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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16)

카지모도 2023. 1. 27.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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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갈라우. " "읍내는 내일 나하구 같이 가세. " "약물을 더 먹어야 할 사람이 읍

내를 같이 갈 수 있소. " "약물을 하루 두서너 차례씩 먹어야 맛인가. 식전에 한

차례 먹구 같이 가세. " "그래서 속병이 아주 낫지 못하면 내가 원망 듣게. " "누

가 원망한단 말인가? " "방금 마누라쟁이 말을 들어보지. 나중에 원망 아니할까.

" "그럴 리두 없지만 설혹 내가 내일 하루 약물을 안 먹어서 속병이 낫지 못한

다손 잡드래두 내가 원망 안 하면 고만이지 다른 사람의 말까지 족가할 것 무어

있나. " "장기 두는 구경을 별루 즐기지두 안하면서 구태어 같이 갈 건 무어 있

소. 약물을 한 차례라두 더 먹는 것이 워낙 좋으니 고만두우. " "긴말할 것 없이

내일 같이 가기루 하구 오늘은 우리 술이나 먹으러 가세. " 유복이가 천왕동이를

끌고 미역주막으로 술 먹으러 나오는데 손가까지 데리고 나왔다. 주막방에서 술

을 먹는 중에 천왕동이가 벽에 걸린 장기 망태를 보고 주막 주인 여편네더러 "

여기 장기 두는 사람이 있소? " 하고 물으니 여편네가 "우리 영감이 잘 둔다오.

" 하고 대답하는데 마루에 앉았던 주막 주인이 "내가 무슨 장기를 잘 둔다구

알지두 못하구 지껄이나! " 하고 여편네를 책망하였다. "잘 두니까 잘 둔다지 내

가 거짓말했나. " "잘 두구 못 두는 걸 자네가 어떻게 아나? “ "자기 입으로 횐

소리를 하니까 내가 알지. " "내가 언제 자네보구 장기 잘 둔다구 횐소리했

나? " ”나더러 했다고 누가 그래.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장기 둘 때 흰소리

만 잘하데. " "저런 사람 보아. 참말 종작이 없네. “ "왜 종작이 없어. " 방안에

있는 여편네가 방 밖에 있는 사내와 입심을 겨를 때에 손가가 사내를 내다보고

웃으며 ”잘 둔다구 칭찬하구 못 둔다구 겸사하다가 내외간에 말다툼 나겠소.

칭찬이 진정인지 겸사가 진정인지 우리가 두어 보면 알테니까 이리 들어와서

한번 두어봅시다. 잘 두면 내가 같이 두고 못 두면 저 총각이 같이 둘 테요. "

하고 실없이 말하니 주인은 웃지도 않고 "내 장기는 겨우 멱 아는 장기요. " 하

고 겸사하였다. "그럼 총각하구나 같이 두어보우. " 주인이 말대답 없이 마루구

석에 세워 있던 장기판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니 주인 여편네가 얼른 일어나서

장기 망태를 벽에서 떼어내려 주었다. 주인이 손가 앞에 장기판을 놓고 마주앉

으며 "어디 한번 두어봅시다. " 하고 장기를 판 위에 쏟아놓으니 손가는 "저 총

각하구 두시우. " 하고 판을 밀어놓았다. "잘 두시는 분에게 한두 수 배워봅시다.

" "총각하구 두어서 이기기만 하시우. 그러면 내가 한번 두어주리다. " 손가가

시침떼고 장기 잘 두는 체하는 것을 보고 천왕동이는 말할 것 없고 유복이까지

빙글빙글 웃는데 속 모르는 주인은 "그럼 총각하구 한번 두까. " 하고 천왕동이

앞으로 장기판을 돌려놓았다. 주인이 장기를 제법 두나 천왕동이의 적수가 아니라

장군 한 번을 못 불러보고 져도 참혹하게 졌다.

"이 장기두 예사 장기가 아니로군. " 주인의 말끝에 손가가 "총각에게 차조 떼일

장기요. 나하구는 두어볼 것두 없소. " 하고 깔깔 웃어서 주인이 무색하여 하며

"우리 골에 서울까지 이름난 장기가 있는데 그 장기두 내게 차포밖에 더할 것

없소. " 하고 말하였다. 천왕동이가 "백씨 말이오? 나두 차포 떼어주께 술 한턱

내기 둡시다. “ 하고 말하여 주인은 설마 차포를 더 가지고 못 이기랴 생각하

고 "아무리나 내기하마면 하지. " 하고 대어들었다.

