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 처남 매부 두 사람은 이 세상을 영결하고 강가의 외사촌 두 사람은 오금
아 살려라 하는 격으로 장달음을 쳐서 오가의 집에서 멀리 나왔으나, 길을 몰라
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두석산 속에서 해를 거의 다 보내고 무진 애를 쓴 끝에
간신히 산속에서 나오게 되었다. 날은 어둡고 길은 험하고 배는 고프니 업친데
덥친 셈이라 죽을 고생 다하고 한밤중이 지난 뒤에 갈여울로 돌아왔다. "형님,
바루 집으루 갑시다. " "그럼 집으루 가지 어디루 가. " "고모부 아저씨 집에 들
어가지 말잔 말이오. " "네나 내나 이야기할 기운이나 있어야지 들러 가지. " "그
렇기에 말이오. " "지금쯤 다 자겠지? " 형제가 다같이 드문드문 풀기 없는 말을
주고 받으며 동네 안으로 들어오는데 동네 개가 컹컹 짓더니 들어 가지 말자고
공론하던 강가의 집 삽작 밖에 여편네들이 나와 섰다. 하나는 강가의 안해요, 또
하나는 강가의 누이다. 그 누이가 먼저 "누구야? “ 하고 앞으로 내닫고 강가의
안해가 "어째 형제분만 오시오? " 하고 뒤쫓아 나왔다. 형제가 다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강가의 누이가 "우선 집으로 들어가지. " 하고 말하여 형제는 잠깐 동
안 주저주저하다가 두 여편네와 같이 들어왔다. 강가의 늙은 아비가 방문을 열
고 내다보다가 아들과 사위는 돌아오지 않고 돌아온 처조카 형제는 죽을 상이
다 된 것을 보고 말도 묻지 않고 눈만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우리를 어디 좀
눕게 해주우. " 그 형이 내종사촌 누이에게 청하여 형제가 같이 사랑방으로 나
오는데 강가의 누이와 강가의 안해가 이야기나 들을까 하고 뒤를 따라나왔다.
사랑방은 곧 머슴방이라 머슴아이가 아랫목에 누워 자는 것을 강가의 누이가 끄
들어 일으키고 외사촌 형제를 눕게 하였다. 형제가 각기 냉수를 달래서 한 그릇
씩 들이켜고 자리에 쓰러지려고 할 때 늙은 강가가 쫓아나왔다. 방에 들어와서
펄썩 주저앉으며 곧 딸과 며느리를 향하여 나가라고 손짓하니 딸이 아비의 의사
를 알려고 "왜 그러세요? " 하고 물었다. "너희들은 안방에 가 있거라. " 늙은
강가가 소리를 꽥 질러서 딸과 며느리가 방에서 나간 뒤에 비로소 처조카 형제
를 바라보며 말을 물었다. "대관절 죽었니 살았니? " "죽었기에 오지 아니했
지. " 대답을 기다리고 처조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말 좀 해라. 남매
가 다 죽었니? " 하고 물으니 형제가 다같이 말은 없이 고개들을 끄덕이었다. 늙
은 강가는 한동안 넋 잃은 사람같이 앉아 있다가 방고래가 꺼지도록 한숨을 쉬
고 일어서서 비슬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날 밤 동트기 전에 강가의 집에 불
이 났다. 동네 사람들이 "불이야, 불이야! "바고 소리를 지르며 불 잡으러 모여들
었을 때, 불길은 벌써 안팎채를 쉽싸고 용솟음쳐서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는
까닭에 걸낫 같은 연장은 쓰지 못하고 멀리서 물들만 끼어얹었다. 물길이 가깝
고 또 바람이 잔 덕으로 불이 이웃에 번지지는 못하였으나 강가의 집은 안팎채
가 통히 다 타고 말았다. 강가의 집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머슴아이 하나뿐이라
동네 사람들이 불 잡은 뒤에 그 아이를 둘러싸고 이 사람 한마디 저 사람 한마
디 말들을 물어서 강가가 매부와 외사촌 형제를 데리고 새벽 사냥 나간 이야기
