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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24)

카지모도 2022. 11. 22.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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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경복궁의 큰 화재가 난 뒤에 왕은 대왕대비와 왕대비를 뫼시고 창덕궁으로 이

어하게 되었다. 이어하던 이튿날 왕이 삼정승을 탑전에 불러들여서 경복궁 중수

할 일을 의논하는데 왕이 먼저 입을 열어 "내가 나이가 젊고 덕이 없는 탓으로

조종조 백여 년간 전하여 오는 궁궐을 일조에 태반 불에 태우고 황송한 맘에 침

식이 실로 불안한 고로 하루바삐 중수하려 하니 경들은 어찌 생각하오? “ 하고 정승

들의 의견을 물으니 윤원형이 앞으로 나서서 "지금이라도 곧 중수도감을 앉히고

역사 준비에 착수하는 것이 좋을 줄로 생각합네다. " 하고 대답을 아뢰었다. "영

상, 좌상도 의견이 우상과 같소? ” 하고 왕이 심연원과 상진을 차례로 돌아보

고 다시 윤원형을 바라 보며 "그리하자면 도감당상은 사람을 골라야 하지 않겠

소? 궁궐 중수가 국가의 작은 일이 아니니 적당한 사람을 맡기지 아니하면 인민

의 원망을 사기가 첩경 쉽지 않소?“ 하고 말한 뒤에 눈을 옮겨서 심연원을 바

라보는 것이 영상이 맡았으면 좋겠다 하는 눈치라 원형이 선뜻 "제조는 다른 사

람들을 택용합시더라도 도제조는 영상 한 사람이 족할 줄로 압네다. " 하고 아뢰

니 왕은 맘에 합당히 여기는 얼굴빛으로 고개를 끄덕이었다. 심연원이 적이 앞

으로 나서며 "인민의 곤궁이 심한 때에 공정이 호대한 국가 역사를 감히 맡는다

하옵는 것이 노신의 힘에 버거운 일인 줄을 아오나 신의 선조 청성백 덕부가 궁

궐 창건하을 때 힘쓴 것을 생각하옵더라도 사양하을 길이 없사오니 노신이 마땅

히 심력을 다하오리다. " 하고 말씀을 아뢰니 왕은 기뻐하는 빛이 얼굴에 나타났

었다. 경복궁 중수 의논이 끝난 뒤에 심연원과 상진은 빈청으로 물러나가고 원

형이 홀로 탑전에 남아 있었다. "무슨 할 말이 있소? ” 하고 왕이 물은 뒤에 원

형이 탑전에 가직이 나가 서서 "전하께서는 보우를 어떻게 합시렵니까? “ 하고

왕을 치어다보니 "어떻게 하다니? " 하고 왕은 미간을 깊이 찌푸리었다. "보우가

보 창덕궁 안에 와서 거처하도록 가만둡시렵니까? ” 하고 원형이 말씀하니 왕

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이때 보우는 아직 경복궁에 떨어져 있고 창덕궁

으로 옮겨오지 아니하였었다. "이번에 절로 내보내도록 합시지요. " "어떻게? “

"자전에 품하옵고 내보내십시오. " 왕은 대답이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 화

재를 귀화라고 떠드는데 보우가 귀신 부리는 술법이 있어 짐짓 화재를 내었다는

말씀은 신부터 의심이 없지 않사오나 보우 같은 요승이 궐내에 들어온 까닭으로

전에 없는 재변이 났다는 말씀은 만구일담으로 같사오니 이 말씀을 가지고 알아

들으십도록 품하오면 자전께옵서도 별로 다른 말씀이 없으실 줄 압네다. " "내가

말씀을 여쭈어 보았으나 어디 들으셔야지. " "신이 전하를 뫼시고 자전에 들어가

서 한번 품하여 보올까 생각합네다. " "한번 그렇게 해볼까. " 하고 왕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왕이 앞을 서고 원형이 그 뒤를 따라 대비전에 들어오니 대비는

