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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26)

카지모도 2022. 11. 24.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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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꺽정이가 덕순을 보고 "나는 먼저 갈 터이니 선생님하고 같이 뒤에 오시오. "

말하고 한 걸음 앞서 간 뒤에 대사가 앞을 서고 덕순이가 중간에 서고 아이가

나귀 끌고 뒤에 서서 노량으로 걸어서 양주읍내를 들어왔다. 꺽정이 집에 다 왔

을 때 아이들이 문간에 섰다가 한 아이가 먼저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아주머니,

아버지가 갓 쓴 손님하고 같이 왔다. " 하고 소리를 치니 먼저 들어간 아이보다

키가 작아 보이는 아이가 절름절름 걸어들어가며 "손님하고 같이 왔다. " 하고

먼저 아이의 말끝만 따서 소리를 질렀다. 대사가 덕순을 돌아보며 "먼저 들어간

아이는 꺽정이의 아들이고 뒤에 들어가는 절름발이는 꺽정이의 아우요.“ 하고

그 아이들이 누구인 것을 가르쳐 주니 덕순이는 "꺽정이가 어느 틈에 그런 큰

아들을 두었단 말이오. " 하고 꺽정이 큰 아들 있는 것을 놀래었다. "그 아이 어

머니가 백두산에서 나가지고 왔다오. " "그래 지금 몇 살인가요? ” "열서너너덧

살 되었을 터이지요. " "그러면 꺽정이의 장모 되는 사람도 여기 와서 있나요?"

"그는 백두산에서 자처해 죽었다오. " "어째 자처를 했을까요? “ "그는 죽어서

남편과 같이 묻힐 생각으로 딸 모자만 내보내려고 하고 딸은 어머니와 동생을

두고 오기가 싫어 다같이 나가자고 하여 모녀가 실랑이하며 몇 해를 지냈는데

자기가 살아 있으면 딸의 신세를 그르칠 줄로 생각하고 마침내 자처했는갑디다.

" "집심 있는 여편네요그려. " "그 여편네가 홀어머니 된 뒤로 남편의 무덤에 하

루 한 번 아니 간 날이 없었다오. 물론 중병이 나 드러눕게 되면 못 갔겠지요

만.'' "그 여편네는 생시의 소원대로 그 남편과 같이 묻히었겠구려. " "그 여편네

가 죽기 며칠 전에 자기 손으로 그 남편 무덤의 옆을 파고 광중을 만들더라오.

그 아들딸은 이것을 보았지만 당신 말씀 같이 사슴들이니까 저의 어머니를 말리

기는 고사하고 조력을 해주었더라오. 그 광중이 다 되던 날 저녁에 먼저 그 딸

에게 어미 생각 말고 남편 찾아가서 잘 살라고 말한 뒤에 그 아들더러 어미가

없더라도 누이와 매부를 의탁해서 잘 살라고 말하고 이튿날 아들과 딸이 사냥

나간 틈에 그 광중에 들어가 누워서 칼로 목줄을 끊고 죽었더라오. 그래 육칠

년 전에 천왕동이 남매가 어린아이를 번갈아 업고 여기를 찾아왔더라오. " "천왕

동이가 꺽정이... " 하고 덕순이 말할 때에 꺽정네가 안으로부터 나와서 "어서들

들어오시지요. " 하고 재촉하였다. 꺽정이 뒤에 꺽정이 누이 섭섭이가 나오는데

꺽정이 아들이 고모의 손을 잡고 다시 나오고, 또 그 뒤에 덕순이의 낯모르는

여인 하나가 나왔다. 덕순이는 속으로 '저것이 꺽정이의 안해로구나. ' 하고 생

각하며 유심히 그 얼굴을 바라보니 얼굴이 곱고 눈에 생기가 있어서 나이 삼십

이 넘어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 여인이 꺽정이 옆에 쫓아와 붙어서서 "저이가 자

