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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12)

카지모도 2023. 7. 6.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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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궁 이하 여러 여편네들이 모두 저녁밥을 점고만 맞고 말아서 벌써 상

들을 물려내게 되었다. 김억석이가 상 하나를 들고 나가려고 하는 차에 그 아들

이 들어와서 “아버지 내 말 좀 듣구 나가시우.” 하고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무슨 말이냐?” “상은 여기 놔두구 저리 가서 말합시다.” 아들은 사람 없는

마루방 앞을 가리키는데 아비가 배돌석이 서림이 길막봉이 세 사람이 앉았는 곳

간 앞으로 데리고 왔다. “무슨 말이냐? 말해라.” “이아 사령이라나 사령 둘이

한뎃솥 걸린 데 와서 아버지를 찾다 갔소. 모두들 말이 아버지가 나오기만 하면

재없이 접혀가리라구 합디다.” 김억석이가 아들의 말을 들은 뒤 세 사람을 보

고 “바람이 어디서 새어나간 모양인데 어떡허면 좋을까요?” 하고 물으니 서림

이가 선뜻 “밖에 나갈 거 없이 우리하구 여기 같이 있세.” 하고 대답하였다.

“나중은 어떻게 하나요?” “나중이라니?” “여러분 가신 뒤 말씀이오.” “

우리 갈 때 같이 가거나 뒤에 남아 있다가 잡혀가거나 그건 자네 요량해 하게.

” “처 되는 사람더러 말을 못 해봤는데요.” “갈 때 임시해 말해두 낭패될

거 없네. 같이 간다면 데리구 가구 같이 안 간다면 버리구 가지 별수 있나.” “

장래 고모의 대를 받아서 이 대왕당을 맡을 사람인데 여간 낭패가 아닙

니다.” “바람 잔 뒤에 나와서 송악산 다섯 굿당을 도거리루 맡아 볼 수두 있

네. 염려 말게.” 상궁방에서 굿을 다시 시작하라고 하여 박수가 나가고 무당이

나갈 때 곳간 앞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쌍바라지 앞으로 왔다. 서림이가 환도를

가지고 와서 짚고 서서 “상궁마마께서는 안 나가시구 여기 기시겠지요?” 하고

말하니 상궁은 들은 척도 아니하고 대왕당 늙은 성관이 방에서 나오면서 “마마

께서 신기가 좋지 못하셔서 이 방에 누워 기실 테니 밖에서 떠들지 마우.” 하

고 말하였다. 이 동안에 김억석이는 나가는 처를 붙들고 자기가 밖에 못 나가는

사정을 총총히 이야기하고 배돌석이는 옆에 섰는 처남을 보고 바깥 동정을 알아

들이라고 두어 마디 말을 일러서 김억석이의 아들이 저의 의붓어미를 따라나갔

다. 상궁의 시중을 들고 심부름을 하려고 방안에는 무수리가 남아있고 문간에

는 상궁의 교군꾼이 남아 있었다. 마루방의 안식구는 쥐죽은 듯 아무소리 없이

가만히들 있더니 무당들 나갈 때 배돌석이의 안해가 사내들에게로 와서 황두령

이 변장하고 빠져나간 것과 청석골서 구원하러 올 것을 알고 갔다. 김억석이가

곳간 지댓돌 위에 놓인 의관들을 전각 편으로 멀찍이 치원놓고 곳간 속에서 멍

석을 꺼내다 곳간 앞에 까는 것을 서림이가 쌍바라지 앞으로 끌어오게 한 뒤,

네 사람이 다같이 퍼더버리고 앉았다. 마루방 상궁방 문간이 모두 다 조용하였

다. 굿판에서 장고소리 풍악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하던 문간에서 홀저에 떠들썩

