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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배 하인들이 “에라”하며 지나가고, 사인교꾼이 “쉬”하고 어깨를 갈아가
며 사인교를 메고 지나가고, 후배 하인들이 떠들썩하게 지나가는데 괴상스럽게
요강망태를 걸머진 하인이 나귀를 타고 거들거리며 맨 뒤에 지나간다. 덕순이가
행차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하인의 탄 나귀를 가리키며 “저 오려백복
이 내것 아니라구?”하고 말하자 꺽정이가 “아이놈이 저 뒤에 따라오는구먼이
오.”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나귀 뒤에 조금 떨어져서 풀기 없이 따라오는
아이가 곧 덕순의 데리고 오는 아이이다. “아이놈이 못생겨서 나귀를 빼앗긴
모양이군.”“저놈들이 아이라고 만만히 보고 장난친 모양이오.”하고 꺽정이가
곧 일어서서 나귀 탄 자에게로 쫓아가더니 오고가는 말이 두세 마디를 넘어가지
못하여 꺽정이가 눈을 부라리며 그 자를 나귀 등에서 끌어내렸다. 그자가 길바
닥에 나동그라지며 등에 걸머진 망태 속의 놋요강이 돌부리에 부닥쳐 소리가 났
다. 후배 서 가던 하인들이 모두 뒤로 돌쳐서서 전후좌우로 꺽정이를 둘러쌌다.
꺽정이가 두 팔을 벌리고 장난하듯이 휘두르더니 아이쿠 어머니 하고 눈퉁이를
싸쥐고 쩔쩔매는 사람도 있고 나자빠져서 아이구 아이구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앞서 나간 사인교가 멈추며 전배들이 구원 오려고 돌쳐설 때에 사인교 옆장에서
마주보이는 길가 언덕 위에 늙은 중 하나가 나타나서 사인교를 향하여 “보우
야.” 하고 부르니 사인교 안에서 어서 가자 재촉하는지 사인교꾼이 방망이를
어깨에 다시 얹으며 사인교가 살같이 앞서 나갔다. 전배 하인들이 이것을 보고
어이없어 하다가 몇 사람은 그대로 사인교 뒤를 쫓아가고 몇 사람은 다친 사람
에게 와서 대강 만져주어 데리고 가는데, 요강망태를 걸머진 하인은 동그라질
때 발목을 접질린 모양인지 한편 발을 잘못 디디어 절뚝거리며 따라갔다. 덕순
이가 아이를 보고 빼앗긴 것을 나무라니 그 아이는 “교군 오는데 길을 얼른 비
키지 않았다고 야단들을 치고 교군이 지나온 뒤에 망태기를 걸머진 사람이 빈
나귀 내나 타자고 빼앗아 타는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요.”하고 발명하
였다. 덕순이가 “누가 얼른 비키지 말라더냐.”하고 발명하는 아이를 잘 용서하
지 않는 것을 꺽정이가 “그놈들이 괴악하지 이 애가 무슨 죄가 있소.”아이를
두둔하여 주고 “선생님은 왜 저기 가 따로 서셨소?”하고 먼저 앉았던 자리에
서 여남은 간이 착실히 되는 대사의 섰는 곳을 가리키니 덕순이가 “나도 모르
지. 천하 장사의 행패하는 것을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빠져서 동행이 내빼인 것
도 몰랐어.” 하고 웃었다. 꺽정이가 덕순이와 같이 대사에게로 와서 “선생님,
왜 혼자 여기 와 계시오?” 하고 물으니 대사가 적이 웃으면서 “보우를 쫓아버
리느라고.”하고 대답하여 “보우라니요?”“웬 보우요?” 하고 꺽정이와 덕순
이가 다같이 괴이쩍게 여기었다. “방금 간 것이 보우의 일행이오.” “보우란
자가 사인교를 타고 다니나요?” 하고 덕순이 묻는 말에 “무어는 못 타고 다닐
까요.” 하고 꺽정이가 대사 대신 대답하고 “무어는 못 타고 다닐까요.” 하고
대사보고 말하니 대사는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 뒤로는 나귀와 아이
를 앞에 세우고 세 사람이 같이 걸어오는데, 이야기에 길이 더디어서 나귀가 길
가의 풀을 뜯을 때가 많았다. 거의 다 저녁때가 되어 동소문턱을 들어서서 세
사람이 지난날 자취를 가리키며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박석고개를 넘어 배오개로
내려왔다. 배오개장 근처에 덕순의 집 옛날 청지기로 포실하게 사는 사람 있어
서 잠시 주인을 정할 만한 까닭에 덕순이가 일행을 끌고 그 사람의 잡을 찾아왔
다. 그 사람이 덕순을 보고 “서방님, 오래간만이올시다.”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데 덕순이가 “일행이 좀 많아서 폐가 되겠네.”하고 말하니 그 사람이 웃으면
서 “서방님, 별 염려를 다 하십니다.” 하고 정한 방을 치우고 맞아들이는데 꺽
정이를 보고 아이와 같이 딴 방으로 가라고 말하는 것을 덕순이가 “아닐세. 그
사람과 저 대사는 나하고 한 방을 쓰게 하여 주게.” 하고 주인의 말을 가로막
고 세 사람이 한 방으로 들어갔다.
