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숙하는 집에 와서 저녁밥들을 먹을 때 유복이가 백가의 집 사위 고르는 이야기를
오가 마누라에게 들려주니 오가 마누라는 대번에 "딸을 얼마나 잘 두었기에
사위를 그렇게 굉장하게 고른담. 내가 읍내 가거든 한번 가보아야지. " 하고 말하였다.
"색시야 출중하겠지만 선 한번 보는 것도 좋지요. " "선이라니 누가 그 색시에게. "
오가의 마누라가 말을 하다가 중동을 무이고 갑자기 말끝을 바꾸어서
"옳지, 황도령이 생각이 있군. " 하고 상글상글 웃으면서 천왕동이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장기를 두어보러 간다구는 했지만 취재 보이러
간다구는 한 일이 없소. " 천왕동이가 발명하는 것을 듣고 유복이가 "발명할 게
무엇 있나. 이쁜 색시에게 장가들면 좋지. " 하고 말하였다. "그걸 누가 싫다우.
공연한 창피를 사서 당하기가 싫으니까 말이지. “ "창피를 당하거나 수가 터지
거나 한번 장난삼아서래두 가보는게지. ” "장기만 가지구 취재를 보인다면 창피
를 당할 제 당하더래두 한 번 가보겠소. 그렇지만 내가 벙어리두 아니구 점쟁이
두 아닌데 꼬락서니 흉한 일이나 당하구 보면 웃음거리가 될 것 아니오. 더구나
애기 어머니가 알기나 하면 생전 두구두구 놀릴 것이오. " "자네가 무슨 일에든
지 우리버덤 냅뜰 힘이 많은 줄 알았더니 뒤를 여간 사리는 사람이 아닐세그려.
" "냅뜰 힘이 많은 사람이면 벌써 장가두 들구 누님 집에서두 나왔을 게요. “
"자네 남매가 백두산에서 나올 때는 길 안 든 생마들 같았더라는
데 그 동안 결을 삭이느라구 고생들 많이 했을 테지. " "우리 남매가 백두산 속
에서 자랄 때는 둘이 다 생기 덩어리루 자랐는데 그 생기가 연년이 줄어서 지금
은 시르죽은 이같이 되었소. 누님은 나버덤두 더하니까 보기 참혹할 때
두 많소. " 이야기가 달리 나가게 된 것을 유복이가 도로 거둬들이려고 "자네 내
일 읍내를 안 갈 텐가? " 하고 물으니 "같이 가자구 하더니 그 동안에 갈 생각
이 없어졌소? " 하고 천왕동이가 되물었다. "아닐세. 자네가 잘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 말일세. " "같이 가자구 하구 안갈 리 있소. " 유복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즈음에 오가 마누라가 먼저 "나더러 선을 보라더니 선도 보기 전에 벌써 사
위 취재에 갈 테야? " 하고 물어서 유복이가 "아니요, 사위 취재를 어떻게 하나
좀더 자세히 알아보러 가잔 말이오. " 하고 대답하였다. "내가 색시 선보러 가서
그 집 사람에게 물어보면 다 알구 올 텐데 먼저 가서 물어볼 거 무어 있어? "
오가 마누라 말에 "그렇지, 따루 갈 것 없소. 사흘 뒤에 같이들 갑시다. " 손가가
붙좇아 말하는 것을 듣고 유복이가 "그래두 좋겠네. " 하고 천왕동이를 돌아보니
천왕동이는 ”장기를 두러 가지 않을 바엔 내일 안 가두 좋으니 생각대루 하우.
" 하고 먼저와 같이 혼자 간다고 고집세우지 아니하였다.
백씨 집 사위 취재 이야기는 영천 근방 촌구석에도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
나 미역 주막쟁이만큼 자세히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천왕동이가 사위 취재
에 갈까말까 속으로 무한 주저하다가 읍 내 가서 더 좀 자세히 안 뒤에 작정하
리라 마음을 먹고 사흘 동안 해를 지리하게 보내었다. 영천서 읍내로 들어오던
날 객주 잡고 들어앉으며 곧 천왕동이가 오가 마누라를 보고 "오늘 가보실라우?
