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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21)

카지모도 2022. 11. 19.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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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토정이 남명에게서 묵는 동안에 보우가 역적으로 몰렸다는 소문이 있었다. 남

명이 이 소문을 듣고 "궁중에 거처하는 놈이 역적질을 하려고 했다면, 만분 위태

한 일이 있었을 터인데 첫째 대전께서 무사나 하신지? “ 하고 왕의 몸에 변고

나 있지 아니할까 하고 걱정하니 토정은 "보우가 시역을 꾀하였다면 대왕대비께

서 미리 모르셨을리 없을 것인즉 다른 변고면 모르되 그런 변고는 당저에 없을

것일세.” 하고 왕의 몸이 무사할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진적한 서울 소식을 몰

라서 궁금히 생각하기는 남명이나 토정이 다름이 없었다. 대체 보우의 역모하였

다는 초문이 터무니없는 소문은 아니나 일이 소문과는 같지 아니하였다. 처사별

과 같이 한구석에 숨어 있는 조남명과 상서별과 같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이토정의 이야기는 그만두고 제원을 침범한 요기로운 별괴 같은 보우의 일을 자

세히 이야기할 터이다. 조관과 선비들은 만 사람이면 만 사람이 모두 보우를 미

워할 따라 보우를 큰 죄에 몰아넣으려고 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보우의 뒤에 있

는 대왕대비를 꺼리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판에 함경도 어사 왕희걸이 장계

를 올리어 보우가 전에 지은 죄상을 적발하였다. 보우가 안변 황룡사에 있을 때

에 계림군의 하인 무응송이란 자와 부동하여 계림군글 토굴에 숨겨주고, 수색하

는 전령이 급한 것을 알고는 화가 저의 몸에까지 미칠까 겁을 내서 저 혼자 슬

그머니 석왕사로 옮기었는데, 석왕사로 옮긴 뒤에도 무응송이가 내왕한 일이 있

었고, 또 보우가 계림군을 위하여 산골에서 남몰래 여러 번 성재를 올린 일이

있었다. 재 올릴 때에 쌀을 꾸어준 중이 지금까지 석왕사에 있으니 언제든지 불

러 물어볼 수가 있다. 그런즉 보우는 역적으로 몰린 계림군의 여당이라 곧 역률

로 다스려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정원에서 왕어사의 장계를 받아 마친 뒤에 왕

희걸의 장계로 보면 보우의 죄상이 자못 중대하니 우선 전옥에 내리어 가두고

핵실하여 보자고 왕께 청하였으나 대왕대비는 왕을 시켜 "이것은 보우를 해코자

하는 자의 조작부언이 분명하니 고만두어라. " 하고 전교를 내리게 하였다. 양사

에서 이것을 알고 나서서 논계하고 대신이 이것을 가지고 청대하여 다같이 보우

를 치죄하자고 주장하였더니 대왕대비가 왕을 보고 "근래 조정에 일이 없으니까

별일을 다 가지고 떠드는구나. 양사의 젊은 것들은 모르지만 대신들이 그렇게

경거망동할 수야 있느냐? 그까짓 일에 청대란 다 무어냐? 가만들 내버려 두어

라. 하다가 하기 싫으면 고만두겠지. " 하고 화를 내면서 하교한 까닭에 왕은 불

윤이라는 간단한 말로 방패를 삼아 양사와 대신의 여러 말을 막아 버리었다. 왕

어사의 장계 뒤에 판서 송세형이 혼자서 서계를 올리어서 보우를 죄주자고 청하

였는데, 그 서계의 대지는 "보우가 국가의 권세를 잡고 교앙방자하여 무식한 인

민들이 군부와 같이 존숭하는데 이것을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 개탄할 일이외다.

보우가 불측한 맘을 품으면 곧 큰 화를 국가에 미치고 말 것인즉 지금 처치하여

야 합니다. 보우의 위인이 족히 불측한 맘을 가질 것은 이러이러한 거동만 보아

도 알 수 있삽네다. " 하고 아래에 보우의 패악한 거동을 나열한 것이었다, 그러

나 송세형의 서계도 불윤이라는 비답밖에는 받지 못하였다. 보우는 역모를 죄한

일은 없었지만, 왕어사의 장계와 송판서의 서계가 난뒤로 "보우가 역적질을 하려

고 하였다. " "보우가 역모하다가 미리 발각되었는데 대왕대비가 용서하였다. " "

보우가 지금도 역모에 뜻을 두고 있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건만 조신들이 대