34
덕순이가 서울 오던 이튿날은 처남과 친척들을 찾아 다니고 다음날에 대사의
말하던 건천동 아이를 찾아보러 나서는데, 대사는 신기가 좋지 못하다고 주인집
에 누워 있고 꺽정이만 같이 나섰다. 배오개에서 큰길로 황토마루께를 와서 육
조 앞을 지나 중수한 경복궁을 겉으로 구경하고 동십자각 천변으로 나와서 북쪽
을 향하고 올라왔다. 집도 모르고 사람도 모르고 건성대고 찾아오는 까닭으로
장원서 다리를 건너 삼청동을 들어선 뒤로는 길에 나선 아이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건천동을 거의 다 와서 길가에 섰는 아이 하나가 대갈통
이 크고 얼굴이 거무스름한 것을 보고 덕순이가 그 아이에게로 가까이 가서 “
네 성이 무어냐? 이가 아니냐?” 하고 물으니 그 아이가 “남의 성을 어떻게 그
렇게 잘 아십니까?” 하고 유난스럽게 곤댓짓하였다. “그래, 네 성이 이가면 네
가 습진장난 좋아하느냐?” “남의 좋아하는 장난까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
까?” “네 나이가 몇 살이냐?” “열 네 살입니다.”대사의 말이 아이 나이
열 살이 넘을까 말까 하다는데, 열 네 살이라면 나이가 조금 많은 것 같았다. “
너의 아버지는 선비시냐?” “반찬가가 보시지요.” 대사의 말이 아이가 양반의
집 아들이라는데, 장사치의 아들이라면 문벌이 너무 틀리는 것 같았다. 덕순이가
의심이 나니까 꺽정이를 돌아본즉 꺽정이가 “어떠한 아이인지 어디 알겠소? 다
시 한번 선생님과 같이 오십시다.”하고 말하여 덕순이도 “글쎄.” 하고 주저하
는 중에 몸이 날씬한 아이 하나가 급한 걸음으로 길 저편에서 내려오며 “용돌
아, 대장님 나오셨다. 어서 오너라.”하고 소리지르니 이편에 섰던 반찬장수의
아들이 한달음에 뛰어갔다. “동네 아이들 틈에서 대장질하는 아이라면 그 아이
가 빈틈없이 우리가 보려는 아이이다.” 하고 덕순이가 곧 꺽정이와 같이 건천
동 지경이 들어서서 멀리 오지 아니하여 덕순이가 발을 멈추고 “저기 아이들이
습진 장난하는 게다.” 하고 넓은 마당 터에 여러 아이가 모여 섰는 것을 가리
키니 꺽정이가 “우리 이쯤 서서 구경합시다.”하고 말하여 덕순이와 꺽정이는
길가에 서 있었다. 여러 아이들이 한동안 한데 몰려 섰다가 떼떼이 나뉘어 사방
으로 둘러섰다. 어느 떼 아이들은 일제히 나무 활을 메었고 , 어느 떼 아이들은
모조리 막대기를 들었다. 여러 떼가 둘러선 한중간에 발판같은 것을 놓고 높이
올라선 대장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 손에 든 것만은 작으나마 참말 환도 같았다.