주막 주인이 차포가 더한 것을 믿고 조심을 덜하다가 차 하나는 차상대하고

말 하나는 공먹히었다. .그러고 보니 포 하나 뗀 셈도 채 못 되어서 한번 기를

펴보지 못하고 몰리고 쪼들리기만 하다가 마침내 판세가 더 두어볼 것도 없이

되었다. "고만두구 진작 내기 시행이나 해야겠군. " 주인이 장기를 쓸고 나앉아

서 안해를 보고 "맑은술 한 양푼만 잘 데워오게. " 하고 말을 일렀다. "공연히

임자를 칭찬했다가 나까지 낯 깎였소. " "누가 칭찬해 달라든가. " "임자가 그렇

게 잘못 두면서 까치 뱃바닥같이 횐소리하는 줄이야 누가 알았소. " "나는 그

저 잘 두구 총각은 썩 잘 두니 내가 지지 이기겠나. 그쯤 알구 어서 가서 술이

나 데워오게. " 여편네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주인이 손가를 향하여 "당신 장기

는 총각버덤 얼마나 더 세시오? " 하고 물으니 손가는 천연덕스럽게 "포 하나쯤

세지요. "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우리 따위는 양차 떼두 안되겠소. " "어려을

게요. " 손가는 고개를 젖혀들고 코웃음을 치고 주인은 입을 벌리고 머리를 흔들

었다. "우리는 읍내 백이방의 장기를 조선 제일루 알았더니 윗수에 윗수가 있소

그려. " "백이방의 장기수는 대강 들어 알지만 우리만 좀 못한갑디다. " "서루 두

어 보진 못하셨소? " "우리가 영천 약물 먹으러 온 길인데 갈 때 한번 찾아가서

두어볼 작정이오. " "총각이 사위 취재 보이러 가오? " "취재가 무슨 취재요? "

"사위 취재 보는 이야기두 못 들었소? 백이방이 이쁜 딸을 두구 사위 취재를 보

이지요. " 이때 마침 주인 여편네가 양푼 하나와 뚝배기 하나를 두 손에 들고 들

어오며 "이것 좀 받으우. " 하고 말하여 주인이 일어섰다, 양푼에는 맑은 술이요

뚝배기에는 생선조림이다. 주인이 천왕동이를 돌아보며 "자, 총각부터 이리 오게.

" 하고 말하였다. 여럿이 다같이 둘러앉아서 여편네의 돌리는 술을 받아먹을 때

천왕동이가 주인을 보고 "사위 취재 이야기를 좀 자세히 들읍시다. " 하고 말하

니 주인 여편네가 사내보다 먼저 "총각이 이쁜 색시에게 장가들구 싶소? " 하고

싱글싱글 웃었다. "들 수 있으면 들지요. " "장기만 잘 둔다구 취재에 뽑히기는

어려운갑디다. " "장기 외에 또 무슨 취재를 본답디까? " "여러 가지로 취재를

본답디다. 벙어리 놀음도 시켜보고 점쟁이 노룻도 시켜본답디다. " "벙어리 놀음

은 무어구 점쟁이 노릇은 무어요? “ "그건 우리도 잘 모르우. " "무슨 놈의 사

위를 그 따위루 야단스럽게 고른담. " 손가의 말을 주인은 "야단스럽다구두 하겠

지요. 그렇지만 딸은 참말 일색이라우. " 하고 대답하였다. "색시가 몇 살이나 되

었소? ” "올에 아마 스물서넛 되었을 것이오. " "과년한 색시구려. " "취재가 까

다로워서 사윗감이 없으니까 절루 과년될 수밖에 더 있소. 색시 열댓 살 적부터

사위 취재 보인단 소문이 났었는데 이 삼 년 동안은 그 집의 문이 메이두룩 취

재 보이러 오는 사람이 들여밀리더니 요지막 몇 해째는 일 년에 몇 사람밖에 아

니 온답디다. 색시 아버지란 사람이 고집퉁이를 고치지 아니하면 아까운 색시를

겉늙히기가 첩경 쉬울 겁니다. " 그 동안에 한 양푼 술이 다 끝나서 둘러앉았던

사람들이 따로 따로 물러들 앉은 뒤에 주인이 천왕동이를 향하여 "우리 한판 더

두어 보까. " 하고 장기판을 끌어다가 앞에 놓으니 천왕동이가 손가를 가리키며

"저이하구 한번 두어 보우. " 하고 장기판을 손가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한번

두어 주시겠소? " "총각하구 다시 두시우. " "재미는 없으실 테지만 한판 가르쳐

주시우. " 손가는 웃는 천왕동이에게 눈을 흘기는데 유복이가 손가 장기는 실상

하잘것없다고 토파하여 주인이 두잔 말을 더 하지 않고 뒤로 물러앉은 뒤 유복

이가 백씨 집 이야기를 차근차근 물어보았다. "백씨의 집안 형편은 어떻소? " "

어떻다니 잘 지내지요. 조업이 없더래두 질청의 엄지가락이 우리네같이 모양없

이 지내겠소. " "백이방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소? " "오십이 넘었겠지요. 그 나