왕대비를 꺼려어 말을 못한다. " 하고 선비들의 입에서 사실과 틀리는 소문이 일

시는 널리 퍼지었었다. 보우가 교만방자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 여

간 사림은 눈에 사람으로 보지 아니하여 처음 보는 사람에게라도 "소승 문안드

립니다. " 하고 인사사는 법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남의 정성스러운 첫인사를 고

개만 끄덕거리며 앉아 받고, 재상들에게는 고사하고 대왕대비께까지라도 저의

말을 "보우가" 또는 "내가" 하고 말하지 신승이라 소승이라 말하지 아니하고 궁

인과 액정 소속에게 몰밀어서 하게할 뿐 아니라 대왕대비가 해라하는 사람에게

는 거지반 하게나 반말을 쓰는 까닭에 난정이와 같은 일품 부인은 흔히 반말짓

거리로 대답하였다. 보우가 처음에는 산인으로 자처를 높이 하여 대왕대비가 혹

시 국사를 가지고 의논하면 "그것은 보우의 알 바가 아닙니다. " 하고 웃어버리

던 사람이 불과 일 년이 못 지나서 "함경감사는 아무가 좋습니다. " "아무개는

사람이 변변하다니까 목부사가 과하지 않겠습니다. " 하고 대왕대비께 말씀하면

대왕대비가 원형이나 춘년에게 하교하여 보우의 말대로 수령 방백을 내는 일까

지는 없지 아니하였다. 보우의 고향 임피에 보우의 사촌형 하나가 있

었는데, 그 사촌형수가 사람이 그악하여 보우가 임피 절에 있을 때에 사촌의 집

에 가서 찬밥 한술을 잘 얻어먹지 못하였었다. 그 사촌이 보우의 놀랍게 출세한

소식을 듣고 안해를 보고 말하였더니 그 안해가 “사람이란 것이 알 수 없는 것

이오. 중 아재가 그렇게 귀인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소. " 하고 그 다음에는 곧

남편더러 서울을 가보라고 권하였다. "서울 가면 만날 수가 있을까? ” “아무리

귀인이기로 사촌이야 아니 보겠소. " "그건 그렇겠지만 서울갈 길양식은 어디 있

나?” "개똥이네 집에 가서 꾸지도 못한단 말이오? 개똥이 아버지더러 말하고

꾸어달래 보구려. " "그래 볼까. " 하고 내외 공론한 끝에 길양식을 꾸러 갔었다.

개똥이 아버지는 보우의 어릴 때 동무라 그 사촌이 만나러 간단 말을 듣고 양식

을 대어 주고 동행하기로 작정하여 두 사람이 같이 서울을 올라와서 보우를 만

나보려고 애를 썼으나, 궐내에 거처하는 보우를 만나보기가 하늘에 별따기보다

도 더 어려웠다. 두어 달 동안 헛근사를 모으던 끝에 보우가 인수궁에 나가는

것을 미리 알고 동대문 밖에서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보우의 행차가 예사때 거

동이나 다름없어서 촌사람들로 덤비기가 어려웠으나, 두 사람은 악증을 부리듯

이 행차 중간으로 뛰어들어가며 "보우. " "보우. " 하고 소리를 질렀다. 보우를

따라오는 액정 소속들이 게 "잡인을 치워라. " 하고 호령하며 보우를 호위하고

나오는 금위군사들이 두 사람을 덜미 집어 몰아내쳤다.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

"귀히 되면 사촌형도 몰라보나. " 하고 엉엉 우는 것을 몰아내치던 군사가 보고

액정 소속에게 말하고 그 액정 소속이 보우에게 말다였더니 보우가 눈살을 잠깐

찌푸리며 "사촌형 이래? “ 하고 혼잣말하듯이 말하고 "그 사람을 인수궁으로

데려오라게. 내가 이따 좀 불러보겠네. " 하고 말을 일렀다. 임피 사람들이 보

우를 만나보게 되어서 인수궁 문 밖에서 반 나절을 넘어 기다리었다. 나중에 두

사람이 함께 보우의 앞으로 불려들어가며 치어다보니 보우가 큰 대청 난중간에

무엇을 놓고 높이 앉았는데, 머리에는 비단건을 쓰고 몸에는 수놓은 장삼을 입

고 손에는 보패로 만든 염주를 가졌는데 그 위풍이 으리으리하였다. 두 사람은

뜰 위에도 올라서지 못하고 뜰 아래에서 무춤무춤하다가 "뜰 위에 올라서라고

하게. " 하고 보우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며 뜰 위에 서서 말을 받는 사람이 올라

