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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11)

카지모도 2023. 7. 5.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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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당의 문간과 전각 중간에 놓는 것을 서림이가 상궁의 한다 못한다

대답을 기다리는 중에 곁눈으로 보고 일꾼을 불러 말을 일러서 마루방과

문간 어름에 옮겨놓게 하여 상궁방 맞은편 곳간 앞은 불이 멀어서 어스무레

하고 문간에서 바로 보이는 전각 안은 불이 미치지 못하여 어둠침침하였다.

무수리가 사내 하인들에게 말하는 상궁의 분부를 서림이는 듣고 고개를

끄덕하며 씽긋 웃고 먼저 곳간 앞으로 가면서 세 사람을 손짓하여 불렀다.

네 사람이 머리돌을 맞대다시피 하고 쭈그리고 앉은 뒤에 서림이가 옆에 사람 겨우

들을 만한 입속말로 ”황두령, 인제 청석골 나가서 교군을 가지구 오시우.“ 하고

말하니 ”승교바탕을 천만이가 보낼 텐데.“ 황천왕동이가 말을 반동강 하고 서림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천만이게 부탁한 승교바탕은 다 틀렸소. 군관들이 여기 온 뒤에는 보내더래두 소용 없구

그리구 군관들 나온 소문을 들으면 천만이 같은 약은 사람이 애초에 보내지두 않을 게

요. 여기 승교바탕을 보내주지 않는 대신 청석골루 보발꾼 하나는 띄워 줄 듯하

지만 우리가 그걸 믿구 있을 수 있소? 황두령이 얼른 가시우.“ ”나더러 가서

구원병을 끌구 오란 말씀이구려.“ ”그렇소. 지금 우리 형편이 대장의 구원밖에

바랄 것이 없소.“ ”잠깐 마루방에 가보구 곧 가리다.“ ”군관들 오기 전에 얼

른 빠져나가시우.“ ”산 중턱쯤 올라오는 걸 내가 보구 왔으니까 아직은 여기

못 올 것이오.“ 황천왕동이가 마루방에 가서 들여다보며 누님과 안해의 아픈

것을 물어보는 중에 문간이 홀저에 떠들썩하여졌다. 황천왕동이가 아무 소리 말

고 가만히 있으라구 부탁하고 마루방 지겟문을 고이닫고 전각 앞을 획 지나서

곳간 앞으로 도로 왔다. ”저것들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소. 인제 문간이

막혔으니 어떻게 나가면 좋소?“ ”의관을 벗어버리구 굿당 일보는 사람인 체하

구 나가 보지.“ 배돌석이가 말하고 ”담을 넘어가우.“ 길막봉이가 말하는데 서

림이가 손을 가로젓고서 ”일보는 사람인 체해선 안 되구 담을 넘어가는 게 좋

은데 담 밖을 벌써 둘러쌌는지 누가 아우? 억석이 부자중의 하나가 들어오거든

바깥 형편을 알아보구 합시다. 그러구 당장 염려는 없을 듯하지만 그래두 혹시

를 모르니까 우리가 죽게 되면 고깃값이라두 하구 죽을 준비를 차리구 저 쌍바

라지 앞에 가서 있다가 군관들이 들어닥치거든 우리는 방안으루 뛰어들어가서

상궁과 무수리들을 붙잡아서 방패루 씁시다.“ 하고 말하였다. 병장기는 네 사람

틈에 환도가 한자루뿐이나, 배돌석이가 매로바위 밑에 나가 앉았을 때 돌을 집

어서 소매 속에 넣은 것이 여남은 게 되어서 설혹 군관들이 몰려들어오더라도

첫번 기세는 능순히 꺽을 수가 있었다. 네 사람이 다같이 의관을 벗어서 곳간

지댓돌 위에 놓아두고 상궁방 앞에들 와서 섰는데, 그 동안에 사내 하인 한 사

람과 금도군과 한 사람 사이에는 언왕설래에 시비가 톡톡히 되었었다. ”우리는

그예 들어가야겠는 걸.“ 군관의 말은 반말이요, ”들이지 않는다거든 못 들어올

줄 아우.“ 하인의 말은 하우였다. ”빨리 비켜나지 않을 테냐!“ 군관의 말이

해라로 나오니 ”어르면 누구들 어쩔 테야! 우리가 도둑놈인 줄 아나?“ 하인의

말도 반말로 나갔다. ”살인한 적당이 분명히 이 안에 있는 줄 아는데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은 적당을 감춰주는 것이니까 도둑놈이 아니라두 도둑놈의

