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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25)

카지모도 2022. 11. 23.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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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보우야 소리 한마디에 휘둥그래진 눈쓸이 바라다보고 돌아다보고 또 치어다보

는 중에 늙은 객승이 보우를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내려오라는 군호와 같이 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보우가 곤두박질을 치듯이 주홍상에서

뛰어내려오며 진둥한둥 마당으로 내려왔다. 그 늙은 객승이 보우의 내려오는 것

을 보고 한번 허허 웃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니 보우는 달음질로 그 뒤를 쫓아

나갔다. 처음에 놀랐던 여러 중들이 나중에는 궁금한 생각이 나서 쫓아나가 보

려고 한즉 상투바람의 속인이 두 팔을 벌리고 길을 막았다. 앞에 섰던 중 몇 사

람이 굳이 나가려고 하는데 그 속인이 "성가신 것들 다 보겠다. " 하고 소리지르

며 장난하듯이 슬쩍슬쩍 뒤로 떠다미니 그 중들이 짚으로 만든 사람같이 허무하

계 나가자빠지는데 그 뒤에 섰다가 장기튀김을 당한 중들도 적지 아니하였다.

다른 시골에서 온 객승 들은 이것을 보고 나갈 생의를 하지 못하였으나, 회암사

중들은 뿔뿔이 다른 길로 돌아서 나갔다. 회암사 중들이 밖에 나와서 보니 그

괴상한 늙은 중은 지팡이를 짚고 섰고, 허야당 대선사 보우화상은 앞에 꿇어엎

드렸었다. 그 늙은 중은 머리에 굴갓을 쓰고 몸에 먹장삼을 입었는데, 먹장삼 위

에 오채가 뻗치고 굴갓 뒤에 후광이 둘린 것같이 보였다. 회암사 중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본 까닭으로 말소리는 듣지 못하나마 모양으로 늙은 중

이 꾸짖고 보우가 사죄 하는 것은 짐작들 하였다. 나중에 그 늙은 중이 짚고 폈

던 지팡이를 들어서 보우의 등을 두세 번 때리고 나서 상투 바람의 속인을 손짓

하여 가지고 나는 것같이 동구길로 내려갔다. 보우는 넋잃은 사람같이 우두커니

엎드려 있는데 여러 중들이 슬몃슬몃 와서 좌우에 둘러섰다. 그중에 한 중이 "스

님, 고만 들어가시지요. " 하고 보우를 붙들어 일으키려고 하니 보우는 여러 중

들을 치어다보면서도 "목침 없앤 것이 죄인 줄을 알았소이다. " 하고 헛소리하며

잘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스님, 정신 차리십시오. " "그 노장은 벌써 갔습니다. "

"스님, 여기가 맨땅입니다. " 하고 여러 중들이 이 사람 한마디, 저 사람 한마디

지껄이는 중에 보우가 정신을 차리고 좌우를 돌아보는데 모양이 흡사 곤히 잠들

었던 사람이 갑자기 깨어난 것와 같았다. 얼마 뒤에 보우가 일어 앉아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고 여러 중들의 부축으로 방장에 들어왔다. 보우가 냉수 한 그릇

가져오라 하여 한숨에 들이켠 뒤에 좌우에 있는 중들을 돌아보며 "너희들은 지

금 오셨던 분이 육신보살이신 줄을 몰랐겠지? “ 하고 물으니 여러 중들이 "보

살이 임범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 "내괴, 몸 위에 오채가 뻗치고 머리 뒤에 후