" 하고 물으니 오가 마누라가 "퍽도 급한가베. " 하고 웃고 나서 "점심 먹고 가
보까. " 하고 의논성 있는 말로 대답하였다. "오늘은 읍내 돌아다니며 구경이나
합시다. " 손가가 말하고 "구경은 나중 하구 색시 먼저 가보구 오시구려. " 유복
이가 말하는데 오가의 마누라는 "색시 보러 가란 사람이 많으니까 많은 데로 좇
을밖에. " 하고 천왕동이를 바라보며 상글상글 웃었다.
점심때 지난 뒤에 오가 마누라가 쇠전거리 위에 있는 백이방의 집을 찾아왔
다. 바깥 삽작을 들어서니 바깥방이요, 옆을 지나 들어가니 안마당이다. 아랫도
리 일하는 여편네들이 중긋중긋 서서 바라보는 중에 오가의 마누라가 치맛자락
을 휩싸잡고 마루 앞으로 걸어 들어갔다. 열어놓은 안방 머리맡 되창 안에 늙수
그레한 여편네가 하나 앉아 있는데 묻지 않아도 주인마누라인 것을 알 수 있었
다. 오가 마누라가 "아이구 다리야. " 하고 마루 끝에 걸터앉으며 "댁이 퍽 크고
좋구먼요. " 하고 집 칭찬으로 말을 붙이니 주인마누라가 내다보며 "어디서 왔
소? " 하고 상가럽게 물었다. "송도서 왔어요. " "성포서 왔어요? " "아니요, 경
기도 송도서 왔어요. " "녜, 송도요. 송도가 여기서 퍽 멀지요. " "이백 삼십 리랍
디다. " "먼길에 어째 왔소? " "약물 먹으러 왔어요. " "영천 약물 말이겠지요.
타관 사람들은 영천으로 많이 오지만 여기 사람은 약물을 먹으려면 흔히 약수산
으로 갑니다. " "약수산 약물이 영천 약물보담 더 좋은가요? " "나는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말들이 좋다고 합디다. 그런데 우리 집은 어째 찾았소? " "따님
이 있다지요? " “있어요. " "따님을 하도 잘 두셨다기에 한번 보러 왔소. " "그
렇소? 그럼 잠깐 올라앉구려. " 오가 마누라가 마루에 올라앉으며 곧 주인마누라
도 방에서 나왔다. 오가 마누라가 처음부터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색시가 눈에
보이지 아니하여 색시를 숨겨 두고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가까지 의심하였더니
주인마누라가 마루에 나와 앉은 뒤에 닫힌 건넌방 지
겟문을 바라보며 "옥련아! " 하고 불렀다. 건넌방 지겟문이 열리며 색시가 나왔
다. 그 어머니가 "이리 좀 와 앉아라. " 하고 말하니 색시는 말없이 어머니 옆에
가까이 와서 앉았다. 오가 마누라는 눈앞이 별안간 환하여지는 것 같았다. 잠깐
동안 정신 놓고 앉았다가 눈 어둔 사람같이 눈을 씻으며 색시를 바라보았다. 얼
굴 바탕이 둥근가 하고 보니 갸름한 듯도 싶고 갸름한가 하고 보니 둥근 듯도
싶어서 어떻다고 말하기가 어려운데 맑은 눈은 수정 같고 오똑한 코는 그림 같
고 나브족한 입에 입술은 앵두빛 같고 도톰한 귀에 귓속은 호두껍데기 같다. 살
빛은 눈이요, 살결은 비단이다. 잇다홍 무명적삼에 갈매 무명치마를 입었는데
매무새까지도 얌전하다. 오가 마누라가 염치없이 파고 보는데 색시는 면괴한 듯
고개를 다소곳하였다. "내 딸이 어떻소? " "내가 사내 못 된 게 한이오. " "사내
면 저 나이에 장가들겠소? “ "따님이 올에 몇 살이오? " "스물두 살이오. " "사
위 취재를 보신다지요? " "그렇다오. " "취재는 무엇을 보시나요? " 오가 마누라
의 묻는 말을 주인마누라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백이방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
방은 관가에서 늦게 나와 점심 먹으러 들어온 것이었다. 주인마누라가
