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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4권 (18)

카지모도 2022. 12. 2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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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이와 오주는 형제의를 맺은 뒤 오주가 새로 생긴 형수인 유복이의 안해를

같이 가서 상면하겠다고 말하여 유복이는 오주를 데리고 산속에 있는 오가 집으

로 들어오게 되었다. 유복이가 오주를 대문 밖에 세우고 먼저 집에 들어와서 오

가 내외와 자기 안해를 보고 오주 데리고 온 사연을 말하니 오가는 "자네가 처

음부터 그 총각을 사랑하더니 그예 아우를 만들었네그려. 이왕 데리구까지 왔으

니 불러들이게. " 하고 선선히 말하나 오가의 마누라는 자기 남편을 골탕먹인 것

이 종시 마음에 맺혀서 "쇠새끼 같다는 위인을 만나러 다니는 것도 부질없는 일

인데 형제의를 맺은 것은 생각 덜한 짓일세. " 미타하게 말하고 유복이 안해는

자기가 도망꾼이라 외인을 만나는 것이 마음에 좋지 아니하여 "요전에 내 말 했

다는 것도 시원치 못한 일인데 같이 오잔다고 쭈르르 끌고 온단 말이오? 다음날

로 미루고 집에 와서 공론한 뒤에 데리고 오든지 말든지 하지. " 사리로 나무

랐다. 오가가 "그 총각이 하두 우악스럽구 무식스러워서 내가 쇠새끼라구 별명

까지 지었지만 위인이 취할 점이 많아. 우리 사위가 일을 어디 지망지망히 하는

사람인가. 어련히 생각하구 형제의를 맺었을까. " 하고 그 마누라를 누르고 "네

말은 유리한 말이다. 그렇지만 활발한 사내 생각과 좀스러운 여자 생각이 어디

같은가. 여자들은 사내 하는 일을 소흘한 것처럼 말하지만 여자같이 좀스럽다구

조밀한 것이 아니야. 여자들은 소견이 빽빽해서 일을 분간할 줄 모르거든. 우선

여자들이 장기루 생각하는 조밀한 것 하나만 가지구 말하더라두 조밀한 것이 일

하기 전에 소용 있지, 일한 뒤에는 소용 없는 것인데 여자들은 흔히 성복 후 약

방문으로 잔소리를 퍼부어서 사내를 골치만 뗑하게 만들지그려. 네가 지금 문밖

에 온 사람을 두구 공론한 뒤에 데리구 오지 않았다구 사살하니 그것두 역시 쓸

데없는 잔소리 아니냐. 너는 여자루 소견이 제법이건만 종시 여자라 할 수 없구

나. " 하고 그 수양딸의 말문을 막았다. 오가가 이와같이 만판 너스레로 유복이

를 거드는 중에 대문 밖에서 "형님, 나 들어갈라우. " 하고 무뚝뚝한 말소리가

들리며 곧 오주가 안마당으로 들어왔다. 유복이가 마루 앞에 서 있다가 들어오

는 오주에게로 마주 나가서 "저기 있는 내 방으루 가자. " 하고 아랫방으로 데리

고 왔다. 오가가 먼저 안방에서 내려와서 "뜻밖의 손님일세. 잘 왔네. " 인사하고

방안에 들어앉은 뒤에 유복이가 안해를 내려오라고 부르는데 오가의 마누라가

총각을 가까이 구경하려고 수앙딸과 같이 내려왔다. 유복이의 안해가 방안에 들

어서니 오주가 "아주머니 보입시다. " 하고 절하고 인사하고 끝으로 방문 밖에

섰는 오가의 마누라를 유복이가 "들어오시지요. " 말하여 방안으로 들어온 뒤 오

주더러 인사하라는 눈치로 "저 어른이 우리 장모다. " 하고 가르쳐 주었건만 오

주는 한번 머리를 끄덕거리고 씁쓸하니 앉아 있었다.

오가의 마누라는 겸연쩍어서 얼굴이 붉어지고 유복이의 안해는

미안스러워서 역시 얼굴이 붉어지는데 오주는 태연스러웠다. 오가가 네 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한번 허허 웃고 "여게 총각? " 하고 오주를 불렀다. "왜 그러우?

" "내가 자네에게 골탕을 먹은 뒤에 자네를 쇠새끼라구 별명 지었네. " "낭에서

떨어질 때 쇠새끼라구 하는 소리 나두 들었소. " "지금 인사할 줄 모르는 것만

보더라두 자네가 그 별명을 들어 싸지. “ ”무슨 인사를 할 줄 모른단 말이오? "

"딸에게는 절하구 어머니에게는 절 않는 것이 인사할 줄 모르는 것 아닌가.

