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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13)

카지모도 2023. 3. 26.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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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물건들이 어디서 난 것들이냐?” “소인네 동생과 상종하는 양반님네들이 보내

신 것이올시다.” “소인네가 천한 백정이오나 소인네 아비는 이찬성 부인과 내

외종 남매간이옵고 소인네 시아비는 서울 재상님네와 친분이 있었삽고 소인네

동생도 여러 양반님네와 상종이 있삽는데 소인네는 다압지 못하오나 지금 함경

감사께도 친쫍게 다닌다고 하옵디다.” “함경감사가 누가란 말이냐?” “전라

감사와 경기감사를 지냅시고 함경감사로 나갑신 양반 말씀이올시다.” “백정의

자식으론 발이 대단 너르구나.” 하고 군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네 동생

은 어디를 갔느냐?” 하고 말을 고쳐 물었다. “임진별장 이봉학이란 자가 놀러

오라고 해서 가옵는 길에 황해도 봉산 사는 처남을 다리고 가온 까닭에 봉산까

지 갔다 올 듯 하외다.” “언제쯤 온다고 하고 갔느냐?” “과즉 한 열흘 된다

고 하고 갔소이다.”“네 동생이 운달산이나 청석골 화적들하고 상종하는 것을

보았느냐?” “소인네 동생이 온 뒤에 물어봅시면 알으실 테지만 소인네는 본일

이 없소이다.”