한 말 소리가 났다. 유수부 비장이 유수사또의 전갈을 맡아가지고 왔다고 상궁

께 여쭈라고 하여 무수리가 지겟문을 열고 내다보며 “무슨 전갈입니까?” 하고

물었다. “살인 죄인을 잡으러 나간 군관들이 기신 굿당에를 막 뛰어들어라려구

했다니 작히 놀라셨겠습니까구. 그러나 굿당에 기신 줄을 모르구 한 일이라니

용서하시구 살인 범인은 도타하기 전에 잡두룩 해주시면 좋겠습니다구.” 비장

이 유수의 전갈을 옮긴 뒤에 무수리가 상궁의 답전갈을 받아 말하였다. “하치

않은 이 사람에게 전위해 비장을 부리셔서 황감합니다구. 살인 죄인은 이 사람

이 어떻게 잡게 할 수가 있습니까구. 폐일언하구 이 사람은 대왕대비 마마의 굿

을 다 마치고 산 아래로 내려가면 고만이니 그리 압시사구.” 비장이 군관들을

데리고 쑥덕공론을 하는지 수군수군 지껄이는 소리가 한동안 나다가 그치고 문

간이 다시 조용하여졌다. 얼마 뒤에 김억석이의 아들이 들어와서 말하여 비장이

올 때 군관 군졸 이십여 명을 데리고 와서 먼저 있던 사람과 합치어 사오십 명

사람으로 당집을 철통같이 에워싸 놓은 줄을 알았다. 청석골 꺽정이 사랑에는

저녁마다 모이는 축인 이봉학이 박유복이 곽오주 김산이 네 두령 외에 저녁에

별로 오지 않는 늙은 두령 오가까지 모두 와서 굿구경 간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들 올 것인데 늦도록 아니 온다고 꺽정이는 이것들이 사

람이냐 마냐 하고 화를 내는 중에 밖에서 “그게 누구냐?” 신불출이의 놀란 말

소리와 “황두령 아니세요.” 곽능통이의 의심쩍어하는 말소리가 연달아 들리더

니 변복한 황천왕동이가 방에도 들어오지 않고 마루 앞에 와 서서 꺽정이를 들

여다보며 "형님, 큰일났습니다." 호들갑스럽게 말하였다. 꺽정이는 황천왕동이를

뻔히 보기만 하는데 이봉학이가 "무슨 일인가? 어서 이야기하게." 뒷말을 재촉하

여 황천왕동이가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사본이 이만저만하여 도사의 아들을 죽

이고 서종사가 꾀를 이리저리 내서 아직 관속들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고 일장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가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꺽정이가 신불출이와 곽능통

이더러 소임 없는 졸개들 중에서 교군꾼 열두 명과 횃군 열 명을 뽑아서 교군바

탕 여섯 채와 홰 사오십 자루를 준비시켜 등대하라고 분부하고, 또 여러 두령들

더러 오두령만 고만두고 그외의 다른 두령은 모두 출전할 준비를 차리고 오라고

명령하였다. 청석골 안이 불시에 떠들썩하여졌다. 한동안 지난 뒤에 꺽정이가 두

령과 졸개 삼사십 명 사람을 거느리고 골 어귀로 몰려나오는데 골 어귀 동네 앞

에서 김천만이가 보낸 보발꾼을 만났다. 황천왕동이 한 사람 외에는 모두 장달

음을 놓다시피 하여 어느덧 삼거리를 지나 탑골 가까이 왔을 때, 꺽정이가 걸음

들을 멈추게 하고 달리골 들어가는 갈림길과 북성문 올라가는 산길을 잘 아는

사람이 있거든 앞서라고 말하였다. 청석골 두령과 졸개들은 모두 초행인데 마침

김천만이가 보낸 사람이 길을 소상히 잘 알아서 그 사람과 횃군을 앞세우고 큰

길에서 달리골로 갈려 들어와서 북성문 산길을 도두밟아 올라올 때 밤은 벌써

이슥하였다. 이때 산 위에서는 큰굿이 다 끝나서 상궁이 산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는 것을 서림이가 위협도 하고 사정도 하여 겨우 준좌를 시키었다. 상궁