광이 둘렸습디다. " "그런 줄 진작 알았더면 우리도 배례나 드릴 것을 몰랐습니

다. " "그러면 그렇지. 승속간 사람으로는 스님보고 아무개야 부를 사람이 없을

터입지요. " 하고 지껄일 때 그중에 젊은 중 하나가 "목침은 무엇입니까? ” 하

고 물었다. 보우가 눈살을 찌푸리고 한동안 말이 없이 앉았다가 "목침은? 내가

전생에 선비로 태어났을 때 남의 목침 하나를 훔친 일이 있었다. 그 죄가 아직

도 남아 있어서 이생에는 성불하기 어렵다고 보살께서 말씀하시더라. " 하고 거

짓말을 지껄이었는데 여러 중들은 모두 곧이듣고 "녜, 그렇습니까?“ 하고 다시

들 놀랐다. 이때 방장 밖 뜰 아래에 서 있던 여러 중들 틈에서 한 중이 앞으로

나서며 "스님께 말씀 한마디 여쭈어 둘 것이 있습니다. " 하고 말하였다. 보우가

"무슨 말?" 하고 고개를 밖으로 돌리었다가 "아까 오셨던 노장스님이 안성 칠장

사에 계신 병해스님이 아니십니까?” 하고 묻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푹 숙이었

다. 한동안 뒤에 보우가 고개를 들고 "그래 어째?" 하고 한번 큰기침하였다. "스

님이 육신보살이라고 합시니까 여주어 보입는 말씀이올시다. " "병해스님이 곧

육신보살이신 줄을 아직 모르는구나. " 하고 보우는 혼자 아는 체하며 허허 웃었

다.

 

23

늙은 중과 상투 바람 속인은 달음질하다시피 재게 걸어서 회암사 동구 밖을

나선 뒤에 늙은 중이 먼저 걸음을 늦추며 "인제 천천히 가세. " 하고 뒤를 돌아

보니 그 속인은 잠깐 발을 멈추고 "아무리나 하십시다. 그러나 이게 무슨 싱거운

일인가요. " 하고 두덜거리었다. "그렇기에 자네는 올 것이 없다고 했지. " "나는

보우의 모가지를 돌려앉히고 올 줄 알았지요. " "그자가 아직도 십 년 운수가 남

아 있는 것을 억지로 어떻게 하나? “ "그러면 애당초에 고만두지요. " "한번 버

릇 가르치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 "버릇쯤 가르치려고 팔십 노인이 일부러 회

암사 걸음을 한단 말씀이오. " "내가 오지 아니하면 그만큼이라도 버릇을 가르칠

수 있나. " "선생님도 우스운 말씀 다하시오. 나 혼자 와서 주먹질 한번에 실

컷 버릇을 가르치고 갈 수 있지요. " "자네 주먹이 무섭기는 하지만... " "하지만

어떻단 말씀입니까, 십 년 운수가 있어 안된단 말씀입니까? 내가 지금이라도 다

시 가서 보우의 대가리를 바수어 놓고오리까? 주먹 아래에 운수가 다 무엇이에

요. " "옛말에 하늘을 거슬리는 자는 망한다네. 자네는 그 맘이 탈이니. " "탈도

무섭지 않습니다. " ”그러니까 점점 더 탈이지. " "탈이고 무어고 생각난 김에

회암사에 한번 다시 갔다오리다. 우선 이대로 가기가 생각할수록 싱겁습니다. "

"이 사람아, 어디를 간다고 그러나. 자네가 주먹질을 하면 일이 조용치 못할 것

아닌가. 그러고 보우의 대가리를 바시니 자네가 시원할 것이 무엇인가. " "그야

그렇지요. " "그러니 그대로 가세. " "아무리나 하십시다. " 하고 상투 속인이 늙

은 중의 뒤를 따라오면서 “보우가 늙지 않았습디다그려. 십여 년 전보다 신수

가 더 끼끗해진 것 같습디다. " 하고 달리 보우의 말을 꺼내었다. "그자가 아직

늙을 나이 못 되었지. " "쉬남은 살 되었을걸요. " "그러니까 아직 한참때지. " "

선생님을 용하게 대번 알아봅디다. " ”처음은 몰라보았겠지. " "몰라보고야 그

렇게 곤두박질해 내려올라구요. " "몰라보더라도 내가 내려오라면 내려왔지 제

가 앙탈할 수 없지 그려.“ "선생님이 보우야 부르시기만 했지, 내려오라고 언제

말이나 하셨습니까? ” "말로 아니해도 저는 알았기에 내려온 것 아닌가. " "그

래 보우가 선생님을 몰라보았을까요? " "아니 나중에는 알았겠지. 금강산 수미암

에서 맡긴 목침을 도루 내라고 한바탕 야단을 쳤으니까. " "나는 몰라보는갑디

다. 얼굴이 금강산 갔을 때쯤과 딴판이 되었으니까 알아보기 어려을 터이지요. "