꾸 나를 보오. " 하고 덕순이를 가리키는 것을 꺽정이가 "왜 나왔어. 어서 들어

가. " 하고 소리를 지르니 그 여인은 아무 소리 못 하고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

다. 꺽정이가 덕순을 바라보며 "저것이 나의 안해 명색이오. " 하고 말하니 덕순

이는 고개을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꺽정이가 일꾼을 불러서 나귀와 견마잡이

아이를 맡기고 대사와 덕순이를 아랫방으로 맞아들이었다. 손과 주인이 아랫방

에 들어앉은 뒤에 꺽정이가 아들을 불러 덕순을 보이는데 아이가 절하고 난 뒤

에 덕순이가 "네 이름이 무어냐?” 하고 물으니 “백손이오. " 하고 대답하고 "

백손이? 이름이 좋다." 하고 말하니 "당신이 이름을 질 줄 아오?" 하고 묻는 것

이 조금도 아이들의 고분고분한 맛이 없었다. "그 아비의 자식이다." 하고 덕순

이가 웃었더니 백손이가 "누구더러 아비니 자식이니 하오?"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곧 덕순에게 덤빌 것같이 하는 것을 꺽정이가 꾸짖어 밖으로 내보냈다. 덕

순이가 꺽정이의 아버지 돌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괴상히 생각하여 꺽정이

를 보고 "너의 아버지는 어디를 가셨느냐?" 하고 물으니 "아니, 집에 계세요."

하고 꺽정이가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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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는 몇 해 전에 풍병을 앓고 반신불수가 되어서 방달 출입을 못 하는 터이

라 밖에서 손님이 왔다고 떠들썩하니까 "이애들아, 나 좀 보아라." "누가 왔느

냐?" "백손아, 네 아비 좀 불러라." 하고 소리소리 지르는데 꺽정이가 아랫방에

서 듣고 "저게 우리 아버지 목소리요." 하고 덕순에게 말하였다. "음성이 다른

사람 같으니 웬일이냐?" "연전에 한번 풍증으로 몹시 앓고는 어음이 전과 같이

분명치 못해요. 그러고 한편 팔다리를 통 쓰지 못하는 까닭에 혼자서는 누웠다

앉지도 못하고 앉았다 눕지도 못해요." "사람이 꼭 옆에 붙어 있어 시중을 들어

야 하겠네그려." "그 방에 누가 잘 붙어 있나요. 내가 많이 시중을 들지요." "전

에 사람 하나를 얻었었지?" "그는 벌써 죽고 소생 하나만 남았지요." "절름거리

는 아이?" "네, 병신이라 불쌍해요." 백손이가 불려 들어가서 손님을 보고 나온

뒤에 절름발이는 아랫방 봉당에 와 앉아서 방안에서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꺽정이가 침을 뱉느라고 되창문을 열었다가 이것을 보고 "너 어째 거기 와 앉

았느냐? 이리 들어오너라." 하고 말하니 절름발이는 맘에 만족하여 싱글거리며

들어왔다. 절름발이가 덕순의 턱 밑에 와서 꼬꾸라지듯이 절하고 난 뒤에 덕순

이가 "네 이름이 무엇이니?" 하고 말을 물으니 절름발이가 입귀를 실룩거리며 "

팔삭동이." 하고 말끝 없는 말로 대답하였다. "팔삭동이?" 하고 덕순이가 빙그레

웃으니 옆에 있던 꺽정이가 "여덟 달 만에 낳았다고 별명으로 부르던 것이 그

대로 이름이 되었어요." 하고 이름이 좋지 못한 것을 대신 변명하듯이 말하였다.