와주루 볼 수 있다.“ 상궁은 당집 안에 군관을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을 하인들

에게 맡겨두고 자기가 아는 체 아니하려는 것같이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 문간의

시비를 듣기만 하더니 도둑놈의 와주란 말이 마음에 찔리든지 별안간 외쪽 지겟

문을 열어젖히고 문간을 내다보며 ”대체 무엇들이 여기 와서 그렇게 떠드느냐!

“ 하고 큰소리를 내었다. 문간 앞에 섰는 군관 세 사람이 상궁의 첩지 쓴 머리

를 바라보고 허리들을 굽실한 뒤에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저희는 송도부 금

도군관들이올시다. 오늘 부산동서 살인한 적당이 이 당집에 와서 숨어 있는 줄

을 알고 잡으러 왔는데 상궁 마나님의 분부라구 못 들어가게 막으오니 적당은

들이구 저희 군관은 들이지 말라구 분부하셨을 리가 만무할 줄루 생각하와 그럴

법이 없다구 나무라느라구 좀 떠들게 되었나 봅니다.“ 하고 언죽번죽 말하였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 나더러 도둑놈의 와주라고 말했나?“ ”천

만의 말씀이지 상궁 마나님께 그런 무엄한 말을 할 리가 있소리까?“ ”내 사람

더러 도둑놈의 와주라니 그게 곧 나더러 하는 말이지 무어냐! 도둑놈의 와주, 육

십 평생에 더 들어볼 소리가 없다. 괘씸한지고.“ ”저희가 생각이 부족한 탓으

루 상궁 마나님께 촉노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하구 말을 지망지망히 했소이다.

용서합시오.“ ”송도유수 같은 재상의 눈에는 내가 하치않게 보이겠지만 나도

정오품 내명부야. 더구나 이번에 나는 대왕대비 마마의 몸을 이어온 사람이야.

내가 사처한 데서 죄인을 잡아가려면 유수가 내게 전갈 한마디쯤은 있어야 옳

지, 중대한 죄인이 지금이 당집 안에 잠복해 있더라도 내가 대왕대비 마마의 치

성굿을 다마치고 산 아래로 나려가기 전까지는 당집 안에서 야료를 내게 할 수

없으니까 그리들 알고 그대네 유수사또께 가서 내 말씀으로 말하라고.“ 상궁이

할 말 다하고 지겟문을 닫은 뒤에 쌍바라지 앞에 섰던 네 사람은 곳간 앞으로

다시 왔다. 황천왕동이가 혹시 빠져나갈 틈이 있을까 하고 침침한 전각 안에 들

어가서 문간 밖을 내다보았다. 군관 세사람이 한데 붙어서서 숙덕공론을 하는

모양이더니 군관 한 사람은 먼저 다른 데로 가고 군관 두 사람은 나중에 군사와

한량 수십 명을 세 패에 나누어서 군사 한 패는 앞에 남기고 군사 한 패와 한량

한 패는 좌우 옆으로 갈라 보내었다. 어림에 군관 한 사람은 유수께 사연을 고

하러 간 성싶고 군사 한패와 한량 한 패는 당집 담 밖을 지키러 보내는 것 같았

다. 그 뒤에 문 앞에는 군관 두 사람이 댓돌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고 군사 칠

