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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4권 (27)

카지모도 2023. 1. 8.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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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다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가 또 있소?”, “우리 그대루 같이 지내지

다른 데 갈 것 무어 있나? 내가 그 자식을 단속해서 이 담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게니 염려 말구 같이 지내세. ”하고 정첨지는 오주를 달래었다. 오주가 위인이

만만치 않아서 휘어부리기가 어려울 뿐이지 힘이 많은데다가 일에 몸을 아끼지

아니하여 오주 하나면 장정 일꾼 몇 사람 폭을 당하는 까닭에 이런 머슴을 놓치

지 않으려고 정첨지는 중언부언 만류하여 놓고 나서 “내가 지금 그 자식을 불

러다가 자네 앞에서 사과시키구 또 장래 그런 일 못하두록 맹세시킴세. ”하고

곧 안에 와 있는 동네 여편네 하나를 불러다가 발매터에 나가서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일렀다. 오주가 한동안 더 정첨지 방에 앉아 있다가 “난 고만 집에 가

보겠소. ”하고 일어서니 “그 자식이 오거든 자네를 부르러 보낼 게니 곧 오게

”하고 정첨지는 더 붙잡지 아니하였다.

오주가 정첨지 아들의 사과를 받고 일을 씻어서 덮었다. 오주의 안해가 태기가

있어서 그 뒤에 입덧이 났는데, 오주는 처음에 놀란 끝에 병이 났거니 여기다가

나중에 태기인 줄을 알고 남의 없는 일같이 좋아하였다.

꽃 피고 꽃 떨어지고 잎 피고 잎 떨어지는 동안에 세월이 물같이 흘러서 오주

의 안해의 산삭이 다 되었다. 가냘픈 몸에 배가 유착히 불러서 굼닐기가 가쁜

까닭에 오주의 안해는 만삭 되기 전부터 많이 누워 지내었다. 어느 날 저녁때

오주가 밖에 있다가 들어와서 부엌이 쓸쓸한 것을 보고 “오늘두 저녁 안 해먹

구 누워 있나?”하고 중얼거리며 닫힌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안해는 누워 있

지 않고 아랫배를 부둥켜 쥐고 앉아 있었다. “왜 그래?”하고 오주가 방으로

들어와서 안해의 머리를 만져보려고 하니 안해는 머리를 오주 가슴에 대고 앓는

소리를 하였다. “어디가 아픈가?” 몇 번 물어야 대답이 없던 안해가 한동안

머리를 들고 “아이고 죽겠소. ”하고 이마의 진땀을 씻었다. “대체 어디가 아

파 그래?”, “배가 아파요”, “아침밥이 체했나?”, “아니오”, “그럼 왜 아

파? 옳지 옳지, 애 날 때 배가 아프지. 애를 곧 날 것 같은가?”

안해가 대답 대신 고개 끄덕이는 것을 보고 오주는 한번 허허 웃고 나서 “가

만히 누워 있어야 애기가 잘 나오겠지. ”하고 안해를 붙들어 눕히고 곧 윗목

벽에 매인 실겅 위에서 쌀과 미역을 내리었다. 산미와 산곽은 달 초생에 유복이

가 갖다 주고 간 것이었다. 오주가 쌀 한 바가지, 미역 한 오리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안해가 누워서 “그건 어디로 가지고 가오?”하고 물으니 오주

는 서서 “주인집에 가서 밥 짓구 국 끓여달랄 테야”하고 대답하였다. “애도

낳기 전에 무슨 국밥이오?”, “국 끓이구 밥 짓는 동안에 애 낳겠지 뭐”, “언

제 날지 누가 아오?”, “곧 날 듯하다며 그래”, “그건 거기 놓아 두구 얼른

가서 저녁이나 먹구 오”, “나두 첫국밥 같이 먹을라네”, “제발 말 좀 들으

우. 첫국밥은 언제 먹게 될지 모르니 어서 가서 저녁 먹으우”, “그럼 밥을 갖

다 같이 먹세”, “난 못 먹겠소”, “하라는 대루 할까”하고 오주는 쌀과 미역

을 방구석에 놓아두고 정첨지 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고 왔다.

