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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11)

카지모도 2023. 3. 2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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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임꺽정이는 아비 병이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서 겨우내 집을 떠나

지 못하였다. 사람의 목숨이 모질어서 숨만 붙은 병인이 죽을 듯 죽지 않고 하

루하루 넘기어서 온겨울을 다 지냈다. 미음을 떠넣어도 맛 모르고 삼키던 병인

이 개춘이 되며부터 조금 조금 나아서 중동밥까지 달게 먹게 되었다. 아비 병이

그만한 뒤에 꺽정이는 칠장사 선생을 보러 가려고 하는데 애기 어머니가 노인

시아버지에게 옷 한 벌을 지어 보내겠다고 말하여 꺽정이가 옷 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에 임진별장 이봉학이게서 전인으로 편지가 왔는데, 언문이나 똑똑히 볼

사람이 없어서 애기 어머니가 이웃집 최서방에게 가서 술 한 사발 사주고 편지

를 보아왔다. 그 편지에 안부의 사연은 기쁜 소식을 들려줄 것이 있으니 놀기

겸하여 나오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꺽정이가 애기 어머니의 옮기는 말을 듣고나

서 “기쁜 소식은 무슨 소식이랍디까?”하고 물으니 “편지에 기쁜 소식이라고

만 했지 기쁜 소식이 무슨 소식이란 말은 없대. 이별장이 재미있는 사람이니까

꼭 오라고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하고 애기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봉학이

가 내겐 실없은 말을 할 리가 없는데.”“글쎄 참말 무슨 기쁜 일이 있을까?”

“내게 무슨 기쁜 일이 있겠소.”“혹시 있을는지 누가 아나.”“사람이 혹시루

속아 산다지만 우리는 혹시두 바랄 게 없으니까 속구 말구 할 거 있소.” 남매

간 수작하는 말을 꺽정이 안해 백손 어머니가 옆에서 듣다가 “우리 동생이나

놓여오면 기쁠까.”하고 말하니 꺽정이가 개도가 되는 것처럼 “옳다, 천왕동이

소식인가 부다.”하고 안해를 돌아보았다. “이별장한테 나하구 같이 갑시다.”

“또 주착없는 소리 한다.”“동생 소식을 들으러 간다는 게 주착없는 소리란

말이오?”“말대답이 일쑤로군.”“임자는 누님 동생이 다 한집에 있지만 나는

둘도 없는 동생이 하늘 끝에 귀양가 있소. 인정이 있거든 남의 생각도 좀 해보

시오.”“수다 떨지 말구 가만히 있어.”꺽정이는 안해를 윽박질렀다.

이튿날 꺽정이가 전인 온 사람과 같이 떠나서 임진을 나왔다. 봉학이의 기쁜

소식이란 것은 다른 소식이 아니요, 곧 천왕동이의 귀양이 풀린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제주목사께 상서할 때마다 천왕동이 말을 비쳤었소. 작년 세밑에 상서한

답장이 일전에 왔는데 그 답장에 황천왕동이는 곧 귀양이 풀릴 듯하다구 했습디

다.”봉학이의 말끌에 꺽정이는 “그거 참말 기쁜 소식일세.”하고 좋아서 입을

벌리고 웃었다. “우리가 제주서 떠날 때 천왕동이가 언덕 위에 주저앉아서 울

던 것이 지금까지두 눈에 선하우.”“그애가 수이 풀려오지 않으면 나는 한번

다시 제주를 가보려구까지 생각했네.”“천왕동이가 수이 풀리게 된 것은 목사

의 힘뿐이 아니구 이정승대감의 힘두 있을 것이오.”“이정승에게두 말은 했었

나?”“세전에 문후하러 갔을 때 마침 조용한 틈이 있어서 천왕동이 죄가 애매

한 것을 조만히 말씀하구 귀양이 풀리두룩 주선해 줍시사구 청까지 했었소.”“

뉘 힘 뉘 힘 할게 있나, 자네 힘이지. 그런데 나는 내일 곧 도루 집으로 가겠네.

”“무엇이 그렇게 급하시오. 뱃놀이나 하구 메칠 놀다 가시우.”“우리 집사람

은 지금 동생의 일이 궁금해서 곧 죽으려구 하네. 이번에 기쁜 소식이 있단 말

을 듣구 동생이 놓였는가 보다구 하구 여기를 같이 오겠다구까지 하는 걸 윽박

질러서 주저앉혔네.”“왜 윽박질렀소? 갈이 오시지. 그래 가실 테면 수이 한번

다시 오시려우?”“내가 칠장사 가서 선생님을 뵈입고 온 뒤에 한번 다시 옴세.