이때 조그만 계집아이가 문을 바시시 열고 들어와서 대사에게 절하고 나서 꺽정

의 앉은 옆에 붙어 서려는 것을 꺽정이가 "절 한번 더 해야지." 하고 말하니 다

시 한두 걸음 앞으로 나서서 덕순에게 절하였다. 그 계집아이가 나이는 불과 칠

팔 세밖에 아니 되고 미목은 분명하였다. 덕순이가 누구냐고 묻기 전에 꺽정이

가 "선생님의 손녀요." 하고 말하여 덕순이가 한번 대사를 돌아보고 나서 "이

리 온." 하고 계집아이에게 손을 내민즉 고개를 숙이고 오지 아니하다가 "이리

와서 앉아라." 하고 자기의 무릎 아래를 가리키니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와서 앉

았다. 대사가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어디를 갔었더냐?" 하고 물으니 "나물

뜯으러 갔었세요." 하고 똑똑하게 대답하고 "네가 나물을 아니?" "무슨 나물을

뜯었느냐?" 하고 대사가 연거푸 물으매 "여러 가지예요." 하고 말수 적게 대답하

였다. "네가 뜯은 나물 이름을 한번 섬겨 보아라." 하고 덕순이가 돌아보는데 계

집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어서 대사가 빙그레 웃으며 "어른이 말씀하는

데 대답을 해야지. 무엇무엇 뜯었느냐?" "냉이." "또?" "대나물." "또?" "별금다

지." 하고 계집아이가 말하기를 어려워하여 간신히 한 가지씩 대답하는 것을 보

고 대사는 "에, 잘 뜯었다." 하고 계집아이를 한번 칭찬하고 더 묻지 아니하였

다. "이애 어른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니 웬일이야?" 하고 덕순이가 꺽정이를 바

라보니 "벌써 갈 데로 갔세요." 하고 꺽정이가 대답하여 "갈 데로 가다니?" 하

고 말하며 덕순이가 대사를 돌아본즉 대사가 다시 한번 계집아이의 머리를 쓰다

듬어 주며 "이것이 아비 없는 자식이오." 하고 말하였다. "언제 참척을 보셨단

말이오?" "벌써 한 오륙 년 되었는가 보오." "십여 년 동안에 인사의 변천이 적

지 않구려." "시시각각으로 변천하는 세상에 십 년이 어디인가요." 하고 말하는

중에 돌이가 또 소리소리 지르는 것이 들리어서 대사가 꺽정이를 보고 "자네 아

버지를 좀 가보고 오세." 하고 말하니 덕순이가 "나도 같이 가지." 하고 말하여

세 사람이 다같이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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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는 덕순을 보고 반겨하여 어음이 분명치 못한 말로 여러 가지 말을 지껄

이었다. 병신이 되어서 운신을 맘대로 못한다고 신세를 하소연하고, 관푸주를 남

에게 넘기어서 여러 식구 살기가 극난이라고 집 형편을 궁설하고, 또 꺽정이가

왁달박달한 사람이지만 병든 아비에게 곰살궂게 한다고 아들을 칭찬하였다. 한

동안 지난 뒤에 꺽정이가 "아버지 고만 누우시오." 하고 말한즉 돌이는 고개를

외치고 그 뒤에 대사가 "인제 우리는 아랫방으로 가겠네." 하고 말한즉 돌이는

"잠깐만 더 앉아 계시오." 하고 붙들었다. "왜 그러나?" "백손이를 저 생원님께

보이려고." "벌써 보셨네." 돌이가 대사의 말을 듣고 나서 덕순을 바라보며 "손

자놈을 보셨습니까?" 하고 다시 물으니 덕순이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잘생겼지