은 도적놈들에게 지가를 잡힌 셈인지 볼모를 잡힌 셈인지 내려가지 못하고 잡혀

있는 것도 분하거니와 이런 때 자기 대신 말 한마디라도 쾌쾌히 할 만한 무예별

감이 유수를 보러 간다고 핑계하고 혼자 어디로 피신한 것이 분하여서 애매한

무예별감을 모주 먹은 돼지 벼르듯 별렀다. 굿판 뒷설겆이를 다하고 들어간 건

너편 네 굿당의 무당과 박수들이 대왕당 일을 수군수군 이야기들 하는 중에 북

성문에서 난데 없는 고함소리가 나며 횃불이 꾸역꾸역 네 굿당 앞으로 올라왔

다. 꺽정이가 길에 오는 중에는 홰 두엇으로 길만 밝히고 산에를 거의 다 올라

온 뒤에는 횃군들 외에 교군꾼들까지 홰를 들게 하고 두령과 졸개 삼사십 명이

일자로 늘어서서 올라온 것이었다. 꺽정이가 장검을 비껴들고 여러 두령 졸개의

앞을 섰다. 대왕당 뒤와 옆에 화톳불들을 놓고 앉았던 군사가 우들 일어섰다. 꺽

정이가 대왕당으로 건너오는 길 위세 서서 "송도부 군관 군졸 말 듣거라! 나는

청석골 임꺽정이다. 목숨들이 아깝지 않거든 나와서 내 칼을 받아라!" 하고 벽력

같이 호통을 하였다. 꺽정이 호통 소리에 산이 울리었다. 군졸등은 말할 것도 없

고 군관들까지 도망질을 치기 시작하였다. 대왕당 안에서 네 사람이 큰소리들을

지르며 문간으로 내닫는데, 문간을 지키고 있던 군관과 군졸들은 그네터 아래로

뛰어 내뺐다. 첫째 임꺽정이가 무섭고, 둘째 횃불이 줄닿은 것이 수가 없어 보이

고, 셋째 이편은 한껏 몽치들을 가졌는데 저편은 모두 병장기를 가진 듯하여 도

저히 당치 못할 줄 알고 삼십육계의 상책들을 부른 것이었다. 꺽정이 호통 한번

에 군관과 군졸과 이아 사령과 관덕정 한량이 다 도망하고 굿구경 다하고 범인

잡는 구경하려고 남아 있던 구경속 좋은 사람들까지 모두 쥐구멍을 찾았다. 꺽

정이가 서림이의 말을 좇아서 대왕당 안에 들어와서 벌벌 떠는 상궁을 겁내지

말라고 안위시키고, 무예별감을 결박 풀고 데려내다가 위로 인사하고 황천왕동

이 입고 갔던 복색을 돌려주고, 그 뒤에 안식구 여섯을 보교바탕에 태우고 횃불

을 앞뒤에 밝히고 오던 길로 도로 갔다. 군관 군졸 중의 몇 사람이 산 위에서

도망하여 내려가는 길로 곧 유수아문에 달려가서 적변을 고하였다. 유수가 도사

와 상의하고 부중 군졸을 백여 명 급히 조발하여 무고의 무기를 내서 나눠주고

천총 두 사람을 시켜 영솔하고 미륵당으로 달리골을 가서 청석골 적당의 돌아가

는 길을 막고 체포하라고 지휘하였으나, 천총이 군졸을 영솔하고 달리골에 왔을

때 동네 사람들 말이 적당은 벌써 탑고개도 더 지나갔으리라고 하여 뒤쫓을 생

각도 않고 그대로 돌아갔다. 청석골 적당이 송도부 부근에서 살인

한 일이 기왕에도 종종 있었으나, 백서이 적당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관리에게