꺽정의 누이가 대답이 능란하여 대답을 듣는 군수는 말할 것도 없고 대답을

받아올리는 관속들도 다 속으로 놀래었다. 군수는 꺽정이 계집에게 봉욕하고

꼭뒤까지 났던 화가 꺽정의 누이의 문초받는 중에 많이 풀리었으나 아직도 화가

좀 남아서 “이 다음에 네 동생의 말이 네 말고 다르면 너는 장하에 죽을 줄 알

아라.” 하고 추상같이 호령한 뒤에 꺽정의 누이를 끌어내치고 꺽정의 동생을

잡아들였다. 절뚝발이 병신일망정 키는 엄부렁하게 큰 것이 어린아이같이 엉엉

울며 끌려들어왔다. 사령들이 쥐어지르니 고함치며 더 울고 군수가 호령하니 느

껴 가며 더 울어서 형틀에 올려 매놓기만 하고 문초를 받지 못하는 중에 울음을

잠깐 그치며 고개를 치어들고 “형님 나 죽소, 형님 살려 주우.” 하고 고개를

끄떡끄떡하였다. 팔삭동이는 공중대고 형에게 하는 말을 집장사령부터 동헌을

보고 원님에게 하는 말로 짐작하고 “이놈아, 무슨 소리냐?” 군수가 채쳐서 관

속들이 말을 받아올리니 군수는 형님이란 말을 이놈 저놈 소리보다도 더 봉욕으

로 생각하여 “그놈이 실성한 놈이다. 실성한 놈에게 말 물을 것 없다. 매를 쳐

라!”하고 호령을 내리었다. 얼뜬 위인이매 네댓 개에 까물쳐서 고개가 축 늘어

지니 군수가 이것을 보고 “그놈이 흉물을 쓴다. 더 쳐라.” 하고 호령하여 매

열 개를 채운 뒤에 끌어내치었는데, 까물친 것이 깨어나지 못하여 다 죽은 송장

과 같아서 사령들이 들어냈다. “이제 또 어떤 것이 남았느냐?” 하고 군수가

꺽정이 식구의 남은 사람을 물어서 “여남은 살 먹은 기집아이년이 하나 남았소

이다. 그것이 대답 똑똑히 하던 기집의 딸이랍네다.” 하고 형리가 애기 남아 았

는 것을 아뢰니 군수는 곧 “그 기집아이년을 마저 잡아들여라.” 하고 분부하

였다가 “그년 모녀를 함께 잡아들여라.” 하고 고쳐 분부하였다. 어미는 한옆에

앉히고 딸만 앞으로 내세우게 한 뒤에 군수가 내려다보며 “꺽정이가 네게 무었

이 되느냐?” 하고 물으니 애기는 발발 떨며 대답을 못하였다. “네 외삼촌이

냐?” “네.” “네 외삼촌의 집에 저기 놓인 물건이 어느 때 생겼느냐?” “빨

리 아뢰라.” 긴 대답소리에 나오던 말도 도로 들어가서 애기는 입만 옴질거리

었다. “고년도 맞아야겠다. 고년을 걷어 세우고 종아리를 쳐라.” 딸이 종아리

를 맞는 동안 어미는 머리를 땅에 부딪쳤다. 종아리에서 피가 난 뒤 군수가 매

를 그치게 하고 어미를 앞으로 잡아내서 꿇려놓고 “네 딸년을 네 눈앞에서 쳐

죽이기 전에 네년이 아는 대로 다 바로 아뢸테냐?” 하고 호령하니 “무엇이든

지 물읍시면 소인네 아는 대로 다 아뢰겠소이다.” 하고 꺽정의 누이가 대답하

였다. “저 물건들이 언제 생긴 것이냐?” “작년 설에 생긴 것도 있삽고 올 설

에 생긴 것도 있소이다.” “촛궤들은 언제 생긴 것이냐?” “그것도 작년 설과

올 설에 생긴 것이 올시다.” “그것이 함경감영에서 온 것이냐?” “어디서 온

것은 모르오나 서울서 왔다고 하옵디다.” “네 동생이 영부사댁에도 다닌다더

냐?” “그건 소인네가 압지 못합네다.” “네 동생이 화적질 다니는 것을 이웃

에서까지 다 아는데 네가 모른단 말이 될 말이냐!” “하늘이 내려다봅시지 소인

네 동생은 화적질 다닐 리가 만무하외다.” “네 집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은 누

구누구냐?” “소인네 집에는 혹간 오시는 손님 외에 일꾼 하나밖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소이다.” “그 일꾼은 어디 있느냐?” “오늘 식전에 죽산 칠장사에

옷 가지고 갔소이다.” “뉘 옷을 가지고 갔단 말이냐?” “소인네 시아비 옷이

올시다. 소인네 시아비가 칠장사에 중노릇을 하옵는데 죽산 근방에서 생불스님

이라고 한답네다.”

군수는 꺽정의 누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몇번 끄덕끄덕하였다. 이때 양주군수

는 죽산 안진사와 같이 칠장사에 놀러갔던 이참봉의 백씨라 칠장사 노장중이 경

력이 많고 도덕이 높은 것을 그 계씨에게 들어서 아는 터이었다. “너의 시아버

지가 나이 올에 얼마냐?” “여든다섯 살이옵니다.” “근력이 아직도 좋다느

냐?” “아직 큰병은 없는 줄로 아옵네다.” “네가 언제 보러 갔더냐?” “소

인네 모녀는 오지 말라고 해서 가지 못하옵고 소인네 동생이 자주 다니옵네다.

” “네 동생이 언제 갔다 왔느냐?” “작년 겨울에 갔다 오고 그 뒤엔 아비 병

까닭에 하루도 집을 떠나지 못했소이다.” “네 아비 병이 지금은 나온 모양이

냐?” “봄을 잡아들며 조금씩 나아서 지금은 세전에 대면 아주 다 나은 셈이외

다.” “작년 섣달에는 네 동생이 어디 나간 일이 없느냐?” “어디를 나갈 수

있었으면 선생을 안 보러 갔겠삽네까.” “선생이 누구냐?” “소인네 시아비가

소인네 동생의 선생이올시다.” “네 동생이 글자 하느냐?” “글은 못하옵네다.

” “좋은 선생에게 배웠다며 글을 못한단 말이냐?” “임진별장 이봉학이란 이

도 소인네 동생의 동접이온데 역시 글을 잘 못한다 하옵디다.” “네 동생이 너

의 시아버지 같은 도덕 있는 중의 제자라고 하면 불법한 짓은 안할 듯하나 저

물건들의 소종래가 종시 수상하고 또 촛궤에 쓰인 택호를 긁어버린 것이 적은

일일망정 대단 수상하니 네 동생이 와서 수상한 것을 명백히 하기까지 너희들은

다 같이 갇혀 있을 줄 알아라.” “소인네가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한마디 사뢸

말씀이 있소이다.” “무슨 말이냐?” “소인네 아비는 옥에 갇히는 날 옥에서

죽지 살지 못할 것이오니 놓아줍시고 저 기집아이년 하나만 같이 놓아줍셔서 미

음이라도 끓여먹이게 해주시면 소인네 남매가 죽은 뒤 풀을 맺어서라도 은혜를

갚사오리다.”