오주는 저녁 먹을 동안에도 안해가 곧 아이를 낳았을 것 같아서 한 그릇 밥을

너댓 술에 다 떠먹고 부리나케 쫓아왔는데 안해는 배가 아프다고 자반 뒤집기할

뿐이라 안해가 조금 진정되기를 기다려서 오주가 “왜 얼른 낳지 않구 고생이

여. ”하고 나무라듯 말하니 안해는 “나와야 낳지. ”하고 톡 쏘아 말대답하였

다. “왜 얼른 나오지 않을까. 그놈이 따뜻한 데 들어앉아서 나오기가 싫은 게로

군. ”하고 오주가 웃으니 “놈인지 년인지 어찌 알고 놈이래. ”하고 안해도 웃

다가 곧 “아이구 배야. ”하고 상을 찡그렸다.

그날 밤새도록 오주의 안해는 아이를 비릊기만 하고 낳지 못하여 오주까지 밤

을 해뜩 새웠다. 동이 터서 밖이 환할 때 기운이 빠져서 늘어진 안해가 목안 소

리로 “여보 나 죽겠소. 우리 어머니께 좀 갔다와 주. ”하고 청하니 오주는 “

그래 내 가서 뫼시구 오지. 그러나 나 없는 동안에 혼자 어떻게 있나?”하고 걱

정하다가 “걱정 말고 지금 곧 좀 갔다오우. ”하고 안해가 재촉하는 바람에 “그

래 그래. ”하고 대답하며 곧 일어섰다.

오주의 안해가 본집과 연신 있어 지낸지 오래다. 오주의 안해는 남의 이목이

부끄럽다고 신뱃골 간 일이 없지마는 오주의 장모는 불쌍한 딸이 못 잊혀서 개

래동을 한두 번 왔다 가기까지 하였다. 오주가 새벽 나서서 신뱃골로 장모를 데

리러 갈 때는 줄달음을 치다시피 하여 아침 전에 들어가고 올 때도 늙은

장모를 업고 다리 힘 자라는 대로 빨리 온 까닭에 점심때 조금 지나 돌아왔다.

오주가 집에 들어오며 “장모 뫼셔 왔네. " 하고 소리지르고 방문을 열어서 장모

를 앞서 들여보내는데 그 장모가 “아이구머니. " 하고 방문턱에 주저앉으니 “

왜 그러우?” 하고 오주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오주의

안해가 눈을 홉뜨고 누워 있는데 그 눈이 숨지는 사람의 눈과 같았다. 오주가

장모를 떠밀다시피 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안해 옆에 가서 펄썩 주저앉으며 곧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여보게, 정신 차리게. " “여보게, 장모님 오셨네. " “

장모님 오셨어. " 오주가 연거푸 큰소리를 질러도 오주의 안해는 대답이 없었다.

장모가 이것을 보고 눈자위를 붉히면서 “저리 좀 비켜나게. 나 좀 보세. " 하고

오주의 비켜주는 자리에 들어앉아서 입을 딸의 귀에 대다시피 하고 “이애 이애

정신 좀 차려라. 이애 이애. " 하고 목멘 소리로 부르니 대답은 여전히 없으나

바로 섰던 눈동자가 돌기 시작하며 걷어들렸던 눈꺼풀이 내려덮였다. 오주의 안

해가 참없이 잦치르는 아픔을 배기다 못하여 까물치듯이 정신을 잃었다가 귀에

익은 어머니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서 거북스럽게 눈을 뜨고 “어머니!” 하고

손을 잡으려고 더듬었다. “옳지, 인제 정신이 왔구나. " 하고 어머니가 딸의 손

을 쥐고 “살아났군 살아났어. " 하고 오주의 안해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 오주의

안해는 “아이구머니 아이구머니. " 하고 앓는 소리 하다가 “어머니 물 좀 주.

