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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5권 (22)

카지모도 2023. 2. 3.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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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배돌석이

 

1

봉산읍에서 황주읍까지 칠십 리에 거의 오십 리는 산골길인데 중란에 동선령

이 있고 새남이 있으니 동선령은 봉산읍에서 삼십 리요, 새남은 황주읍에서 삼

십 리다. 새남 남쪽에서 서남쪽으로 벌려 있는 한철산과 발양산은 봉산 땅이요,

북쪽으로 더 들어가는 무인지경 산골은 황주땅이요, 동쪽에 있는 삼봉산과 서쪽

에 있는 정방산은 모두 두 골의 접경이다. 새남 근방에 호랑이 나다닌다는 소문

이 있던 중에 황주읍내 사람 하나가 봉산읍내 볼일 보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새남 아래서 대낮에 호환을 당하였다. 그 사람의 집에는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안

해가 있어서 이틀 사흘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다가 마침내 호환에 간 것을 알고

두 고부가 다같이 죽으려고 날뛰는 끝에 그 어머니는 상성이 다 되었다. 그 늙

은 여편네가 황주 관가에 들어가서 목사에게 자식 원수를 갚아달라고 애걸복걸

하였다. "늙은 것의 정경은 기긍하나 범에게 죽은 것을 어떻게 원수 갚는단 말이

냐. " "죽은 자식이 아비 없는 유복자올시다. 불쌍한 자식 원수나 갚아줘야겠습

니다. " "글쎄 유복자 아니라 유복자보다 더한 것이라도 갚을 수 없는 원수야 어

떻게 갚느냐. 사주 팔자로만 생각하고 고만두어라. " 목사의 타이르는 말을 늙은

여편네는 들은 체 아니하고 "제발 덕분에 자식의 원수를 갚아줍소사. " 하고 머리

를 땅에 끌어박듯이 숙이면서 두 손을 치어들고 빌었다. 목사가 한동안 미간을

찌푸리고 앉았다가 "이거 보아라, 징징거리지 말고 말 들어라! " 하고 소리지

르니 늙은 여편네는 머리를 들고 목사를 치어다보았다. "네 자식이 새남서 호환

을 당했다지? " "녜, 새남 아래 두이봉 가는 샛길에 찢어진 갓이 떨어져 있더랍

니다. " "그리고 보면 네 자식을 물어간 범이 봉산 범이 아니겠느냐? " "그건 모

르겠습니다. " "봉산땅에서 물어갔으니 봉산 범이겠지. " “녜. ” "범은 사람과

달라서 봉산서 황주로 잡아 넘길 수가 없다. 그러니 네가 봉산 관가에 가서 발

괄을 해보아라. "

황주목사는 약게 두통거리를 봉산군수에게로 밀어버렸다. 그 늙은 여편네가

황주 관가에서 나오는 길로 곧 봉산으로 달려오는데 늙은 여편네의 걸음이라 달

음질하다시피 하는 것이 하룻밤은 산길에서 드새고 다음날 다 저녁때에사 봉산

읍에를 대어왔다. 그날은 어느 큼직한 집에 들어가서 얻어먹고 밤을 지내고 이

튿날 식전에 관가를 찾아와서 곧 삼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문에 섰던 관노

들이 못 들어오게 밀막았다. "제발 좀 들어갑시다. 봉산 안전께 아들의 원수를

갚아달라러 왔소. " "무슨 원수란 말이오? " "봉산 호랭이가 내 아들을 물어갔

소. " 하고 늙은 여편네가 징징 울면서 부적부적 삼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관

