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비장은 엉겹결에 일어 앉고 장교들은 앞을 다투어 들어왔다. 김양달을 여
러 손으로 떠받들어 반듯이 눕힌 뒤에 목에 박힌 칼을 뽑아주는데 선지피가 내
뿜듯 나와서 칼을 뽑던 장교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나오는 피를 막으려
고 머릿수건을 목을 친친 감아주었더니 눈을 꽉 감은 김양달의 목에 감긴 수건
을 잡아 뜯으며 머리를 흔들다가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둘러보며 “나는 죽기
다짐 두구 왔다. 그래서 죽는다. 처자식은 사또께......”말하다가 말끝을 못 마치
고 입을 다물었다. 예방비장이 그제사 앞으로 가까이 앉으며 “김여맹 이게 무
슨 짓인가. 여보게 정신 차리구 내 말 좀 듣게. 내가 말을 과히 했네. 용서하게,
김여맹”하고 지껄였으나 김양달은 흰자 눈을 부릅뜨고 있을 뿐이었다. 김양달
의 코에 숨이 그치고 김양달의 팔에 맥이 걷히였다. 진서위의 유명한 장사 김양
달이 이와 같이 허무하게 자문하여 죽었다. 김양달이 죽은 뒤에 얼마 아니 있다
가 밤이 새었다. 예방비장과 장교들은 밤을 반짝 새웠으나 화적의 뒤는 수탐해
보지도 못하였다. 이튿날 식전에 예방비장이 금교찰방을 찾아보고 또 강음현에
까지 들어가서 현감을 보고 전후 사정을 말한 뒤 화적패의 종적을 속히 알도록
염탐하여 달라고 부탁하고, 김양달 치상하여 갈 부비를 취대하여 달라고 청하니
현감이 두말 않고 허락하였다. 진상 봉물을 경내에서 도적맞은 것이 큰일이라,
강음 현감이 금교에 나와 앉고 금교찰방이 객주에 나와 보고 탈미골 군영에서
군관이 군사를 데리고 내려와서 화적의 종적을 사방으로 수탐하였다. 예방비장
과 같이 잡혀간 늙은 행인이 돌아오면 화적의 종적을 자세히 알까 하고 기다리
었으나, 잡혀간 늙은 행인은 고사하고 동행을 찾으러 간 다른 행인들까지 돌아
오지 아니하였다. 이틀 동안에 치상이 대강 끝나서 금교서 전후 사흘을 묵고 평
양으로 회정하였다.
김양달의 상여는 마주잡인데 짐꾼, 말꾼 들이 번갈아서 상여를 메었다. 상여
앞에는 예방비장이 부담을 타고 가니 부담은 짚부담이요, 상여 뒤에는 말들이
가니 말들은 빈 말들이었다. 일행이 금교서 떠난 지 사흘 되는 날 식전에 평양
에 도달하였는데 예방비장도 바로 감사를 들어가 보지 못하고 장교들을 데리고
포정문 밖에 대죄하였다. 감사가 이것을 알고 펄펄 뛰며 예방비장 이하 여러 사
람을 선화당 마당에 잡아들여서 죄인같이 문초를 받았다. 예방비장과 장교들은
아무쪼록 자기들의 허물을 적게 하려고 입을 모아가지고 죽은 김양달이 잘못이
많은 양으로 말하였으나 감사는 “너희나 양달이나 죄는 일반이다. 너희도 양달
이처럼 죽었으면 모르되 너희 죄를 그대로 용서할 수 없다.”하고 천둥같이 호
령하였다. 감사는 숙정패를 내걸게 하고 좌기하고 앉아서 예방비장과 장교 다섯
사람을 장령 어긴 죄목으로 효수한다고 엄포하여 여러 사람의 혼을 다 빼어놓은
뒤에, 예방비장은 서울로 쫓아버리고 장교들은 구실을 떼어버리고 김양달이만은
죽은 것이 불쌍하다고 그 처자를 구휼하여 주었다. 감사는 또 화적들을 잡아서
진상 봉물을 찾아달란 사연으로 황해감영에 이문을 부치고 서울 포청에 기별을
띄웠다.
