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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36)

카지모도 2023. 6. 17.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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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구 가시면 될 텐데 왜 안 가신답니까?” “나는 서울 좀 더 있다 가요.”

“우리가 다 가두 혼자 떨어져 기시겠단 말입니까?” “백손이는 나하구 같이

가겠지요.” “서울 구경하구 가실랍니까?” “구경할 것이 어디 있나요?” “

그럼 무슨 일루 내일 안 가신답니까?” “볼일이 있어요.” “볼일을 말씀하면

우리가 내일 식전 봐드리지요.” “아니오.” “아니라니, 우리더러 말씀 못할

볼일이 무업니까?” “말 못할 것도 없지만 먼저들 가시면 백손이를 다리고 찬

찬히 볼일 보고 갈 테요.” 백손이가 옆에서 듣다가 “어머니, 무슨 볼일이오?”

하고 물으니 백손 어머니는 아들을 돌아보며 “나중에 알려주마.”하고 핀잔 주

듯 대답하였다. “볼일은 무슨 볼일이오? 내일 다 함께 갑시다.” “너는 어미

원수도 갚아 줄 생각이 없니?” “원수라니, 무슨 원수요? 난 모르겠소.” “그

못된 기집년들 탓에 내가 다리까지 분질러졌는데 그년들을 그대로 가만두고 간

단 말이냐?” “아이구 참 어머니두. 그 기집들이 어머니 다리를 분질르라구 아

버지를 꼬대기기나 했다면 또 모르지만 어머니 다리 부러진데 그 기집들이 무슨

상관이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우.” “고만둬라. 네까지 자식이 자식이냐? 나

혼자 떨어져 있다가 그년들을 보고 갈 테다.” “보구 어떻게 할 테요?” “보

고 어떻게 하든지 그건 알아 무어하니?” 모자간에 말이 왔다갔다 하는 동안 꺽

정이는 백손 어머니를 노려보며 주먹까지 몇번 부르쥐고 이봉학이는 꺽정이를

돌아보며 연해 고개를 흔들고 박유복이는 직수굿하고 앉아서 쓴입맛을 쩍쩍 다

시는데 한온이가 백손 어머니를 건너다보며 “내 말씀은 좀 들으십시오.”하고

말하여 백손 어머니가 한온이에게로 고개를 돌리었다.

백손 어머니가 꺽정이 갈 때 같이 안 가고 뒤에 떨어지면 자연 한온이게 성화

를 바치게 될 터이므로 한온이는 백손 어머니를 호구별성 마마처럼 배송이라도

낼 생각이 있었을 것이라 그래서 백손 어머니더러 가라느니 진배없이 “서울 구

경을 하신다거나 다른 볼일이 있으시면 몰라두 지금 말씀하신 일루는 혼자 떨어

져 묵으실 게 없습니다.”하고 말을 하니 백손 어머니는 코웃음을 치면서 “댁

에서 못 묵게 하면 객주를 잡고 나가리다.”하고 비아냥스럽게 대답하였다. “제

게서 묵으시는 게 싫어서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말이오?” “지

금 시앗쌈하러 가셨다가는 되려 덤테기를 만나시거나 망신을 당하실 테니까 그

래서 말씀입니다.” “어째서요?” “선생님이 다 내버리구 가시는 판 아닙니

까?” “내버리다니 아주 관계들을 끊었단 말이오?” “녜, 그렇습니다.” 백손

어머니가 다른 말을 하기 전에 백손이가 한온이에게 “참말이오?”하고 다진즉

한온이는 부러진 갓양태가 근덩든덩하도록 고개를 끄덕거리었다. 이때까지 통히

말참견을 아니하던 박유복이가 홀저에 꺽정이를 보고 “형님, 기집들을 다 버렸

소?”하고 말을 물으니 꺽정이는 눈살을 찌푸리고 대답을 아니하였다. 꺽정이는

마음이 불쾌한 때 누가 무슨 말을 묻듣지 대답을 잘 아니하는 것이 평소의 버릇

이라 박유복이나 다른 사람들이나 모두 꺽정이의 대답 않는 것을 괴상히 여기지

아니하는데 한온이의 거짓말이 저절로 덮이어서 이봉학이가 백손 어머니더러 “

아주머니, 인제 내일 가시지요?”하고 물을 때 백손 어머니도 “글쎄요.”하고

갈 의사를 보이게 되었다. 박유복이가 얼굴에 만족한 빛을 띠고 “그러면 그렇

지, 형님이 그럴 리가 있나.”하고 혼잣말로 지껄이는 것을 꺽정이가 듣고 박유

복이를 뻔히 바라보다가 “무에 그럴 리가 있느냐 말이냐?”하고 캐어 물었다.

