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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12)

카지모도 2023. 3. 24.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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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차차 더워 가면 옷 해놓은 건 어떻게 하나.”“옷 보내기가 급하면 신

서방더러 먼저 갖다 두고 오라지요.”“그렇지만 이왕 가려는 길을 자꾸 늦춰서

쓰겠나.”백손 어머니가 말대답하기 전에 천왕동이가 먼저 “내 길은 늦추라구

형님 길을 늦추지 말라우. 애기 어머니 차치구 포치구 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내가 내일 갈까 보우.”하고 웃으니 애기 어머니도 웃으면서 “귀양살이까지 하

구 지각 좀 났을 줄 알았더니 전이나 마찬가지로군.”하고 대꾸하였다. 이내 정

당한 말은 그치고 실없은 말이 나서 한동안 여럿이 함께 웃고 떠들다가 정밤중

에 돋는 달이 높이 올라온 뒤 비로소 잘 자리들을 보게 되었다.

이튿날 식전에 애기 어머니가 백손 어머니를 데리고 천왕동이의 옷 지을 것을

의논하였다. “바지 저고리 두루매기를 다 무명으로 지을까?”“내가 무얼 알아

요? 형님 생각대로 해주시지.”“애기 할아버지 바지짓고 남은 명주가 저구리

한 감 넉넉할 테니 저구리는 명주로 짓세.”“명주 저구리 좋지요.”“요전에 마

전한 무명이 여남은 자 남지 않았나.”“한 반 필 남았을 게요.”“그럼 두루매

기 한 감만 새로 마전하면 되겠네.”“안집들은 어떻게 하오?”“흔것으로 넣지.

”“애기 할아버지 두루매기도 안집이 만만치 않아서 애쓰시고 그러시오.”“팔

십 노인이니까 아직 홑두루매기가 이를 것 같아서 겹으로 지었지 젊은이들이야

누가 지금 겹두루매기를 입나.”“그러면 무명을 한 필만 마전하지요.”“두루매

기 한 거죽이니까 한 필 탐이나 들 것도 아니지만 이왕이면 필로 마전하세.”“

행전도 있고 버선도 있어야지요. 한필이 얼마나 남겠소.?”“아따 쓰는 대로 남

는 대로 남겨두세그려.”“그럼 다락에서 한 필을 끄내주시오.”“가만히 있게.

이따 아침 지난 뒤에 내가 골라서 끄내줌세.”

아침밥이 끝난 뒤에 애기 어머니가 다락에 들어가서 세목 한 필을 골라가지고

나와서 “여기 무명 내왔으니 어서 갖다 삶게.”하고 밖에 있는 백손 어머니더

러 말하는 것을 천왕동이가 듣고 “그게 내 옷 해줄 게요?”하고 물으니 애기

어머니는 “옷감이 맘에 드나 좀 보오.”하고 무명을 천왕동이 앞에 내밀었다.

“삶기는 왜 삶소?”“마전을 해야 옷을 짓지.”“그대루는 옷을 짓지 못하우?

”“상제 아닌 사람이 누가 깃것을 입어.”“지금 마전해서 오늘 해전에 옷을

짓게 될 수 있소?”“급하기라니 우물에 가서 숙랭을 찾겠네. 오늘은 삶아서 헹

구어서 말리고 내일은 다듬고 모레나 옷을 짓게 될까 아직 멀었으니 청처짐하게

잡고 깁시오.”“아이구, 그러면 나는 옷 못 입구 가겠소. 늦어두 내일 모레 안

으루는 떠나야겠으니 알아 해주시우.” “안될 걸 억지로 어떻게 하오?” “

깃것두 좋으니 마전 말구 그대루 해주시오.”

천왕동이가 나중에 애걸하다시피 청하여 애기 어머니는 아무쪼록 옷을 빨리

입게 하여 주마고 허락하고 백손 어머니더러 무명을 옳게 마전하지 말고 깃만

빼라고 말하였다. 백손 어머니가 두루마깃감을 깃을 빼는 동안에 애기 어머니는

전에 마전한 무명으로 바지를 지었다. 이날 저녁때, 바지 하나밖에 된 것 없는

것을 천왕둥이가 보고 밤에 일을 하여 내일 식전 입게 하여 달라고 부득부득 떼

를 써서 할길없이 명주 저고리는 이웃집 최서방 여편네의 손을 빌고, 두루마기

와 행전과 버선은 시누이 올케 어울려 짓고 허리띠와 대님은 애기가 접었다. 그

이튿날 늦은 아침때 옷 한 벌이 갖추 다되어서 천왕동이가 새옷을 갈아입은 뒤

에 임진 가서 잘 작정하고 떠나자고 꺽정이를 졸랐다. 꺽정이가 병든 아비를 들

어가 보고 천왕둥이를 봉산 처가에 데려다 주고 온다고 말하니 병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속히 다녀오라는 뜻으로 속히 속히 하고 두어 마디 얼버무려 말하였

