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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29)

카지모도 2022. 11. 2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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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주인이 자리에 앉으면서 덕순을 보고 “무슨 이야기들 하시는데 불쑥 들어와

서 불안스럽습니다”하고 말하니 덕순이가 “아닐세, 관계찮아”하고 흔연히 말

하고 다시 대사를 향하여 “그래 난리가 어디서 날 듯하오?”하고 먼저 묻던 말

을 되거푸 물었다. 대사가 고개를 한옆으로 기울이며 “글쎄요”하고 대답을 밝

히 아니하여 덕순이가 또 재우쳐 물으려고 할 즈음에 주인이 “언제 난리가 난

답니까?”하고 물으니 덕순이는 “이 대사 말씀이 난리가 수이 나리라고 해서

난리가 나면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는 말일세”하고 대답하였다. “난리? 난리

나야지요”, “자네도 난리를 기다리는 사람인가?”, “난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야 어디 있겠습니까만 세상 되어가는 꼬락서니가 난리는 한번 나야지요”, “꼬

락서니가 어떻단 말인가?”, “어떻다니요? 사대문으로 날마다 꾸역꾸역 들어오

는 것이 각 고을 봉물짐이니 이런 망한 세상이 또 어데 있겠습니까. 선영감, 조

대헌 영감 여러분이 조정에 계실 때는 시골 봉물짐을 일년 열두달 가야 하나 구

경할 수 없었지요. 대체 세상은 남곤, 심정이가 망해 놓았으니까요”하고 천연스

럽지 못하도록 길게 한숨을 쉬고 주인은 다시 뒤를 이어 “지금은 어디 남곤,

심정이 때만이나 합니까? 중놈이 대궐 안에 들어가서 꼭뒤를 올리는 세상이니까

요”하고 말하다가 대사 있는 자리에 중놈이란 말이 이면에 거리끼는 것을 깨닫

고 뒤를 꾸미려는 것같이 “보우 같은 중은 말하자면 중도 아니고 속한도 아니

지요”하고 대사를 바라보니 대사는 조는 사람같이 눈을 감고 앉았었다. 주인은

눈을 옮기어 덕순을 바라보며 “난리가 꼭 날 줄만 알면 어느 시골로 이사를 가

야겠습니다”하고 말하니 덕순이가 “그건 어째서?”하고 물었다. “난리가 나

면 서울서 날 것 아닙니까?”, “글쎄, 모르지”, “난리는 아무래도 서울서 나

기가 쉬웁지요”하고 주인이 말하는데 꺽정이가 “서울서 난리가 나기로 시골로

이사할 것이 무어 있소. 다 살은 노인네가 난리에 죽을까 보아 겁나시오”하고

버릇없이 빈정거리니 주인은 재미 적어 하면서 “이 늙은 사람이야 난리가 나건

말건 상관이 없지만 자식 손자가 있으니까 젊은 분네들과 달라서 자연 걱정이

되지 안된단 말이오”하고 꺽정의 말을 대답한 뒤에 덕순을 바라보며 “서방님

”하고 부르더니 “생원님이라 하자면서도 전에 부르던 서방님이 입에 익어서”

하고 한번 웃고 “내일 모레 봉은사에 구경이 좋다고 구경 나간다는 사람이 많

습니다. 만일 생원님이 가신다면 나도 뫼시고 갈 생각인데 같이 가시렵니까?”

하고 덕순의 뜻을 물었다. “무슨 구경인가?”, “대비께서 보우를 시켜 재를 올

린답니다”, “회암사의 무차대회는 벌써 끝났다는데 또 무슨 재가 있나?”, “

대왕대비께서는 재니 불공이니로 성사를 삼는 양반이니까요. 말인즉 회암사 부

차대회에 육신보살이 강림하셨다라나요. 그래서 불불이 또 큰 재를 올린답니다.

보우가 대왕대비를 속여서 나라 재물을 먹으려고 멀쩡한 거짓말을 지어냈는지도

모르지요”하고 주인이 말하는데 옆에 앉았던 꺽정이는 줄곧 눈을 감고 있는 대

사를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었다. “우리는 내일쯤 떠날 터이니까 구경갈 수가

없겠네”, “왜 그렇게 가세요. 오래간만에 서울 오셨으니 한동안 묵어 가시지요

”, “서울이 재미없네”, “그러며 보은사 재 구경은 나도 파의올시다”하고 주

인은 흥심없이 말하고 한동안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제 7장 왜변

 

1

김덕순이가 병해대사와 같이 서울서 떠나서 죽산 칠장사로 갈 때에 꺽정이와

갈라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여 “이왕 나선 길이니 칠장까지 같이 가자”하고

말한즉 꺽정이가 “집에서 나올 때 말을 아니해서 병신 아버지가 기다리라구요

”하고 따라가려고 하지 아니하다가 “자네가 갈 생각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집

에 가서 말하고 오게나. 자네 걸음에 반 나절이면 넉넉히 다녀올 것 아닌가”하

고 대사까지 같이 가면 좋을 뜻으로 권하여 꺽정이는 마침내 양주를 갔다 와서

덕순이와 같이 대사를 따라 칠장사로 놀러 오게 되었다.