종이로 만든 수기를 각각 손에 든 아이들이 발판 장대 앞에 구부슴하고 섰는 것
이 청령하는 모양 같더니 수기 든 군들이 각 떼로 흩어지며 떼가 줄로 풀리었다
줄이 떼로 뭉치었다 하고, 장대를 향하여 몇 줄로 겹치었다 장대를 중간에 두고
사방으로 갈리었다 하는데 하는 것이 제대로는 일정한 법이 있는 것 같았다. 덕
순이와 꺽정이가 한동안 이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저리 가서 대장아이에게 말
을 좀 물어보자.” 하고 덕순이가 먼저 나서니 “:그리합시다.“ 하고 꺽정이도 따
라 나섰다. 아이들의 습진이 아직 끝나지 아니하였는데 두 사람이 그 진명색을
뚫고 들어서려고 하였더니 “진을 범한 자는 군법에 죽여 마땅하니 활로 쏘아라.
” 하고 호령소리가 나고 뒤미처 아우성 소리가 나며 뽕나무 활 대가지 활에 싸
리 살을 먹여 든 아이들이 한 떼로 몰려나왔다. 덕순이가 손을 저어 쏘지 말라
는 뜻을 보이었으나, 활 꾼 아이들이 나란히 서서 일제히 활을 그대었다. 덕순이
가 아직 전날 용맹이 남아 있어서 얼른 뛰어 피하였기 망정이지 그렇지 못하였
다면 싸리 살 개를 좋이 맞을 뻔하였다. “쫓아가며 쏘아라. 그 눈알을 쏘아 맞
혀라.” 하고 호령하는 소리가 들리며 활 꾼 아이들이 쫓아 나오면서 활을 쏘았
다. 꺽정이가 어디서 막대 한 개를 집어 들고 와서 덕순을 가리고 서서 날아오
는 살을 받아 떨어뜨리는데, 그 막대를 번개같이 활 꾼 아이들 사이로 분주히
왔다갔다 하다가 이것을 보고 대장아이에게로 뛰어들어가더니 조금 뒤에 곧 도
로 나와서 수기를 두르며 “진을 범한 죄는 비록 중하나 용기와 재주를 대장께
서 아시고 특별히 용서하라신다.”하고 큰소리로 외치었다. 살이 그치며 활 꾼
들이 뒤로 물러갔다. 꺽정이와 덕순은 서로 돌아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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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진이 풀리어 여러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 반찬장수의 아들이
두 사람의 섰던 근처에 와서 도는 것을 꺽정이가 “용돌아.” 하고 부르니 “왜
그러시오.” 하고 대답하며 즉시 가까이 왔다. “너희가 무섭구나.” 하고 꺽정
이가 허허 웃으니 “멋모르고 혼났지요.” 하고 용돌이도 히히 웃었다. “우리가
너희 대장을 만나보고 싶으니 네가 가서 이리 좀 데리고 오너라.” “보고 싶으
시거든 저리들 가보시오. 인제는 관계찮소.” “그러면 네가 앞장을 서라.”“그
건 그리하시오.” 꺽정이와 덕순이가 용돌이를 앞세우고 대장아이에게로 오니
그 아이는 습진할 때 올라서던 발판 위에 걸터앉아서 다른 아이 두서넛을 데리
고 군법 쓰려던 것을 이야기하다가 중간에 그치고 일어섰다. 그 얼굴에 가로 찢
어진 눈 하나를 제치고는 예사 아이보다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없었다. 용돌의
얼굴은 우악스럽고 무식스러울 뿐이요, 그 아이와 같이 영발한 기운이 없지마는
언뜻 보기에는 용돌이가 더 사내다워 보이었다. “나를 왜 보자고 하셨습니까?