수양 어머니두 어머니는 어머니거든. " "딸은 내게 아주머니니까 절하지만

어머니야 내게 무엇 되우? “ ”절하게. " "형수의 어머니가 사돈 어른 아니겠나,

사돈 어른보구 어째 절을 아니하나. " "절을 해야 하우? " “해야 하구말구. "

"그럼, 사돈어른 절 받으시우. " 하고 오주가 일어나서 오가의 마누라에게 절하고

다시 앉으려고 할 때 오가가 점잔을 떨면서 "사돈 어른으루 말하면 밭사돈어른이

더 소중한 법이야. 늦었지만 내게까지 절하구 앉게. " 말하고 웃으니 오주는

"나를 꾀여서 절 받을라구. " 하고 유복이의 눈치를 보았다. "이왕 하는 길이니

한번 더 하려무나. " "형님두 나를 절시키구 웃을라구 그러지. " 오가가 유복이

대신 "아우를 웃을 리가 있나. 해야 하는 것이지. " 하고 말하니 오주는

"해야 하더라두 이담버텀 하구 이번은 고만둡시다. " 하고 펄썩 주저앉았다.

"그리하게, 이번은 고만두게. 그렇지만 단단히 잊지 말게. 절 한 번 맡았느니. "

"절을 맡아두면 이담 할 때 한꺼번에 두 번 하란 말이오? " "그렇지. "

"성가시어 안 맡겠소. 자, 받아가우. " 하고 오주가 또다시 일어나서

오가에게 절을 하니 방안 사람이 모두 웃고 오주는 열쩍어서 ”제기. “

하고 자리에 주주물러앉았다. 오가가 "우리 사위는 아우 얻은 턱이 있구

우리 딸은 시동생 얻은 턱이 있구 또 우리는 사돈 총각에게 억지 절 받은 턱이

있으니 술 한상 잘 차려내게. " 하고 마누라를 돌아보니 그 마누라가 웃으면서 "

술상을 잘 차려낼께 이 다음에는 사돈어른을 낭떠러지에 떠다박질르지나 마오. "

오주보고 말하고 수양딸과 같이 안방으로 올라갔다.

아랫방에 세 사람이 남아 앉아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며 한동안 지난

뒤에 유복이의 안해가 내려와서 술상이 다 되었다고 내려올까 물으니 오가가 "

술을 많이 먹을 터인데 일루 날라오기 귀찮으니 우리들이 안방으루 올라가세. "

하고 유복이를 돌아보았다. 유복이는 "아무리나 합시다. " 오가더러 말하고 오주

는 "형님 방에서 먹읍시다. " 유복이더러 말하는데 오가가 오주더러 "사돈어른

기신 방이 넓으니 그리루 올라가세. " 말하고 곧 뒤를 이어 "절에 간 색시는 중

하자는 대루 하는 것이야. " 말하며 웃었다.

오가의 집 안방에 술판이 벌어졌다. 오가와 유복이도 술을 잘 먹지만 오주는

사발이 돌아오기 무섭게 한숨에 죽죽 들이키었다. 처음 한 동이 술이 다 끝나고

새 동이가 들어왔을 때 오주가 한 사발을 떠서 오가 마누라에게로 불쑥 내밀면

서 "사돈어른, 한 사발 잡수시우. " 하고 별미쩍게 권하니 오가의 마누라는 웃고

받아서 지우고 마시고, 또 오주가 새로 한 사발을 떠서 들고 "아주머니두 좀 잡

수시우. " 하고 유복이 안해에게 내어미니 "나는 술 먹을 줄 몰라요. " 하고 유

복이의 안해는 사발을 받지 아니하였다. 오주가 앞으로 나앉아서 "새루 생긴 시

동생이 드리니 받으시우. " 하고 사발을 턱밑까지 들이밀어서 유복이의 안해는

옆으로 비켜 앉으며 "먹을 줄 모르는 걸 어떻게 먹어요. " 하고 눈살을 찌푸리다

가 "너무 사양 말구 장모처럼 지우구 먹게그려. " 하고 유복이가 말을 이른 뒤에

오주의 주는 사발을 받아서 "당신이나 내 대신 잡수시우. "하고 유복이를 주었다.

안해의 술 대신 먹는 유복이를 오주가 바라보며 "아주머니가 기생 같소. "

하고 어둔 밤의 홍두깨 같은 말을 내놓아서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유복이까지

대답할 말을 몰라서 잠자코 있으니 오주가 다시 "내가 기생 구경 못한 줄 아우.