마침 조용히 일없이 앉았었다. 원형이 먼저 입을 열어 왕에게 말씀한 것을 되거

푸 말씀하고 왕이 뒤를 이어 보우를 절로 보내자고 말하여 다른 말은 끝마치기

도 전에 대비는 "다 알았어, 고만두어. " 하고 화증을 내었다. 왕이 한동안 무료

하게 앉았다가 원형이나 또 말씀을 해보았으면 생각하고 넌지시 원형을 돌아보

니 원형은 고개를 폭 숙이고 있었다. 왕이 한번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고 일어

서려고 할 때에 대비가 곱지 않은 목소리로 "내일 좌우간 결단해서 말할 것이니

그리들 알고 나가. " 하고 말하였다.

 

10

그날 저녁때 대비가 보우를 불러보려고 궁인 하나를 경복궁에 보내게 되었다.

원형은 대비가 보우 불러볼 것을 미리 짐작하고 대비의 심부름 가는 사람을 알

아보고 있다가 경복궁에 가는 궁인을 공조 뒤에 있는 별채집으로 불러서 진주

보패를 주고 여러 가지 말을 일러 보내었다. 그 궁인이 보우의 처소로 갔을 때,

보우는 젊은 궁녀 두서넛을 앞에 앉히고 불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중이었는데,

대비의 보낸 궁인이 방 안에 들어선 뒤에 이야기를 중지하였다. "마마께옵서 하

실 말씀이 겝시다고 석후에 동관 대궐로 오시라십디다. " 하고 궁인이 온 뜻을

말하니 보우는 간단히 "가지. " 하고 대답하고 한동안 있다가 그 궁인을 바라보

며 "내가 가 있을 처소를 정하였는가? “ 하고 물었다. 그 궁인이 고개를 살래살

래 흔들다가 보우에게 긴히 보이려는 사람같이 다정스럽게 "스님. " 하고 부르고

보우 앞에 와서 앉으며 말하였다. "스님 이따가 마마 보입고 말씀을 잘하세요.

내가 듣조운 말씀이 있세요. " "무슨 말씀?" "이번에 귀화로 화재 난 것은 스님

의 탓이라고 스님을 궐내에서 내보냅신답디다. " "어째 내 탓이어? ” "스님이

도깨비를 시켰다고요. " "미친 소리를 다 듣겠네. " "아까 대전께서 들어옵셔서

모자분이 그렇게 공론하시든데요. "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대왕대비가 나 내보

낼 공론을 한단 말이 그나마 허무맹랑한 말을 곧이듣고 그게 무슨 소리야. " 하

고 보우가 성이 나서 눈귀가 샐룩하여졌다. 그 궁인은 "나는 스님께 귀띔하느

라고 말씀한 것이니 마마께 들은 체 마세요. " 하고 당부하니 "공론했으면 먼저

무슨 말이 있겠지. 들은 체할 까닭이 있나. “ 하고 보우는 당부를 받고 "인정에

그럴 수가 있나. " 하고 혼잣말하였다. 그 궁인이 창덕궁에 돌아와서 대비 앞에

나가서 경복궁 갔다온 것을 말씀하니 대비는 "무어하느라고 이때까지 있었느냐?