노들이 가로막고 실랑이하여 늙은 여편네는 악을 쓰기 시작하였다. 관노들이 동

헌에 들릴까 겁이 나서 멀리 끌어내려고 하니 늙은 여편네는 곧 맨땅에 드러누

워서 몸부림을 치며 악을악을 썼다. 악쓰는 소리가 동헌에까지 들리어서 원이

통인을 불러 알아 보라고 분부하여 통인이 동헌마루에 나가서 급장이를 부르고

급장이가 동헌 댓돌에 서서 사령을 불렀다. 긴 대답소리가 끝나며 관노 하나가

샐샐 기어들어왔다가 얼마 뒤에 도로 나갔다. "안전이 잡아들이라시우. 어서 일

어나우. " 관노가 잡아 일으킬 사이도 없이 늙은 여편네는 툭툭 털고 일어

나서 관노에게 붙들려 들어왔다. 원이 동헌 방문을 열어젖히고 댓돌 밑에 꿇여

앉힌 늙은 여편네를 내려다보며 "기집사람이 식전에 관문 앞에 와서 악을 쓰다

니 그런 무엄한 일이 어디 있을꼬! " 하고 호령을 하는데 늙은 여편네는 조금도

겁없이 울며불며 사정을 하소연하였다. 봉산군수가 늙은 여편네의 모호한 말을

듣다가 "네 자식이 새남서 호환에 갔단 말이냐? “ 하고 물으니 늙은 여편네는

”봉산 호랭이가 자식을 물어갔습니다. 그 호랭이를 잡아서 원수를 갚아주십시

오. " 봉산 호랑이란 말에 힘을 주어 대답하였다. "그 호랑이가 꼭 봉산 호랑인

줄은 어떻게 아느냐? " "저의 골 사또께서 일러주셨습니다. " "너의 골 사또는

용하시기도 하다. 그러면 너의 골 사또께 다시 가서 봉산 호랑이가 황주 호랑이

와 어떻게 다른가 여쭈어보고 필적으로 적어 줍시사고 해서 가지고 오너라. " "

늙은 것이 언제 다시 갔다옵니까. 사령을 하나 보내주십시오. " "그건 못하겠다.

" "원수를 안 갚아주시렵니까? " "황주 봉산에 호랑이가 한둘이 아닐 테니 호랑

이부터 분간해야 원수를 갚아주지 않겠느냐? " "봉산에 있는 호랭이들을 모조리

잡아죽여 주십시오. " "잔말 말고 어서 가서 호랑이 분간하는 법을 알아오너라.

“ 늙은 여편네는 봉산군수의 말을 원수 갚아주기 싫어서 미루는

말로 듣고 불쌍한 백성의 원통한 사정을 돌아보아 주지 않는다고 발악을 시작하

였다. 군수가 끌어내라 몰아내라 호령은 하지 않고 "관청에서 발악하면 죄 당하

는 줄 모르느냐? " 하고 얼러대었다. "죄 당하면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이 자

리에서 죽어도 좋습니다. 의지하고 살던 자식을 앞세우고 살고 싶지도 않고 살

수도 없습니다. 그 자식을 유복자로 낳아가지고 아비 없이 기르느라고 죽을 고

생 다했습니다. " 늙은 여편네의 발악이 변하여 넋두리하듯 지껄이는 말에 유복

자란 말이 군수 귀에 들어가자 군수는 새삼스럽게 상을 찡그리며 "네 죽은 자식

이 유복자란 말이냐? " 하고 대쳐 묻고 "녜, 유복자올시다. 자식이라곤 딸자식도

없고 그것 하나뿐이올시다. " 늙은 여편네의 대답하는 말을 듣고서는 갑자기 "

네 자식 물어간 호랑이를 꼭 잡아서 원수를 갚아줄 것이니 그리 알고 나가거라.

" 하고 말을 일렀다. 늙은 여편네가 치사하는 뜻으로 열 번, 스무 번 머리를 숙

이고 나서 일어서려고 하다가 다시 펄썩 주저앉아서 한 번 다리를 부둥켜 쥐니

군수가 뜰 아래 섰는 사령들을 내려다보며 "다리에 쥐가 나는 게다. 너희들이 좀

주물러 주어라. " 하고 분부하였다. 늙은 여편네가 한동안 다리를 주물리고 나서

사령을 붙들고 일어설 때 군수가 "인제 나으냐? " 하고 물었다. "녜, 낫습니다. "

"오늘 황주로 돌아갈 터이냐? " "안전께서 원수놈의 호랭이를 잡아주실 내까지

여기 있을 생각입니다. " "여기 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있느냐? “ "친척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 "그러면 네 자식은 뉘 집에를 왔었더냐? " "남의 심부

름을 왔었으니까 뉘 집에를 왔었든지 모릅니다. " "지금, 너는 어디 가서 묵을

작정이냐? " "얻어먹고 돌아다니겠습니다. " "그렇게 고생하느니 황주로 가거라.