" 하고 마른 입속을 벌려 보이었다. “더운물이 있겠나?” “찬물은 먹여 못 쓰

우?” “찬물 못 먹네. " 오주가 장모의 말을 듣고 부엌으로 물 데우러 나가는데

장모는 방바닥에 손을 대어 보며 “방이 차니 불 좀 나우 넣게. " 하고 부탁하였

다. 오주가 물을 한 솥을 붓고 때는 중에 장모가 나와서 “물이 그저 안 더웠

나?” 하고 솥을 열어보더니 “무슨 물을 이렇게 많이 부었나. 에 사람두. " 하

고 간신히 거냉된 물을 사발에 조그만치 떠가지고 들어가며 “어서 불이나 많이

때게. " 하고 오주를 돌아보았다. 오주가 불을 더 때는 중에 안해의 앓는 소리가

높아져서 오주가 가서 방문을 열고 “왜 더 아프다우?”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

고 하니 장모가 손을 내저으며 “얼른 문 닫히게. 그러구 자네는 들어오라기 전

엔 들어올 것 없네. " 하고 말을 일러서 오주는 다시 부엌에 와서 잎나무를 아궁

이에 그러넣고 앉아 있었다. 한동안 뒤에 안해의 낑낑 애쓰는 소리와 장모의 어

차어차 힘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여 오주는 궁둥이에 좀이 쑤시어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여러 차례 방문 밖에 가서 기웃기웃하였다. 해가 거의 다 져

갈 때 방안에서 “으아 으아” 갓난애의 소리가 났다. 부엌에서 잎나무를 깔고

퍼더버리고 앉았던 오주가 펄쩍 뛰어 일어났다. 방문 밖에 가서는 고지식하게

방문을 열지 않고 방안에 있는 장모에게 말을 물었다. “났지요?” “났네. " “

무어요?” “딸일세. 섭섭한가?” “딸이라두 낳았으니 좋지만 딸이 아들만 하

겠소. " “그렇지. " 장모의 웃는 소리를 듣고 오주가 “왜 웃소?” 하고 물으니

장모는 그저 “아닐세. " 하고 대답하면서도 역시 웃었다. “인제 좀 들어갑시다.

" “조금 더 기다리게. " 오주가 장모의 들어오란 말을 기다리다 못하여 나중에

“고만 들어갈라우. " 하고 곧 방문을 버썩 여니 “얼른 들어오구 문 닫게. " 하

고 장모는 바람을 막느라고 갓난애 모자를 몸으로 가리었다. 오주가 황망히 문

을 닫고 들어서서 눈감고 누워 있는 안해를 내려다보다가 장모 옆에 와 앉아서

홑옷가지로 싸 동여놓은 갓난아이를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얼굴이 보기 싫게 생

겨서 이쁜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데가 없어 보이었다. “못두 생겼소. " “자네

닮았는데. " “기집애가 날 닮아 쓰겠소. " “기집애로 못 쓰겠거든 사내로 쓰게

나. " 오주는 장모가 실없은 말 하거니 생각하였다. 말하는 장모와 듣는 오주가

다같이 웃을때 오주의 안해가 영채 없는 눈을 뜨고 보았다. “어머니. " “왜?”

“참말 기집애요?” “기집애면 섭섭하겠니?” “아니. " 안해가 기운 없는 말을

그치고 다시 눈을 감을 때 오주가 아이 싸놓은 것을 밑으로 걷어치고 들여다보

고 “자지 달렸네, 멀쩡한 사낼세. " 하고 소리쳐서 안해를 알려주고 곧 장모를

돌아보며 “왜 속였소?” 하고 책망하듯 말하니 “그러면 명이 길다네. "하고 장

모는 웃었다. 오주의 안해는 얼굴에 별로 기쁜 빛이 없었지만 오주는 입이

절로 벌어졌다. 장모가 방구석에 있는 미역과 쌀을 가지고 나가서 국 끓이고

밥 짓는 동안에도 오주는 줄곧 그대로 앉아서 모자를 번갈아 보며 싱글벙글

좋아하였다. 장모가 국밥을 퍼가지고 들어온 뒤 오주가 안해를 일으켜 앉히려고

하니 장모가 가만히 뉘어두라고 말리었다. “왜 그러우?” “아직 앉지 못하네. "

“앉을 기운이 없으면 장모님이나 내나 안구 앉읍시다. "“아니야. 아파서 못앉아.

아이가 저렇게 크니 어미가 성할 수 있나. "“어디가 아파서 앉지를 못하우?

앉혀 봅시다. "“고만두고 얼른 이거나 받게. " 장모가 집어주는 국그릇

밥그릇을 오주가 누운 아내 앞에 받아놓고 장모와 같이 권하였다. 정작 아이

어머니는 국 한 모금 마시다 말고 오주가 첫국밥을 달게 먹었다.

