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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27)

카지모도 2022. 11. 26.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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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저녁상을 치운 뒤에 덕순이가 대사를 돌아보며 보우는 전고에 드문 요승이라

고 말하고 “그자의 말로가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은 짐작이 없지 않으실 터이

지?”하고 물으니 대사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이 없었다. 덕순이가 얼마동안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래, 그자가 제 명에 죽겠소?”하고 다시 물으니, 대

사가 말이 없이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능지처참을 당하겠소?”“글쎄요.”“

말을 좀 분명히 하시구려”“그까짓 것은 분명히 알아 무엇하시오.”하고 대사

가 말을 자르려고 하는데 꺽정이가 “중놈으로 그만큼 호강하면 이 다음에 제

명에 못 죽어도 좋지요.”하고 말하니 대사는 잠깐 눈살을 찌푸리며 “보우 다

음날 혹독한 형장 아래에 맞아죽을 것을 미리 안다면 지금 호강이 맘에 좋을 것

없으리.”하고 말하였다.

보우의 이야기 끝에 경복궁 화재 이야기와 중수 역사 이야기가 나서 역사 때

에 부역 갔었던 천왕동이가 새로 지은 전각이 훌륭한 것을 말하고 “그런 집을

차지하고 한번 살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살아보고 죽어도 죽어서...”하고

말끝을 내지 못하고 끙끙거리니 천왕동이는 아직도 말수를 많이 알지 못하는 까

닭에 이와 같이 말하다가 막히는 때가 종종 있었다. 꺽정이가 이것을 보고 “죽

어서 한이 없겠습니다.”하고 말끝을 대신 채워 준즉 천왕동이는 “옳지, 한이 없

어.”하고 손뼉을 치고 조금 있다가 “한이란 말을 아는데 생각이 잘 나지 아니

하였소.”하고 머리 뒤를 긁적긁적하였다. 덕순이가 대사를 돌아보며 “이번 궁

궐 역사에 국재도 많이 소비되었으려니와 민력이 여간 들지 아니하였으리다.”

하고 말하는데 대사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천왕동이가 “국재는 무어고 민력은

무어요?”하고 물었다. 덕순이가 “이번 대궐 역사에 나라 재물도 많이 없어지

고 백성의 힘도 많이 들었으리란 말일세.”하고 먼저 대사에게 한 말을 쉽게 풀

어 말하니 천왕동이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나서 “알기 좋

은 쉬운 말을 두고 알지 못할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이 맹자왈 공자왈 하고 맹꽁

이 노래를 잘 안다는 자랑일까요.”하고 유식한 사람의 문자말을 타박 주어 말

하였다. “내가 자네에게 봉변일세.”“아니오. 내 말이 손님더러만 한 말이 아

니오.”“그것은 말 아니해도 잘 알았네. 그러나 자네 있는 데서 어려운 문자를

쓰다가는 참말 큰 봉변하겠네.”하고 덕순이가 웃으니 “왕후장상이 영유종호아

이런 말 말인가요?”하고 천왕동이가 역시 웃었다. 꺽정이가 “나도 모르는 어

려운 문자를 네가 어디서 배웠느냐?”하고 웃은즉 천왕동이가 “형님은 별수 있

소?”하고 또 웃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나 아느냐?”“그걸 모를까요. 임금

노릇 대장 노릇 대신 노릇 하는 사람들이 어디 씨가 따로 있겠느냐? 하는 말이

라오. 선생님, 내가 바로 알았지요?”하고 천왕동이가 꺽정이를 보고 말하다가

끝에 와서 대사를 옮겨 바라보니 대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꺽정이는 “어

디서 좋은 말을 줏어 배웠구나.”하고 허허 웃었다. 덕순이가 그제야 빼았기었던

말 계제를 다시 찾아가지고 대사와 문답을 시작하였다. “선생은 이번 길에 중

수한 경복궁을 구경하셨겠구려.”“육조 앞을 지나지 아니하였소.”“나는 이번

회로에 서울을 들리어 구경하고 갈 생각이오.”“오십 년 안에 쑥밭될 데다가

물역을 쳐들인 것이 구경거리가 될까요.”“쑥밭이 되다니? 대궐이 쑥밭이 되면

나라는 망하는 것 아니오?”하고 덕순이는 놀라는 빛이 얼굴에 나타나는데 대사

는 덕순의 얼굴을 보면서 “경복궁이 쑥밭된다고 나라가 망하기야 하겠소만 큰

난리는 면치 못할 터이지요.”하고 심상하게 말하였다. 꺽정이가 귀가 뜨이는 것

같이 “큰 난리가 나요? 아따 난리가 나서 세상이 한번 뒤집어 엎이면 좋겠소.