” 하고 늦게 온 것을 미타하게 말하고 나서 말을 물었다. "석후에 곧 온다더

냐? “ ”녜.“ "무엇하고 있더냐?” "젊은 것들하고 같이 있습디다. " "젊은 것

들이라니? 궁녀들 말이냐? 궁녀들과 무엇하더냐? “ "말씀 사룁기 황송합니다만

젊은 것들을 좌우편 팔에 끼고 앉았다가 마마 전갈이라고 말씀한 뒤에야 겨우

팔을 빼고 무슨 전갈 하고 묻습디다. 아무리 스님이시라도 너무 기탄이 없으십

디다. " "너도 같이 앉아 허영수하느라고 늦었구나. " "아니올시다. " "아니란 건

다 무어냐. 만수받이하고 있지 않았으면 왜 이렇게 늦었느냐? “ 하고 대비는

화가 나서 억탈로 그 궁인을 꾸짖었다. 대개 그 궁인의 말전주는 원형의 진주

보패가 시킨 것이다. 석후에 보우가 동관 대궐에 와서 대왕대비께 보입는데 대

비는 대비대로 화가 났고 보우는 보우대로 성이 난 까닭에 오고가는 말이 처음

부터 거칠었다. "왜 부르셨습니까? ” "부르지 못할 사람을 불렀소? “ "화재 몽

넉을 씌우려고 부르셨습니까? ” "쓰면 쓰는 게지 누가 세우겠소. " "내가 도깨

비의 영수인 줄 아십니까? “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을 내가 안단 말이

오?" "내가 내 입으로 그런 소리를 지껄였단 말씀입니까? ” "도깨비를 장난 못

치게 하는 사람이 영수가 아니면 괴수인 게지. “ "기막힌 소리를 다 듣겠습니다

그려. " 하고 보우가 어이없는 웃음을 웃으니 대비는 "웃기는 왜 웃소. " 하고

화난 눈초리로 보우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대왕대비 존전에는 웃는 것도 죄입니

까. 그러나 보우는 귀천을 가리지 않는 여래의 제자입니다. 그것만은 잊지 마시

고 말씀하십시오. " "알뜰한 여래의 제자이오. 여래 제자다운 행실이 있어야지

여래 제자로 대접을 받지요.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처음에 하도 간청하시기

에 궐내에 와서 있었더니 나중에는 별말씀을 다 듣습니다. " "간청한 것이 잘못

인 줄을 인제 알았소. " "그러시면 소승은 절로 가겠습니다. " 하고 보우가 분한

기색으로 일어서 나가다가 돌아서서 "한번 다시 생각해 보시지요. " 하고 나간

뒤에 한동안 있다가 대비는 왕을 불러들이었다.

 

20

왕이 대왕대비 침전에를 다녀온 뒤에 불시로 윤원형을 패초하여 편전에서 인

견하고 자전 하교 내에 보우를 궐내에서 내보내라셨다고 말씀하고 "내일이라도

내어보내자면 어떻게 내보내리까? 어디든지 저의 맘대로 가게 하리까? 또는 갈

곳을 정하여 주리까? “ 하고 원형의 의견을 물으니 원형은 보우를 원악도에라

도 보내고 싶어하는 터이라 선뜻 입을 열어 "자전 하교를 받자오신 바에는 아무

쪼록 멀리 보내시는 것이 좋지 않사오리까? 멀리 보내시려면 갈 곳을 정하여 주

시는 것이 타당하올 줄로 생각합니다. " 하고 대답을 아뢰었다. "궐내에서 내보

내기만 하면 고만이지 하필 멀리 보낼 것이야 무어 있소. " "서울 근처에서 돌아

다니다가 또다시 궐내에 들어오게 되면 어찌하시렵니까? 두번째 내보내기는 이

번보다 더 어렵지 않사오리까. " "글쎄, 그것도 그렇지만 만일 멀리 내쫓으면 자

전께서 어떻게 생각하실는치 모르겠소. " "내보내라신 하교가 계시면 고만입지

그렇게까지 생각하실 것이 없습니다. " "글쎄. " "안변 황룡산으로 보내시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 "글쎄. " "안변이 너무 멀 것 같으면 춘천 청평산으로 돌려보