” 꺽정이는 임진서 하룻밤을 지내고 곧 양주 집으로 돌아왔다. 천왕동이의 귀

양 풀린단 소식을 듣고 꺽정이 집 식구들이 다 좋아하는 중에 백손 어머니는 좋

아서 저녁밥도 먹지 아니하였다. 애기 어머니가 동생의 댁을 보고 웃으면서 “

여보게, 귀양 풀린단 소식을 듣고 밥을 못 먹으면 풀려와서 서로 만나는 날은

굶어죽으려나.”하고 말하여 백손 어머니가 “동생을 만나보면 굶어죽어도 좋아

요.”하고 말대답하는데 백손이가 옆에서 불쑥 “외삼촌 아저씨 귀양이 풀리지

말아야겠소.”하고 열퉁적게 말참례하였다. “무엇이야? 이 자식아, 네가 어미

비위를 긁는 게냐!”“어머니가 굶어죽으면 탈이거든.”“하면 다하는 것만 여겨

서 너까지 어미를 놀리느냐.”“누가 어머니더러 유난을 부리랍디까.”“너두 지

각 좀 나.”“내가 아무리 안 났기루 설마하니 어머니 지각만 못하리까.”“잘한

다 잘해. 저 자식이 사람인가.” 백손이 모자간에 오락가락하는 말을 꺽정이가

듣다가 “어미 자식이 똑같다.”하고 웃으니 백손이가 저의 어머니더러 “어머

니 고만둡시다. 아버지 웃는 것이 아니꼽소.”말하고 아비의 얼굴을 흘끗 돌아보

았다. 꺽정이는 잠가코 있는데 애기 어머니가 눈을 흘기면서 “저 자식의 아가

리는 마구 난 창구녕이야.”하고 말하니 백손이는 아랫입술을 길게 빼물었다. “

이애 내 말 좀 들어라. 대가리 커단 자식이 어머니더러 지각 없다는 건 무엇이

고 아버지더러 아니꼽다는 건 무엇이냐. 그런 버릇 어디서 배웠니?”“아주머니

잔소리엔 사람이 머리가 빠지겠소.”“너의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하는 걸 좀 보

구 배우지 못하느냐?”“아버지가 할아버지 같은 반신불수 병신이면 내가 아버

지버덤 더 잘할는지 누가 아우.”꺽정이가 별안간 “이 자식이 되지 못한 소리

지껄이지 마라. 듣기 싫다.”하고 소리를 질러서 백손이와 애기 어머니는 다같이

말을 그치었다. 백손이와 팔삭동이 숙질을 뜰아랫방으로 내려가고 꺽정이와 애

기 어머니 남매는 안방으로 들어가고, 또 애기와 백손 어머니 숙질은 저녁 먹은

그릇을 설거지할 때 삽작께서 “누님!”하구 부르는 소리가 나며 뒤미처 마루

앞에 있던 애기가 “아이구 아주머니, 백손 오빠, 외삼촌 아저씨.”하고 소리쳤

다. 부엌에서 솥을 부시던 백손 어머니가 “무엇?”하고 한걸음에 뛰어나와서

들어오는 천왕동이에게로 쫓아나가며 “아이구 이게 누구야? 아이구 이게 웬일

이야!”하고 울음 반 지껄였다. 안방에서 꺽정이 남매가 쫓아나오고 뜰아랫방에

서 백손이 숙질이 뛰어나왔다. 천왕동이와 백손 어머니가 남매 서로 끌어안고

우는 것을 꺽정이는 한동안 물끄러미 보고 섰다가 나중에 끌어안은 남매를 떼어

놓으며 “인제 고만 방으로 들어가자.”하고 천왕동이의 손목을 끌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여러 사람이 뒤따라 들어와서 각기 인사들을 마친 뒤에 꺽정이가 천

왕동이를 돌아보며 “귀양이 수이 풀린단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속히 올 줄은