이때 칠장사에 허담이란 중이 있었는데 기운꼴을 쓸 뿐이 아니라 말을 잘 알

고 잘 다루는 까닭에 아무리 사나운 생마라도 허담의 손에 걸리면 길들지 아니

하는 것이 없었다. 허담이 말을 잘 아느니만큼 말을 좋아하여 언제든지 말 한

필을 먹이는데 허담은 말을 자녀와 같이 사랑하였다. 꺽정이 칠장에 오던 이튿

날 마굿간에 말이 매인 것을 보고 대사에게 들어와서 “마굿간에 매인 말이 절

에서 먹이는 것입니까?”하고 물은즉 대사가 “이 절에 말을 좋아하는 중이 하

나 있어서 말을 먹인다네”하고 대답하고 곧 옆에 있던 상좌를 돌아보며 “허담

을 좀 불러오너라”하고 말하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그 상좌가 허위대 큼직한

중 하나를 데리고 왔다. 대사가 말을 일러서 그 중이 덕순에게 문안하고 꺽정이

와 인사한 뒤 대사가 꺽정이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말타기를 좋아하니 네가

아는 대로 가르쳐 주어라”하고 말하니 허담이란 중이 “무어 아는 것이 있어얍

지요”하고 겸사하고 꺽정이를 돌아보며 “말을 더러 타보셨소?”하고 물었다.

“별로 타본 일이 없소”, “말도 잘 타자면 어렵습니다”, “어려운 줄은 아

오”, “어려운 줄을 아신다니 무던히 타시는구려”, “무던히가 다 무어요. 겨

우 말등에 올라앉을 줄 알지요”, “말등에 올라앉을 줄 아시면 잘 타는 말이오.

몇 해나 공부 하였소?”, “공부라니요? 말타기 공부는 해본 적이 없소”, “몇

해 공부가 없이는 몸이 말등에 척 붙도록 되지 못할거요”, “공부가 없어도 올

라앉으면 고만 아니오”, “말도 말 나름이지요. 강아지 같은 말이면 모르겠소만

범 같은 길들지 아니한 말은 당초에 등에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니까 한번 올라

앉기도 여간 어렵지 아니합니다”, “그럴까요?”, “그럴까요? 그러면 쉬운 줄

아시오? 지금 내가 먹이는 말로만 말하더라도 본래가 그다지 사나운 말이 아닌

데다가 두서너 달 동안 내 손때를 먹어서 성질이 좋아진 폭이건만 아직까지도

이 절에서 나 하나 빼놓고는 타는 사람이 없소. 무슨 일이든 생각하기가 쉽고

말하기가 쉽지, 하기는 생각과 말같이 쉽지 않습니다”, “말을 한번 좀 타봅시

다”, “그렇게 하시오. 지금 나가십시다”하고 허담이 코웃음을 치고 일어서며

꺽정이도 웃으며 일어섰다.

허담이 마굿간에 들어가서 말목을 툭툭하고 고삐를 끌어냈다. 허담이 말을

끌고 절 앞 넓은 마당에 나와서 “자 한번 타보시오”하고 고삐를 꺽정이에게

주었다. 말은 대번에 고삐 쥔 사람이 저의 주인이 아닌 줄을 알고 머리를 설레

설레 흔들더니 고삐를 당겨 쥔즉 갈기를 세우고 머리를 번쩍 치어들고 올라타려

고 한즉 몸을 돌리며 뒤를 번쩍 솟치었다. 허담이 이것을 보고 웃고 섰는데 꺽

정이는 불덩이 같은 화가 속에 치밀었다. 고삐를 놓고 갈기를 잡으며 말머리를

땅에 끌어박으려고 하였다. 말이 고분고분히 당할 까닭이 없건마는 꺽정이 눈에

서 불이 흐르며 입에서 응 소리가 한번 나자 말의 흥흥거리던 코가 땅에 와서

닿았다. 꺽정이가 그제야 번개같이 몸을 솟치어 말 등에 올라앉아서 고삐를 잡

아 채치니 한풀 꺽인 말이 식식거리며 빙빙 돌다가 절 아래 산길로 뛰어내려 갔

다. 꺽정이가 말등에 붙어앉아서 말이 뛰는 대로 뛰어다니다가 말이 기운이 시

진하여 온몸에 구슬땀이 흐를 때에 고삐를 채쳐 절로 돌아왔다. 허담이 말을 마

구에 들이매며 “이놈이 거센 체하다가 오늘 혼이 났구나”하고 언치를 말등에

얹어주고 나와서 꺽정이를 보고 “말을 잘 타자면 힘과 재주 두 가지가 다 넉넉

하여야 하는데 당신은 힘은 너무 넘치는 것 같고 재주는 좀 부족한 것 같소”하

고 말타는 것을 평하였다.

