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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4권 (19)

카지모도 2022. 12. 30.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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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이의 안해가 손에 체를 쥔 채 계집아이 손가락 가는 곳을 바라보니

과연 산 위에 사람이 섰는데 하나도 아니요 여럿이다. 체를 내던지

다시피 놓고 일어서서 발에 신을 꿰며 말며 아랫방으로 쫓아내려와서 사람들이

앞산 위에 나섰다고 말하였다. 오가는 "사람이야? “ 하고 먼저 일어나 나오고

유복이는 오주를 향하여 "잠깐 혼자 앉아 있거라. " 하고 그 뒤를 따라나왔다. "

사람이 셋이지? " "셋 같지 않소. 넷인가 보우. " "손에 무엇들을 든 사람이 셋

아니야? " "사냥꾼들인가 보우. " "요즈막 송도 군관이 자주 나오더니 냄새를 맡

구 밟아 들어온겔세. ” "수상하우. " "큰일났네. " "어떻게 할라우? " "도망질치

지 별수 있나. " 오가와 유복이가 마루에 서서 서로 수작하며 바라보는 중에 산

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섰다. "저것 보게, 이리 내려오네. 참말 넷일세.

넷뿐이로군. " "앞선 놈은 활 가졌소. " "이번 오는 것들을 쫓아버리든지 죽여버

리든지 하구 서서히 도망질할 준비를 차렸으면 좋겠는데 우리 둘이 될 수 있을

까? " "오주더러 집에 좀 있으라구 하구 우리 둘이 나갑시다. " "이 사람아, 어디

를 나가잔 말인가. 활 가진 놈까지 있는데 나갔다간 봉패하네. 대문 닫구 집안에

들어앉아서 막아낼 도리를 생각 하세. “ "그럼 오주는 보냅시다. " "자네 맘대

루 하게. " 유복이는 아랫방으로 내려가고 오가는 안방에 들어와 보니 앓아 누웠

던 사람이 어느 틈에 일어나고 수양딸과 계집아이가 그 옆에 붙어 앉았는데 세

얼굴이 다같이 새파랗게 질리었었다. "미리 질겁들 내지 말구 정신 차려. 범에게

물려가두 정신을 차려야 사는 법이야. " 오가가 꾸지람하듯 큰소리로 말하니 "어

떻게 하기로 작정했소. " 오가의 마누라가 입안 소리로 말을 물으며 섰는 오가를

치어다 보았다. "바깥은 내다볼 생각두 말구 방안에들 가만히 앉았어. " "가만히

앉았다가 죽으란 말이오? ” "방안에 있는 사람이 죽으면 밖에 있는 사람은 사

나? " "그러니 얼른 함께들 도망하는 게 좋지 않소. " "지금 도망하다가는 멀리

가두 못하구 화살 맞아 꺼꾸러지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소? " "가만히 방

안에들 앉았어, 잔소리 말구. " 오가가 벽장에서 칼을 꺼내가지고 나가려고 할

때 유복이가 방 문을 열었다. "오주 갔나? " "아니 간다우. " "왜? " "이런 일이

있는 줄 알면 일부러라두 올 텐데 가는 게 다 무어냐구 머리를 내흔들구 내가

저더러 가란다구 곧 시비를 할라구 하는 구려. “ "오주까지 있으면 되었네. 네

놈쯤은 당할 수 있겠지. " "당해 내기루 말하면 나 혼자두 염려 없소. " "만사가

튼튼한 것이 좋지 않은가. " 오가는 다시 안식구들을 돌아보며 "바깥은 내다볼

생각두 말구 가만히들 있어. " 하고 말을 이르고 유복이와 같이 나왔다. 오가는

대문을 닫아 걸러 문간으로 나가고 유복이는 아랫방으로 내려와서 오주와 같이

봉당에 걸터앉았다. "쫓아나가 보지 않구 대문 닫구 들어앉았을 모양이오? " 오

주가 두덜거리는 것을 "늙은이 하는 대루 두구 보자. " 유복이가 타이른 뒤에 "

