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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7권 (38)

카지모도 2023. 6. 19.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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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정이가 펄썩 주저앉듯 앉으면서 늙은 오가와 서림이더러 앉으라고 손짓하고

한참 만에 “이런 법두 있소?” 말하고 물끄러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꺽정이

의 눈치가 말들 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 두 사람이 함봉한 입을 열게 되었

다. “다섯 분 두령이 의를 세우려구 죽음으루 나가는 걸 보니 의리는 태산 같

구 죽음은 홍모같단 옛말이 헛말이 아니오.” 늙은 오가는 강개한 어조로 말하

고 “다섯 분이 같이 살 의리는 생각 않구 같이 죽을 의리만 세우려구 하니 다

섯 분의 일을 꼭 옳다구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서림이는 주저주저하며 말하였

다. “서종사, 나가서 여럿이 알아듣두룩 말하구 같이 들어오게 하우.”“황두령

까지 같이 데리고 들어오리까?” 꺽정이는 고기를 가로 흔들었다. “황두령에게

사를 내리신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구야 여러분이 들어올 리가 있습니까?”“그

럼, 내버려 두구려.”“여러분이 다 없구 보면 대장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저희들이 다 죽으면 나두 죽지.”“대장 같으신 전고에 드문 영웅을 하느님께

서 이 세상에 내실때 일생을 그렇게 허무하게 마치시라구 내셨을 리가 있습니

까. 한번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신출불이와 곽능통이가 방문 밖에 와 굽실거

리는 것을 꺽정이가 내다보고 “어째들 들어 왔느냐?” 하고 물으니 신출불이가

다시 한 번 굽실하고 “여러분 두령께서 다 각각 나 먼저 죽이라구 죄인을 제치

구 대드시니 소인들 힘으루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말을 아뢰었다. 꺽

정이가 한참 동안 잠자코 있다가 “황두령을 도루 끌구 오느라.” 하고 분부하

여 신출불이와 곽능통이가 일시에 네 대답하고 나가더니 얼마 뒤에 황천동이를

좌우로 붙들고 들어오는데 다섯 두령도 뒤를 따라 들어왔다. 꺽정이가 황천왕동

이를 뜰 앞에 세워놓고 “대장의 체모를 손상한 죄가 죽여두 싸지만 여러 가지

루 생각애서 이번은 특별히 용서하니 이 다음에 다시 그런 일이 없두룩 조심해

라.” 하고 타이른 뒤에 다섯 두령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서림이와 황천왕동이가 참을 당할 뻔하던 이튿날, 꺽정이가 여러 두령을 모아

가지고 광복산 떠날 의론을 결정지을 때 이봉학이의 의론과 서림이의 의론을 다

시 자세히 들어본 뒤에 서림이의 의론이 좋다고 하고 청석골에다가 임시로 거접

할 배포를 차리고 나가기로 결정하니 늙은 오가가 싱글벙글 좋아하는 대신에 곽

오주는 골이 나서 식식하면서 “나는 청석골로 안 간다고 말한 사람인데 나를 내

버리구 갈라구 그렇게 작정하우?” 하고 꺽정이에게 들이대었다. “내가 한번

결정지어서 영을 내린 뒤에는 다른 소리 할 생각 마라.”“그렇기에 그런 영을

내리지 말라구 미리 말하지 않소?” 꺽정이가 곽오주의 말은 대답 않고 다른 두

령들을 돌아보며 “아무리 임시 거접이라두 집 몇 채는 세워야 할 테니 이두령,

오두령만 여기 남아서 식구들과 같이 있구 그 나머지 두령들은 다 날 따라 청

석골 나가서 역사를 시키자. 이 뒤에 만일 청석골루 가느니 안 가느니 하는 사

람이 있으면 용서없이 군법을 쓸 테다.” 하고 명령으로 말하였다. 곽오주가 덩

치 큰 값도 없이 간드러지게 내개개 서리를 지르는 것을 박유복이가 눈을 흘기

며 그리 말라고 고개를 흔들어 보이었다. 곽오주가 옆에 앉은 황천왕동이더러

“품앗이해 줄라우?” 밑도끝도 없는 말을 물으니 황천왕동이는 무슨 말인지 몰

라서 “무어야?” 하고 되물었다. “내가 죽게 된다면 같이 죽는다구 할 테냐

말이야?” “실없는 소리 하지 마라.”“내가 청석골루 안 간다구 우기면 군법

으루 죽인다구 할 테니까.” 잡담들 말라고 꺽정이가 소리를 질러서 곽오주는

말끝도 마치지 못하고 모가지를 움찔하였다. 곽오주가 서림이의 주장을 좇기가

싫고 또 늙은 오가와의 말다툼에 지기가 싫어서 청석골로 안 간다고 황소고집을

부리었으나, 청석골을 가기 싫을 까닭이 없는 건 고사하고 도회청과 살림살이

다 타고 자기 거처하던 등 너머의 외딴집만 성하게 남아 있단 말을 들은 뒤로

은근히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까지 없지 아니하였다. 곽오주가 꺽정이 장령에