요?" "그 아비의 아들이니 어련하겠나." "그놈이 참말로 여간 행내기가 아닙니

다." 하고 돌이가 손자를 칭찬한 끝에 "백두산에서 나온 뒤에 계집아이 하나를

낳았다가 죽이고 아즉까지 그놈이 외톨입니다." 하고 백손의 동생 없는 것을 말

하고 "그놈의 이름은 저의 외조모가 무슨 동이라고 지었다는 것을 백두산에서

낳아 온 손자라고 백손이라고 고쳐 지었습니다." 하고 백손의 이름 지은 것을 말

하여 덕순이가 "이름이 좋아. 꺽정이란 이름으로는 비겨 말할 수도 없네." 하고

꺽정이를 돌아보며 웃으니 돌이는 "꺽정이야 그 애의 외조모가 별명 쇰직하게

지은 것이니 어디 이름이랄 수가 있습니까?" 하고 웃으며 좋아하였다. 덕순이가

꺽정이와 대사의 뒤를 따라서 병인의 방으로부터 안마루로 나오다가 섭섭이를

보고 과부 된 인사를 말하는 중에 꺽정이는 운총이를 찾느라고 둘러보다가 "백

손 어머니가 어디 갔나요?" 하고 그 누이에게 물으니 "나도 몰라." 하고 섭섭이

가 대답하고 나서 "백손 어머니, 백손 어머니!" 하고 소리를 질러 불렀다. 운총이

는 밖에 쫓아나갔다가 꺽정이에게 꾸지람을 받고 들어와서 뒤꼍 굴뚝 옆에 숨어

앉았다가 섭섭이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왜 불러?" 하고 맞소리를 지르는 것을

꺽정이가 마루 뒷문을 열고 내다보며 "왜 거기 가 있니? 이리로 들어오너라."

하고 말한즉 운총이는 당장에 웃으면서 그 뒷문으로 들어왔다. 꺽정이가 덕순을

가리키며 “우리 아저씨야. 절 한번 해보지” 하고 웃으니, 운총이가 소매로 입

을 가리고 허리만 굽신하였다. 대사가 “요새도 바느질을 배우나?”하고 웃으며

물은즉 운총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섭섭이가 “애를 삭여야지요. 홈질가

기 같은 것도 한 땀쯤 호다가 싫증이 나면 바늘로 쑤석쑤석하고 앉았거나 그렇

지 않으면 삐뚤삐뚤 못쓰게 해놓는걸요.”하고 웃으며 흉을 본즉 운총이는 입술

을 비쭉비쭉하였다. 꺽정이가 웃으며 “흉보지 말고 가만두시오.”하고 두둔하듯

이 말하니 운총이는 꺽정이 옆으로 가까이 가서 서며 “형님이 사람이 망했어.

”하고 말하여 여러 사람들이 다같이 웃는데 운총이도 웃었다. 운총이는 사람이

끔찍히 총명하여 배워 못하는 일이 없건마는 길들지 아니한 생마와 같아서 애를

삭일 줄 모르는 까닭에 바느질만은 비각 중에 큰 비각이라 버선 구멍 하나를 잘

막아 신지 못하였다. 덕순이가 아랫방으로 내려오는 길에 “너의 안해는 체면이

니 염량이니를 모르는 알짬 사람이구나. 네가 안해를 잘 얻었다.” 하고 꺽정이

를 돌아보니 꺽정이가 웃으며 “전에는 참말로 사슴이나 다름이 없더니 지금은

좀 사람의 물이 든 모양이오.” 하고 말하였다. “안해는 잘 얻었다만 살림이 낭

패겠구나.” “누님이 있으니까 그까지 살림은 걱정이 없지요.”하고 꺽정이가

말하는 중에 젊은 사람 하나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고 꺽정이는 곧

그 사람에게 “너 어디를 갔다오느냐?” 하고 물었다.

 

29

그 젊은 사람이 “잠깐 밖에 나갔었소.” 하고 꺽정이의 묻는 말을 대답한 뒤

에 “선생님, 또 오셨소?”하고 대사에게 인사하니 대사는 인사 대답으로 고개

를 끄덕인 뒤 덕순을 돌아보며 “저 사람이 주인의 처남 되는 천왕동인데 발이

재기가 참말로 사슴이오.”하고 웃었다. 세 사람이 아랫방으로 들어갈 때 천왕동

이는 곧 안마루로 올라가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역시 아랫방으로 내려와서 펄썩

주저앉으며 “배는 고픈테 밥을 주어야지.” 하고 볼멘 소리를 하였다. 꺽정이가

“손님께 인사 여쭈어라.”하고 말한즉 들은 체 아니하므로 꺽정이가 “이애, 인

사 여쭈라니까, 어서 일어나서 절해라.”하고 꾸지람 기미가 있게 말하니 천왕동

이는 “손님 때문에 밥 못 먹소.”하고 투덜거리며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대사가

“왜 손님 때문에 못 먹어?”하고 웃으며 물으니 천왕동이가 대사에게까지 “배

고파서 말하기도 싫소.”하고 찜부럭내듯이 말하였다. “손님이 밥을 주지 말랬

다고 하던가?” “누가 아오. 애기 어머니가 나더러 손님이 먹거든 먹으랍디다.