호랑이를 잡으면 네게로 보내 주마. " "나가보아서 가든지 있든지 작정하겠습니

다. ” "좌우간 오늘은 여기서 묵겠구나. " “녜, 묵겠습니다. " "묵을 데가 없다

니 될 수 있느냐. 거기 잠깐 있거라. " 하고 곧 옆에 섰는 통인을 돌아보며 이방

을 부르라고 분부하였다. 긴 대답소리가 난 뒤에 한동안 있다가 이방 백가가 기

어들어왔다. 군수가 이방을 보고 늙은 여편네의 정경을 대강 말바고 나서 편히

묵을 만한 곳을 지시하여 주라고 분부하여 이방은 ”녜. “ 대답하고 늙은 여편

네를 데리고 나갔다.

동선령과 새남은 평안도 삼십이관 관원 행차가 다니는 길이요, 연경 삼천리

사신 왕래가 지나는 길이라 이 길에서 호환 난 것이 봉산군의 작은 일이 아니

다. 봉산군수는 호환 난 것을 알며 곧 읍촌의 사냥꾼들을 관가로 불러을려서 호

랑이를 잡도록 하라고 분부 하였었다. 관령을 받은 사냥꾼들이 동선령과 새남

사이를 뻔찔 돌아다닐 뿐 아니라 십리 동안에 목목이 덫을 해놓고 군데군데 함

정을 파놓았으나 육칠 일 동안에 개호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었다. 봉산군수

가 늙은 여편네에게 원수 갚아 줄 것을 허락하던 이튿날 식전 조사 끝에 이방에

게 말을 물었다. "그 어제 늙은 것을 어디서 재웠느냐? " "소인의 집에서 재웠습

니다. " "황주로 도루 간다더냐? “ "호랭이가 잡힐 때까지 안 가구 있겠다구 떼

를 쓰다시피 하옵디다. " "대체 호랑이 잡으란 것은 어떻게 된 셈이냐? ” "지금

잡으려구 애들을 쓴답니다. " "벌써 며칠이냐. 애들을 썼으면 이때까지 못 잡을

리 있느냐! 그대로 내버려 두어선 못쓰겠다. " "각별히 신칙을 하오리다. " "아니

다. 사냥꾼놈들만 맡겨둘 것 없다. " 군수는 곧 수교를 불러서 "건장한 장교를

열만 뽑아서 사냥꾼들을 데리고 호랑이를 잡게 하되 오늘부터 열흘 안으로 잡게

해라. 만일 열흘 한이 넘으면 사냥꾼과 장교는 고사하고 너부터 중책을 당할 것

이니 그리 알아라. " 하고 영을 내리고 또 군기고 감관을 불러서 "호랑이 사냥

가는 장교들에게 각각 군기를 내어주어라! " 하고 영을 내렸다. 관속들이 물러나

을 때 이방이 넌지시 수교를 보고 "내 사위는 뽑지 말게. " 하고 부탁하니 수교

는 “백두산 일등 사냥꾼을 빼놓구서 누구를 뽑습니까? " 하고 고개를 외쳤다. "

내 사위가 사냥꾼인지 아닌지 나두 모르는 걸 자네가 어떻게 아나? ” "자기 입

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알지요. 나뿐 아니라 지금 장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걸요. " "젊은 아이들의 흰소리를 어떻게 다 곧이듣나. " "그래두 아무 까닭없이

뽑지 않으면 장교들 사이에 뒷공론이 날 것입니다. " "그러면 병탈을 시킬까? “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 "자네에게 단단히 부탁하네. " "녜, 알았습니다. 그런

데 안전께서 황주서 온 여편네에게 자식의 원수를 갚아주신다구 허락하셨다지

요. " "그리하셨다네. 그 여편네를 지금 내 집에서 묵이네. " "말씀 들었습니다.

그 여편네가 미친 사람이라지요. " "외아들을 죽이구 상성이 되었나 본데, 좀 시

룽시룽하데. " "안전께서 처음에는 황주루 도루 보내시려구 하시다가 죽은 자식

이 유복자란 말을 들으시구 선뜻 허락을 하셨답디다. " "당신이 유복자라 달리

생각하신 모양이지. " "안전이 유복자신가요? " "그렇다네. " 이방과 수교가 수작

을 마친 뒤에 이방은 집으로 나가고 수교는 장청으로 들어갔다.

아침때가 지난 뒤에 수교가 장청에 앉아서 호랭이 사냥갈 장교들을 뽑는데 물

론은 백이방의 사위 황천왕동이가 첫손가락에 꼽히나 이방의 부탁을 받은 깐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부터 뽑고 나중에 와서 이면 수습으로 황천왕동이 하고 이름

은 부르면서도 병탈하기를 기다리었더니 천왕동이가 녜 하고 대답한 뒤에 다른

말이 없었다. 수교가 이방의 부탁을 무이기 어려워서 "자네가 무슨 병이 있다지?