하고 상투 속인은 일변 말하며 일변 바람에 날리는 수염을 아래로 걷어 내리었

다. 그 사람은 수염이 좋았다. 구레나룻과 윗수염도 숱이 많거니와 아랫수염이

채가 길었다. 검은 눈썹 아래에 큰 눈이 박히고 넓은 얼굴 복판에 우뚝한 코가

솟아서 어느 모로 보든지 장부다운 중에 시커먼 좋은 수염이 장부의 위풍을 돋

아보이었다. 이 수염 임자가 양주 임꺽정이다. 그 늙은 중을 함흥 양주팔이로 알

아볼 사람이 없고, 또 동소문 안 갖바치로 알아볼 사람이 드물다 하더라도 출가

한 이후에 만나본 사람들이 병해대사로 알아보기는 쉽지마는 꺽정이는 떠꺼머리

가 상투 된 것보다도 수염이 얼굴을 딴판으로 변하여 십여 년 전쯤 만난 사람들

은 선뜻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하며 양주읍내 길로 내려

오는 중에 길에서 나귀 탄 양반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 양반은 읍내 편에서

회암사로 가는 모양인데, 견마 잡은 아이가 길가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묻는 것

이 처음길에 길을 묻는 것 같았다. 중, 속인 두 사람 동행이 길을 한옆으로 피하

여 나귀 탄 일행이 지나가려고 팔 때 늙은 중이 홀저에 "양반들은 길에서 친한

사람을 만나도 모른 체하는 법인가?" 하고 뒤에 오는 사람을 돌아보며 허허 웃

으니 나귀 탄 양반이 유심히 한번 바라보다가 "이것이 누구요? “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나귀 등에서 뛰어내려왔다.

 

24

그 양반이 한걸음에 대사에게로 쫓아오더니 손목을 덥석 잡으며 또다시 "이게

누구요? “ 하고 말한 뒤에 곧 "선생 만나기는 의외요. " 하고 말하는데 반가워

하는 모양이 얼굴에 드러났다. 대사 역시 반가워하며 "오래간만에 보입소. " 하

고 말하니 그 양반이 "오래간만 여부가 있나요. 거의 서로 잊을 지경인데요. "

하고 말하면서 대사 뒤에 있는 얼굴을 바라보다가 별안간 "이애, 네가 꺽정이 아

니냐? ” 하고 소리를 질렀다. 꺽정이가 한두 걸음 앞으로 나서서 "오래 못 뵈었

습니다. " 하고 인사하니 그 양반이 인사 대답은 아니하고 꺽정이의 어깨를 치며

"나를 보고 모른 체하고 섰단 말이냐. " 하고 정답게 책망하였다. "왜 모른 체는

이요. 선생님하고 인사하시니까 인사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 "기다리는

것 다 무어냐, 반가운 맘이 있다면 잠시인들 기다린단 말이냐. " "십년여 판에

만나는데 용하게 알아보시오. " "내가 알아보기를 기다리고 있었더냐. 십 년은

고사하고 백 년을 못 만났기로 설마 몰라보랴. " "십여 년 못 만나다가 만나는

사람들은 흔히 몰라봅디다. " "사람도 사람 나름이지. 김덕순이가 꺽정이를 몰라

볼 리야 있느냐. 그렇지만 그 동안에 어쩌면 저렇게 흥악한 털보가 되었느냐?