전에 해주 있을 때 감사가 영해루에서 잔치할 때 기생들이 영해루루 가는

것을 길가에서 가까이 본 일이 있소. 아주머니 얼굴이 그때 보던

기생들버덤 더 고웁소. " 하고 전에 본 기생과 비교하여 의형수의 자색을 칭찬하

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웃을 따름이요, 유복이의 안해는 술 한 사발 먹은이나

진배없이 얼굴이 붉어졌다. "여보 형님, 이번 최장군 마누라는 내가 가서 삣어올

까? " 오주의 하는 말이 점점 더 듣기 괴란하여 유복이의 안해가 자리에서 일어

나려고 몸을 움직일 때 오가가 일부러 지어 하는 말 같지 않게 얼없이 술상에

놓인 마른 어물쪽을 가리키며 "나는 이가 아파 이대로 못 먹겠으니 따루 몇 쪽

만 머루마치루 팡꽝 뚜들겨서 갖다 다우. " 하고 말하여 “녜. ” 대답하고 밖으

로 나갔다. 오가가 술상에서 홍합을 집어서 오주를 주며 "총각, 흥합 좋아하나?

“ 하고 의미 있게 웃어서 오주가 "왜 웃소? ” 하고 웃는 까닭을 물으니 오가

는 웃음을 거두고 시침 떼고 앉아서 "총각 장가들고 싶은가? 장가는 마구 들 것

아닐세, 하루 화근은 식전 취한 술이요, 일 년 화근은 발에 끼는 갖신이요, 일생

화근은 성품 고약한 안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장군당에 갈 공론 고만두구 술이

나 먹세. " 하고 술사발을 돌리었다. 어느덧 한 동이가 다 들나서 또 새 동이를

가져오게 되었을 때 오가의 마누라가 "총각 같은 손님이 날마다 오면 하루 술

한 독씩 들나겠네. " 하고 면박주듯 말하는데 오주는 "난생 처음으루 오늘 술을

잘 먹소. " 하고 치사하듯 대답하였다. 나중 들어온 한 동이는 오가와 유복이가

번갈아가며 오주와 대작하여 오주는 오가와 유복이보다 몇 사발을 더 먹고 해질

물에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유복이가 오주를 큰길까지 데려다 주려고 오주와 같

이 나오면서 길 없는 산속에 목표들을 모두 가르쳐 주고 "틈이 있거든 자주 놀

러오너라. " 하고 이르니 "형님이 보구 싶어두 오구 술이 먹구 싶어두 올 테

니 염려 마우. " 하고 오주는 대답하였다.

 

2

금교역이 앞으로 나가고 그 뒤에 청석진이 생기고 청석진에 첨사가 있다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대흥산성 중군이 나와 앉았던 것은 모두 후세 일이지만, 탈

미골에 금도군영이 설치되었던 것은 오가가 청석골 자리를 잡기 전 일이다. 탈

미골에는 일시 도적이 둔치고 있어서 행인이 통히 내왕하지 못한 까닭에 군영이

설치되고 금도군관들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와 있게 된 것이었다. 탈미골 강가

는 젊은 사람이라 도적질 나선 것이 오가보다 뒤진 까닭에 청석골 같은 거침새

없는 좋은 자리를 오가에게 먼저 빼앗기었을 뿐 아니라, 강가의 아비가 탈미골

에 둔치고 있던 적당 한 사람으로 적당이 흩어질 때 갈려울로 들어와서 파묻혀

사는 중에 낳은 아들이라 그 늙은 아비의 지난 자취에 마음이 끌리어서 탈미골

에서 도적질하게 되었었다. 강가가 사람이 표독하고 민첩하여 도적으로 나선 지

불과 수 년에 십 년 구닥다리 청석골 오가와 이름이 아울러 높았으나, 군영이

턱밑에 있어서 일에 방해가 적지 아니한 까닭에 실상 벌잇속은 오가를 따르지

못하였다. 송도 군관이 댓가지 도적에게 봉변한 데 불집이 나서 송도 군관들은

오가를 잡으려고 하고 탈미골 군관들은 강가를 잡으려고 하는데, 정작 불난 자

리 청석골에는 송도 군관들이 나오는 번수는 잦으나 건정으로 휘돌아다니다가

들어갈 뿐 이지만, 불똥이 튀어온 탈미골에는 군관들의 기찰이 전보다 버쩍 심

하여 강가의 여간 벌이는 내통하여 주는 군사 입 씻기기에 다 들어갔다. 어느

날 강가가 벌이하려고 큰고개 근처에 나가서 돌아 다니다가 군사들이 개 싸다니

듯 하여 군사들의 눈을 피하느라고 정작 벌이는 하지도 못하고 다 저녁때 빈손

으로 갈려울 집에 돌아와서 그 늙은 아비를 보고 자리 옮길 것을 의논하니, 그

아비 말이 조선 공사 사흘이라고 며칠만 지나면 기찰이 눅어질 터이니 기다려보

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다. 며칠 지난 뒤 그 아비의 말이 뒤쪽으로 맞았다. 해주

