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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35)

카지모도 2023. 6. 16.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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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릴 찢어놓기 전에 가만히 닥치구 있거라.” 꺽정이가 호령할 때 윗간 방문이

열리고 이봉학이가 백손이를 들여다보고 “잠깐 이리 나와서 내 말 좀 들어라.”하

고 불러내 가더니 억지로 끌고 건넌방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자식에게라

두 그렇게 당해 싸지.”하고 백손 어머니가 혼잣말로 말을 내기 시작하자 “무

엇이 싸단 말이야, 이년아!” 꺽정이가 대뜸 년자를 내붙였다. “무얼 잘했다구

큰소리야!” “이년아, 내가 네게 큰소리 못할 게 무어냐!” “콧구멍 둘 마련

잘했다. 사람이 기가 막혀 죽겠네.” “되지 못한 말 지껄이지 말구 가만히 있거

라.” “되지 못하게 기광 부릴 생각 마라.” “이년을 곧.” “곧 어째?” “내

가 창피한 생각이 없었으면 너희들은 벌써 초죽음했다.” “꼴에 창피를 다 알

아.” “지금 한 말 다시 한번 더 해봐라. 가만두니까 꾄 듯싶어서.” “다시 한

번만? 백번이라도 더 할 테야.” 꺽정이가 벌떡 일어나서 한걸음에 뛰어오며 곧

백손 어머니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꺽정이가 해거를 부리려 들자마자 백손 어

머니 입에서 발악이 막혔던 물 터진 것같이 쏟아져나왔다. “오냐, 어디 해보자.

네가 나를 죽이기밖에 더하겠느냐? 내가 네 손에 죽지 않으면 내 손으로 자결해

서라도 죽지, 뒷방에서 천덕꾸러기 노릇하고 살지 않는다. 첩도 안 얻겠다던 놈

이 본기집이란 게 자그마치 셋씩이야? 본기집 명색이 한꺼번에 셋씩 넷씩 되는

법이 어디 있더냐, 이놈아! 지금은 부모 거상을 삼 년 입는 세상인데 너 혼자 옛

날 법이라고 스무이레 입고 시지부지 고만두더니 상제 복색 입고 기집질하기 거

북해서 미리 고만두었느냐? 내 머리에 흰 당기는 너 아버지 거상이다. 흰 당기

드린 머리를 끄둘르는 것이 죽은 부모 대접이냐?” 꺽정이가 백손 어머니를 머

리채 잡아서 치켜들고 내두르다가 흰 당기 내세울 때 손을 놓아서 백손 어머니는

방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백손 어머니가 다시 일어나며 곧 꺽정이게로 바락바락

달려들어서 꺽정이는 치고 차고 백손 어머니는 물고 뜯고 쌈을 하는데 건넌방에

있던 사람들이 우 건너와서 이봉학이, 박유복이, 한온이 세 사람이 꺽정이의 앞

을 둘러막고 백손이가 저의 어머니 앞을 가로막아서 쌈을 떼어놓았다. 꺽정이

도 몸에 몇 군데 상채기가 났지마는 백손 어머니는 그 동안에 벌써 참혹하게 당

하였다. 육중한 손에 이마가 터져서 피투성이가 되고 센 발길에 앞정강이가 부

러져서 다리 한 짝이 병신이 되었다.

부러진 뼈를 들이맞춘다, 산골을 갈아서 먹인다, 버드나무 조각을 앞뒤로 대고

버들껍질로 동여맨다, 찬찬한 이봉학이와 진중한 박유복이까지 황당스럽게 구는

백손이와 한온이만 못지않게 수선들을 부리는 중에 바깥방에 나가 있는 상노아

이들 들어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소가의 안팎 심부름꾼이 많이 몰려와서 마

루에도 사람이요, 마당에도 사람이었다. 아랫간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던 꺽정이

가 훌쩍 말없이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는데 백손 어머니가 쫓아가 붙들려고 앉은

채로 날뛰면서 "이놈아, 사람을 이 지경 병신 만들어놓고 어디로 도망가느냐! 내

가 오늘 밤에 죽든 살든 양단간 끝을 낼 테다. 도망갈 생각 말고 이리 들어오너

라!"하고 악을 들이썼다. 꺽정이가 문밖에서 "저년이 참말 미쳤지 성하구야 저럴

리가 있나." 혼잣말로 말하고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꺽정이는 동소문 안이나 남