서라고 권한 뒤에 기어올라가듯이 올라가서 손길을 맞잡고 섰다. 보우가 눈을

지그시 뜨며 그 사촌을 내려다보며 "모발이 벌써 반백이 되었군. " 하고 말하니

그 사촌이 어리등절하고 대답을 못하는 것이 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

이라 보우가 다시 "늙었단 말이야. " 하고 뜻을 풀어 말한즉 그 사촌이 그제야 "

늙고말고. 밤에 새끼눈을 잘못 보는 지가 오래요. " 하고 대답하는데 이번에는

보우가 무슨 말인지를 못 알아듣고 "새끼눈이라니? “ 하고 괴이쩍게 여기니 그

사촌이 "꼬는 새끼 말이오. " 하고 두 손바닥을 맞비비어 새끼 꼬는 시늉을 내었

다. 보우가 이것을 보고 빙그레 웃고 그 다음에 개똥아버지를 가리키며 "저 사람

은 누구야? ” 하고 물으니 그 사촌이 입게 익은 대로 개똥아버지의 자를 불러

서 "원보요. " 하고 대답하였다. "원보라니? “ "오, 원보래서 모르겠구먼. 애명으

로 되살이오. " "응, 어려서 마마할 때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인가? " "그렇소이

다. " 하고 개똥아버지가 대답하는데, 보우의 사촌에게 대답을 빼앗기지 아니하

려는 것같이 얼른 대답하였다. "어렸을 때 냇물에서 탐방구질을 잘하였지.” 하

고 보우가 옛일을 말하니 개똥아버지는 "정신도 좋으십니다. " 하고 대답하며 싱

글싱글 좋아하였다. "어, 반가운 사람을 다 만나는군. " "반가워하실 줄까지 알고

보이러 왔소이다. " "내가 오늘 환궁하기가 급해서 긴 이야기를 다 못하니 한 번

대궐 안으로 찾아오라구. " "대궐 안에를 들어갈 수가 있어야 합지요. " "경복

궁 대궐 서편에 영추문이란 큰 문이 있어. 내일 아침때 그 문 밖에 와서 기다리

고 있으면 내가 사람을 내보내지. " “그렇게 하겠소이다. " "그러면 내일 만나

기로 하고 오늘은 고만들 나가라구. " 하고 개똥아버지가 몸을 굽실하고 나서 보

우의 사촌을 돌아보고 그 사촌은 보우를 치어다보며 ”나도 내일 같이 만나겠

소? “ 하고 물어 보우가 고개 끄덕이는 것을 본 취에야 안심한 듯이 "나가겠소.

" 하고 인사하고 개똥아버지와 같이 밖으로 나갔다. 그 이튿날 시골 사람들이 이

른 식전부터 영추문 밖에 와서 빙빙 돌아다니는데 해가 점심때가 기울어도 부르

러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배고프지 않은가?" "왜 아니 고파. 창자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네. " "아마 기다리라고 하고 잊은 모양이지? ” "글쎄. " "어떻게 하

면 좋은가? “ "인제는 다시 못 만나는 게지. 두어 달소수 품을 삭여 가지고 간신히

얼굴 한번 얻어보고 말다니, 기막히는 일일세. " 하고 두 사람이 구두덜저릴 때에

큰문 안에서 송기떡빛 군복을 입은 사람 하나가 나와서 "임피서 온 사람들이오? ”

하고 물어서 두 사람이 일시에 “녜.” 하고 대답하였다. "나를 따라 들어오시오. "

하고 돌아서 들어가는데 두 사람이 그 뒤를 따랐다. 어디를 어떻게 돌아 들어가는지

정신없이 돌아서 한 곳에를 오니 영창이 열리었는데, 보우의 앉았는 것이 보이었다.

그 송기떡 군복이 영창 앞에 가까이 가서 "손님들을 데려왔습니다. " 하고 말한 뒤에

보우가 무어라고 말하는 모양이 보이더니, 다른 영창문 하나가 열리며 쪽진 머리 정수

리에 조그만 쇳조각을 붙인 여인 하나가 내다보고 들어오라고 손짓하였다. 두

사람이 무서워 무서워하면서 들어가니 아랫목인지 딴방인지 모를 만큼 먼 곳에

앉았는 보우가 거기들 앉으라고 말하고 나서 한번 여인을 돌아보았다. 여인이

어디로 들어갔다 오더니 음식상이 나왔다. 두 사람은 생외에 처음 보는 음식이

라 먹는지마는지 하고 앉았는 것을 보우가 바라보고 싸가지고 가라고 피딱지를

몇 장씩 나눠 주게 하였다.