와 외사촌 형제만 밤중에 돌아왔는데 강가의 아비가 아들과 사위는 죽었느냐고
다져 묻고 낙심하던 이야기를 들었고, 또 안채에 불이 붙어서 한 참 활활 탈 때
늙은 강가가 딸과 며느리를 불 속에 떠다박지르고 미친 사람같이 뛰어다닌 것과
강가의 외사촌 형제가 죽은 사람같이 곤히 자다가 그대로 타죽은 것을 알게 되
었다. "사냥 갔다가 어째서 죽었을까? ”"큰 짐생에게 물려죽은 게지. " "급살을
맞았는지 누가 아나. " "강첨지가 실성해서 집에 불을 지른 게군. " "타죽을 작정
으로 불을 놓은 게지. " "아무리 눈이 뒤집혔기루 어떻게 딸이나 며느리를 불 속
에 떠다박지를까? " 동네 사람들이 지껄이며 흩어져가기 시작할 때 강가의 외가
식구들이 뒤늦게 알고 곤두박질하여 쫓아왔다. 강가의 외가는 성이 변가니 갈려울
의 대성이라 일가는 많으나 강가 외삼촌대까지 사오대 독자로 내려와서 강근
지친은 없고 죽은 사람 형제 중에 형만은 아들 둘이 있으나 아직 다 어리고, 아
우는 통히 소생이 없는 까닭에 집에 남아 있는 형제의 식구가 두 여편네와 두
어린애 뿐이었다. 두 여편네는 사내들이 예사 사냥질하러 간 줄로만 여기고
해 질 무렵부터 돌아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해가 져 땅거미가 되고 땅거
미가 지나 밤이 된 때 골집 사나운 큰동서가 "나는 잘라네. 자네도 고만 기다리
고 가서 자게. " 하고 볼멘 소리로 말하는데 작은동서가 새촘하고 있으니 다시 "
무슨 놈의 사냥을 밤중까지 하겠나. 벌써들 왔지. 노루 마리나 잡아가지고
아랫말 와서 술들 먹는 게지. " 하고 얼굴을 휘번덕거리며 말하였다.
"그럴까요? 그러기나 하면 좋겠어요. " "좋기는 무에 좋은가. 사람이 기다리느라
고 눈이 빠지는 건 생 각 않고 배가 맹꽁이같이 되도록 처먹고 있는 꼴을 생각
해 보게. " "우리는 어디 술이나 먹어요? " "아랫말 아재에게 쥐어지내는 위인들
이니까 술 먹는 사람이나 술 안 먹는 사람이나 다같이 붙잡힌 게지. " "다른 일
이나 없을까요? " "무슨 다른 일? 호랑이에게 깨물려들 갔을까. " "아랫말 좀 안
가 보실라오? " "턱찌끼 얻어먹으러. “ "참말 왔나 가보잔 말이지요. " "자네나
가보고 오게. " "캄캄한데 나 혼자 어떻게 가요. " "그럼, 이 밤중에 애들을 치켜
업고 가잔 말인가? 나는 못 가겠네. ”이때 젖먹이 어린아이가 울었다. "자네도
고만두게. 있다들 오거든 한바탕 해낼 생각이나 하게. 사람이 너무 고와도 못써.
" 큰 동서는 작은 동서를 가르치듯이 말하고 곧 우는 아이를 끼고 눕고 작은동
서는 한참이나 그대로 앉아 있다가 말없이 일어나서 딴채에 있는 자기 방으로
내려왔다. 전날 밤에 사내가 자기를 보고 "내일 새벽에는 우리 형제가 아랫말 형
님 남매하구 같이 사냥을 나갈 텐데. " 하고 말을 하다가 갑자기 "고만두어라. "
하고 말을 끊었다. 자기가 "무어요? " 하고 물은즉 "애를 좀 태워주려다가 불쌍
해서 고만두어. " 하고 실없은 장난으로 자기의 말을 막아서 다시 채쳐 묻지 못
하고 고만둔 일이 있었다. 사내가 '나갈 텐데' 하고 그 끝에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았던가 채쳐 묻지 못한 것이 못내 분하였다. 약한 여편네가 끝없이 나오는 염
려스러운 생각을 억제하지 못하고 골치를 앓기 시작하여 옷 입은 채 자리에 쓰
러져서 앓는 것도 아니고 자는 것도 아닌 모양으로 밤을 지낸 끝에 "여보게, 신
뱃골댁. " 큰 동서의 부르는 소리를 귓결에 듣고 깜짝 놀라 일어나서 방문을 열
어보니 큰동서가 마당에 나와 서 있었다. "아랫말에 불이 났네, 내가 가보고 올
테니 자네 안방에 좀 을라와 있게. " 전 같으면 선뜻 녜 하고 대답할 것인데 어
째 혼자 남아 있기가 마음에 싫어서 작은 동서는 "형님, 나도 가볼 테요. " 하고
마당으로 쫓아나왔다. "어린것들만 내버려두고 같이 가잔 말인가? " "형님, 집에