”하고 껄껄 웃으니 대사가 “세상이 자네 소원대로 뒤집힐는지 모를 일이야.”

하고 곧 덕순을 돌아보며 “저 사람의 소원하는 세상이 당신네 양반에게는 못쓸

세상인 줄을 아시오?”하고 빙그레 웃었다.

 

31

덕순이가 한동안 잠자코 앉았다가 한번 한숨을 쉬고 “난리는 나고 말 것 같

소.”하고 대사를 돌아본즉 대사는 말이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데, 꺽정이가 웃으

며 “지금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혹 따로 짐작이 있어 하시

는 말씀인가요?”하고 물었다. 덕순이가 머리를 돌려 꺽정이를 바라보며 말하였

다. “내야 네나 한가지로 무슨 별난 짐작이 있을까만, 얼마 전에 짐작 있는 사

람에게서 큰 난리가 나리란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 선생 말씀이 또 마찬가

지로구나.”“짐작 있는 사람이라니 술수하는 사람인가요?”“그래.”“술수꾼의

말은 말이 맞는 날까지도 미심스러우니까요.”하고 꺽정이는 한번 대사의 얼굴

을 바라보고 나서 “우리 선생님도 술수를 짐작하는 것만은 갸륵할 것이 없지

요.”하고 웃었다. 덕순이가 대사에게 “남사고란 술객을 혹 만나보신 일이 있나

요?”하고 물으니 대사가 “그 아이가 본래는 지술하는 사람이지요.”하고 말한

뒤에 “연전에 김륜이의 연줄로 내게 와서 두서너 달 있다 간 일이 있지요.”하

고 덕순의 묻는 말을 대답하였다. “선생이 가르친 사람이요그려?”“내게서 망

단법을 조금 배워 갔지요. 그 아이가 사람은 총명하지만 심지가 튼튼치 못해요.

”하고 대사의 말하는 어취가 자기의 아는 재주를 다 가르치지 아니하였다는 것

같았다.“그 아이가 미원을 갔습디까?”“서울서 강릉으로 가는 길에 미원을 왔

습디다.”“그래 난리 난다고 말합디까?”“그 사람의 말이 남산잠두에 올라서

서울을 내려다보니 서울 안에 살기가 가득한 중에 사직골에 왕기가 보이더라고

하고, 북악 아래에 좋은 한 줄기가 있는데 이 기운이 필경 나라 흥망에까지 관

계가 있으리라고 합디다.”“그것이 그 아이의 아직 미숙한 곳이오. 그러니까 염

병을 난리라고도 말하지요.”“염병을 난리라는 것은 무슨 말이오?”“그 아이

가 강릉서 편지를 했는데, 처음에 강릉에 돌아와서 보니까 곧 난리가 날 것 같

아서 강릉 사람들을 많이 양양, 간성 등지로 피란을 시켰더니 그 해 강릉에 난

리는 없고 염병이 심해서 사람이 상했다고 했습디다.”“반은 안 셈이구려.”“

아주 맹랑한 축은 아니지요.”“그래, 북악 아래의 좋은 기운이 있다는 것이 무

슨 까닭일까요?”“건청동에 인물 하나가 났습니다.”“그 인물이 장래 국가의

동량주석이 될 터인가요?”“다음날 큰 난리에 나라를 구하는데 그 인물의 힘이

많으리다.”“그 인물이 난 지 몇 해나 되었나요?”“지금 열 살이 넘었거나 말

거나 한 아이리다.”“그 아이의 성명을 아시겠소? 내가 이번 서울길에 한번 찾

아가 보고 싶소.”“건천동 동네 아이들이 군사 장난할 때에 대장질하는 이가

성가진 아이를 찾으면 대번에 알 수 있으리다.”하고 대사가 말을 마치자, 꺽정

이가 곧 “선생님, 김륜이는 지금 어디있습니까?”하고 물어서 “김륜이 저의

고향에 가서 아들 낳고 손자 낳고 잘 살지.”하고 대사가 한번 웃고 나서 다시

“김륜이가 자네에게서 혼이 나고 내게로 온 것을 내가 또 조만히 말했더니 서

울 가근방에서 살지 아니하면 말썽이 없다고 그 이듬해에 광주 살림을 걷어가지

고 강원도 고향으로 들어갔네.”하고 말하였다. 덕순이가 뒤를 달아서 “김륜의

사주같이 맞는 사주가 별로 없습디다.”말하고, 그 안해가 살았을 때 김륜에게서

보아온 사주 사연 중에 “촛불은 희미한데 붉은 깃발 무삼 일고.”한 구를 외면

서 “이런 것은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귀신같이 안 것이야.”하고 칭찬하는데 늙

은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이때 마침 창밖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니

천왕동이가 얼른 창문을 열고 내다보며 “누구야?”하고 물었다.