이는 나두 잘 모르겠소. " "자녀가 몇 남맨가요? “ "무남독녀 외딸이라우. 그래

서 사윗감을 취재까지 보게 된 모양이지요. " "사위 취재를 본다는 것이 나는 모

를 소리요. 사윗감의 가문이라든지 인물이라든지 볼 것은 다 안 보구 장기 잘

두고 또 무슨 다른 장난 잘하는 걸 구한다니 그게 어디 성한 사람의 일이라구

할 수 있소. " "하두 딸을 잘 두어서 아무놈이나 내주기 싫으니까 그렇게 취재

볼 생각이 났나 봅디다. " "취재를 보더래도 취재볼 걸 봐야 하지 않소. " 유복

이는 속으로 꺽정이를 생각하며 "힘센 장사를 구한다든지 토는 칼 잘 쓰는 검객

을 구한다든지. " 유복이는 다시 봉학이를 생각하며 "활 잘 쏘는 한량을 구한다

든지 그래야 취재 본다는 말이 되지 않소. " 주막 주인이 취재 볼 것을 정한 것

처럼 시비조로 말하다가 유복이가 스스로 깨닫고 "우리에게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두 우습지 않소? " 하고 웃으니 주인은 고개를 흔들면서 "그건 속모르는

말씀이오. 그가 어디 장사나 한량을 구할세 말 이지요. 이인 사위를 구한다우. "

백씨 위해 발명하듯 말하고 이인 말에 유복이가 칠장사의 선생과 병 고쳐준

노인을 생각하며 "이인이면 노인에게라두 딸을 내줄 텐가요? " 하고 물으니

주인은 "취재 보인 담에 노인이라구 딸을 안 준단 말은 못하겠지요. "

어리뻥뻥하게 대답하였다. "이인을 사위루 구한다고 칩시다. 그래 장기 잘 두는

것이 이인이란 말이오? " "장기는 자기가 잘 두니까 한몫 넣었겠지만

그 외에 취재 보는 것이 이인의 재주가 아니면 할 수 없답디다. 고대

장난이라구 말씀합디다만 예사 장난 같으면 근 십 년 동안에 팔도 사람이 몇백

명이 와서, 몇백 명이 다 무어야 몇천 명이 와서 모조리 다 뒤통수를 치구 갔겠

소. " "무슨 취재가 그렇게 어렵단 말이오. 아까 나는 무슨 장난을 시켜본다는

줄루 들었소. " 천왕동이가 유복이의 말 뒤를 이어서 "벙어리 놀음을 시켜보구

또 점쟁이 노릇을 시켜본다니 그것이 다 어떻게 하는 것이오? " 하고 물으니 주

인이 잠깐 천왕동이를 돌아보며 "총각이 유심히 묻는 것이 의사가 있구먼. " 하

고 웃고 다시 유복이를 향하고 말하였다. "무슨 취재를 어떻게 보는지 그건 우리

두 잘 모르우. 말들이 벙어리 놀음을 시켜본다는 등 점쟁이 노릇을 시켜본다는

등 합디다. 하여튼지 사흘 동안 취재를 보이는데 거의 다 첫날에 낙제랍디다. 이

틀 간 사람두 몇 못 된다니까 사흘까지 다간 사람은 더 말할 것두 없지요. 작년

까지 하난가 둘이 있었답디다. " "사위 취재가 그렇게 어려워서야 그 딸이 어디

시집가 보겠소. " "그래서 이방의 마누라는 취재구 무어구 다 고만두라구 남편에

게 성화를 바친답디다. " "안해가 성화를 바쳐두 듣지 않나요? " "그러먼요, 그

마누라가 딸을 데리구 부엉바위 용추에 가서 빠져 죽는다구까지 야단을 쳐두 듣

지 않는다우. " "그 사람이 옹고집인가 보구려. " "그가 고집두 센 바람이지만 당

초에 사위 취재를 정할 때 부엉바위 용추 위에 있는 당집에 가서 백일간 치성드

리구 정했답디다. 그래서 천이 천 소리 하고 만이 만 소리 해두 소용없는 갑디

다. "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아니하고 해는 이미 저물어서 동편 하늘에 석양이

비치고 길 옆 나무에 잘 새가 날아들었다. 주막 앞으로 오고가는 사람들은 방안

을 삐끔삐끔 들여다보고 그대로들 지나갔다. "이야기에 재미를 들여서 너무 오래

앉았었소. " 유복이가 가지고 온 두 자 상목으로 먼저 먹은 술값을 셈한 뒤에 천

왕동이와 손가를 데리고 미역주막에서 나왔다. 유숙하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복이가 천왕동이에게 "백가의 집 사위 취재를 더 좀 알아보구 읍내를 가는 게

좋으니 내일은 고만두세. " 하고 말하니 천왕동이는 말없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가 나중에 "그걸 알아보더래두 읍내 가서 알아보는 게 좋지 않겠소. " 하고 대답

하였다. "글쎄 그것두 그래. 그럼 내일 같이 갈까? " "나 혼자 가서 알아보구 나

오리다. " "자네가 묻구 다니면 남들이 웃지 않겠나. " "누가 취재 보이러 간다구

하구 묻소? " "하여튼지 자네가 물어보긴 좀 계면쩍을 겔세, 나하구 같이 가서

알아보세. " "아무리나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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