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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28)

카지모도 2023. 6. 9.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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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낮에 담 너머집에서는 김씨가 그 시아버지를 보고 고향으로 이사가자고

의논을 내었는데 그 시아버지는 본래 서울을 시골만 못하게 여기는 늙은이라 며

느리의 의논을 선뜻 좋다고 찬동하였다. 그러나 김씨가 그 시아버지더러 아들

아이와 비부쟁이를 데리고 세간짐을 영거하여 가지고 먼저 내려가서 집도 수리

하고 세간도 정리하면 자기는 서울집을 팔아가지고 추후하여 내려간다고 주장하

는 것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늙은이로도 좋다고 찬동하기가 어려웠다. “단 며

칠 동안이라도 너 혼자 어떻게 있을 테냐?” “혼자 있으면 호랭이가 물어갈까

요?” 늙은이는 아들 죽은 후로 호랑이 물어간단 소리를 남유달리 듣기 싫어하

는 사람이라 “그게다 무슨 소린가!” 하고 상을 오만상 찡그렸다. “나 혼자 있

을 건 염려 마십시오.” “집을 팔려고 하더라도 나다니며 주선을 해야지.” 늙

은이가 마침내 며느리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여 그대로 작정하고 말았다.

이날부터 불과 오륙 일 안에 홍문집에서 이삿짐을 내실리는데 판다고 내놓은

육중한 세간과 당장 쓸 솥 부등가리 외에는 문앞에 붙였던 정문까지 다 떼어서

실리고 먼저 떠나기로 작정한 조손 노주 세 사람은 짐바리와 한날 떠나갔다. 김

씨의 시아버지 늙은이가 고향에 가서 며느리를 기다리다 못하여 다시 서울을 올

라와서 보니 그 동안 벌써 이웃 사내놈과 붙어서 펼쳐놓고 사는 판이라 할일 없

이 그대로 도로 내려가서 늙은이의 의뭉으로 며느리가 급한 병으로 죽어서 서울에

다가 엄토하고 왔다고 고향 사람의 이목을 속인 것은 뒷날 일이다.

김씨가 개새끼 하나 없는 빈집에 혼자 남아 있게 되며부터 꺽정이는 담을 넘

어다니지 않고 문으로 드나들되 내 집 드나들 듯하였다. 박씨는 살기가 있으나

병이 있고 원씨는 대살지고 약하여 모두 김씨의 살 좋고 몸 튼튼한 것만 못한데

다가 새로 만난 사람이 이왕부터 같이 사는 사람과 달라서 꺽정이는 김씨 집에

를 파고들었다. 김씨는 그 많던 울화가 신통하게 없어져서 골낼 때보다 웃을 때

가 많고 전날 기습으로 간간 기성을 부리다가도 꺽정이의 꾸지람 한마디면 대번

숙지는 까닭에 전에 비하면 참으로 딴사람과 같았다. 전의 한사람은 개차반이라

고 하면 뒤의 사람은 거의 명주고름이라고 할 만하였다. 박씨는 육례를 갖추고

원씨는 정실로 자처하고 또 김씨는 부실이라고 아니하는 까닭에 꺽정이의 처가

광복산에 있는 본처는 치지 말고 서울 안에만 세 사람이나 되는 셈이었다.

 

5

꺽정이가 광복산 두메 구석에 엎드려 있기가 답답하여 서울로 올라올 때 과즉

한 달포 놀다 가려고 생각한 것이 늦게 난봉이 나서 갖은 오입을 다하고 종내

계집을 셋씩이나 얻어서 각 살림을 시키는 동안에 세월이 가는 줄 모르고 오륙

삭이 지나갔다. 그 동안 광복산 도중에서 꺽정이에게 오라는 재촉이 없었던가.

도중에 비록 대리 괴수가 있기로서니 정작 대장이 오래 밖에 나와 있는데 어찌

재촉이 없었으라. 광복산 재촉은 성화 같아도 꺽정이가 갈 생각을 아니하고 서

울에 눌어붙어 있었다. 도중에 일이 있다고 재촉이 오면 꺽정이는 그 일이 무슨

일인가 알아보고 서울 앉아서 지휘할 건 지휘하고 조처할 건 조처하되 멀리서

지휘하기 거북하고 조처하기 어려운 일은 뒤로 미루기를 일쑤 하였다.

청석골을 버리고 도망들 한 뒤에 관군이 빈 소굴에 들어가 불을 질러서 도회

청과 살림집이 모두 타서 없어진 까닭에 광복산을 떠날 때 청석골로 다시 갈까

다른 곳으로 옮아갈까 이것이 여러 두령들 사이에 중대한 공론거리가 되었는데

두 가지 의론이 맞서서 서로 일치히지 못하였다. 다시 청석골로 나가서 청석골

패의 전날성세를 회복한 뒤에 어느 산성 한 자리를 빼앗아 가지고 이진하는 것

이 득책이라고 주론한 사람은 서림이요, 이왕 청석골에 오래 있을 작정이 아닌

바엔 불탄 자리에 새로 배포 차리느라고 군일할 것 없이 바로 어느 산성하나를

가서 차지하고 웅거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주론한 사람은 이봉학이나 두 의론이