“ "털보요. " 하고 꺽정이싸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으니 덕순이가 "수염은

좋다마는 네가 거만스러워 보여 못쓰겠다. "하고 말하며 역시 허허 웃고 "너는

수염까지 특출이구나. 너의 부조에는 저런 좋은 수염이 없지. " 하고 꺽정이하고

말하는데 대사가 가로 나서서 "그건 잘 모르시고 하는 말이로. 저 수염이 부조에

있는 수염이지요. 저 사람의 어른만 수염지 귀하지 저 사람의 조부도 수염이 좋

았고, 저 사람의 진외종 되는 이도 수염이 좋았지요. 그리고 저 사람의 육대조는

수염이 여간 좋지 않았든갑디다. 최윤덕, 최정승이 그 손에서 길릴 때에 수염아

빠라고 불렀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 하고 꺽정이의 수염 내력을 캐어 말하고 "

이건 수염 가진 당자도 나만큼 모를 것이오. " 하고 빙그레 웃었다. 덕순이가 대

사를 향하여 "어디 가 좀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 하고 말한 뒤에 사방을 돌아보

다가 "저기 가서 좀 앉읍시다. " 하고 길가에서 멀지 아니한 잔디 깔린 번전을

가리켰다. "대체 지금 어디를 가시는 길인가요? ” 하고 꺽정이가 물으니 "아따,

저기 가 앉아서 이야기하자꾸나. " 하고 덕순이가 말하여 대사와 꺽정이는 덕순

이와 같이 번전 위로 올라오고 덕순의 데리고 온 아이는 번전 아래에서 나귀에

풀을 뜯기었다. 세 사람이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 덕순이가 대사를

보고 말하였다. "그 동안 정암 부인이 돌아가셨지요. 상제에게는 진즉 조장으로

물었지요만, 통가자제로 전에 보입던 처지에 궤연에를 한번 다녀가야 나겠고

또 미원 구석에 오래 들어앉았으니까 갑갑증이 나서 겸두겸두 나선 길이오. " 하

고 꺽정이를 가리키며 "저 군이 만나보고 싶어서 용인서 양주로 즉행을 하였소.

그런데 저 군은 보고 잘 알은 체도 아니하는구려. " 하고 허허 웃으니 꺽정이가

"나를 찾아보러 왔다는 양반이 지금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 하고 물었다. "

오늘 양주읍에 들어오는 길로 아이를 너의 집에 보내 보았었다. 네가 집에 없다

고 해서 어디 갔느냐고 하니까 모른다고 하고 언제 오느냐고 하니까 내일이나

올는지 모른다고 하더란다. 찾아 갈 데도 없고 우두머니 객주에 들어앉았기가

갑갑하던 판에 들으니까 보우가 회암사에서 큰재를 올린다기에 재 구경 절 구경

은 차치하고 유명한 보우의 낯바대기를 한번 구경하려고 회암사를 가는 길이다.

여기서 너를 만나기는 뜻밖이야. 선생 만난 것은 의외 여부가 없고. " "우리 집

에 가서 기다리시면 좋았지요. " "김덕순이가 의조카 꺽정이는 찾아왔을망정 양

반이 백정의 집에 가서 앉았을 것이냐. 내 말에 속이 상하겠지? “ "그렇게 말씀

하는 양반은 밉지가 않으니까 속이 상하지 아니하오. ” "양반 미워하는 마음이

줄었으면 그 동안 좀 지각이 난 것이구나. " 하고 덕순이는 입을 벌리고 크게 웃

었다.

 

25

꺽정이가 덕순의 조롱하는 말을 듣고 "사십각 사람더러 지각이란 말이 당하오.

" 하고 웃으니 "네가 주제넘게 사십각이 다 무어냐? “ "서른다섯이면 사십각이

지 무어요. " "벌써 서른다섯이야? ” 하고 덕순이가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참말