기시오. " "자네 같은 약한 사람은 불 잡는 데 가루거치기만 해. 잔말 말고 집에
있게. " "싫어요. " 큰 동서가 골이 나서 방으로 쭈르르 들어갔다. 작은동서는 아
랫말에도 내려가지 않고 또 아랫방에도 들어가지 않고 큰 동서가 듣거라 하고
꾸짖는 뒷말을 귀 밖으로 들으면서 마당에서 서성거리었다. 멀리 보이던 환한
불빛이 없어진 뒤 일가집 젊은 사람 하나가 숨이 턱에 닿게 뛰어와서 남편 형제
가 고모부 집에서 자다가 불에 타죽은 사연을 말하여 주었다. 큰동서가 이 말을
듣고 "애구, 그게 무슨 소리야? " "애구, 이걸 어떻게 하나! " 하고 곧 아랫말로
뛰어내려오는데 작은 동서는 정신없이 그 뒤를 따라서 엎드러지며 고꾸라지며
쫓아왔다. 큰동서는 여러 사람들 있는데 와서 펄썩 땅에 주저앉아서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치면서 "애구지구. " 하고 통곡하는데 작은 동서는 쓰러지는 몸을 가누
려고 애를 쓰다가 쓰러지며 곧 기함하여 화재 뒤치다꺼리를 지휘하던 동네 소임
이 남아 있던 여편네들을 시켜서 기함한 사람을 구호하게 하였다. 추운 새벽 찬
땅에 쓰러진 기질 약한 여편네가 잘 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여러 여편네들이
의논하고 가까운 집으로 들어다가 따뜻한 방에 눕힌 뒤에 손발도 주무르고 백비
탕도 입에 흘려넣었다. "사람이 워낙 약하게 생겼어. " "살이 이렇게 희고 보드
라우니 약하지 않겠소. " "조개 속에 게같이 생겼다는 것이 이런 사람 말인 거
야. " "사내들은 약한 여편네를 좋아한다네. " "사내 나름이겠지. 설마 세상 사내
가 다 약한 여편네만 좋아할라구. " "아래윗말 사내 코빼기치구는 신뱃골댁을 칭
찬 않는 사람이 없든걸. " "칭찬을 하면 여간들 하나. 입에 침이 없이 하지. "
"한 사내 사랑이 제일이지, 열 사내 칭찬이 소용 있소. " "남의 일이라도
가엾고 불쌍하오. " "혼자 되어서 불쌍하단 말이지? 얼마나 혼자 살라구 기껏해야
삼 년이지. " "이 댁네 나이 올에 스물 몇인가요? “ "스물댓 되었을 게요. " "스
물댓이 무어요? 스물 일곱인가 여덟이오. " "그렇게 나이를 먹었나? ” "그런데
이때까지 애 하나를 못 났어? “ "애를 두어 번 지웠지. 우선 작년에도 애 지운
끝에 죽네 사네하지 않았어. " "참 그랬든가? ” "여편네가 사내를 너무 밝히면
애를 잘 못 낳는답디다. " "별소리가 다 많소. " "이 집 주인도 남부럽지 않게 내
외 의초가 좋지만 돌 지나기가 무섭게 아이가 생기니 어떻게 해. " "약한
사람은 애도 잘 못 나요. " "팔자에 탠 자식이면 약하다고 못 낳겠소. "
종작없는 여편네들이 수다스럽게 지껄이는 동안에 기함하였던 사람이 막힌
기운이 트이어서 감았던 눈을 뜨게 되고 다시 한동안 지난 뒤에는 완구히
생기가 돌아서 일어 앉게까지 되었다.
일어 앉으며 곧 다시 불탄 자리로 나가려고 하는 것을 능청스러운 여편네
하나가 "거기는 다시 가서 무엇할라우? 시체들은 벌써 다 찾아내서 옮겨갔는데
바로 집으로나 가보오. " 하고 거짓말로 속이어서 얼마 뒤에 윗말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인정 있는 여편네 두어 사람이 붙들어주며 데리고 왔다. 집에 와서
보니 그 동안에 큰동서는 먼저 와서 동네 사내들 있는 앞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넋두리하며 울고 있었다.
작은동서가 안방에 들어서는 것을 보더니 큰동서는 "아이구 이 사람아,
그 망한 놈의 늙은이가 일부러 불을 놓았다네. 아이구, 그놈의 늙은이가 우리와
무슨 원수가 졌나. 죽을라면 제나 죽지 왜 남을 태죽이나. 아이구 이 사람, 우리
가 인제 어떻게 사나. 저까진 어린것들 있어야 귀찮기나 하지. 아이구 아이구.