성 밑으로 갈까 하고 일어서 나온 것인데 도망질친단 소리를 듣고 가기도 창피

하고 그렇다고 들어오라는데 도로 들어가기도 창피하여 건넌방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백손 어머니가 꺽정이를 놓칠까 겁이 나서 곧 건넌방에 쫓아갈 작정

으로 동인 다리를 디디고 일어서려고 하니 이봉학이가 잠깐만 참으라고 말린 뒤

에 백손이를 시켜서 물 축인 수건으로 면상의 피를 씻어주게 하고 기름에 개어

온 밀타승을 이마 상처에 발라주게 하고 머리까지 거두어 주라고 하는데, 백손

어머니가 자기 손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거듬거듬 거둬서 모양없이 틀어얹으며

백손이더러 "나를 좀 붙들고 건너방까지 가자."하고 말하였다. "그리하면 아버지

맘을 다 알았는데 또 쫓아가서 무어하우? 성한 다리 하나 마저 부러뜨리고 싶

소?" 백손이 입에서 곰살궂지 않은 대답이 나오니 백손 어머니가 매서운 눈으로

아들을 노려보며 "고만뒤라."하고 한 다리를 뻗은 채 앉은뱅이 걸음을 쳐서 앞으

로 나가다가 다리가 문지방에 다닥뜨려서 이를 악물고 아픈 것을 참고 갑자기

문설주를 붙들고 혼자 일어섰다. 박유복이가 백손이더러 붙들어드리라고 말하려

백손이가 마지못해 와서 부축하려고 하는 것을 백손 어머니가 매몰스럽게 뿌리

치고 외짝다리로 깨금을 뛰어서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이봉학이와 박

유복이는 쓴입맛들을 다시면서 바로 뒤를 따라가고 백손이는 눈물이 나는 것을

주먹 쥔 손등으로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하다가 뒤떨어져서 쫓아가고 한온이는

마루 위와 마당 아래 여러 사람들을 꾸짖어 내쫓느라고 한동안 마루에서 지체하

였다. 백손 어머니가 건넌방 문지방을 넘어서며 곧 주저물러 앉아서 “자, 속시

원하게 아주 죽여라.”하고 이를 갈며 몸을 옮겨서 꺽정이 앞으로 들어가니 꺽

정이는 어이가 없는지 깃구멍이 막히는지 “허 그거 참.”하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가까이 간 백손 어머니의 성한 다리 무릎께를 한 손으로 내밀었다. 꺽정