팔 명이 댓돌 아래 둔취하여 서 있었다. 상궁방에서 저녁밥을 재촉하라고 무당

하나를 밖으로 내보내더니 곧 외상,겸상,두루거리상을 일꾼들이 들고 들어오는

데, 김억석이가 일꾼 틈에 끼여 들어왔다가 곳간 앞에 앉았는 네 사람에게로 쫓

아와서 ”여러분 저녁 진지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군관들이 당집 안에 드릴

상 수효를 묻는데 가부새 박수 하나가 방정맞게 방에 외상 하나, 겸상 셋, 문간

에 두루거리 상 하나, 모두 다섯이라구 대답해 놔서 인제 상을 더 들여올 수가

없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하고 말하는데 황천황동이가 “저녁 한

끼 굶어서 죽겠나. 그건 염려 말구 이따가 상 내갈 때나 하나 일꾼 틈에 묻어

나가두룩 해주게.” 하고 부탁하니 김억석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사람 수

효가 맞지 않아서 탈이거든 일꾼 하나를 이 안에 남겨두구 내가 그 일꾼 대신

상을 들고 나가면 되지 않겠나.” “여기 들어오는 사람을 수효만 셀 뿐 아니라

일일이 얼굴을 살펴보구 나서 들여보내는걸요.” 김억석이 말끝에 서림이가 “

담 밖을 다 둘러쌌겠지?” 하고 물으니 김억석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무예

별감은 어디 갔나?” “그건 왜 물으십니까?”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말이야.”

“고녀당 젊은 무당에게 반해서 굿자리에서 고녀당으루 갔답디다.” “그러면

자네가 가서 상궁마마께서 얼른 오라신다구 오주전갈을 좀 해주게.” “그래서

어떻게 하실랍니까?” “우리가 무예별감을 보구 사정을 좀 할 일이 있네.” “

말썽만 더 되지 않을까요?” “지금 말썽 더 될 것이 무어 있나.” “그렇습지

요. 가겠습니다.” 김억석이가 나간 뒤에 서림이가 다른 세 사람과 소곤소곤 이

야기하고 웃옷 안고름에 찼던 긴 노랑수건을 끌러다가 황천왕동이를 주었다. 한

동안이 지난 뒤에 무예별감이 들어와서 쌍바라지 앞으로 가는 것을 서림이가 가

로막고 허리를 굽실하며 “저희가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하고 말하여 무예별

감이 잠깐 어리둥절할 즈음에 뒤에서 황천왕동이가 노랑수건을 홱 둘러서 입을

막아 동이고 또 뒤에서 길막봉이가 두 손으로 몸을 바짝 끼어안았다. 네 사람이

무예별감을 쥐잡듯 잡아가지고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만에 무예별감이 문

간으로 나가는데 금도군관이 앉았다 일어나서 “어디를 가시우?” 하고 물으니

“유수사또 좀 뵈러 가우.” 하고 일변 말을 대답하며 일변 걸음을 걸어서 순식

간에 층층대 아리로 내려갔다. 무예별감이 군복자락에서 바람이 나도록 빨리

걸어 산 아래로 내려간 뒤 금도관들은 미심스러운 생각이 나든지 “걸음걸이가

아까 저기서 올 때 틀짓던 것과는 아주 딴판 달레.” “걸음걸이뿐 아니라 사람

까지 딴사람 같아 보이네.” “딴사람이라니 말이지 나올 때 고개 푹 숙인 게라

든지 말할 때 외면하던 게라든지 다시 생각해 보니 모두가 좀 수상해.” “애들

하나 딸려보낼 걸 우리가 잘못했나 봐.” 이런 말들까지 하다가 “대체 무슨 일

루 그렇게 급히 갔을까?” “상궁의 전갈을 맡아가지구 간 게지.” “우리가 일

껀 인사성으루 일어서기까지 하는데 말대답두 변변히 안 하구 도망하는 놈같이

내빼니 사람 대접을 그 따위루 하는 법두 있나.” “서울놈이 본래 반

지빠른데 게다가 대궐 안 물을 먹으니 우리가 눈에 보이겠나.” 다시 이렇게들

말하는 것이 딴사람으로는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안마당의 화톳불은 마루방

에 비치는 것을 박수들이 좋게 여기지 않는지 관솔이 잘 안 타는 것을 보고도

내버려 두어서 거의 다 꺼지고, 바깥마당의 큰 횃불은 군사들이 홰 끝을 타는

대록 두들겨 떨어서 불길이 활활 잘 탔다. 문간에서 밥 먹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틔워놓느라고 각각 밥그릇을 들고 이리저리 나앉고 또 밝은 데를 향하느라