 

32

천왕동이가 “애기 어머니요.”하고 꺽정이를 돌아보니 꺽정이가 “무얼 그

래?”하고 내다보다가 섭섭이가 손짓을 하여 불렀던지 곧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

다. 얼마 뒤에 꺽정이가 밖에서 “이애, 이것 좀 봐라.”하고 말하여 천왕동이가

상 하나를 받아 들여놓은 뒤에 꺽정이가 동이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그 상에는

느티잎 시루떡과 묵은 실과 외에 미나리나물 무김치 등속이 벌여놓였고, 그 동

이에는 막걸리가 가득하였다. 꺽정이가 상을 들어 덕순의 앞에다 놓으며 “나는

미처 말을 못했는데 누님이 잡수시게 하라고 차려놓았습디다.”하고 누이를 생

색내에 말하니 덕순이가 막걸리 동이를 가리키며 “저 술이 나더러 다 먹으란

것인가.”하고 웃었다. “술은 또 있소. 얼마든지 잡수시오.”“저 술을 누가 다

먹는단 말이냐.”“그까짓 술 한 동이 얼마 되오. 반가운 손님이 오시고 또 좋은

소식을 들었으니까 오늘 밤에는 나 혼자도 두어 동이 먹겠소.”“무슨 좋은 소

식?”“난리 난다는 소식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소.”“에라, 좋은 소식이

고 언짢은 소식이고 술이나 먹자.”하고 덕순이가 술사발을 손에 들 때, 천왕동

이가 꺽정이를 돌아보며 “형님은 손님과 술 잡수시오. 나는 선생님하고 떡 먹

을 터이오.”하고 시루떡에 손을 대었다. 그 이튿날 덕순이가 떠나려고 꺽정이를

보고 “오늘 가겠다.”하고 말한즉 꺽정이는 “그렇게 급히 가실 것 무어 있소.

”하고 붙들고 대사는 “이왕 갑갑해서 나서신 길이니 나하고 같이 칠장사로 갑

시다. 내야 이번에 작별하면 영결이 될 것 아니오?”하고 끌었다. 덕순이는 대사

의 말을 좇아 칠장사로 가고 싶은 맘이 있으나, 자기 어머니에게 말한 돌아갈

기한이 있어서 주저하는 기색이 있었다. 대사가 이것을 알고 “오늘 천왕동이에

게 편지를 주어 댁에를 갔다오게 하고 내일쯤 동행해서 떠납시다.”하고 말하여

덕순이가 꺽정이를 보고 의논하니 꺽정이가 “그거 어렵지 않지요. 편지만 써놓

으시오.”하고 천왕동이 미원 보낼 것을 허락하였다. 늦은 아침 뒤에 천왕동이가

덕순의 편지를 가지고 양주읍을 떠나서 양근 미원에 가서 덕순의 백씨 덕수의

답장을 맡아가지고 해가 높다랗게 있을 때 양주읍으로 돌아왔다. 하룻길이 넘는

길을 반 나절쯤에 도다녀온 것을 덕순이가 신통하게 생각하여 “날아갔다 왔네

그려.”하고 칭찬한즉 천왕동이는 “처음길이라 물어서 가느라고 속상했소. 그러

고 편지 답장도 여러 번 재촉을 해서 맡아가지고 왔소.”하고 길이 지체된 것을

말하였다. 덕수가 덕순이이게 답장한 편지에 어머니 근력이 강건하고 집안에도

별고가 없으니니 돌아다니고 싶거든 생각대로 하라는 말이 있고 대사와 꺽정이

에게 안부하라는 말까지 있었다. “인제 되었소. 내일 나하고 같이 떠납시다.”

하고 대사가 덕순을 보고 말하는데 “두 분이 같이 이삼 일 더 묵어서 떠나시

오.”하고 꺽정이는 덕순과 대사를 함께 만류하였다. 덕순이와 대사가 꺽정의 만

류를 못이겨서 하루를 더 묵었건만 꺽정이가 하루쯤만 더 묵어가라고 말하니 덕

순이가 “그럴 것이 없이 네가 우리와 같이 서울까지 가자꾸나.”하고 말하여

꺽정이를 끌고 나서게 되었다. 덕순이와 대사가 꺽정이 집 식구 여러 사람을 면

면히 작별하고 꺽정이와 같이 서울로 올라오는데, 덕순의 나귀는 아이가 빈 나

귀로 끌고 뒤에 따랐었다. 길에서 그 아이가 뒤보느라고 뒤떨어지더니 너무 오

래 따라오지 아니하여 앞섰던 세 사람이 어느 산모롱이 잔디밭에 앉아서 이야기

들 하면서 아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에 앞길이 갑자기 요란하여지며 기구 있는

행차 하나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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