감영에서 수단 있는 군관이 감사의 분부를 물어가지고 새로 왔는데 감사의 분부

가 서슬이 푸르렀다. 강가란 도적을 그예 잡아서 감영으로 올리되 만일 잡지 못

하면 전부터 있는 군관이나 새로 온 군관이나 일체로 중책을 면치 못한다는 것

이었다. 군관들이 머리를 모으고 공론을 하는 말이 새어나와서 강가의 귀에 들

어왔다. 강가가 밖에 나와서 소문을 듣고 집에 돌아오니 "군영 동정이 어떻더냐,

차차 눅어지는 모양이더냐? " 하고 그 아비가 물었다. "눅어지는 게 다 무어요?

잘못하면 우리 집은 고사하고 우리 동네가 쑥밭이 될 모양이오. " “어째서? ”

"해주 감영에서 새루 군관이 왔는데 그예 날 잡아야지 잡지 못 하면 큰 탈을 당

한다구 그전 있던 군관과 쑥덕공론하더라우. 아무래두 얼른 자리를 옮기는 것

이 우물고누 첫수일까 보우. " "그러면 집안 식구까지 다 옳겨야 할 모양이니 갑

자기 어디루 가나? " "탐나는 자리가 가까이 한 군데 있는데 먼저 차지하구 있

는 놈을 집어치워야 해요. " "청석골 말이냐? 청석골 오가의 집이 두석산 속에

있다지만 누가 길을 알아야지. " "두석산 동편 날가지 속이랍디다. 연전에 매부

가 사냥 갔다 들어가 보구 와서 이야기 아니합디까. " "그랬던가. 내가 정신이

사나우니까 들었어두 잊었지. 이애 그 사람을 집어치울 생각 말구 같이 있자구

그 사람하구 의논해 보면 어떻겠니? “ "면분두 없이 지내던 터에 같이 있자고

의논하면 되겠소. 그러구 내가 가서 그 늙은 것의 수하 노릇을 한단 말이오? 집

어치우는 것이 제일이지. " "집어치우기가 어디 용이한가. " "오가 하나만 같으면

우리 남매만 가두 넉넉하지만 댓가지 도적이라구 떠드는 놈이 혹시 오가하구 함

께 있으면 단단히 차리는 것이 좋으니까 외사촌 형제까지 다 데리구 가볼까 생

각하우. " "가자면 낮에 가야지 밤에 가면 길두 모르는데 헛고생한다. " "새벽에

사냥 가는 체하구 가지요. 산속에 들어선 뒤에야 대낮이면 상관 있소. " "오가

가 어디 나가지 말란 법이 있나? " "오가가 나갔으면 더 좋지요. 식구버텀 요정

내구 기다리구 있다가 들어오는 걸 해내지요. " 강가 부자의 공론이 끝난 뒤에

강가는 곧 매부와 외사촌들을 찾아보러 나갔다.

이튿날 새벽에 사냥꾼 복색한 젊은 사람 넷이 갈려울서 두석산 편으로 내려오

는데 활을 팔에 걸고 전동을 어깨에 엇메고 앞에 오는 사람은 강가의 매부요,

허리에 환도를 차고 손에 창을 가지고 중간에 오는 사람은 강가요, 뒤에 오는

두 아람은 강가의 외종들 이니 창들만 들었었다. 네 사람이 금교역말 못미쳐서

큰길을 건너 소로로 내려오다가 두석산 뒤를 돌아 동편 날가지 속에 들어설 때 해

는 벌써 한낮이 다 되었었다. 이때 오가의 집에서는 오가의 마누라가 몸살로 앓

아서 안방에 누워 있고 오가와 유복이는 안방에 있다가 마침 오주가 놀러와서

아랫방으로 내려가고 유복이의 안해는 부리는 계집아이를 데리고 마루에서 술

을 거르고 있었다. 한눈파는 버릇이 있는 계집아이가 술 거르는 시중을 들다가

흘저에 깜짝 놀라며 "아이구, 저기 사람 좀 보세요! "하고 마루에서 마주보이는

산 위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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