” 하고 그 아이가 먼저 말을 묻고 나서는데 말은 깍듯하나 태도가 당돌하였다.
덕순이가 아이를 한번 공동시켜 볼 생각으로 “네가 아이들을 몰아가지고 못쓸
장난을 하기에 말을 일러 주려고 보자고 했다.” 하고 말한즉 그 아이는 대번에
“그런 말은 일러 주시지 않아도 잘 압니다.” 하고 코웃음을 쳤다. “너 같은
조그만 아이가 무얼 잘 알꼬.”“조그만 아이기로 밤낮 책망 듣는 일을 모를까
요.” “그러면 네가 역적으로 몰릴 것을 아느냐?” “역적이오? 그것은 처음
듣는 말씀이오.” “그것 보아라. 네가 습진 장난하다가는 역적으로 몰릴 것이니
이후로 조심해라.” “어째서 역적으로 몰립니까?” “가만 있거라. 병정무기.”
하고 덕순이가 다섯 손가락을 다 꼽았다 펴고 나서 말하였다. “지금부터 사십
년 전 일이다. 그때 남촌 아이들이 남산에 올라가서 습진 장난을 하다가 역적으
로 몰린 일이 있었다. 습진 장난이란 마구 못할 장난이니라.” “그것이 참 말씀
이오? 참 말씀이면 그때 아이들이 역적질할 생각으로 장난을 했던 것이지요.”
“입에 젖내나는 아이들이 이때 저 때가 어디 있니. 그때 아이들도 너희나 마찬
가지 장난이지.” “그래도 당초에 역적질할 생각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역적으
로 모나요? 몬다고 어디 역적이 되나요?” “네가 아직 나이 어려서 세상을 모
른다.” 그 아이는 덕순의 말이 곧이 들리지 아니하는 듯이 연해 고개를 흔드는
데 꺽정이가 앞으로 나서서 “대체 네 성명이 무어냐?” 하고 물으니 그 아이는
의관 아니한 사람에게 해라를 받는 것이 창피한 모양으로 “성명은 알아 무어할
라오? 역적으로 고변할라오?” 하고 뒤받아 대답하였다. “어른이 말 묻는데 그
렇게 대답하는 버릇이 어디 있니?” 하고 꺽정이가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보이
며 “네가 양반의 자식이로구나?” 하고 물은즉 그 아이가 “그렇소, 양반이오.
”하고 천연스럽게 대답하고 “그래 내 성명을 알고 싶소? 성은 덕수 이가고 이
름은 순신이, 이순신이오.” 하고 거추장스럽게 성명을 말하였다. 꺽정이가 어이
없어 하는 모양으로 순신을 보며 “잘 알았다.”하고 혼잣말로 “양반의 새끼
고양이 새끼라고 앙칼지다.” 하고 돌아섰다. 덕순이가 순신을 보고 “너 올에
몇 살이냐?” 하고 물어서 순신이가 “열한 살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열한
살로는 대단히 웃자랐다. 열 너덧 살 되었대도 곧이듣겠다.” 하고 순신의 등을
툭툭 치면서 “네가 이 다음 큰 인물이 되려거든 장난보다 공부를 힘써 해라.”
하고 곧 꺽정이에게로 가까이 가서 “우리 고만 가자.” 하고 말하니 꺽정이가
“잠깐 가만히 계시오.” 하고 다시 돌아서서 순신의 팔을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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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이 꺽정의 앞으로 끌려가면서 “왜 이리 하오?” 하고 그 얼굴을 치어다
보니 큰 눈방울이 구르고 숱 많은 윗수염이 꺼치렇게 일어섰다. “너 같은 어린
애는 어린애라고 가만둘 수가 없다.” 하고 덥석 뒤꼭지를 잡아서 번쩍 치어드
니 순신이 대롱대롱 매어달리게 되었다. 옆에 있는 아이들이 저의 대장의 당하
는 것을 보고 잠깐 동안은 우두망찰들 하고 있었으나 한 아이가 눈짓하기 시작
하자 여러 아이들이 돌려가며 눈짓하고 일시에 와 하고 꺽정이에게로 달려들어
한편 다리에 대여섯씩 매어달려서 주저앉히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갓난아이가
아름드리 쇠기둥을 흔드는 것 같아서 꺽정이는 끄떡도 아니하였다. 마소가 파리
붙는 것을 성가시게 여기어 다리를 드놓듯이 꺽정이가 이편 저편 다리를 번 갈
아서 들었다 놓으니 아이들이 와르르 와르르 나자빠졌다. 덕순이가 “이것이 무
슨 짓이냐!” 하고 꺽정이를 나무라는데 꺽정이는 들은 체 만 체하고 손에 든
순신을 보면서 “말대답 불공스럽게 한 것이 잘못한 일인 줄 알고 빌면 모를까,
그렇지 아니하면 너를 태기치고 갈 터이다.” 하고 어르고 곧 “빌 터이냐?”