 

2

꺽정이와 허담이 대사 방에 들어왔을 때 덕순이는 대사와 같이 불경을 보다가

“고만 두었다 봅시다”하고 불경책을 덮어 치우며 꺽정이를 보고 “그래 말을

타보았느냐?”하고 물었다. 꺽정이가 “아닌게아니라 한번 등에 올라앉기도 어

렵습디다”하고 대답한즉 덕순이는 꺽정이가 말을 타지 못한 줄로 알고 “말에

게 견모만 하고 온 모양이구나”하고 웃는데 허담이 나서 “말도 무던히 타지만

기운이 참말 장사입디다”하고 말하니 덕순이가 웃으며 “말을 탔어? 허담이 견

마를 잡아준 게지?”하고 꺽정이를 바라보았다.

“제주서 생외 처음 말을 탈 때도 견마는 잡힌 일이 없었소”, “처음 타는

주제에 견마를 잡히지 않았으면 낙마는 면치 못했겠지” 옆에 있던 대사가 빙그

레 웃으면서 “적어도 수십 번 말에서 떨어졌으리다”하고 말하여 덕순이가 “

골탕은 잘 먹었겠다”하고 웃으니 허담이 “골탕을 안 먹어보고는 말을 잘 타지

못합니다”하고 꺽정이를 대신하여 발명하듯이 말한 뒤에 꺽정이를 돌아보며 “

제주 생마로 공부한지라 다릅디다. 내 말은 쌀말로 그만큼 타기가 조만한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흠을 잡아 말하자면 법없이 함부로 배운 표가 납디다”하고

말하였다. 꺽정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즈음에 덕순이가 법 있고 없는 것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니 허담이 한번 에헴 하고 기침한 뒤에 아는 것을 자랑하

려는 구기로 말을 꺼내었다.

“말 타는 데는 일신, 이기, 삼태, 사술이라고 보는 것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술은 배울 수가 있고, 태는 지을 수가 있고, 기는 기를 수가 있고, 신은 배우거

나 짓거나 길러서 될 수 없는 만큼 천생이 있지마는 많이 배우고 오래 짓고, 힘

써 기르면 나중에 절로 생긴답니다. 태조대왕께서 화장산에서 사슴 사냥하실 때

에 사람이 발 못 붙일 절벽을 말 타신 채 미끄러져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태조

대왕 같으신 기가 아니면 말이 아무리 팔준마라도 도저히 되지 못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 지경 일이 아닌 것이 그때 대왕 타신 말이 앞으로 꺼꾸러졌다

고 합니다. 신 지경에는 사람의 맘과 말의 힘이 빈틈이 없이 일치하여 나가는

까닭에 조금이라도 실수가 없답니다. 말 타는 데 신 지경은 말하자면 득도 지경

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경전을 본다고 저마다 득도할 것은 아니지요만, 경전

을 모르고 도를 닦으면 못쓸 외도 되는 것과 같이 말 타는 것도 법없이 배우면

못씁니다. 육조 같은 분은 무식한 나무꾼 출신으로 오조에게 의발을 받으셨지만

이것은 구방고란 사람이 피아말, 상사말도 구별할 줄 모르면서 백락의 뒤를 이

은 것과 같이 천만 인의 한 사람도 드뭅니다.” 허담의 도도한 말이 그칠 줄을

모르 때 대사가 웃으면서 “인제 고만 지껄여라. 너무 지껄이면 입아귀가 아픈

법이다.” 하고 허담의 말을 자르고 꺽정이를 바라보며 “허담의 말 설법이 재

미있는가?”하고 물으니 꺽정이가 “재미있구먼요.”하고 대사에게 대답한 뒤에

곧 허담을 돌아보며 “내가 지금 늦깎이라도 좀 배워봅시다.”하고 말하였다. 그

뒤에 꺽정이는 매일 허담에게 말 타는 법을 배우느라고 재미를 들여서 날 가는

줄을 모르고 지내는 동안에 거의 달포가 되었는데 이때 난리 났다는 소문이 산

속에까지 굴러들어왔다. 꺽정이가 난리 소문을 듣고 궁금증이 나서 덕순을 보고

산에서 나가자고 말하니 덕순이는 “나는 대사와 같이 불경이나 보고 과하하기

로 작정하였으니까 아직 더 있어 볼 터이다.”하고 말하며 꺽정이가 혼자 떠나

기로 작정하였는데 떠나려던 전날 저녁 꺽정이는 의외에 반가운 사람 하나를 칠

장사에서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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