점심상을 차리는 것을 보고 오가 마누라는 더 앉았기 거북하여 간다고
일어섰다. 오가 마누라가 객주에 와서 보니 천왕동이와 유복이는 바깥
큰방에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앉았고 손가는 눈에 보
이지 아니하였다. 오가 마누라가 바로 안으로 들어가며 "나 다녀왔어. " 하고 소
리치니 천왕동이가 먼저 방에서 뛰어따와 따라오며 "색시가 어떻습디까? " 하고
물었다. 오가 마누라가 실없이 천왕동이를 속이려고 "색시가 그저 그래. " 하고
눈에 차지 않던 것같이 말하니 천왕동이는 곧 "이쁘다는 게 거짓말입디까? " 하
고 다그쳐 물었다. "그저 그렇다니까. " "그저 그렇다구만 해서야 어디 알 수 있
소. “ 유복이가 그 동안에 쫓아왔다. "나는 한참 될 줄 알았는데 어째 그리 속
히 오셨소. 색시를 안보입디까? ” "아니 일부러 불러 보여주던데. " "그럼 색시
만 보구 곧 오셨구려. " "그랬어. " "색시가 참말 이쁩디까? " 유복이 묻는 말에
는 오가 마누라가 실없이 대답하기 어려워서 고개를 끄덕이고 "지금 황도령이
몸이 달아서 묻는 중이야. “ 하고 천왕동이를 보며 웃었다. "나두 궁금하우. 좀
자세히 이야기하시우. ”"우리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세. " 하고 오가 마누라가
사처 잡은 방으로 들어오는데 유복이와 천왕동이가 그 뒤를 따라들어왔다. 오가
마누라가 먼저 "손서방은 어디 갔나? “ 하고 유복이더러 물었다. "읍내 구경 나
갔소. " "혼자 갔어? " "같이 가자구 조르는 걸 우리는 오시면 이야기 들으려구
같이 가지 않았소. 어서 이야기 좀 하시우. " 유복이의 재촉을 받고 오가 마누
라는 색시 보고 온 이야기를 자세히 하고 "내 평생에 이쁜 사람도 더러 보았지
만 정말 이쁜 사람은 이번에 처음 보았어. 아무리 유명한 환쟁이를 불러대도 이
색시의 이쁜 모양은 그려내기 어려울걸. 이쁘면 요변스럽기 쉽지만 어찌 그리
천연한지 누구든지 이런 딸을 둔 사람은 아무 놈이나 내주고 싶지 않을 것이야.
" 하고 입에 침이 없이 .색시를 창찬하였다. 유복이가 천왕동이를 돌아보며 "아
까 주인의 말대루 하면 사위 취재의 끝날이 좀 어려을 것 같으나 자네가 이쁜
안해를 얻을 복이 있으면 맞혀내지 못하더래두 사위로 뽑힐는지 누가 아나, 불
계하구 내일부터 가보게. " 하고 권하니 천왕동이는 "어디 끝날뿐입디까. 첫날두
어렵지. " 하고 대답하였다. "사위 취재의 첫날은 무어고 끝날은 무어야? 뉘게
물어봤어? ” 하고 오가 마누라가 유복이에게 물었다. "이 집 주인에게 물어봤
소. 대개가 듣던 말과 같습디다. " "참말 벙어리 놀음이니 무어니를 시켜 본다던
가? " "그렇답디다. 사위 취재를 사흘 동안 보는데 첫날은 이방과 마주 앉아서
손으루 갖은 시늉을 내서 서루 의사를 통하는 것인데 말을 해선 못 쓰구, 다음
날은 장기를 두는 것인데 이방을 이겨야 쓰구, 끝날은 이방이 남몰래 궤짝 속에
넣어둔 물건을 알아내는 것이 랍디다. " "취재가 가지가지 괴상야릇하긴 하구
먼. 그렇지만 색시 이쁜 걸 생각하면 취재가 더 어려워도 좋을 것이야. " 오가
마누라의 말을 유복이가 대답하기 전에 천왕동이가 "그럼 저의 집에서 늙혀 죽
이는 게 수지요. " 말하고 곧 유복이더러 "내가 취재 보러 가서 요행으루 사흘까
지 다 가게 된다면 그 동안 어떻게 할라우. 먼저들 갈라우? " 하고 물어서 유복
이가 "그건 걱정 말게. 그 동안 우리는 구경 다니겠네. " 하고 대답하니 "우세밖
에 더하겠소. 한번 가볼라우. " 하고 천왕동이가 사위 취재에 갈 뜻을 말하였다.