이의 힘들이지 않은 것이 분명히 사렴을 두고 미는 것이건만, 백손 어머니의 몸

은 이때껏 애써 들어간 것이 헛일이 되도록 주르륵 밀려나왔다. “왜 못 죽이느

냐!” 백손 어머니가 다시 앞으로 들어가며 이번에는 내밀지 못하게 소매라도

붙잡으려고 생각하였으나 몸을 옮길 때 두 팔로 방바닥을 짚는 까닭에 미처 손

을 놀릴 사이 없이 또 주르륵 내밀리었다. 실컨 내밀어 보아라 안채우듯이 백손

어머니는 부적부적 들어가고 누가 지나 보자 배짱을 먹은 듯이 꺽정이는 자꾸

내밀었다. 쌈의 승부가 여기 달린 것같이 내외가 서로 지지 않고 들어가면 내밀

고 내밀면 들어가고 하는데 이봉학이와 박유복이는 백손이를 데리고 한옆에 가

만히 서서 구경들만 하였다. 한온이가 안팎 심부름꾼들을 다 내쫓은 뒤에 건넌

방 문을 열고 들어오려다가 말고 안방에서 방 치우는 상노아이를 불러서 일각문

과 중문을 아주 걸어두라고 말을 이르며 한 발을 먼저 들여놓고 남은 발을 마저

들여놓을 즈음에 꺽정이 손에 내밀린 백손 어머니의 몸이 한온이 다리에 부닥쳤

다. 다리가 삐끗하여 몸이 휘뚝 앞으로 고꾸라져 백손 어머니에게 덮쳐 누르게

되는 데 한온이가 놀라서 몸을 얼핏 가눈다는 것이 백손 어머니 등뒤에 가서 쓰

러지게 되었다. 한온이는 백손 어머니를 인사하려고 의관을 정제하고 온 사람이

라 활개가 벌어질 때 큰 소매가 너푼하고 머리가 방바닥에 닿을 때 넓은 갓양태

가 꺾여서 깔렸다. 한온이 입에서 “아이쿠!” 한마디는 경황없이 나왔으나 뒤미

처 나온 “새우쌈에 고래등 터지네.”하는 말은 말소리까지 익살스러웠다. 한온

이가 일으켜 주기를 기다리는 것같이 쓰러진 채 누워 있는 것을 박유복이가 쫓

아가서 붙들어 일으켰다. 한온이가 평지낙상하는 동안에 꺽정이의 내외쌈이 잠

시 중단되고 또 조금 묽어졌다. 백손 어머니가 뭉그적뭉그적 한온이를 피하여

앉은 뒤에 슬금슬금 꺽정이게로 가까이 오는 것을 꺽정이가 보고 손을

내저으며 “대들 생각 말구 거기 앉아서 말루 해.” 자기부터 비로소 말로 하

는데 말소리도 그다지 거칠지 아니하였다. 이봉학이가 얼른 백손 어머니 앞에

나와 서서 “아주머니, 그렇게 하십시오. 두발부리를 하실 때 하시더라두 우선

시비를 말루 가리구 나서 하십시오.” 은근히 백손 어머니를 가로막았다. “이리

와서 앉게.”

꺽정이가 이봉학이를 옆에 불러다가 앉히고 그 다음에 박유복이와 한온이를

보고 이리들 오라고 말하여 박유복이가 한온이와 같이 꺽정이 앞에 와서 모꺾어

느런히 앉았다. 백손 어머니가 꺽정이에게로 가자면 이봉학이의 자리를 지나고

박유복이의 무릎을 스치게 되어서 갈 생각을 안 먹고 도리어 뒤로 물러나 앉고

백손이고 혼자 섰기가 싫든지 저의 어머니 옆에 와서 쭈그리고 앉아서 꺽정이와

이봉학이가 아랫목 자리를 차지하고 박유복이, 한온이와 백손 어머니, 백손이가

양옆자리에 각각들 마주 대하여 앉게 되었다. “오늘 저녁 같은 창피한 꼴은 내

평생 처음이야.” 꺽정이가 이봉학이를 돌아보니 이봉학이는 꺽정이의 말은 대

답않고 “아주머니 말씀 안 하시우?”하고 백손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서울에

기집이 몇이야? 어디 속시원하게 말 좀 들어보자구.” 백손 어머니가 말을 붙이

고 “기집이 몇이냐구? 뜨내기 기집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구 붙백여 데리구 사

는 것만이 셋이다. 인제 속이 시원하냐?” 꺽정이가 말을 받아서 살풍경의 드잡

이가 거연히 옥신각신하는 말다툼으로 변하게 되었다. “뻔뻔도 하다. 인두겁을

쓰고 그런 말이 입에서 잘 나온담.” “이년아, 말이라면 다 하는 건 줄 아느냐?

서방더러 뻔뻔은 무어구 인두겁은 무어냐?” “그버덤 더한 말을 못할까, 망나

니 대접 그것도 과하지.” “내 부아를 돋우면 네게 돌아갈 것 주먹밖에 없다.”

“오냐, 다리 하나 마저 분질러라.” “앉은뱅이가 되구 싶어서 몸살이 나느냐?

” “죽인대도 겁 안 난다. 맘대로 해라.” “죽여 달라구 지다위하러 왔느냐?”

