못하면 큰 탈을 당할 것이라고 별말을 다 하더랍니다. 그런데 정정승이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여보 대감이 조정 중신의 몸으로 상것들의 모양을 하고

큰거리를 지나오시다니 해괴한 일이오. 또 그러고 사림을 모함하려는 것은 나의

본심이 아니오, 하고 말하여 남판서가 골을 내고 인사도 변변히 아니하고 간 일

이 있었는데, 어제 밤중에 궐내에 큰일이 났다고 입궐하시라고 해서 들어가시게

되니까 그 댁에서도 큰일이 나는가 보아서 안팎없이 야단들이랍디다. 또 이판서

댁 별배의 말을 들으니까 이판서가 댁에 아니 계신 동안에 남판서가 연 사흘 찾

아왔더랍니다. 어제 저녁때 남판서에게서 무슨 편지가 왔는데 이판서가 그 편지

를 보더니 군복을 차리고 말을 빌어다 타고 문안을 들어왔답니다. 처음에는 남

판서 집으로 갔었다가 남판서와같이 경복궁 대궐 뒷문으로 가서 그 문으로 입궐

하였다는데 그 별배가 주인대감의 뒤를 따라다니다가 나왔다고 합디다. 그러고

신무문으로 입궐하는 것은 전에 본 적이 없는 일이라고 합디다. 그래 이 말 저

말 합해서 생각한즉 이번에 영감마님이 당하신 일은 남곤이가 꾸며낸 것이 분명

하지 않아요?” 정신 놓고 연중의 이야기를 듣던 덕순이가 “남곤이는 원래 간

특한 놈이니까 못된 짓을 하겠지만 이장곤이로 말하면 점잖다는 말을 듣는 자가

남곤이와 부동해서 못된 짓을 했단 말인가?” 하고 열을 내어 소리를 질렀다.

덕순이가 소리지르는 바람에 방에 누웠던 덕수가 놀라서 뛰어나오며 “무얼 그

러니?” 하고 물으니 덕순이가 눈을 크게 뜨고 “여보 형님, 이장곤이가 남곤이

와 부동해 가지고 아버지를 모함했다는 구려.” 하고 분하여 하니 덕수가 얼마

동안 말이 없이 생각하더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이판서가 점잖다는 이고

또 조대헌장이시나 아버지시나 서로 친하신 터인데 그럴 리가 만무하다.” 하고

이판서를 두둔하여 말하였다. “아니요, 형님. 연중이가 듣고 온 말이 있을 뿐

아니라 가만히 생각해 본즉 그 말이 근리한 것이, 이장곤이가 병판이 아니오?

병판이 아니 들면 금위군사를 풀 수가 없지 않소?” “글쎄, 그렇다면 인심이

무섭다.” “인심이 다 무어요? 친한 것으로 말하면 남곤이는 친하시자들 아니한

지요? 우리가 원수를 갚자면 첫째 이장곤이고 그 다음에 남곤이오.” 덕순이가

주먹을 쥐고 일어서니 덕수가 차차 더 알아보자고 말하였다.

 

9

덕순이가 이장곤을 때려죽일 놈같이 벼를 때에 금부 안에서는 벌써 좌기할 기

구를 차리느라고 나졸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중이었다. 해가 높이 솟은 뒤

에 조광조, 김정 등을 잡아들여 문초를 받게 되었는데 문초받는 관원은 위관에

김전이요, 금부당상에 이장곤이요, 이품에 홍숙이었고, 문초받는 죄목은 조광조,

김정, 김식, 김구 네 사람은 붕당을 지어 성세를 잡고 궤격한 버릇을 길러 조정

을 그르친다는 것이요, 윤자임, 기준, 박세희, 박훈 네 사람은 조광조 무리를 따

라 궤격하다는 것이었다. 조광조가 계하에 꿇리어 앉아서 당상에 좌기한 이장곤

을 치어다보고 “희강이, 희강이.” 하고 자를 부르니 이장곤은 바늘방석에 앉은

사람같이 몸을 편히 가지지 못하고 차마 계하에 꿇린 사람을 바로 내려다보지

못하던중에, 조광조의 자 부르는 소리를 듣고 무안한 듯이 부끄러운 듯이 얼굴

을 붉힐 뿐이었는데 김전이가 “죄인이 당상의 자를 부르다니 가만두지 못한 일

이다.” 하고 같지 않게 화를 내며 좌우에 벌려선 나졸을 내려다보고 “너희들

그 주둥이를 부비어 놓지 못하느냐!” 하고 호령하였다. 나졸들이 긴 대답을 하

고 조광조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 이장곤이가 “가만히 물러들 섰거라.” 하고