맞서게 되도록 부득부득 세우고 뻑뻑 우긴 사람은 서림이와 이봉학이가 아니고

늙은 오가와 곽오주였다. 늙은 오가는 청석골에 정이 들어서 다른 곳으로 옮아

갈 생각이 적은 사람이라 서림이의 득책이란 것도 내심에는 다 합당치 못하나

그나마 좋다고 서림이의 말을 찬동하고, 곽오주는 서림이의 말이라면 언제든지

뒤쪽으로 잘나가는 사람이라 이봉학이의 상책이란 것이 상책인지 아닌지도 모르

면서 그대로 덮어놓고 이봉학이의 말에 붙좇았다. 주론한 사람들 제쳐놓고 둘이

서로 맞붙어서 청석골로 가느니 못 가느니 말다툼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어느 때는 곽오주가 이면없이 말을 뒤받는 데 늙은 오가가 홧증이 나서 “대체

자네가 무얼 안다구 툭하면 나서나, 자네는 국으로 가만히 좀 있게.” 곽오주를

꾸짖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늙은 오가가 구변으로 몰아세우는 데 곽오주가 골

딱지가 나서 “서종사 말이라면 당신은 사죽을 못 쓰니까 당신하구는 더 말하기

싫소.” 늙은 오가를 면박주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말다툼들 하는 중에 늙은 오가

의 입에서는 “다른 사람 다 안 간다면 나 혼자라두 청석골루 갈 텔세.”하는

말이 나오고 곽오주의 입에서는 “난 죽어두 청석골루 안 가겠소.”하는 말이

나온 일까지 있었다. 일인즉 일찍 결정짓고 미리 준비 차려야 할 일인데 꺽정이

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결정짓지 못할 것은 고사하고 꺽정이 아니고는 늙은 오

가나 곽오주나 한 편을 누르고 결정지을 수가 없어서 꺽정이더러 속히 내려오라

고 재촉하러 황천왕동이가 서울을 올라왔었다. 꺽정이의 내려가야만 할 사정을

황천왕동이가 증언부언 말할 때 꺽정이는 듣는지 마는지 건성으로 들으면서 속으

로 광복산 떠날 공론을 뒤로 미루어 두게 하려고 생각하고 “개춘이나 한 뒤에

어디루든지 가게 될 텐데 공론이 어느 새 무슨 공론이란 말이냐? 미리 준빌 한

다니 준비할 일이 무어냐? 가령 집을 새루 짓기루 하구 역사를 시키더래도 해토

나 돼야지. 나는 아직 서울 좀더 있다 가겠으니 그리 알구 가거라. 그러구 가서

공연히 수선들 부리지 말라구 내 말루 일러라.”하고 말하여 황천동이를 재촉

온 보람 없이 그대로 돌려보냈었다. 꺽정이가 서울 와서 있게 된 뒤 처음 한 달

포 동안은 광복산서 사람이 거의 사흘돌이를 올라오는데 그 중에 전부터 서울길

을 자주 하던 황천동이가 더욱 자주 올라왔었고 광복산 사람이 오는 것을 꺽정

이가 긴치 않게 여기고 거북하게 여기고 민주스럽게까지 여기어서 한번 황천왕

동이더러 별일이 없거든 자주 오지 말라고 말을 하여 그 뒤로 다른 사람은 차치

하고 황천왕동이까지도 서울 길이 전보다 드물어져서 한 달에 두세 번 오거나

말거나 하였었다. 황천왕동이가 자주 올 때 으레 하룻밤은 자고 가던 사람이 드

문드문 오게 되며부터 사대문이 닫히기 전에 볼일이 끝나게 되면 가다가 자고

일찍 들어간다고 당일 되짚어서 떠나는데 이런 때 꺽정이는 마음에 합당한 양

잘 가라 인사하고 붙들어서 재워 보내려고 하지 않았었다.

황천왕동이가 잠시잠시 다녀가도 원체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뉘게 이야기 들

을 것도 없이 꺽정이의 난봉 부리는 것을 십분 짐작하였으나 꺽정이의 기안에

눌려서 드러내놓고 말 한마디 못 하였을 뿐이지 속으로는 톡톡히 책망하고 싶은

마음이 남유달리 많았다. 까닭에 본계집 두고 계집질하는 사람을 부족하게 아는

데다가 더구나 세상에 둘도 없는 자기 누님이 꺽정이의 안해라 자연 마음이 누

님 편으로 쏠려서 꺽정이를 홑으로 부족하게만 알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누님의

속을 상하여 주지 아니하려고 그런 이야기를 누님에게 하지 않은 것은 말할 것

도 없고 말이 다리를 넘을까 저어하여 자기 내외간에도 말한 일이 없었다. 꺽정

이가 특별한 볼일 없이 서울 가 눌어붙어 있는 것을 의심 안할 리 없게 되었을

때 꺽정이의 안해 백손 어머니는 “정녕코 기집이 미친 게야.” “젊은 년을 얻

어가지구 죽자사자 하는 게지.” 이런 말을 하며 혼자 푸닥거리도 하고 “너는

다 알면서 나를 속이지?” “친동기간에 속이니 다른 사람 탓할 거 무어 있어.

” 오지 않는 데 백손 어머니는 속에 열방망이가 치밀어서 설인지 만지 지내고

새해 문안가는 사람과 같이 서울을 가겠다고 부득부득 나서는 것을 시누이 애기

어머니가 말리고 아들 백손이가 말리고 다른 두령들까지 말리어서 간신히 주저

앉히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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