“지다위가 무슨 지다위야?” “그럼 무어냐?” “나 몰래 기집질하는 걸 알고

가만히 있으까? 죽든 살든 해보고 말지. 내가 딴서방을 몰래 얻으면 가만히 있

겠나 생각 좀 해보지.” “기집년하구 사내대장부하구 같으냐?” “사내나 여편

네나 사람은 매한가지지.” “저게 소견없는 기집년의 생각이야. 그래 같은 사람

이면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구 종이나 상전이나 마찬가지냐?” “아이에 머

슴애도 있고 종에 사내종도 있지. 기집애만 아이고 기집종만 종인가?” “말귀

나 터졌어야 남의 말을 알아듣지. 누가 머슴이나 사내종이 없다느냐? 기집을 아

이루 치면 사내는 어른이구 기집을 종으루 치면 사내는 상전이란 말이지.” “

사내가 어른이면 기집도 어른이고 사내가 상전이면 기집도 상전이지 어른을 아

이로 친다고 아이가 되고 상전을 종으루 친다고 종이 될까.” 한온이가 홀저 허

허 웃으며 “초록은 동색으루 저두 사내니까 선생님 편을 들어서 말씀 한마디

하겠습니다. 아이와 여자를 한데 쳐서 아녀자란 말은 있어두 아남자란 말은 없

지 않습니까? 또 여편네를 문서 없는 종이라구는 하지만 사내더러야 누가 그렇

게 말합니까. 안 그렇습니까?”하고 백손 어머니를 바라보니 백손 어머니는 독

살스러운 눈으로 마주 바라보며 “그 따위 다 같은 심장이니까 맞붙어서 갖은

짓들 다했지.”하고 쏘아붙였다. 백손 어머니의 위인이 낯선 사내라고 부끄러워

말 못할 숫기 없는 여편네가 아닌데다가 더욱이 악이 오른 판이라 낯이 설거나

말거나 사리지 않고 해내려고 하였다. “천왕동이란 자식이 무슨 말씀을 여쭈었

는지 모르나 저는 원통한 꾸중을 듣습니다.” “천왕동이란 자식이라니, 쳔왕동

이가 자기 자식인가? 내가 천왕동이 누이인 줄 번히 알면서 내 앞에서 그게 무

슨 말버릇이야. 그리고 천왕동이가 무슨 말을 했다고 공연한 사람을 말밥에 올

려?” “무심쿠 한 말이 잘못됐습니다.” 꺽정이가 백손 어머니에게 “너는 죽

으려구 환장한 년이니까 가만둔다.” 말하고 곧 한온이를 돌아보며 “자네 망신

이 아니라 내 망신일세.”하고 말하였다. 이봉학이가 꺽정이더러 “아주머니는

형님이 환장했다구 하시니까 내외분이 피장파장이오.”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새

삼스럽게 화를 벌컥 내면서 “저깟년은 말할 거 없지만 그래 너희들이 나를 망

신시키려구 저년을 데리구 온단 말이냐!”하고 언성을 높이었다. 이봉학이는 목

소리를 도리어 낮추어 가지고 “형님, 새삼스럽게 화내실 거 무어 있소? 조용히

이야기합시다.” 말하고 잠시 꺽정이의 눈치를 살펴본 뒤 “망신이라면 형님이

나 아주머니나 다같이 망신인데 형님버덤두 아주머니가 더 톡톡히 망신한 셈 아

니오. 우리가 형님 망신시키러 왔다는 건 억설이니까 발명두 할 것 없구 아주머

닌들 형님 망신시키구 자기 망신하자구 서울까지 오셨을 리야 있소?”하고 차근

차근 말하였다. “그럼 왜 왔어?” “내 생각에는 아주머니가 형님께 말씀 한마

디를 하려구 허위단심하구 삼사백 리 길을 오신 줄 아우.” “무슨 말을 하러

왔단 말이야?” “아주머니 속에 있는 말을 내가 짐작으루 말해 보리까? 형님이

서울서 얻은 기집들을 다 내버리구 우리와 같이 광복산으루 가잔 말

외에 다른 말이 없을 게요.” “버리라면 버리구 가자면 가구 내가 장이 문문

한 모양일세.” “처분은 형님께 달렸지요.” 이봉학이 말끝에 한온이가 “지금

선생님께서 내일 모레 양일간 떠나가시기루 작정하구 기십니다.” 말참례하고

나섰다. 이봉학이는 한온이의 말을 듣고 백손 어머니에게 “아주머니, 조그만 참

구 기셨더면 좋을 걸 공연히 오셨소.”하고 말한 뒤에 다시 꺽정이를 보고 “우

리들두 하루 쉬어 가지구 가게 모레쯤 떠나시면 꼭 좋겠소.”하고 말하니 꺽정

이가 볼멘소리로 “나는 내일 떠나겠네.”하고 대답하였다. 이봉학이가 한온이더

러 “우리 아주머니는 내일 가시자면 승교바탕이라두 타셔야 할 텐데.”하고 말

하여 한온이가 “그런 준비는 염려 마십시오.”하고 대답할 때 백손 어머니가

이봉학이를 바라보며 “나는 내일 안 가요.” 말하고 고개까지 가로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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