꺽정의 누이가 눈물 섞어 사정하니 군수는 별로 주저하지도 않고 “그건 그래

라.”하고 허락하였다. 애기 어머니 시누이 올케와 팔삭동이 숙질은 옥에 갇히게

되고 애기 조손만 집으로 놓여나왔는데 집이라고 난리쳐 간 뒤 같았다. 관속들

이 빈집을 그대로 두고 갔는지 양민들이 세간을 뿔뿔이 들어갔는지 눈 뜨이는

세간이 많이 없어졌었다. 병인이 매맞고 나온 뒤 이틀 동안 미음 한 모금 먹지

않고 앓는데 애기가 미음 그릇을 들고 지성스럽게 권하여도 눈도 떠보지 않을

때가 많았다. 눈감고 누운 병인은 목에서 나는 가르랑 소리가 죽지 않은 표이었

는데, 사흘 되는 날 아침에 애기가 병인의 방에 들어와 본즉 그 가르랑 소리가

없어져서 마음이 섬뜩한 것을 간신히 참고 병인 옆에 가까이 와서 “할아버지!

”하고 큰소리로 부르며 얼굴에 손을 대어 보니 차기가 곧 얼음 같았다.

“아이구머니!”하고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왔다. 애기가 혼자 울고불고

하다가 최서방 내외를 가서 보고 “할아버지가 죽었는지 모르겠으니 좀 와서 보

아주세요.”하고 사정하였더니 최서방은 “내 집에 왜 왔느냐! 가거라!”하고 소

리지르고 최서방의 안해는 “우리가 백정의 송장을 만질 사람이냐?”하고 소리

를 질러서 애기는 두말 못하고 울며 돌아섰다. 이튿날 낮에 죽산 갔던 신불출이

가 돌아와서 죽은 사람의 뻣뻣한 수족을 억지로 거두고 홑이불 폭으로 덮어놓은

뒤에 애기를 보고 “옥에 가서 말했느냐?”하고 물으니 애기가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까지 죽으라구 가서 말해요.”하고 대답하였다. “이웃집 최가 내외가

와 보더냐?” 애기가 고개를 흔들며 최서방 내외가 알던 정, 보던 정 없이 소리

질러 쫓은 이야기하니 “내가 지금 장터에서 이야기를 듣고 왔다. 이웃집 최가

가 밀고해서 이번 일이 났다더라. 내가 오늘 곧 떠나서 너의 아저씨를 찾아 뫼

시구 올 테니 그 동안 참구 지내라.”하고 애기에게 말을 이르고 신불출이는 곧

봉산으로 떠나갔다.

꺽정이가 황천왕동이와 같이 양주 집에서 떠난 뒤 첫날은 임진 이봉학이게 와

서 자고 다음날은 청석골 산속에 와서 잤다. 청석골 두령들이 황천왕동이를 위

하여 밤잔치를 차리어서 술들은 먹는 중에 박유복이의 안해가 저녁 먹은 것이

관격이 되어서 유복이는 말할 것 없고 오가까지 안에를 자주 드나들게 된 까닭

에 다른 두령이 있지만 재미가 없어서 꺽정이가 술을 많이 먹지 않고 상을 치우

게 하고 진상 봉물 뺏어온 이야기도 대강 듣고 말았다. 청석골서 떠나서 이틀에

봉산을 가고 봉산서 천왕동이 장인에게 붙들려서 가던 날까지 사흘 묵고 회정하

게 되었는데, 회로에는 청석골을 알과할 작정하고 오다가 공교히 탑고개에서 곽

오주를 만났다.

“유복이네 아주머니 일어났나?” “일어났소. 한두 군데 돌아보러 나왔더니

고만두구 형님하구 같이 들어가야겠소.” “자네는 자네 볼일 돌아보러 가게. 나

는 나대루 가겠네.” “큰 볼일 없소. 같이 들어갑시다.” “내가 이번은 그대루

지나가겠으니 여러 사람에게 가서 말이나 하게.” “나는 그런 말 하기 싫소. 형

님이 가서 말하구 가우.” “말하기 싫거든 고만두게.” “형님 그대루 가서 되

우? 여러 사람은 고만두구 내가 우선 섭섭하우. 이번에 들어가서 술이나 실컨

먹읍시다.” “내가 집에 가서 죽산길을 떠날 테니까 바루 가야겠네. 술은 이 다

음에 먹세.” “형님을 만났다가 그대루 놔보내구 들어가면 나는 여러 사람에게

지청구 받소. 잠깐이라두 들어갔다 가우.” 오주가 붙들고 놓지 않아서 꺽정이는

마지못하여 다시 청석골 산속에를 들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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