냅시지요. " 하고 원형은 조금이라도 멀리 보내려고 주장하였으나, 왕이 글쎄 글

쎄 하고 끝끝내 질정하여 말하지 아니하였다. 그 이튿날 보우를 궐내에서 내보

내는데 보내는 곳은 안변도 아니요, 춘천도 아니요, 서을 가까운 광주였다. 왕은

대왕대비의 의향을 몰라서 멀리 보내자고 말하지 아니하였거니와 원형은 어찌하

여 전날 밤 주장을 굽히게 되었던가. 원형이 궐내에서 저의 집에 나와서 난정을

보고 보우 내쫓을 것을 말하였더니 난정이 은근히 보우의 일을 염려하면서 "마

마께서 다시 없이 위하시던 스님을 어찌 생각하고 내쫓게 하시는지 이허는 잘

모르겠으나, 섣불리 멀리 쫓자고 말씀하다가는 마마께 미움을 받으시리다. 대감

은 굿구경하고 떡 얻어 잡수시오. " 하고 원형을 위하는 것으로 말하여 원형이

그 말을 유리하게 듣고 이튿날 보우를 멀리 보내자고 주장하지 아니하였던 것이

다. 대비가 보우의 의향을 물어보고 보낼 절을 정하라 하여 마침내 보우는 선종

대찰인 광주 봉은사의 주지가 되어 궐내에서 나오게 되었다. 보우가 봉은사에

와서 있게 된 뒤에도 비단 의복과 비단 자리는 궐내에서 지내던 때와 다름이 없

었고, 남자 상좌는 곰살궂기가 여자만 같지 못하다고 어여쁜 양가 처자를 뽑아

다가 상좌를 만들어 주야 없이 옆에 두었었다. 보우는 산중 제왕으로 경복궁을

생각하지 아니하나, 대비는 보우를 내보낸 뒤로 일심귀의 하던 불도를 갑자기

버린 것같이 서운하고 심심하여 한두 달 뒤부터는 봉은사에 거동할 생각까지 없

지 아니하였다. 어느 때 대비가 심심한 것을 못이겨 하는데 대비의 눈치를 잘

아는 난정이가 옆에 모시고 있다가 "이때쯤 스님은 무엇을 할까요? 마마의 후세

를 위하여 불전에 축원을 드릴는지 모릅지요. " 하고 대비의 말을 자아내었다. "

그럴 정성이 있을까? “ "그러먼요. 마마께 은혜 입은 것을 잊으면 자기도 성불

못할 것입니다. " "들으니까 봉은사가 뚝섬 건너라는구나. 한번 가볼까. " "아무

리 가까워도 마마께서는 기동합시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조정에서도 떠들고

나서려니와 첫째 대전에서 잘 좇지 않으실 듯 하외다. " "내가 뿌리치고 가면

가는 게지. " "그리합시느니보다는 스님을 인수궁으로 불러올립시고 나가 봅시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 "글쎄. " 하고 대비는 마음이 솔깃하였다, 그리하여 며칠

뒤에 대비는 궁녀 하나를 공은사로 불공을 보내었다.

 

21

궁녀가 불공 갔다 온 뒤로 보우의 서울길이 터지고 보우가 서울 올라다닌 뒤

로 대왕대비의 인수궁 거동이 잦아졌다. 보우가 올라와서는 인수궁에서만 유련

하지 아니하고 대내에까지 들어왔건마는, 대왕대비가 보우를 연 속에 담아 가지

고 다닌 까닭에 연멧군이 조금 무겁게 생각하고 눈치로 알았을 뿐이지 수문장들

까지도 보우 드나드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경복궁 중수가 이태 만에 끝이 나서