다. 꺽정이가 네네 대답하고 나와서 애기 어머니더러 “ 내가 불과 열흘 안에

와서 죽산을 갈 테지만 선생님 옷은 먼저 불출이 시켜 보내두 좋소.” 말하고

바깥방에 있는 신불출이를 불러서 “칠장사에 옷 가져갈 것이 있으니 자네 좀

갖다 두구 오게.” 하고 이르기까지 하였다. 이날 점심 두에 꺽정이는 천왕동이

를 데리고 떠나갔다.

꺽정이의 이웃집 최서방은 희만이서 잘살다가 패가하고 읍으로 들어온 사람인

데 위인이 난봉이요, 또 게으름뱅이라 늙어 꼬부라진 어미와 올망졸망한 자식

삼남매를 굶겨죽이지 않는 것이 전수히 그 안해의 힘이었다. 그 안해는 사람이

번잡스러운 것이 병통이나 붙임성이 좋고 일이 시원칠칠하여 이 집 저 집에 일

을 해주고 음식도 얻어오고 곡식도 얻어와서 여섯 식구가 구차히나마 연명하고

지내는 처지이었다. 최서방 집에서 꺽정이 집 이웃간이라도 통 내왕이 없었으나,

꺽정이의 집 살림이 구차치 않은 것을 짐작한 뒤 최서방의 안해가 먼저 찾아와

서 애기 어머니와 백손 어머니를 보고 “이웃간에 왕래가 없어 쓰겠소. 이웃사

촌이라니 사촌처럼 정답게 지냅시다.” 하고 말을 붙이었었다. 다른 양민들은 백

정의 집이라고 돌리는데 최서방의 안해가 말만이라도 간격을 두지 않는 것이 여

편네들 마음에 대단 고마워서 쉽게 서로 친하였다. 해포 이웃하여 지내는 동안

에 꺽정이와 최서방만 사이가 서로 벋버듬하여 친하지 못할 뿐이고, 그 나머지

두 집 식구는 다들 친할 만큼 친하여서 최서방의 아들딸이 꺽정이의 집 조석 때

오면 애기가 불러서 대궁밥도 거두어 먹이고 꺽정이 동생 팔삭동이가 최서방의

집 어질더분한 때 가면 최서방의 안해가 구슬려서 비질도 시킬 만큼 무간하게

지내었다.

꺽정이가 천왕동이와 같이 떠나던 날 팔삭동이는 전에 없어 저도 형과 같이

훨훨 다니고 싶은 마음이 나서 다른 식구들이 다 집안으로 들어간 뒤까지 삽작

귀틀에 등을 기대고 멀거니 섰다가 나중에 최서방 집 삽작께 와서 기웃이 들여

다보았다. 최서방은 봉당에 자리쪽 깔고 번듯이 드러누웠고 최서방의 안해는 남

편 발치에 앉아서 어린 아들 머리의 이를 잡아주다가 팔삭동이를 바라보며 “왜

거기 섰나. 들어오게.” 하고 불러들었다. 팔삭동이가 들어와서 봉당 끝에 걸터

앉은 뒤 최서방의 안해가 “손님이 떠났지?” 하고 물으니 팔삭동이는 고개를

끄덕하였다. “손님이 새옷 입은 뒤에 보니까 외모가 깎은 서방님이데.” “외모

가 무어요?” “새옷 입었다구 얼굴이 달라지우?” “사람은 입성이 날개라네.

입성을 잘 입으면 얼굴이 돋보이다뿐인가.” “나두 날마다 새옷이나 달래 입을

까 보다.” “자네 옷이 얼마나 많기에 날마다 새옷을 입는다나.” “옷이 없으

면 새루 해달라지.” “자네 집에 피륙도 많은가베.” “피륙이 퍽 많소. 다락에

두 있구 광 속에두 있고.” “명주도 많은가?” “명주가 다무어요, 대국 비단두

있소.” “자네 집엔 별게 다 있네그려. 대국 비단은 어디서 생겼나?” “어디서

생긴 건 나두 모르우. 그런데 우리 집에 와서 내가 대국비단 말했다구 말 마우.

우리 누님이 남더러 말 말라구 합디다.”