분부하여 나졸들을 물리치고 곧 손 위에 앉은 김전을 돌아보며 “선비는 죽일망

정 욕보이지 못합니다. 또 어제까지 친구로 지내던 사람이 자 좀 불렀다고 욕보

이는 것은 인정이 아닙니다.” 하고 점잖게 말하여 김전은 입맛을 다시고 말이

없었으나 손 아래에 앉은 홍숙이가 이장곤을 돌아보며 “그것은 대감 말씀이 틀

린 말씀이십니다. 충역이 한번 갈린 바에야 친구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

것은 고만두고 얼른 죄인들의 문초나 받으십시다.” 하고 계하를 내려다보며 “

너희들의 죄목은 다 알았지? 광주부터 바로 아뢰라.” 하고 호령하니 조광조가

홍숙을 치어다보며 “네가 나의 문초를 받다니? 만일 법대로 국문한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 말하여 홍숙은 분이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 금부에서 여러 사람

의 문초를 받아서 궐내에 드리고 형장쓰기가 청하였으나, 이일에 대하여는 조정

의론이 정한 것이 있으니 형장을 쓰지 말고 조율하라고 위의 하교가 있어서 여

러 사람이 형장은 당하지 아니하였다.

이때 문 밖에 사는 사람들은 문 안으로 모여들고 문 안에 사는 여염 사람과

시정 사람들은 길거리로 몰려나오고 성균관에 거재하는 유생들과 중부, 동부, 서

부, 남부 사부학당에 있는 유생들은 경복궁 대궐 앞으로 몰려들어서 광화문 앞

에서 황토마루로 종로 큰길거리까지 사람 천지가 되었는데 해태 앞과 금부 앞에

는 사람이 천여 명씩 뭉치었었다. 해태 앞에 뭉치었던 유생 중에 신명인이란 선

비가 앞으로 나서서 “우리가 이렇게 모여섰기만 하여서 무엇하는가? 우리가 신

원상소나 올려보자.” 하고 섰던 자리에 주저앉아 상소를 초하는데 붓이 쉴 새

없이 적어냈다. 여러 유생들이 상소 든 유생을 앞세우고 궐문 앞으로 달려드는

데, 수문장이 문 지키는 군사를 좌우에 벌려세우고 앞을 막으니 황계옥이란 유

생이 군사 하나를 떠다박질러서 유생과 문군사 사이에 살풍경이 나기 시작하였

다. “쳐라, 때려라.” 소리와 “밟아라, 죽여라.” 소리가 서로 어우러지며 유생

중에 갓 부시고 옷 찢긴 사람은 말 할 것도 없고 머리가 깨어져서 피투성이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먼저 손찌검을 시작한 황계옥이는 슬슬 피하여

옆으로 비켜선 까닭에 옷고름 하나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막아도 물러가지 아니

하고 점점 더 달려드는 유생들을 문군사 몇 사람이 막아내지 못하여 나중에는

유생들이 물밀듯이 광화문 안으로 몰려들어와서 악머구리 울듯이 통곡하기 시작

하였다. 난데없는 곡성이 궐내를 진도하여 위에서 놀라 곡성 출처를 하문하니

정원에서 사실을 아뢰었다. 위에서 “이것은 천고에 없는 변이다. 금위군사를 풀

어서 몰아내라. 그러고 수두 몇 놈은 잡아 가두어라.” 하고 하교하여 금위군사

들이 유생들을 내쫓는데 “수두가 누구냐?” 물어서 몇 사람을 잡으려고 하니

여러 유생들이 “나도 수두다. 나도 수두다.” 하고 달려들었다. 금위군사가 처

음에 잡기는 네다섯 사람에 불과하였지만 나중에 앞을 다투어 잡히는 사람이 수

가 없이 많은 까닭에 철쇄가 부족하여 새끼로 목을 얽힌 사람이 여러 백 명이

되었다. 위에서 이것을 알고 조광조가 인심을 얻었다는 것이 사실이구나 생각하

고 눈살을 찌푸릴 때에 마침 금부에서 조광조의 옷자락 상소를 올리니 위에서

“상소는 다 무어냐?” 하고 감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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