오가 마누라가 갔다온 뒤 백이방의 집에서는 북새가 한바탕 크게 났다. 처음에
는 "지금 왔다간 여편네가 누구야? “ "송도서 온 사람이라오. " "송도 여편네가
우리 집에를 왜 왔어? ” “옥련이 보러 왔다오. " 이방 내외가 예사로 묻고 예
사로 대답하다가 "옥련이는 아무가 와 보자든지 보여주나? " "보여주면 어떻소?
" "보여주면 어떻다니, 과년한 기집애를 아무나 보여주어? ” "과년한 기집애라
고 못 보여줄 것 무어 있소. " "중놈이 와보구 업어가두 좋구 도둑놈이 와보구
뺏어가두 좋단말이야. " "집에서 늙혀 죽일 기집애를 업어가면 어떻고 뺏어가면
어떻소? 아무래도 좋지. " 내외간에 오고가는 말이 차차로 거칠어져서 나중에는
"저거 미치지 않았나. " "누가 미쳐? " "말대답 마라! " "입 두구 왜 말두 못해!
" "주책머리 없이. " "내가 주책이 없어서 딸을 색시로 늙히나베. " 이방이 언성
을 높이고 이방의 안해도 지지 아니하였다. 아비의 점심 먹는 것을 보려고 마루
에 나왔던 옥련이는 부모의 말다툼이 저 까닭에 나는 것을 보고 돌아앉아서 눈
물을 똑똑 떨어뜨리었다. 이방이 받았던 점심상을 밀어 내치고 벌떡 일어서서
사랑으로 나가는 길에 그 안해를 한번 발길로 걷어찼다. 이방의 안해가 대번에
남편의 옷을 움켜잡고 "속시원하게 아주 죽여! 나 죽으면 젊은 술장사년
데려다가 살림을 맡길 테지. 어서 죽여! " 하고 대들었다.
이방이 안해의 손을 뿌리치다 못하여 안해의 팔을 후려쳤다. 그 안해가 "
잘친다 잘쳐! 뉘 망신인가 어디 보까. " 하고 이방에게 매어달리는 중에 얹은머
리가 풀어졌다. 화가 꼭뒤까지 난 이방이 체면도 생각지 못하고 안해의 머리채
를 잡고 내둘렀다. 이방의 안해는 독이 나서 "죽여 죽여! " 하며 바락바락 대어
들고 이방은 눈이 뒤집혀서 "이년, 이년! " 하며 사정없이 두들겼다. 옥련이가 울
면서 "아버지, 이게 무슨 망령이세요. " "어머니, 고만두셔요. " 하고 중간에 들어
가 끼어서 싸우는 부모를 간신히 떼어놓았다. 이방은 바깥방에 나오며 곧 옷을
갈아입고 다시 질청으로 들어갔다. 질청에 있던 다른 아전들이 이방의 기색이
좋지 못한 것을 보고 서로 눈짓하며 조심들 하는 중에 사령 하나와 관노 하나가
일수가 사납든지 질청 앞 회화나무 밑에서 고누를 두다가 사령이 실수하고 물러
달라는 것을 관노가 물러주지 아씨하여 물러달라거니 물러주지 않는다거니 다투다가
종내 시비가 되어서 서로 욕질을 하는데 떠드는 소리가 질청 안에까지 들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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