고발하지 못하고 혹 관리가 들어 알고서도 모른 체하고 덮어두어서 뒤가 모두

무사하였었다. 그러나 송악산 큰굿날 살인은 치명소가 송도부내요, 초장인이 이

아 아객이요, 원고인이 즉 송도 도사라 송도유수가 친히 검시하고 송도부에서

형조와 포도청에 보장할 뿐 아니라 송도유수가 상감께 장계까지 하였다. 조정

에서 토포사를 내보내서 청석골 적당을 토벌한다는 소문이 송도 부근에 자자하

였다. 꺽정이가 칼에 피 한 방울을 묻히지 않고 궁지에 빠진 안 팎 식구를 구

하여 가지고 들어간 뒤에 그전 약국 하던 허생원을 다시 데려다 두고 백손 어머

니와 황천왕동이 안해를 치료시키는데, 백손 어머니는 과연 이십 년 단산 끝에

물경스러운 아이가 있어서 안태할 약 몇 첩 먹고 바로 기동하게 되었으나 황천

왕동이 안해는 속으로 골병이 들어서 침을 여러 대 맞고 약을 여러 첩 먹었건만

뒷간 출입도 개신개신 겨우 하였다. 허생원 말이 약을 서너 제만 더 쓰면 쾌복

이 될 터인데, 약에 흔치 않는 당재가 몇 가지 든다고 하여 황천왕동이가 꺽정

이에게 말하고 약재 구하러 서울을 올라왔었다. 황천왕동이는 한첨지 부자에게

부탁하여 곧 구해 가지고 당일로 되짚어 내려가려고 생각한 것이 남소문안 한첨

지 집에를 와서 본즉, 늙은 첨지는 중풍으로 앓아 누워서 사람도 잘 몰라보고

젊은 한온이는 저의 아버지 병구원도 아니하고 돌아다니는지 어디 나가고 집에

없어서 서사에게 약재 적은 것을 주고 얻어달라고 부탁하니, 서사의 말이 주인

의 말 없이 얻어드려도 좋겠지만 젊은 주인이 일찍 들어올 터이니 만나서 말하

라고 하여 한온이 들어오기를 오래 기다리고 또 한온이 온 뒤에 구리개 약국에

내보낸 사람이 벽재를 구하여 오느라고 오래 지체하여 긴긴 해가 쥐꼬리만큼 남

은데다가 해질 무렵에 어디를 간다느냐고 한온이가 붙들어서 하룻밤을 서울서

묵게 되었다. 저녁 밥을 먹고 조용한 틈에 한온이가 송악산에서 풍파난 것을 자

세히 듣고자 하여 황천왕동이가 일자 다 이야기한 뒤 한온이에게 조정소식을 물

어보았다. 송도 도사는 아들 가르치지 못한 허물로 파직당하게 된 것을 유력한

대관 하나가 지금 파직시키면 국가의 수치를 더한다고 말하여 아직 중지되었

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인 모양이고, 유수한 무장으로 토포사를 내서 청

석골을 소탕시키자고 정부에서 공론이 났단 말이 있으나 그것은 적확치 않다고

한온이가 들은 소문을 말하였다. 얼마 있다가 한온이는 저의 아버지를 보러 가

고 황천왕동이는 의관을 벗고 자리에 누운 뒤 얼마 아니 있다가 바로 잠이 들어

서 자는 중에 "이 사람 일어나게." 한온이가 와서 깨웠다. "왜 일어나라나?" "술

먹으러 가세." "단야에 무슨 술인가? 나는 잘라네." "오래간만에 만나서 술 한잔

같이 안 먹을 수 있나. 어서 일어나게." 황천왕동기가 일어 앉았다. "어디루 가잔

말인가?" "우리 작은마누라가 술상을 차려놓구 기다리네." "그 술상을 갖다가 여

기서 먹세." "왜 내 첩의 집은 더러워서 못 가겠나?" "쓸데없는 소리 고만두구

이리 가져오라게." "글쎄, 왜 이리 가져오란 말이야?" "벗어논 옷을 다시 주워 입

기 귀찮거든." "쭉찌어질 의관 다 고만두구 그대루 가자." "어딜 상투바람으루 가

잔 말이야?" 한온이가 황천왕동이를 잡아 일으켜세우며 귀에 입을 대고 "도둑놈

의 주제에 의관은 다 무어냐?" 하고 웃으니 황천왕동이도 지지 않고 "너는?" 하

고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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