눌리기도 하고 또 눌리는 체도 하여 일자 이후로 청석골을 간다 안 간다 말한

일이 없었다. 청석골로 역사하러 갈 준비들을 차릴 때 늙은 오가가 짓궂이 곽오

주를 보고 “안 간다든 자네가 나버덤 먼저 가겠네.” 하고 씨까스르니 “갈라

면 선등 가는 게 좋지.” 뱃속 편하게 대답하고 “자네가 죽어두 안 간다구 하

지 않았나?” 하고 오금을 박으니 “내가 죽으면 당신에게 좋을 게 무어요?”

넉살좋게 대꾸하였다. 그러나 서림이의 주장이 득승한 것만은 곽오주가 마음에

종시 불쾌하여 “청석골 가서 군일하는 품삯은 서종사가 내야 할걸.”“청석골

역사는 서종사가 다 해놔야 경계가 옳지 않소.” 서림이를 앉혀놓고 빈정거린

일도 있고 이봉학이가 꺽정이의 수고를 대신하려는 뜻으로 청석골 역사 시키러

가기를 자원하여 꺽정이가 광복산에 남아 있기를 변경하게 될 때 “갈 사람은

바꿔두 갈 자리는 바꾸지 못하나?” 꺽정이 면전에서 문말한 일도 있었다. 꺽정

이와 늙은 오가 이외에 여러 두령이 두목과 졸개 근 이십명을 데리고 청석골로

나가는데 이십 명 사람이 함께 몰려갈 묘리가 없다고 세 패로 띄엄띄엄 떠나갔다.

청석골 소굴은 형지가 없었다. 즐비하던 기와집과 총총하던 초막이 하나도 없

고 깨어진 기왓장과 타다 남은 끄트럭과 다 탄 재가 땅바닥에 깔렸을 뿐이었다.

이봉학이 이하 여러 두령이 두목과 졸개들을 거느리고 빈터를 돌아볼 때 여기저

기 보금자리 친 짐승들이 사람 발자취에 놀라서 이리 닫고 저리 닫고 하였다.

등너머에 남아 있는 곽오주의 집이 방 이간 퇴 한간 삼간뿐이라 좁기는 하지만

달리 전법할 곳이 없어서 상하 이십여 명 소솔이 삼간에서 복대기를 치는데, 졸

개들 중에는 뜰 위에 나가서 한잠하는 사람이 밤마다 서너너덧씩 되었다. 이봉

학이가 여러 두령과 상의한 뒤 금교역말 어물전에서 양식과 장건건이며 당장 한

진할 제구로 차일과 멍석이며 아쉬운 대로 쓸 연장들을 얻어오고 그 다음에 장

단, 토산, 강음 각처에 묻어주고 간 졸개들을 모아들이었다. 식구가 나날이 자꾸

느니 양식이 큰일이라 친분 있는 인근 읍 나전들에게 힘을 빌리고 관할하던 각

동네 백성들에게 폐를 끼쳐도 뒤가 연해 알리어서 이봉학이와 서림이는 청석골

앉아서 일을 보고 황천왕동이는 각처로 연신을 다니고 박유복이와 배돌석이와

곽오주와 길막봉이는 두 패 세 패 혹은 네 패로 졸개 몇 명씩 거느리고 백 리

내외로 나다니며 화적질을 하여 양미와 재목을 거두어들이었다. 모든 것을 임시

배포로 차리는 까닭에 도회청과 꺽정이 거처할 집외에는 살림집을 몰밀어서 삼

간 초가로 짓고 졸개들의 초막이란 것은 게딱지만큼 쥐대기로 짓게 되었다. 모

군 서는 사람은 수효가 적을 때 사오십 명씩 되고 목수일, 미장이일 하는 사람

도 십여 명이나 되어서 일이 잘 붓는데다가 닫는 말에 채찍질하듯 이봉학이가 일

을 건몰아서 한 달 안에 역사가 얼추 다 끝이 났다. 그전 생각을 하면 심풍스

럽지만 한 달 전에 비하면 딴세상이 되었다.

꺽정이가 여러 집 권속을 데리고 광복산에서 나와서 집들을 별러 들인 뒤에

도거리로 낙연성을 차리는데 인근 읍 아전에게서와 각 동네 백성들에게서 부조

가 많이 들어와서 주식이 진진하였다.