후산하고 삼 나가고 아이 어머니가 국밥을 조금씩 먹은 뒤에 오주의 장모는

신뱃골로 돌아갔다. 해산에 지위진 오주의 안해가 조금씩 갱생하여 가다가

한이레가 지난 뒤부터 새삼스럽게 부기가 생기고 신열이 생기더니 불과 며칠 안

에 수족까지 똥똥 붓고 밤이면 열에 뜨이어서 헛소리까지 하게 되었다.

“여보, 나하고 같이 가잔 말이오?”“저놈의 늙은이 왜 데리고 왔소?”“고모부가 다

무어요, 원수지. "이런 똑똑한 말보다 똑똑치않은 소리가 더 많았다. 밤새도록 신

열이 오르고 내리지 않다가 식전이면 조금씩 내리는데 하루 식전에는 오주의 안

해가 정신기가 훨씬 낫게 돌아서 오주를 보고 평일과 같이 수작하였다. “나 때

문에 여러 날 잠을 못자서 눈이 부숙부숙하오. 낮잠이라도 좀 자오. "“내 걱정

마라. "“주인집 일이나 밀리지 않았소?”“그까지 일은 밀려두 상관없네. 자네

병이나 얼른 낫게. "“나는 아무래도 죽을까 보오. 눈만 감으면 죽은 사람들이

보이오. "“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죽은 위에 가끔 꿈에 보여두 고뿔 한번

아니 앓네. "“예사때 꿈과 달라요. 내야 죽어도 아까울 것 없지만 핏덩이

가 불쌍하오. "하고 말할 때 마침 어린아이가 울기 시작하니 오주의 안해는 곧

우는 아이를 앞으로 끌어다가 젖을 물리고 알아듣는 것에게 말하듯이 말하였다.

“어미 죽기 전에 어미 젖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 아모쪼록 병없이 잘 자라서

수명 장수 오래 살고 불쌍한 어미 생각해라. 어미가 세상에 났던 표적이 너 하

나뿐이다. 어미 명이 남은 것 있으면 너게 이어주마. 죄없는 어린것이 어미 없이

도 잘 자라도록 도와 줍소사. 어미가 죽어 혼만 남더라도 신명께 축수하마. 어미

대신 오래오래 살아라. 그러나 너 같은 없는 사람의 자식을 누가 젖을 먹여주랴.

네가 밥 먹게 되기까지 살다 죽었으면 한이 없겠다만 젖 한번 배불리 못먹여보

니 어미 맘이 어떠하랴. 어미가 죄 많아서 너를 핏덩이로 두고 죽는다. " 오주의

안해가 나중에는 목이 메어 말은 못하고 눈물만 흘리었다. 의약 없는 두메 형세

없는 집에 약한 몸에 중한 병이 들면 죽을 사람으로 칠 수밖에 없다. 오주의 안

해가 약 한 첩 못 얻어 먹고 앓는 중에 정신 좋던 날 낮 후부터 신열이 훨씬 더

하여서 정신 잃은 채 며칠 동안 고통하다가 나중에 고통이 가라앉는 듯 신열이

갑자기 내리고 신열이 내리며 숨이 따라 그치었다. 아들 낳은 뒤 세이레가 겨우

지나고 오주와 같이 산 뒤 일 년이 채 못 되어서 오주의 안해는 박명한 미인으

로 일생을 마치었다. 초상 때 동네 인심도 있거니와 정첨지가 도와주고 유복이

가 힘을 써서 오주 안해의 초종 범절은 과히 마련 없지 아니하였다. 유복이 안

해와 오가 마누라까지 초종중에 한 번씩 넌지시 왔다갔는데 오주의 장모는 장삿

날까지 한번 오지 아니하였다. 신뱃골에 마마가 들어서 오주의 처남 아이가 걸

린 까닭에 오주의 장모는 아들마마시키느라고 딸의 초종을 와서 보지 못한 것이

었다. 오주가 급히 장모보고 할 말이 있어서 바로 장사 이튿날 신뱃골로 장모를

보러 갔다. 오주가 장모의 잡 삽작 안에 들어서려고 할 때 봉당 정화수 상 앞에

앉았던 장모가 등겁하여 들어오지 말라고 손짓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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