서른다섯이구나. 네가 사십각 소리를 하게 되니 내가 늙지 않을 수 있는가. " 하

고 웃었다. "올에 쉰 몇이신가요? “ 하고 대사가 말을 물으니 덕순이는 늙었다

고 자칭하던 먼저 말에 웃음이 남아서 아직 빙글빙글하면서 "내 나이를 잊으셨

단 말씀이오? ” 하고 한번 대사를 바라보고 "계해생 쉰셋이오. " 하고 나이를

말하였다. "대부인은 지금 대단 연만하셨지요? 근력이 강건하신가요? “ "올해

일흔일곱이신데 황송한 말씀으로 우리 백씨보다 근력이 좋으시지요. " "선영감께

서 생존하셨으면 올에 일흔 몇이신가요? ” "자친보다 삼 년 아래시니까 일흔넷

되셨지요. " "가만히 기시오. 일흔넷이 임인생 아니오? 그러면 선영감께서 조정

암과 동갑이시든가요? “ 하고 묻는 대사의 말에 덕순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얼

마 동안 말이 없이 앉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는 듯이 "이판서장 내외분이 돌아

가셨을 때 선생은 창녕을 가셨습디까? “ 하고 물으니 대사는 고개를 가로 흔들

어 못 갔다는 뜻을 보이었다. "이판서장은 칠십여 세에 하세하셨지만 그 부인은

겨우 환진갑 지내고 돌아갔습디다그려. " "환진갑 다 지냈으니 수한이 부족하달

것 없지요. " "어째 두 번 초상에 다 창녕을 못 가셨던가요? ” "가보면 무어하

오. " 덕순이가 꺽정이를 바라보며 "그 누님 초상 때 갔었던가?“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고개를 외치며 "나는 재작년까지 돌아간 줄도 모르고 있었소. " 하고

말하였다. "왜 통부가 없었던가?" "양반댁에서 백정의 집에 통부할 리 있소. " 꺽

정의 말 뒤에 대사가 "저 사람에게뿐 아니라 내게도 두 번 다 통부가 없습디다.

" 하고 말하여 덕순이가 "선생 계신 데를 몰랐던 것이지, 알고서야 그럴 리가 있

겠소. " 하고 말하였더니 꺽정이가 ”같은 양반이라고 두던하는 모양이오. 모르

긴 왜 모른단 말이오?“ 하고 성내는 기색을 보이었다. "아따, 저 사람 보게. 내

가 통부를 돗하게 했나, 왜 내게다 성을 내나. " "내가 왜 당신에게다 성을 내겠

소. 이판서의 아들이 좀 괘씸할 뿐이지. " "네가 척형하고 틀렸구나. " "척형은

다 무어요. 양반놈이 백정하고 척분을 차리겠소. " "아직도 양반 노래가 남았구

나. 지각이 좀 덜 났군. " 하고 덕순이가 웃으니 꺽정이가 "당신 말대로라면 내

가 망녕나기 전에는 지각이 안 날는지 모르지요. " 하고 다시 웃었다. 잠깐 동안

세 사람이 다같이 말이 없이 앉았던 끝에 꺽정이가 덕순을 보고 "그 동안 장가

를 드셨소? “ 하고 물으니 덕순이는 말하기 전에 먼저 웃으면서 "참말 지각이

없구나. 육십객 늙은이더러 장가들었느냐고 묻다니. " 하고 꺽정이를 바라보다가

"너는 그 동안 장가 들었느냐?” 하고 되물었다. "나 장가 든 것을 모르시오? “

"내가 알 수 있느냐. " "내가 장가를 들고 와서 몇 번을 만났소. " "옳지. 백두산

사슴에게 장가 간 것 말이구나. 그래 그 동안 사슴을 데려왔느냐? ” 하고 덕순

이가 웃는데 사슴이란 말에 대사도 빙그레 웃으면서 "사슴이라고 욕하시는 말이

당자의 귀에 들어가면 봉변하시리다. " 하고 말하니 덕순이가 "뿔로 뜨나요, 발

로 차나요?“ 하고 더욱 웃었다. 세 사람이 서로 웃고 이야기하는 동안에 해가

석양 때가 지나서 마을집이 저녁 연기에 잠기었다. 꺽정이가 "고만들 일어서십

시다. " 하고 먼저 일어서며 "인제 회암은 가실 것 없지요? ” 하고 덕순이를 돌

아보니 덕순이는 "암만. "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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