대왕대비가 북궐 안에서 재를 올리느라고 보우를 불러 들인 뒤로 보우는 다시

터놓고 궐내에 들어와서 거처까지 하게 되었는데, 한 달에 절반쯤 봉은사에 나

가서 있는 것이 전날과 다를 뿐이었다. 왕이 한번 조용히 원형을 보고 보우의

일을 말씀하며 "경의 말이 맞았소. 멀리 내쫓아 버리지 못한 것이 후회요. " 하

고 탄식하니 원형이 "아직은 두고 보셔야지 어찌할 수 없습니다. " 하고 대답을

아뢰었다. 원형은 난정의 말을 곧이듣고 굳세게 주장하지 못한 것을 속으로 뉘

우치나, 대비가 보우를 전보다도 더 믿는 줄 아는 까닭에 보우 건드릴 생각을

염두에도 올리지 못하였다. 대왕대비가 후세 공덕을 위하여 연년이 사월 파일

에 무차대회를 건설하는데, 언제든지 보우가 주장하나 처소는 해마다 변하였으

니 양주 봉선사와 광주 봉은사와 장단 화장사와 양주 회암사가 모두 당시의 재

를 올리던 처소이다. 사월이 되면 보우는 먼저 정한 절에 가서 앉고 대비는 뒤

에서 나라 곡식과 궐내 재물을 실어 보내고 지워 보내서 재를 굉장하게 올리던

것이다. 경복궁 역사가 낙성되던 이듬해에는 대비가 보우와 의논하고 재를 예년

보다도 더 굉장히 올리기로 하고 처소는 양주 회암사로 정하였다. 회암사는 서

역 지공존자가 지형을 와서 보고 천축국 아란타사와 같다고 칭찬한 곳이니 동방

명승인 보제존자의 도량이다. 보제존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뜻을 이어 뒤를 마쳐

거룩한 절이 제도가 굉걸하였다. 중앙에 보광전 다섯 간이 있고 그 뒤에 설법전

다섯 간이 있고, 또 그 뒤에 사리전 두 간이 있고, 또 그 뒤에 삼간 패청 한 채

가 있고, 그 동서편에 동방장, 서방장이 각각 세 채가 있고, 동방장 동편에는 나

한전 삼 간이 있고, 또 서방장 서편에는 장경각 삼 간이 있고, 그외에 불전과 종

루와 승방과 객실아 즐비하게 연하여 간수가 도합 이백예순두 간이었다. 이와

같이 큰 절이 연구세심하여 퇴락한 곳이 많았었는데 성종대왕 때에 정희대비가

수군복국의 승지라고 나라 재물을 들여 일신하게 중수한 까닭에 이때는 절이 퇴

락한 곳이 없이 성하여 시골 구석 작은 절에 있던 중들은 으리으리하여 발을 들

여 놓기가 어려웠다. 보우가 무차대회를 건설하기 전에 금년 회암사의 대회는

예년보다 더 굉장할 터이니 많이 와서 참관하라고 각도 대찰에 기별한 까닭에

사월 초생이 되며 각도 각 사찰 중들이 회암사로 모여들었다. 중들이 얼마나 많

이 모여들었던지 회암사 여러 주방에서 한 끼에 삶아내는 쌀이 수백 두씩 되었

다. 파일재 올리는 날에는 중들 외에도 구경 온 속인들이 많아서 회암사 일대에

사람바다가 생기었다. 재를 올린 끝에 도우가 일장 설법하게 되었다. 설법할 처

소는 큰 대청 앞에 넓은 마당이 있었으니 대청 북편에 주홍칠한 상이 놓였는데,

상 위에는 비단 방석을 깔아놓았고 상 앞 대청 위에는 새 기직을 깔아놓았고 대

청 아래 마당에는 새 멍석을 깔아놓았다. 각도 중들이 마당에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하여 멍석이 어지간히 찬 뒤에 지위 있는 중들이 대청에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하였다. 대청 기직자리가 별로 남지 아니하였을 때는 마당 멍석자리에는 앉

을 곳이 없어서 서 있는 사람이 많았다. 얼마 뒤에 보우가 상좌에게 부축을 받

고 나와서 주홍상 위 비단 방석에 올라앉았다. 보우는 대왕대비가 하사한 궁수

놓은 비단 가사를 어깨에 엇메고 난정이가 바친 제주 무회목 좌장을 손에 들었

었다. 보우가 여러 중들을 눈 아래로 내려보면서 한번 큰기침하고 설법을 시작

하려고 할 때에 멍석자리 뒤로 늙은 중 하나가 들어서려는 것을 그곳에 섰던 중

이 자리 없다고 막았더니 그 늙은 중 뒤에 따라오던 상투 바람의 속인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자리 없다는 게 다 무어냐. 너희들의 자리를 내어라. " 하고 앉

던 중과 그 옆에 섰던 중들을 어린아이같이 안아내고 그 늙은 중을 부축하여 들

이었다. 이리하자니 좌중이 조금 소란하였다. 보우가 이것을 내려다보고 훤화를

금지하라고 말할 때에 그 늙은 중이 대청 위를 바라보며 "보우야! "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 목소리가 쟁쟁하기 쇳소리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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