평양 진상 봉물은 빼앗아간 화적이 청석골패요, 전후 꾀를 낸 사람이 서림인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서림이 이 꾀를 낼 때, 평양서 오는 일행이
평산서 숙소한 다음에 금교 와서 숙소하거든 금교서 빼앗고 송도를 숙소참 대거
든 평산서 빼앗자고 말하였건만, 말을 가장 잘 좇는 늙은 오가와 박유복이까지
다 금교 역말은 모르되 평산부중은 자리가 좋지 않다고 평산 가서 일하기를 즐
기지 아니하여 금교를 주장삼아 준비하고 만일 금교를 숙소 않고 지나가거든 차
라리 탑고개에서라도 빼앗아보자고 의논을 정하게 되었었다. 늙은 오가는 작은
두목 너댓 명을 데리고 평산가서 평양 일행을 장맞이하여 가지고 같이 오며 동
정을 살피기로 되었는데 오조천에서 앞서 오는 장교들과 동행한 행인들은 곧 늙
은 오가의 일행이요, 김양달이 성주받이를 오래 구경하지 않을 줄 짐작하고 아
주 멀찍이 끌어내려고 예방비장을 미끼로 붙들어갔는데 예방비장을 어린 아이같
이 다루던 사내는 길막봉이요, 봉물짐을 빼앗아갈 때 바깥방 문을 지키던 두령
은 곽오주요, 짐짝 들어내는 것을 지휘하던 두령은 배돌석이요, 안팎으로 드나들
며 총찰하던 두령은 박유복이니, 모두 평소에 쓰는 병장기는 가지지 아니하였었
고 또 숙소한 술집주인은 청석골의 이목 노릇하는 사람이요, 술집 뒷집은 청석
골서 술집 주인을 사준 집이요, 어물전 젊은 주인은 청석골과 기맥을 통하는 사
람이라, 술집 주인이 청석골 지휘를 받고 어물전 젊은 주인에게 말하여 집안 우
환을 핑계삼고 불시에 성주를 받게 하였었다. 금교역말서 평양 진상 봉물을 빼
앗아간 화적이 왕청된 운달산패보다도 가까운 청석골패가 아닐까 십분 의심하는
사람은 허다하였으나, 청석골 테 밖에 사람으로 참말 속내를 아는 사람은 하나
도 없었다. 평안감영 예방비장이 운달산 박대장패라고 들은 말을 강음현감에게
말하고서 운달산 소문이 퍼져나와 자자한 까닭에 서울 포도군관들과 황해감영
군관들이 금교와서 며칠씩 묵새기며 화적의 종적을 수탐하다가 소득이 없으면
반드시 평산으로 나갔다. 나중에 어명을 받은 선전관이 평산 와서 운달산 적정
을 탐문하고 해주 가서 황해감사에게 어명을 말하여 황해감사가 평산,연안,배천,
강음 네 골에 비감을 발송하였다. 평산부사와 연안부사와 배천현령과 강음현감
이 각각 군병을 조발하여 거느리고 운달산 아래 모여서 적굴을 들이치려고 하는
데, 화적의 괴수 박연중이 어떻게 먼저 알고 부하 이삼십 명을 흩어보내고 자기
도 도망하여 관군은 빈 소굴만 소탕하였다. 환갑이 가까운 박연중이 이십여 년
동안 웅거하여 온 소굴을 일조에 빼앗기게 된 것은, 속담에 애매한 두꺼비 돌에
치인 격이었다. 운달산 적굴에서 평양 진상 봉물의 형적도 보지 못하고 네 골
수령이 각기 환관한 뒤에 황해 감사가 연유를 비변사에 보하였더니 조정에서 다
시 개성유수에게 청석골 적굴을 소탕하라고 명하였다. 유수는 아무 계책도 없이
다만 경력에게 군사 몇십 명 주어 내보내고, 경력은 아무 역량도 없이 다만 군
사 몇십 명을 거느리고 청석골로 나갔다. 경력이 탑고개 동네에 결진하고 묵은
까닭에 청석골패는 경력 진중 대소 동정을 손 위에 놓고 보듯이 알고 한번 접전
에 관군을 함몰시킬 승산이 십분 있었지만, 대병이 뒤에 이를 염려가 있으니 접
전을 피하라고 서림이가 늙은 오가와 박유복이를 달래어서 다른 두령들은 누르
고 여러 졸개들을 거두어 나다니지 못하게 하였다. 경력이 십여 일 동안 군사를
놓아 탑고개 근방을 뒤졌으나 화적의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송도부중에 돌아와
서, 화적들은 멀리 도망하고 평양 진상 봉물은 형적도 보지 못하였다고 유수께
회보하였다. 유수가 경력의 회보대로 비변사에 보하였더니 조정에서는 평양 진
상 물목을 각도 각관에 보내고 물목 중의 물건을 감춘 집이나 또는 가진 사람을
고발하는 사람이 있으면 중상을 준다고 각 읍촌에 전령을 돌리게 하였다.