너는 맨주먹으루 있을 테냐? 짜른 환도 하나를 내다 줄께 손에 들라느냐? " 하

고 유복이가 묻고 "나는 맨주먹두 좋소. 잘 쓰지두 못하는 환도 손에 들면 거추

장만스럽소. 고만두우. " 하고 오주가 대답할 때 오가가 와서 말끝만 듣고 "무얼

고만두란 말인가? " 하고 역시 걸터앉으며 손에 들었던 칼을 옆에 놓았다. "형님

이 환도 하나 주랴구 묻기에 고만두랬소. " "왜? " "이것이 있으니까. " 오주가

주먹을 불끈 쥐어서 오가의 눈앞에 내밀었다. "철퇴 같은 주먹으루 강정 같은 대

가리를 아싹아싹 부시려나? 그렇지만 맨주먹으루 연장을 당하겠나. 무엇이든지

손에 들어야 하고 오가가 일어나서 부엌으로 가더니 채 치는 넉가래와 나무 패

는 도끼와 다 타 모지라진 부지깽이를 주워들고 와서 오주의 발 앞에 벌여놓으

며 "환도는 고만두더라두 이 중에서 하나 골라잡아 보게나. " 하고 웃으니

"예 여보. " 하고 오주는 아랫입술을 빼물고 "장난할 경황이 있으니 무던하우. "

하고 유복이는 빙글거리었다. 기왓장 깨어지는 소리가 나며 안채 지붕에

화살 한 개가 떨어졌다. "이크 선진이 왔군. " 오가가 봉당에 놓인 칼을

집어들었다. 한동안 지난 뒤에 담 밖에서 사람의 발짝 소리가 나는 듯하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대문을 박차는 소리가 들리었다. 오가가 유복이와 오주를

돌아보며 "내가 먼저 말을 좀 물어보구 올 것이니 잠깐들 기다리게. " 하고

곧 대문간으로 나왔다. 환도 차고 창 든 사람 하나와 창만 든 사람 하나

는 바로 대문 앞에 있고, 활 든 사람 하나와 창 든 사람 하나는 망보는 것같이

멀찍이 떨어져 있다. 오가가 문틈으로 내다 보며 "남의 집에 와서 문을 박차는

놈들이 누구냐? " 하고 소리지르니 환도 찬 사람이 "네가 오가냐? 잔말 말구 대

문 열어라. " 하고 맞소리 질렀다. "너눔들이 대체 어디서 왔느냐? " "어디서 온

걸 알아야 문을 열 테냐? 탈미골서 왔다. " "탈미골 ? " "내가 탈미골 강서방이

다. 너두 내 선성은 들어 뫼셨겠지. " 오가는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다. "이런

좋은 자리를 너 같은 놈 주어 두는 것이 아까워서 자리를 차지하러왔다. 네가

고분고분히 집을 내놓구 다른 데루 간다면 너까지두 죽이지 않겠다만. " 하고 창

자루 끝으로 대문짝을 꽝 치고 "우리가 이 대문을 깨치구 들어가게 되는 때는

네 집의 개새끼 하나두 살려두지 않을 테니 알아 해라! " 강가가 통통이 호령하

였다. "조런 발칙한 놈이 있나! 요놈아, 입에서 아직 젖비린내 나는 놈이 무엇이

어째! 조놈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냐. " 오가는 입가에 게밥을 지으면서 하늘이

얕다고 뛰다가 안으로 들어와서 유복이와 오주에게 분통 터지는 사연을 대강 말

하였다. 유복이와 오주가 대문 열고 쫓아나가자고 말들 하는 것을 오가는 "아니.

" 하고 머리를 가로 흔든 뒤 먼저 유복이를 향하여 "활 가진 놈만 조처하면 뒤

는 걱정이 없으니 자네가 담에 사다리를 기대 놓구 올라서서 표창으루 활 가진

놈을 해내겠나? " 하고 물으니 "활 가진 놈이 가까이만 오면 어려을 것 없지요.

" 유복이는 선뜻 대답하고 다음에 오주를 향하여 "자네는 마당 한중간에 서서

두루두루 살펴보다가 앞뒷담 넘어 오는 놈이 있거든 주먹으로 때려누이겠나? "

하고 물으니 "당신은 어떻게 할라우? " 오주는 오가더러 되물었다. "나는 칼을

들구 대문 뒤에 가서 붙어서 있다가 문을 깨뜨리구 들어오는 놈을 쳐죽일 작정

일세. " 오가의 말에 "아무리나 합시다. " 오주가 대답하여 약속이 정하여졌다.