” “애기 어미가 사람이 고약하군.”하고 대사가 웃었다. 애기 어머니는 섭섭이

의 말이니 애기가 그 딸의 이름이다. 천왕동이가 대사의 웃는 것을 보고 “남이

배고프다는데 선생님은 왜 웃소?”하고 시비가락으로 말하는 것을 꺽정이가 “

나이 삼십이 넘은 것이 세 살 먹은 어린아이 같구나.”하고 웃으며 꾸짖었다. “

수염이 대자 오치라도 먹어야 산답디다.” “그 따위 말은 잘 배웠네.” “배우

기는 무얼 배워요. 내가 알았지.” “배고파서 말하기 싫다던 자식이 말대답은

입싸게 하는구나.” “참말로 배고파 죽겠소.” “이애, 조금만 참아라. 손님이

저녁을 잡수실 때 너도 같이 먹게할 터이니.”하고 꺽정이가 어린아이 달래듯이

말하니 천왕동이가 맘에 좋아서 웃으며 “애기 어머니는 나중에 먹으라고 사살

하더니 매부 형님이 다르시오.”하고 말한 뒤에 덕순을 바라보며 “손님, 나 절

하오.”하고 먼저 말하고야 일어나서 한번 거북살스럽게 절하였다. 덕순과 대사

가 겸상하고 꺽정이와 천왕동이가 겸상하여 같이 저녁밥을 먹을 때 대사가 천왕

동이의 밥사발이 밑이 보이어 가는 것을 보고 “밥 좀 더 받게. 나는 한 그릇

다 못 먹네.” 하고 밥을 덜어 주니 천왕동이는 “그걸 다 못 잡수시오?” 하고

받고 덕순이가 “나도 다 못 먹어. 내 밥도 받으려나.” 하고 밥을 덜어 주니 천

왕동이는 “왜들 그렇게 잡수시오?” 하고 또 받았다. 꺽정이가 “참말 배가 고

팠던 것이구나.” 하고 말하니 천왕동이는 “내가 언제 거짓말합디까? 오늘 공

연히 구경 갔다가 정작 구경도 못하고 배만 고팠소.” 하고 말하였다. “무슨 구

경?” “회얌이라든가 회암이라든가 그 절에서 무엇을 한다기에 구경을 갔었소.

” “그래, 구경을 잘 했니?” “배만 고팠다니까 그러오. 처음에 가니까 사람만

많지 무슨 구경이 있습디까, 머리 깍은 중놈들이...” 하고 말하다가 대사를 보고

한번 웃고 말을 고치어 “중들이 나무아미타불하는 것뿐입디다. 그래서 절 뒷산

에를 올라가서 실컷 돌아다니다가 나중에 절에 내려와 들으니까 내가 산에 올라

간 동안에 보살이 왔다 갔다는데 보살이란 것은 사람이 좀처럼 구경 못하는 것

이랍디다.”“그래, 보살을 누가 보아다더냐?”“물 얻어먹으러 절에를 들어갔더

니 중들이 서로 지껄입디다. 서울서 온 유명한 중이 보살에게 혼이 났다고.”“

그래 보살이 어떻게 생겼더라고 말하더냐?”“그 보살은 늙은 중 모양이고, 보

살이 데리고 온 제자는 상투한 사람 모양인데 그 얼굴들에서 붉고 푸르고 한 빛

이 뻗치어 나오더랍디다.”하고 천왕동이가 지껄이는데, 꺽정이는 대사를 돌아보

고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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