“ 하고 두 다리를 문지르며 통곡하는데 작은동서는 남이 괴상히 보도록 눈물
한 방을 아니 내고 입술만 깨물고 서 있었다. 그 얼굴빛이 곧 다시 기색될 사람
같이 보이어서 같이 온 여편네들이 "아랫방에 가서 좀 눕시다. " 하고 붙들고 안
방 문밖을 나서자 "아이. “ 하고 상을 찡그리며 곧 입으로 피를 토하는데
봉당 바닥이 벌겋게 되도록 토하였다. 작은 변가의 안해가 몸져 누워 있는
동안에 동네 공의로 여러 송장을 한날 파묻는데 변가 형제의 장사만은
일가의 덕으로 그중에 가장 장사같이 지내었다. 장삿날 두 동서의 친정에서
사람들이 왔는데, 신뱃골 작은동서의 친정에서는 그 어머니 되는 이가
아들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죽었고 그의 동기는 손 아래
사내동생 하나뿐이라 모자 온 것이 곧 전식구가 온 것이었다.
장삿날까지 온사흘 동안 곡기를 끊었던 작은 변가의 안해가 그 어머
니의 강권으로 미음을 몇 모금씩 마시기 시작하여 기운을 조금조금 차리게 되었
으나, 그 뒤로는 자리에 떨어지는 눈물이 마를 사이가 없었다. 그 어머니가 딸이
불쌍해서 얼른 가지 못하고 삼사 일 묵는 동안에 벌써 그 동서의 토심과 구박이
조금씩 보이었다. 그 어머니는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집으로 같이
가자고 말하나 그 딸은 남편의 상청을 버리고 가기가 싫어서 어머니의 말을 듣
지 아니하였다. 그 어머니가 떠나기 작정한 날 새벽에 모녀가 다 일찍 잠이 깨
서 어머니는 같이 가자고 다시 타이르고 딸은 안 간다고 여전히 고집 세우는 중
에 동네가 홀저에 요란스러워졌다.
이날 첫새벽에 탈미골 군영에 있는 금도 군사들이 갈려울을 들이쳤다. 강가의
집이 폭망하여 식구 하나 남지 않은 것을 알고도 강가의 결찌와 동류를 잡는다
고 집뒤짐을 시작하여 산수털벙거지가 아래윗말에 흩어졌다. 아우성 소리, 호령
소리, 아이가 놀라서 우는 소리, 개가 자지러져 가며 짖는 소리, 문짝이 부서지
는 소리, 도깨그릇이 깨어지는 소리, 모든 소란스러운 소리가 새벽 동네에 가득
하였다, 변가 집 아랫방에 누워 이야기하던 모녀는 다같이 벌떡 일어 앉았다. "
어머니, 난리가 났는가 보오. " "무슨 난리가 소문도 없이 날라구. " "여름에 전
라도에 난리가 났다더니 그 난린 게지. " "그 난리는 벌써 평정되었단다. " "그
럼, 이게 무슨 야단일까? “ "글쎄 모르겠다. 내가 잠깐 밖에 나가 보고 오마. "
하고 그 어머니가 일어서서 치마를 몸에 두르니 "나가지 마오, 어머니. " 하고
딸이 치맛자락을 붙들었다. "삽작 밖에까지만 나가 보고 올 테니 이거 놓아라. "
하고 어머니가 치맛자락을 흔들 때 마침 안방문을 여닫히는 소리가 들리었다. "
동서가 밖에 나오는가 보오. 고만두고 앉으시오. " 하고 딸이 말하여 어머니는
도로 앉았다. 바삐 끄는 신발 소리가 삽작문 편으로 나가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
아이구머니! " 큰동서의 놀라는 소리가 들리고 뒤미처 "이년, 게 섰거라! " 어떤
사내의 호령 소리가 들리었다. "아무 죄없는 과부들만 사는 집이올시다. " "이년,
도둑놈의 기집년이 죄가 없어! " "죽은 사내가 도둑놈이라도 과부 된 기집사람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더구나 사내가 살아서 도둑질한 일이 없습니다. " "도둑놈
강가의 사촌인 줄 다 알았다. 이년, 잔말 마라. " 큰동서가 징징 우는 소리로 무
어라고 하소연하더니 두서너 차례 뺨 치는 소리가 나고서는 하소연이 들어가고
우는 소리만 남아 들 리 었다.
"어머니! " 하고 딸이 발발 떨면서 어머니의 손을 쥐니 어머니는 "하늘
이 무너져도 솟아나는 구녁이 있단다. 너무 겁내지 마라. " 하고 딸의 손을 맞쥐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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