" 하고 물으니 천왕동이는 "아니오. " 하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무슨 병이 있

다구 자네 장인이 말씀하시데그려. " "꾀병하구 호랭이 사냥 나가지 말라구 말씀

합디다. " 천왕동이 말에 동무 장교들은 웃느라고 허리들을 잡고 수교도 억지로

웃음을 참느라고 입을 빼물었다.

천왕동이가 사냥 나갈 장교 열 사람 수에 뽑힌 뒤에 나갈 동무들과 같이 한동

안은 장청에서 수교의 지휘를 받고 또다시 한동안은 군기고에 가서 군기들들 고

르고 한낮이 기운 뒤에 처가로 돌아 왔다. 이방이 안마루에 누워서 딸에게 다리

를 주물리다가 사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 앉았다. "배두 안 고프냐? " "왜

안 고파요. 점심 잡수셨지요? " “안 먹었다. " "어째 이때까지 점심을 안 잡수

셨세요? ” “너 기다리구 있었다. " "그럼 얼른 잡수시지요. " 천왕동이가 분분

히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왔다. ”호랭이 사냥은 어떻게 하기루 했느냐. 그예

병탈을 아니하구 왔느냐? “ "성한 사람이 병이 있다면 누가 곧이듣나요? 사람

이 찌만 떨어지지요. " "저런 사람 좀 봐. " "호랭이가 없으면 모를까 있기만 있

으면 열흘 안에 잡지요. " "호랭이를 못 잡으면 볼기 맞구 호랭이를 잘못 잡으면

위태하구 그런 데를 무어하러 부득부득 간단 말이냐. " 황주서 온 늙은 여편네가

부처에서 점심 한술을 얻어먹고 그대로 앉아서 동자하는 여편네에게 신세 이야

기를 늘어놓던 중에 마루에서 옹서간 수작하는 말을 귓결에 듣고 벌떡 일어나

쫓아나와서 이방에게 손가락질하며 "이놈아, 네가 나하구 무슨 원수냐? 내 자식

원수 갚아주러 간다는 양반을 왜 못 가게 말리느냐. " 하고 악을 썼다. 이방의

안해는 점심상을 보다 말고 소리질러 야단치고 천왕동이는 맨발로 쫓아내려가서

늙은 여편네의 뺨을 쳤다. "뉘게다 함부루 욕설이야! 미친 체하면 가만둘 줄 알

구. " "당신에게 욕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 같은 고마운 양반에게야 욕할 리가

있습니까? " "아갈머리를 짜개놓을까 부다. " 천왕동이가 또 늙은 여편네에게 손

을 대려고 할 때 "이애 성치 못한 늙은 것을 가랠 것이 없다. 고만두구 올라오너

라. " 하고 이방이 천왕동이를 불러올렸다. "가만히 국으루 있어야 자식 원수를

갚아줄 테야. " 천왕동이 말에 늙은 여편네는 ”녜, 녜, 당신 말씀대로 가만히 있

겠습니다. " 하고 대답한 뒤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동자하는 여편

네가 부엌문 앞에 나섰다가 "부엌엔 왜 또 들어올라고 그러우. 방으로 가우. "

하고 가로막아서 늙은 여편네는 자는 처소인 뜰아랫방으로 내려갔다. 옥련이가

남편 천왕동이에게 눈을 흘기면서 "공연히 호랭이 사냥 간다고 떠들다가 아버지

만 욕보시게 하니 그런 일이 어디 있담. " 하고 종알거리니 천왕동이가 옥련이를

돌아보며 "글쎄 나 까닭에 욕을 보셔서 이런 미안할 데가 없어. " 하고 사과하듯

말하였다. "자네가 욕하라고 시켰나. 자네 까닭이라고 안달할 거 무어 있나, 탓하

려면 일수 그른 탓이니 하지. " 이방의 안해가 말한 뒤에 이방은 허허 웃으면서

"그래 일수가 그르다. 이애 어서 점심이나 먹자. 이리루 다가앉아라. " 하고 말하

여 천왕동이가 앞으로 들어앉아서 장인과 같이 겸상하여 점심을 먹었다. "군기고

에 가서 무얼 골랐느냐? " "군기고에 들어가 보니까 창이 모두 녹이 났습니다.

그중에서 쓸 만한 것 한 자루 골라놨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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