생각 못했다. 대체 어느 날 귀양이 풀리구 어느 날 제주서 떠났느냐?”하고 물

으니 천왕동이는 “모두가 꿈속 같소.”하고 백손 어머니로부터 여러 사람들을

한번 다시 돌아보고 나서 “보름 점고를 맞으러 들어가니까 목사가 따루 불러서

귀양이 풀렸으니 내일이라두 고향으루 가라구 분부합디다. 열이렛날 떠나

나오는 배편이 있어서 제주서 불불이 떠나는데 형님하구 이정의하구 떠날 때 주

구 간 상목으루 그 동안 객비 쓰구 남저지가 선가가 겨우 됩디다. 그래서 뭍에

내린 뒤는 과객질루 얻어먹구 왔소. 그끄저께 뭍에 내렸는데 온사흘 동안 풍랑

에 부대낀 까닭으루 첫날은 다리가 허전해서 구십 리밖에 못 걷구 그저께 어저

께 양이틀은 하루 이백육십 리씩 걷구 오늘은 한 삼백 리 넘어 걸었소.”하고

꺽정이 말을 대답하였다. 천왕동이가 저녁을 안 먹어서 밥을 새로 짓게 되었는

데 백손 어머니는 동생 옆을 잠시도 떠나려고 아니하여 애기 어머니가 애기를

데리고 나가 밥을 지어서 저녁 굶은 백손 어머니와 남매 겸상하여 먹게 하였다.

밥 먹기 전과 밥 먹은 후는 고사하고 밥 먹는 중에도 천왕동이는 귀양살이하던

이야기를 하느라고 숟갈질이 동안 뜰 때가 많았다. 천왕동이의 이야기가 대충

끝이 났을 때 꺽정이가 천왕동이더러 “이번 귀양 풀리는 데 이별장이 매우 힘

을 쓴 모양이다.”하고 말하니 천왕동이는 이별장이 이봉학인 줄 몰라서 “이별

장이란 사람이 누구요?”하고 물었다. “이봉학이가 지금 임진별장이다. 네 귀양

이 수이 풀린단 소식두 내가 임진 가서 듣구 왔다.”“언제 가서 듣구 왔소?”

“가기는 어제 가구 오기는 오늘 왔다. 이별장이 놀다가 가라구 붙드는데 네 소

식 들은 것을 빨리 집에 와서 알려려구 불불이 되짚어 왔다.”“내일 다시 나하

구 같이 갑시다. 내가 가는 길에 잠깐 이별장을 찾아보구 가겠소.”천왕동이 말

끝에 백손 어머니는 “저 주제를 해가지고 염체 별장 나리를 찾아갈 작정이오?

”하고 물었다. 천왕동이는 주제가 사나운 품이 헐벗지 않은 거지로 보기 좋을

만하였다. 꺽정이가 애기 어머니와 백손 어머니를 돌아보며 “참말 주제가 말

아니군. 아무것으루나 옷 한벌 해 입히지.”하고 말하는데 천왕동이가 “언제 옷

을 해입구 있겠소. 내일 봉산 가서 갈아 입지.”하고 말하니 백손 어머니는 “주

제가 이런 걸 내가 그대로 보내면 나는 이 다음 동생의 댁 볼낯이 없어. 그러고

하루도 묵지 않고 간단 말이 될 말이야? 너는 간대도 나는 못 보내겠다. 수일

묵어서 옷 한벌 해입고 가거라.”성을 내서 사설하고 애기 어머니는 “백이방댁

아가씨를 보이러 가기가 급하겠지만 하루 이틀 못 참겠소. 참기 좀 어렵더라도

주리 참듯 참아보구려.”조롱하고 깔깔거리었다. 천왕동이는 한참 동안 잠자코

있다가 꺽정이를 보고 “나 갈 때 형님 임진까지 같이 갈라우?”하고 다시 물으

니 꺽정이가 “네가 같이 가자면 임진은 고만두구 봉산까지라두 같이 가지.”하

고 대답하였다. “이왕 늦을 바엔 청석골두 거쳐갈 테니 형님 꼭 나하구 동행합

시다.”“청석골이 요새는 전과 달라서 놀러가기두 재미적지만 네가 간다면 동

행하지.”꺽정이가 천왕동이하고 동행한단 말에 애기 어머니는 “그럼 죽산은

언제 갈라고?”하고 꺽정이더러 말하니 그 말 속에는 청석골 가는 것이 부질없

단 뜻이 숨겨 있고 백손 어머니는 “갔다 와선 가지 못해요.”하고 꺽정이 대신

말하는데 그 말 속에는 동생을 봉산까지 데려다 주었으면 좋겠단 뜻이 들어 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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