청석골 두령들은 평양서 오는 봉물짐을 송두리째 뺏어다 놓고 여덟 몫에 나누
어서 한 몫은 도중 소용으로 제치고 한 몫은 작은 두목들을 내주어서 나누게 하
고 그 나머지 여섯 몫은 여럿 두령이 한 몫씩 차지하였다. 서림이도 입당하여
두령 한 몫을 보게 되었었다. 이와 같이 도회청에 둘러앉아서 노늠몫을 할 때
야광주란 흰구슬은 도중 몫으로 들어가고 굵은 진주는 늙은 오가의 몫으로 돌아
갔는데 곽오주가 굵은 진주를 집어다가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더니 늙은 오가
더러 “이것을 무엇하실라우?”하고 물었다. “글쎄 무엇했으면 좋을지는 나도
모르겠네. 아직은 그대루 집어두구 보겠네.”“집어두느니 내 몫에 아무거나 하
고 바꿉시다.”“자네는 무어할라나?”“내 앞에 있는 아이놈 줄라우. 이까짓것
막상 보물이래야 어른은 가져서 아무짝에 소용없겠소.”곽오주 옆의 앉은 길막
봉이가 오주의 어깨를 툭 치며 “이번 아이놈은 대단 신통한 모양이군.”하고
웃으니 “사람을 툭툭 치지 않으면 말 못하나.”하고 오주는 눈을 흘기고 곽오
주 건너편에 앉은 배돌석이가 오주를 바라보며 “희한한 보물을 가질 사람이 없
어서 아이놈을 준단 말인가. 아이놈이 그걸 가지면 무어하나. 개발에 주석 편자
지.”하고 말하니 “제기, 남이 바꿈질하려는데 왜들 나서서 헤살을 놓소.”하고
오주는 상을 찌푸렸다. 늙은 오가가 웃으면서 “자네가 가지구 싶다면 혹시 바
꾸어 줄지 모르지만 아이놈 주라구는 바꾸어주지 못하겠네.”하고 말하니 곽오
주는 곧 “내가 가지구 싶소.”하고 싱글싱글 웃었다.“참말인가?”“참말이오.
”“만일 아이놈을 갖다주면 삼천육부지자 노랑개새끼라구 맹세를 치게.”“점
잖지 못하게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맹세를 친다구 노랑개새끼가 되우. 고만두
구 그대루 바꾸어주시우.”“이 사람아, 내가 자네 속을 다 아네. 고만두게.”“
바꾸어주기 싫거든 고만두우.”“아이놈은 무어하라구 갖다 줄 텐가, 어디 말 좀
들어보세.”“주머니끈에 꿰어 차라지요.”곽오주 말끝에 서림이가 웃으면서 “
그 준주가 은 오십 냥이나 주구 산 것이라고. 그것을 주머니끈에 채우기엔 아깝
지요.”하고 말하여 곽오주는 한번 흘끗 서림이를 보고 나서 “미친 놈들이다.
나더러 사라면 상목 한끗두 안주겠다.”하고 혼잣말로 지껄였다.
“준주는 외려두 여차지요. 야광주는 의주부윤이 대국서 사오는데 이백 냥인
지 삼백냥인지 주었답디다.”서림이 말한 뒤에 박유복이가 흰구슬을 집어다가
만작만작해 보며 “지금 이것을 판다면 상목 몇십 동이나 받을 수 있겠소?”하
고 물어서 서림이가 “작자만 있으면 몇십 동만 받겠소.”하고 대답하였다. 곽오
주가 서림의 말을 듣고 잠깐 고개를 비틀었다가 다시 바로세우며 “내가 도중에
할 말이 있소. 도중으루 내논 몫은 우리 양주 꺽정이 형님에게 보내줍시다.”하
고 말을 내놓으니 다른 두령들은 말이 없고 박유복이가 나서서 “도중 몫은 그
냥 두구 우리들 몫에서 모아서 보내는게 좋지 않을까.”하고 말하여 다른 두령
들이 좋다고 찬동할 뿐 아니라 곽오주까지 그것도 좋다고 자기 말을 고집하지
아니하였다. 박유복이가 이봉학에게도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또 황천왕
동이도 두었다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여 각기 친분대로 내서 모으는데, 임꺽정
이 몫에는 다른 두령뿐 아니라 서림이까지 내놓고 황천왕동이 몫에는 서림이만
빠지고 다섯 두령이 다 내놓고 이봉학이 몫에는 박유복이 외에 배돌석이 한 사
람이 내놓았다. 그 뒤에 양주 임꺽정이와 임진 이봉학에게 물건을 보냈더니 꺽
정이는 말없이 받고 봉학이는 받지 않고 돌려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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