하고 물어야 순신이는 대답이 없었다. “빌겠다든지 못 빌겠다든지 얼른 말해라.
” 하고 꺽정이가 다그치니 순신이는 눈을 똑바로 뜨고 꺽정의 아래 턱을 바라
보다가 “수염이 좋소.” 하고 하하 웃었다. 꺽정이가 곧 순신을 태기칠 것같이
둘러메다가 사뿐 땅에 내려놓으며 바로 덕순을 돌아보고 “고만 갑시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 가자.” 하고 덕순이가 꺽정이와 같이 돌아설 때 꺽정이는 순
신의 말을 흉내내듯이 “수염이 좋소”하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밉지가 않거니”
하고 허허 너털웃음을 웃었다. 덕순이와 꺽정이가 사주인에 돌아왔을 때 대사는
눕지 않고 앉아 있다가 “신기가 좀 어떠시오?” 덕순이 묻는 말에 “신기야 좋
지요”대답하고 빙그레 웃었다. “아까는 신기가 좋지 못하시다더니?”, “낫살
먹은 탓으로 몸을 꿈질거리기 싫은 때가 가끔 가다 있어요”, “우리와 같이 가
기 싫어서 거짓 핑계하셨구려”, “늙은 것이 몸을 재게 움직이지 못해서 싸리
살이나마 맞으면 낭패 아닌가요”, “번히 알고 계시며 미리 일어주지도 안 하
신단 말이오?”, “아따 책망은 고만두시고 대관절 아이가 보시기에 어떻습디
까?”, “아닌게 아니라 영특합니다. 우리 같은 범안으로 보기에도 장래 큰그릇
될 것 같습디다”하고 덕순이가 꺽정이를 돌아보며 한번 웃고 “저 수염수새에
눈딱지를 부릅뜨고 뒤꼭지를 잡아 치어들고 서서 태기친다고 얼렀으니 어지간한
아이가 아니면 초풍을 하였을 것인데 태연하게 수염이 좋소 하고 말하는 태도라
니 여간 담대한 아이가 아닙니다”하고 입에 침이 없이 어린 이순신을 칭찬하는
데 꺽정이가 “선생님?”하고 대사를 부르더니 말하기 전에 쓴입맛부터 다시고
“난리는 까맣습디다. 고 조그만 애가 다 자라서 난리를 친다면 우리는 늙어 죽
을 것 아니오. 난리가 난대도 이 세상을 뒤집어놓지 않으면 신통치 못한데 그나
마 난리도 구경 못할 모양이니 선생님 말씀이 맞는다면 나는 낙심이오”하고 말
하니 대사는 “난리를 저렇게 고대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야”하고 한번 빙그레
웃고 “큰 난리는 아직 멀지만 작은 난리는 눈앞에 있네. 조금 참으면 볼 터이
니 염려 말고 기다리게”하고 말하여 “큰 난리 전에 작은 난리가 있어요? 작은
난리나마 있다니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하고 꺽정이는 웃으며 말하고 “난리
가 난단 말씀이오? 난리가 난다면 어디서 나겠소?”하고 덕순이는 미간을 찌푸
리며 묻는데 이때 마침 영창문 밖에서 한두 번 기침소리가 나더니 늙은 주인이
영창을 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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