“형님 결단성으루 기집버덤 더한 것이라두 끊으러 들면 못 끊을리가 없는데 형

님이 기집에 빠져서 영이 헤어나지 못할 것같이 말들 하니까 사람이 속이 답답

하지 않겠소?” “그렇게 말들 하는 사람이 누구누구야?” “광복산 있는 사람

은 거지반 다 형님이 내려가서두 서울 기질을 못잊어서 얼마 안 기시구 곧 도루

서울 오시려니 생각들 하구 있소.” “내가 기집에 홀려서 정신 못 차릴 줄루

아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로군.” “다들 서종사의 말을 곧이듣구 그렇게 생각하

지요.” “서림이가 내 흠담을 많이 했단 말이지. 참말 내가 좀 물어볼 말이 있

다. 여럿이 다 서울루 오거나 사방으루 흩어지거나 하자구 공론들 했다지. 그런

공론을 누가 먼저 냈느냐? 서림이가 냈느냐?” “그런 공론은 한 일 없었소.”

이봉학이가 박유복이의 뒤를 이어서 “서종사가 한번 황두령더러 그런 말을 합

디다.”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그럴 테지.”하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이날 밤에 꺽정이는 이봉학이 박유복이 두 사람과 같이 안방에서 자고 백손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건넌방에서 잤다. 이튿날 식전에 꺽정이가 한온이를 찾

아가서 지난 밤에 여러 가지로 생각 끝에 박씨, 원씨, 김씨 세 계집을 다 버리기

로 결심하였다고 이야기한 뒤 아무쪼록 속히 팔자들을 고쳐 가도록 권하고 가기

들 전까지는 시량범절을 돌보아주라고 부탁하였다. “팔자들을 안 고친다면 어

떻게 합니까?” “반 년이구 일 년이구 두구 봐서 끝끝내 다른 데루 안 가면 내

가 데려가두룩 하지.” “선생님이 아주 말들을 이르구 가시렵니까?” “식후에

한 바퀴 돌아다니며 말을 이르겠네.” “울며불며 선생님 뒤를 쫓아들 오지 않

을까요?” “글쎄 모르지. 내가 대개 운만 떼어서 일러 두구 갈 테니 뒤는 자네

가 잘 알아서 조처해 주게.” “제가 한 군데 성화를 안 받으려구 거짓말을 했

더니 거짓말한 죄루 세 군데 성화를 받게 됩니다그려.” 꺽정이는 한온이와 이

러한 수작을 하고 와서 곧 길 떠날 준비를 차리었다.

백손 어머니만 교군마당을 태우고 꺽정이까지 보행으로 가기로 하였는데 광복

산서 온 졸개 하나 외에 짐꾼 둘이 더 늘어서 한첨지 집사람이 교군꾼 둘 아울

러 넷이 가는 까닭에 일행이 모두 열사람이 되었다. 식후에 꺽정이는 이봉학이

더러 일행을 데리고 먼저 떠나서 가는 대로 가다가 점심참에 기다리라고 말하고

남성밑골과 동소문 안으로 돌아다니며 작별들 하는데 생리사별하는 사람같이 말

을 막잘라 하였다. 다시 만나기가 어렵다는 말에 박씨는 눈물이 비오듯 하고 원

씨는 기함하여 쓰러지고 김씨는 못 간다고 옷자락을 붙잡고 날치었다. 세 집에

서 세 차례를 각각 좋이 지체하고 해가 한나절이나 되었을 때 꺽정이가 작별 나

오는 한온이와 같이 동대문 밖으로 나오니 김씨 집에서 나올 때 보지 못한 노밤

이가 미리 앞질러 성 밖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앞으로 나서며 “저는 보두

않구 가십니까?”하고 원망하듯 말하였다. “너를 보려구 찾다가 없어서 네 기

집에게 말을 일러두구 왔다.” “무슨 말을 일러두셨습니까?” “무슨 말이야,

못 보구 간단 말이지.” “못 보면 못 간다구는 말씀 못하시구요.” “이눔아,

시룽거리지 마라.” “제가 지금 몸이 다는데 어느 해가에 시룽거리구 있겠습니

까. 선다님이 대체 저를 비부쟁이루 늙어죽으라구 내버리구 가시는 셈입니까, 어

떻게 하시는 셈입니까? 제가 도덕여울서 팔포재상 부럽지 않게 지내는 걸 서울

까지 끌구 와서 하인으루 부리구 비부쟁이루 부리다가 지금 와서 나 모른다 하

구 내버리구 가시다니 말이 됩니까?” “ 도덕여울이 못 잊히거든 도루 가려무

나.” “선다님하구 일평생을 같이 지내기루 했지, 언제 중간에 갈리기루 했습니

까? 하룻밤새 변덕이 나셔서 정답게 같이 살던 여편네들을 노끈 끊듯 몽창 끊으

시는 선다님두 저는 끊지 못하십니다.” “나를 따라가구 싶거든 지금이라두 같

이 가자.” “진작 그런 말씀을 해주셔야 저 혼자 생각두 하구 기집년하구 의논

도 하지요. 선다님, 문안으루 도루 들어가서 오늘 하루만 더기십시오.” “미친

눔 같으니.” “선다님같이 인정 없는 양반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네눔하구

같이 지껄이다간 길 늦겠다.”꺽정이가 걸음을 떼어놓으려고 하니 “제 말 한마

디만 더 들어줍시 오.” 노밤이가 앞을 막아 들어섰다. “이눔이 날 붙잡구 실랭

일 하는 셈 아닌가.” “제가 선다님을 마지막 뵈입구 다시 안 뵈입습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어서 저리 비켜라!” “말 한마디만 더 여쭈어 보구 물러가