오가의 집 대문간 바른편에는 아랫방이 있고 왼편에는 광이 있다. 유복이는 사

다리 놓여 있는 곳에서 가까운 광 옆담에 사다리를 기대 놓고 올라서서 담 밖을

내다보고, 오주는 유복이의 표창질하는 것을 구경하려고 담 넘어오는 놈은 살필

생각 아니하고 유복이를 바라보고 있고, 오가는 대문 뒤에 서서 대문짝에 발길

질하는 놈들을 꾸짖고 있을 때 강가가 아랫방 옆담을 넘어들어왔다. 마당에 섰

는 오주가 가로막을 사이도 없이 강가는 칼을 들고 쏜살같이 대문간으로 들어갔

다. 오가의 칼과 강가의 칼이 대번 서로 어우러졌다. 그러나 대문간이 자리가 좁

아서 두 칼이 다 잘 놀지 못하였다. 오가는 한편 벽에 등을 대고 슬금슬금 옆걸

음을 쳐서 마당 편으로 나오는데, 강가는 이리 띄고 저리 뛰고 하며 오가와 뒤

쪽으로 대문 뒤로 더 들어갔다. 강가가 대문 뒤에까지 들어가서는 옆으로 서서

한 손으로 칼을 내두르며 다른 손으로 대문 빗장을 더듬었다. 오가가 이것을 보

고야 강가가 훼방을 받으면서 빗장을 빼고 고리까지 벗기려고 할 때 오가의 칼

에 바른편 허벅지를 찔리었다. 강가가 독살이 나서 돌쳐서며 곧 오가의 아랫배

를 향하고 칼을 내질렀다. 그 기세가 매서워서 오가는 일변 칼로 막으며 일변

뒤로 뛰어나가니 강가가 이를 악물고 쫓아나오며 연거푸 내질렀다. 오가가 강가

의 칼을 피하느라고 쩔쩔매면서 마당까지 쫓겨나와서 몸을 옆으로 비키어 광을

뒤에 지고 칼을 휘휘 둘렀다. 강가의 칼이 점점 오가를 핍박하여 오가의 몸에

진땀이 나게 되었을 때 두 도적이 싸우는 것을 보고 섰던 오주가 아랫방 앞으로

달려가서 도끼를 들고 슬금슬금 강가의 뒤로 걸어왔다. 도끼잡이가 뒤에 오는

것을 강가가 짐작하고 번개같이 몸을 빼어 다시 대문간으로 뛰어가서 고리를 벗

기는데 고리가 뻑뻑하든지 얼른 벗겨지지 아니하여 배목 박힌 문짝을 발길로 내

지르며 벗기어서 대문을 열자마자, 이놈 소리가 나며 무거운 도끼가 뒤통수에

떨어졌다. 대가리 하나가 두 쪽에 빠개지니 강가가 죽기 싫은들 할 수 있으랴.

한번 고꾸라진 채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다. 인제 대문이 열리었으니 밖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옴직하건만 의외에 대문 안에 발 들여놓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 동안에 오가도 오고 유복이도 왔다. ”세 놈은 어데루 갔을까? “

오가가 먼저 입을 열고 ”“괴수가 죽었으니까 도망들 한 게요. ” 유복이가

오가의 뒤를 잇고 “나가 봅시다. ” 오주가 또 유복이의 뒤를 이어서 차례로

한 마디씩 말한 뒤에 오주 다음에 오가, 오가 다음에 유복이로 세 사람이

줄로 서서 대문 밖으로 나왔다. 아랫방 모퉁이 담 옆에 세 사람이 몰려가

있는데 한 사람은 눈을 부둥키고 주저앉았고 두 사람은 각각 손목들을 주

무르며 서 있었다. 여기 세 사람이 대문 밖에 나서는 것을 보고 섰던 사람들은

앞서 달아나고 앉았던 다른 사람은 뒤에 달아났다. 뒤의 한 사람은 얼마 못 가서

오가의 칼에 꺼구러지고 앞의 두 사람은 유복이와 오주에게 쫓겼다. 유복이가 얼

마 쫓아가다가 “너희 두 놈은 살아가거라. ” 하고 걸음을 멈추고 오주는 “저

두 놈도 살려보내지 맙시다. ” 하고 더 쫓아가려고 하는 것을 유복이가 붙들고

“그까짓놈들 내빼게 내버려두자. ” 하고 곧 오주와 같이 돌아섰다.

유복이가 표창 세 개를 던져서 활 가진 사람은 한편 눈을 멀리고 창 가진 사

람들은 손목만 상해 놓았는데, 눈먼 사람은 칼 맞아 꺼꾸러졌고 손목 상한 사람

들은 살아 내뺀 것이었다. 유복이가 오주와 오가에게 이야기하며 들어와서 셋이

벗어붙이고 일을 하여 두 송장을 한 구덩이에 끌어 묻고 대문간의 피 자취까지

없이 한 뒤에 오가는 안식구들을 데리고 작은 잔치 준비를 차리었다. 이날 저녁

때부터 오가의 집 안방에 술판이 벌어졌는데 벽에는 환도 한 자루와 활 한채가

걸려 있고 마루 구석에는 창 세자루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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