고 거지반 전각을 등 뒤에 두고 돌아앉아서 모두 먹기에 골몰하였던 까닭에 무

예별감이 전각 안으로 붙들려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은 별로 없었겠지만, 문간

으로 나가는 무예별감의 얼굴을 본 사람은 더러 있을 것인데 적당의 일에 섣불

리 말밥에 오를면 화를 받을까 두려워하는 까닭인지 들어온 무예별감과 나간 무

예별감이 딴사람이니 아니니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김억석이가 무예별

감에게 위조 전갈하고 죄상이 탄로될까 겁이나서 당집 안에를 못 들어오다가 무

예별감이 산 아래로 내려간 줄 안 뒤에 어찌 된 곡절이 궁금하여 숭늉 심부름을

빙자하고 당집 안에 들어와 보니 곳간 앞에 사람은 그림자도 없고 잠겼을 곳간

문은 뻐끔하게 열리었었다. 캄캄한 곳간 속에서 버스럭 소리가 나서 네사람이

다 곳간 속에 들어가 있는 줄로 짐작하고 뻐끔한 데로 캄캄한 속을 들여다보며

“여기들 기시우?” 하고 물어보니 한참 만에 “나만 여기 있네.” 하고 대답하

는 것이 배돌석이의 목소리었다. “이 속에 어째 들어와 기시우? 또 자물쇠는

어떻게 여셨소?” “반쇠 띄워논 걸 누가 못 열겠나.” “대체 이 캄캄한 속에

서 무얼 하시우?” “밧줄이 있나 찾아봤네.” “밧줄은 무엇에 쓰실라우?” “

무감을 결박지우려구.” “무감을 결박지우다니 방금 산 아래루 내려갔다먼요.”

“그건 정말 무감이 아닐세.” “누가 무감 복색을 뺏어 하구 나가셨소?”

“황두령이.” “키하구 몸집은 비슷 같을는지 몰라두 얼굴이 팔팔결 다른데 용

하게 속이구 나갔구려.” “눈깔 없는 군관들이 송기떡 군복에 속았겠지.” “하

여튼 용하게 빠져나갔소. 그럼 청석골 간 게구려.” “아직 말은 내지 말게.”

“그런 당부는 하실 것두 없소.” “밧줄이 있거든 하나 찾아주게.” “밧줄이

없을걸요.” “옳지, 낮에 그네터에 쓰던 무명 끗은 어디 있나?” “그건 이 속

에 있지요. 가만히 기시우, 내 찾아 드리리다.” 김억석이가 곳간 속에 들어와서

무명 두 끗을 더듬어 찾았다. “한 끗만 드리리까?” “넉넉히 두어 끗 주게.”

배돌석이가 무면 끗을 가지고 전각 안으로 오는데 김억석이도 구경하러 따라왔

다. 길막봉이가 소능로 붙잡고 다리로 누르고 있던 무예별감을 무명 두 끗으로

윗도리 아랫도리 친친 동이었다. 어둔 속이라 똑똑히 보이지는 않지만, 무예별감

의 꼴이 그네 위의 목상과 다름없는 듯하였다. 서림이가 무예별감의 아갈잡이한

것을 다시 고쳐서 숨 잘 쉬도록 콧구멍을 내놓아 준 뒤에 “서울서 오신 귀한

손님을 너무 참혹하게 대접해서 미안하우. 벙거지와 군복을 빌려 주셨으니 곧

고녀당 젊은 무당에게루 도루 가시게 해두 좋겠지만, 문 앞에 파수 보는 군

관들과 한데 섭쓸려서 짝자꿍이를 노실 염려가 불무한 까닭으로 이런 참혹한 대

접을 하우. 미안하지만 좀 참구 기시우.” 얄미운 말로 흠씬 조롱하고 “우리는

인제 나갑시다.” 하고 말하여 김억석이까지 네 사람이 다같이 전각 밖으로 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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