겠습니다.” “무슨 말이냐?” “서울 안으서들을 나중에 데려가시지 않으시렵

니까?” “그건 왜 묻느냐?” “안 데려가시구 영 내버리신다면 저두 기집을 내

버리구 나오든지 달구 나오든지 양단간에 작정하구 선다님 뒤를 쫓아갈랍니다.

” “나중 봐가며 데려갈는지두 모르지만 지금은 내버리구 간다.” “시량이나

용은 전대루 대어주십니까?” “나를 바라구들 있는 동안까지 대어줄 테다.”

“그럼 제가 아직 서울 처쳐 있어서 세 집으루 돌아다니며 바깥일을 보살펴 줄

까요?” “그건 네 생각대루 해라.” “안으서님들을 잘 보호하는 것두 선다님

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그러면 저 혼자 뒤에 떨어져두 섭섭하지 않습니다.”

“더 할 말 없거든 고만 들어가거라.” “다락원까지나 뫼시구 갑지요.” 노밤이

가 어슬렁어슬렁 꺽정이의 뒤를 따라오다가 한온이가 작별하고 들어갈 때 “저

두 다락원까지 갈 것 없이 여기서 하직 여쭙구 들어가겠습니다.”하고 한온이와

같이 떨어졌다.

먼저 간 일행 중의 백손 어머니는 꺽정이가 뒤에 떨어진 까닭으로 천천히 가

자고 말하는 것을 이봉학이가 비선거리 가서 중화하며 기다린다고 길을 재촉하

여 다락원에서도 교군꾼, 짐깐 들 술잔 먹이는 동안밖에 더 오래 쉬지 아니하였

다. 중화참을 대어왔을 때 해가 한낮이 훨씬 지났었는데 점심을 지어놓고 기다

리고 먹고 나서 기다려도 꺽정이가 오지 아니하여 백손 어머니는 공연히 빨리

왔다고 사살사살하다가 마침내 서울로 도로 가자고 조르게 되었다. 이봉학이도

기다리기에 갑갑증이 났겠지만 백손 어머니의 마음을 가라앉히느라고 조금도 갑

갑한 티를 보이지 않고 늘어진 소리를 하였다. “아주머니, 여기서 눌러 잘 작정

하구 기다려 봅시다.” “며칠이고 몇 달이고 여기서 묵을 테요?” “그건 공연

한 말씀이지 며칠씩 묵게 될 까닭이 있습니까?” “안 오는 사람을 기다리면 무

어하오? 얼른 가보는 게 수지.” “안 오실 리 없으니 갑갑하더래두 좀 참으십

시오.” “우리를 따돌려 세우려는 꾀로 같이 떠난다고 어벌쩡하다가 기집의 집

에 가서 드러누웠는지 누가 아우?” “아주머니 의심이 너무 과하십니다.” “

전 같으면 의심할 까닭이 없지만 지금은 오장이 바뀐 사람이니까 믿을 수가 없

소.” “기집들을 다 보냈다는데 무슨 기집이 또 있으리라구 당치 않은 의심을

하십니까?” “한씨집 아들이 거짓말로 우리를 속였는지 누가 아우?” “어젯밤

한온이의 말이 거짓말 아닙니다.” “어떻게 거짓말 아닌 줄 분명히 아시우?”

“오늘 아침에 형님이 한첨지 늙은이하구 수작하는 걸 옆에서 듣구 분명히 알았

습니다.” “무어라구 수작합디까?” “한첨지가 형님더러 서울을 언제쯤 또 오

시겠냐구 묻는데 형님이 이번 가면 언제 또 올른지 모른다구 대답하니까 한첨지

는 형님의 대답을 의외루 여기는 눈치가 보이며 한번 우리들을 돌아보더니 다시

형님더러 서울 벌여놓으신 일은 어떻게 하시우 하구 묻는 것을 형님이 그건 다

걷어치우구 갑니다 하구 대답합니다. 한첨지까지두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이나 형

님이 기집들을 다 보낸 것은 분명한 줄루 압니다.” “그런 일을 한첨지가 어째

모를까요? 한첨지 모르는 것이 우선 안 보낸 표적이 아닐까요?” “한첨지는 자

기 집안일두 작은아들에게 쓸어맡기구 알은 체 안하는 늙은이니까 모르기두 쉽

지요.” “어쨌든지 여기서 기다리구 있느니 도루 가봅시다.” “오늘 하루 여기

서 묵을 작정하구 기다리면 꼭 오십니다. 만일 안 오시거든 내일 식전 도루 가

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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