 

10

보우의 사촌이 무슨 말을 할까말까 하는 모양으로 입술을 움직 거릴 때 보우

가 "살기들이 어떠한고? “ 하고 물은즉 그 사촌이 예비한 말을 늘어놓듯이 "살

기가 점점 억척이오. 자기 농토로 산달밭 한 또야기도 없는 사람이 잘 살기를

바랄 수 있소. 그중메 낫살을 먹고 보니 일세도 전만 못하고 요즈막은 양식을

꾸지 않고 보리때를 대어 본 적이 없소. 딸년은 두서넛 되지마는 쓸 자식이라고

는 지금 열 살 먹은 놈 하나뿐이오. 낫살 먹은 것이 구부렁거리며 남의 품앗이

를 다니자면 한심한 생각이 날 때가 많소. 그래도 자기 농토나 있으면 걱정이

없겠소만 앉은뱅이 천리 갈 생각이지, 생각이 소용 있소. 이원보는 팔자가 좋아

서 아들 삼형제 틈에 벌써 손자가 다섯이고 살년만 아니면 자기 농토의 소출이

여러 식구의 양식은 될 만하오. " 하고 말하는데 원보가 "이 사람아, 양식이 될

수가 있나? 나의 지내는 형편이 자네보다는 좀 낫겠지만 남의 양식을 안꾸어먹

을 수가 있나. " 하고 보우 사촌의 말을 막고 보우를 바라보며 "근근히 여러 식

구 호구를 해가자니 밤낮 고생이올시다. " 하고 하소연하듯이 말하였다. 보우가

잠자코 앉아서 두 사람의 말을 듣고 나서 "시골 사람들 사는 것이 잘살고 못살

고 다 그렇지. " 하고 말하여 그 사촌이 "서울 안목으로 보면 잘산다고 해야 오

죽지 않지요.” 하고 뒤를 받았더니 보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연명도 잘 못한다

는 주제에 무슨 말이야. " 하고 나무라듯이 말한 뒤에 앞뒷동이 없이 "그 계집을

그저 데리고 살지? “ 하고 묻고서 그 사촌의 대답 없는 것을 보고 "계집을 잘

못 얻으면 집안이 안 되는 법이야. " 하고 혼잣말하듯이 말하였다. 이때 대왕대

비가 온다고 연통이 나왔다. "대비마마께서 납십니다. " 하고 한 사람이 나온 뒤

에 "소연을 탑셨습니다. " 하고 또 한 아람이 나오고 "소연이 떴습니다. " 하고

또다시 한 사람이 나왔다. "대비가 나오시면 여기들 있지 못할 것이니 고만들 나

가라구.” 하고 보우가 두 사람에게 말을 이르고 옆에 있는 궁인 하나를 돌아보

더니 그 여인이 옆방으로 들어가서 보퉁이 둘을 가지고 나오는데 부피가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았다. 보우가 먼저 작은 보퉁이를 그 사촌에게 주며 "그 계집이

그악만 하지 살림을 살 줄 모르니까 은금보화를 산같이 쌓아주어도 잘살지 못할

것이야. 내가 지금 이것을 주는 것은 아무개의 사촌이니 육촌이니 하는 것이 남

에게 과한 창피나 보지 말란 말이야. " 하고 그 다음에 큰 보퉁이를 원보에게 주

며 “어려서 알던 사람이라 약간 물건을 정표로 주는 것이니 가지고가게. " 하고

각각 이른 뒤에 "인제 어서들 나가라구. " 하고 일변 재촉하며 일변 지접도 할

사람을 불렀다. 두 사람이 보우에게 하직을 하는지 마는지 하고 총총히 송기떡

군복의 뒤를 따라나오다가 장독교도 아니고 사인교도 아닌 것이 보우의 있는 곳

으로 들어가는 것을 돌아보고 "저것이 대왕대비 타신 소연이란 것이군. " 하고

속으로들 짐작하였다. 두 사람이 주인한 곳에 나와서 보퉁이 들을 펴놓고 보니

물건 하나 피륙 한 필이 민간에서 보던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이 다같이 눈이 휘

둘리고 혀가 나왔으나 보우의 사촌은 보퉁이의 부피가 작은 까닭으로 원보와 같

이 맘이 흐뭇하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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