이때 최서방의 큰아들 여덟 살 먹은 아이가 훌쩍훌쩍 울면서 밖에서 들어왔

다. “너 왜 우니? 어떤 놈하구 싸웠느냐?” 하고 그 어미가 물으니 “백손 어

머니가 머리를 이렇게 쥐어박았다우.” 하고 그 아이논 주어박던 시늉을 내었다.

“네가 가만히 있었으면 쥐어박힐라구.” “콩볶음이 조금 집어먹었더니 나더리

거지새끼라구 하구 막 쥐어박겠지.” 최서방이 벌떡 일어 앉으며 “어떤 년이

너더리 거지새끼라구 그래!” 하구 소리를 질러서 그 안해는 얼른 “백손 어머

니가 귀여해서 좀 쥐어박은 걸 이 못생긴 게 울고 온게지.” 하고 남편에게 눈

짓하였다. “창피한 것들하구 이웃해 살라니까 별꼴을 다 보겠네.” “이웃집선

잘사는데 우리 집에선 하두 못사니까 창피도 해요, 아니게아니라.” “농사두 않

구 장사두 않구 소두 안 잡구 잘살면 남에게 의심이나 사지.” “의심을 살때

사더라도 우리도 남같이 잘 살아봤으면 좋겠소.” 최서방은 팔삭동이의 이야기

를 돌쳐 생각하고 “백정의 집에 대국 비단 있는 것두 좋을 거 없어.” 하고 속

으로 슬그머니 모함잡을 마음을 먹었다.

이날 다 저녁때 양주 장교와 사령들이 꺽정이 집에 쏟아져나와서 집안 식구들

을 한옆에 몰아놓고 집뒤짐을 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꺽정이의 이웃집 최가가 양

주 관가에 들어가서 백정의 자식 꺽정이 집에 평양 진상 봉물이 있다고 밀고한

까닭이었다.

외방에서 진상이나 선사하는 물건이 다락에서 많이 나왔다. 주단이 여러 필이

요 피물이 여러 장이요, 초가 몇 궤요, 면주.반주주속과 세목.상목 목속은 다락뿐

이 아니라 광에서도 나왔고 공단수의, 북포 수의 수의 두 벌은 병인의 방에서 나

왔다. 장교들이 집안 세간을 샅샅이 다 뒤진 뒤에 사령들이 집안 식구들을 따로

따로 묶어 내세우는데 다 죽어가는 병인까지 끌어내니 애기 어머니가 보다 못

하여 담을 크게 먹고 “소인네 아비는 반신불수 병신으로 누워서 꼼짝을 못한

지가 여러 해올시다.저기 저 기집아이년하고, 집에 남겨두시고 소인네들만 잡아

가십시오.” 하고 사정을 하였더니 옆에 가까이 섰던 장교 하나가 대들어서 보

기 좋게 뺨을 한번 붙이며 “이년아, 무슨 잔말이냐!” 하고 윽박질렀다. 애기는

말할 것도 없고 병인의 입에서 아이구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을 무지스

러운 사령들은 엄살이라고 야단을 치면서 개새끼처럼 끌고 갔다. 양주군수(이때

는 목사가 아니다)가 임꺽정의 집에서 나온 물건들을 동헌 대청으로 올리라고

하여 낱낱이 친히 살펴보니 촛궤에 스인 택호는 모두 깎고 긁어버렸는데 그중에

영부사 택호는 흔적이 남아 있어서 아는 사람이 짐작으로 불 수 있었다. 군수가

곧 꺽정의 집 식구들을 차례로 잡아들여서 물건의 소종래와 꺽정이의 거처를 문

초 받는데 꺽정이의 아비는 형틀에 올려매기전에 다 죽은 송장이라 매를 몇 개

치지 않고 끌어내치고 꺽정의 아들은 매를 치기전에 물어도 “모릅니다.” 매를

치면서 물어도 “모릅니다.” 모릅니다 한마디 외에 다른 말이 없으므로 매를

한 차례 쳐서 끌어내치고 꺽정의 계집은 물볼기를 치려고 사령들이 옷을 벗길

때 “이놈들아, 여편네 찬 걸레를 핥아먹으라는냐, 왜 옷을 벗기느냐!” 하고 사

령들을 욕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군수까지 치어다보며 이놈 저놈 하여 군수

가 화가 나서 말도 묻지 않고 물볼기만 되우쳐서 끌어내치고 그 다음에 꺽정이

누이를 잡아들여서 엎어놓고 군사가 “이년, 너는 아는 대로 아뢸 테냐?” 하고

호령하여 관속들이 호령을 받아내리고 “소인네 아는 것이야 존전에 어찌 기망

하올 길이 있소리까.” 하고 대답하여 관속들이 다시 대답을 받아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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