청석골 도회청은 관군의 불꾸러미가 한번 지나간 뒤에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정자 비슷한 초가로 변하고 벽도 없고 분합도 없는 네모 번듯한 마루 시간뿐이

나 드높고 시원한 것만 하여도 광복산 움구석 같은 방에는 댈 것이 아니고 좌우

의 익랑터와 정면의 대문간 자리를 모두 마당으로 닦아서 마당이 전보다 곱절이

나 넓었다.

청석골을 비워놓고 도망할 때 여러 군데 감추어 두고 간 곡식과 세간과 병장

기를 모두 찾아내서 썩어 못쓸 것은 골라 버리고 쓸 것이라도 세간과 병장기는

못질하고 푸레질하고 칠 벗은 것 칠 올리고 이삼십 명이 오륙 일 동안 분주히

일을 한 뒤에 도회청 마루위에 교의도 놓이고 도회청 축대 아래 기치도 꽂히게

되었다. 도회청 뒤에는 청포로 만든 휘장을 치고 도회청 안에는 해와 달을 그린

두쪽 병풍 앞에 주홍칠한 큰 교의 하나를 놓고 큰 교의 좌우로 각각 작은 교의

넷씩 휘우듬하게 늘어놓고 도회청 앞에는 각색기치 외에 창검과 부월을 벌려 세

웠다. 휘장은 밤낮 쳐두는 것이요, 교의는 날마다 떨고 닦고 하는 것이요, 기치

는 아침이면 내어꽂고 저녁이면 빼어들이는 것이요, 창검과 부월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나 내세우는 것인데, 이날 점고가 있는 까닭에 창범부월이 아침 햇빛

에 번쩍이었다. 두령들은 아직 겹옷을 벗지 아니할 때지만 벌써 많이 홑것을 입

은 졸개들이 바람기가 쌀쌀한 햇살퍼지기 전부터 도회청 넓은 마당으로 모여

들어서 두목들이 지휘하는 대로 칼잡이 창잡이 활잡이가 다 각각 떼를 지어 섰

다. 사산의 파수 보는 졸개들과 두령들 집의 심부름하는 졸개들과 그외에 다른

소임을 가진 졸개들도 하나씩 둘씩 오기 시작하고 시위한 사람이 와서 있다가

여러 두령이 다 온 것을 보고 간 뒤 대장 꺽정이가 비로소 와서 일월병 앞에 놓

인 큰 교의에 전좌하였다. 졸개들은 머리를 수건으로 질끈질끈 동이고 두목들은

머리에 벙거지를 썼을 뿐이고 여러 두령과 두 시위는 산수털벙거지를 쓰고 군복

을 입었고 종사관 서림이는 탕건에 진사립을 눌러쓰고 창의를 입었고 꺽정이는

머리에 쓴 것은 금관이요 몸에 입은 것은 홍포이었다. 마루 위의 두령들과 축대

아래 두목들이 두 시위의 창을 따라 국궁진퇴하여 조사를 마친 뒤레 꺽정이 입

에서 “점구를 시작해 보지.”말 한마디가 떨어지며 곧 “점구를 시작해 보지.”

“점구를 시작하랍신다!” 두 시위가 쌍으로 받아내리고 “네이.” 여러 두목이

일시에 긴 대답을 올렸다. 서림이가 꺽정이에게 품하고 마루 끝에 나와서 점고

할 방법을 자세히 지휘하였다. 졸개들 섰는 편에는 청기 하나를 세우고 건너편

에는 홍기 하나를 세우게 한뒤 졸개들이 성명이 불리거든 청기 아래서 대답하고

홍기 밑으로 건너가되 건너갈 때 대상을 향하여 군례를 한 번씩 하라 하고 좌우

시위더러 축대에 나가 서서 전날 도록에 적힌 성명을 차례로 부르되 세 번 불러

서 대답이 없거든 그 성명에는 표를 지르고 다음을 부르라 하고 점고를 시작할

때와 끝마친 때에 군호로 북을 치고, 처음 북소리 난 뒤부터 나중 북소리 나기

까지 일체 헌화를 금지하라 하였다. 서림이가 자기 교의에 도로 와서 앉은 뒤에

꺽정이가 서림이를 돌아보며 “헌화 금지하는 걸 두목들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두령 몇이 나가서 보면 어떻겠소?” 하고 물어서 서림이가 “청,홍기 양쪽에 한

분씩 두분만 나가서 섰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대답하여 꺽정이는 곧 좌우편 끝

교의에 앉은 황천왕동이와 갈막봉이를 마당으로 내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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