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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10)

카지모도 2023. 7. 4.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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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해가 거의 다 져서 매로바위에는 아직 햇발이 남아 있으나 층층대 아래

굿판에는 벌써 땅거미 다 되었다. 그네 뛸 사람도 훨씬 줄고 굿구경하던 사람도

많이 빠졌다. 굿은 점심 전 세 거리, 점심 후 일곱 거리, 모두 열 거리를 마치고

앞으로 두 거리가 남은 것을 저녁들 먹고 마저 하기로 되어서 상궁이 굿판에서

대왕당으로 올라오는데 당집 안에 잡인을 금하였다. 청석골 사내들은 김억석이

의 말을 좇아서 안식구들만 마루방에 남겨두고 밖으로 나와서 매로바위 밑에 와

모여앉았다. 길막봉이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태평이고 황천왕동이와 배돌석이도

별로 염려하는 빛이 없는데, 서림이만 혼자 조바심을 하였다. “천만이가 산밑에

다 내려갔겠지?” 조금 있다가 “천만이가 제 집에 갔을까?” 또 조금 있다가

“교군꾼이 지금쯤 여기 올라왔으면 좋겠다.”하고 연해 혼잣말을 지껄이었다.

배돌석이와 황천왕동이 두 사람에게 참혹하게 봉패한 왈자들은 관덕정 한량패

인데 총수효 열두 사람 중에서 칼에 죽은 사람이 하나요, 칼에 중상을 받은 사

람이 셋이요, 돌팔매에 면상만 상한 사람이 여섯이요, 칼도 안 맞고 돌팔매도 안

맞은 사람은 둘이나 하나는 아랫배를 발길에 걷어채여서 거의 다 죽게 되고 오

직 하나만 별로 상한 데 없이 성하였다. 죽은 사람은 도사의 아들이요, 성한 사

람은 도사의 문객이요, 그 나머지 한량들은 도사에게 활을 배운 사람이니 말하

자면 도사의 제자들이었다.

임꺽정이가 청석골을 웅거하고 있는 까닭에 지난해 삼월에 나라에서 송도 도

사를 특별히 호반으로 보내게 되었었는데, 호반도사가 송도에 내려온 뒤 사정에

드는 부비를 자기 녹미로 쓰고 활 쏠 줄 모르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가르쳐서

관덕정 한량들을 길러놓았다. 이날 도사의 아들이 자기 집 문객 한 사람과 동무

한량 중에 나이 젊은 장난꾼 열 사람을 데리고 굿구경을 나왔었는데, 굿구경보

다 계집 구경에 반하여 예쁜 계집만 듣보고 다니다가 큰 벌집을 모르고 건드려

서 아까운 목숨을 맹랑하게 버리게 된 것이었다.

상한 데 없는 문객과 상처 중하지 않은 한량들은 도사의 아들이 죽어자빠진

곳을 다시 가서 보고 즉시 육각거리 이아에 뛰어와서 도사를 보고 참혹한 변이

생긴 것을 고하는데, 변이 생기게 된 시초만은 젊은 계집 하나를 두 패가 서로

뺏으려고 하였다고 모호하게 말한 뒤에 변을 당한 것은 대강 다 사실대로 말하

고 끝으로 그 패가 흉기들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필시 적당이라고 붙이어

말하였다. 도사가 눈물도 안 내고 말도 안 하고 한참 동안 넋잃은 사람같이 앉

았더니 별안간에 “원수를 갚아 줘야지.” 듣는 사람이 초풍할 만큼 큰소리를

지르고 벌떡 일어났다. 도사가 통인 하나만 데리고 걸어서 유수아문으로 간 뒤

얼마만에 원문 안에서 불시에 긴 대답 청령 소리가 야단스럽게 나며 곧 군관청

의 군속들이 곤두박질 뛰어들어가고 서리청의 이속들이 썰썰 기어들어갔다. 한

동안 지난 뒤에 금도군관 서넛이 십여 명 군졸을 거느리고 송악산으로 살인범인

을 잡으러 나가는데, 그 뒤에는 관덕정 한량과 이아사령이 십여 명 따라나갔고

다시 한동안 지난 뒤에 유수가 도사와 비장과 검률, 형리, 사령, 기타 검시장에

청령할 관속과 도사의 문객, 부상한 한량 기타 검시장에 등대할 사람들을 거느

리고 부산동으로 친히 검시하러 나갔다.

부산동에 살인이 난 것을 부중 안에서는 빨리 안 사람이 금도군관 일행이 나

갈 때 알았고 대개는 유수 행차가 나갈 때 비로소 알았지만, 산 위의 구경꾼들

사이에는 군관 일행도 나가기 훨씬 전에 소문이 났었다. 이것은 구경꾼 중에 부

산동 살인난 것을 짐작한 사람이 더러 있었던 까닭이었다. “부산동서 살인이

났다네.” “기집 잃구 찾으러 갔던 사람이 쌈 끝에 살인했다네.” “백주에 남

의 기집을 훔쳐가는 놈들 죽어두 싸지.” “그 아주먼네 자네 똑똑히 봤나? 누

구든지 훔칠 생각 나겠데.” “아까 업구 오는 사람이 그 여편네의 사낼 테지.

그 사람은 선비같데. 그 사람이 사람을 죽였을까?” "뒤에 따라오는 우악스럽게

생긴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게지.“ ”옳지 ,그 사람이 손에 환두를 들고 오든구

먼. 환두 들구 오는 걸 보고 나는 벌써 일난 줄 알았네.“ ”그게 사람을 공기

같이 놀리던 장사야.“ ”살인할 번한 사람이 그예 살인을 했네그려.“ ”생김생

김이 사람 죽이게 생겼네.“ ”그 사람 일행이 지금 저 매로바위 밑에 앉았네.

도망을 하든지 자수를 하든지 양단간에 하지 않구 태평 앉았으니 무슨 믿는 구

석이 있는 모양이야.“ ”무얼 믿어? 잡으러 오길 기다리구 있는 게지.“ 산 위

의 구경군들은 대게 길막봉이를 살인 원범으로 알아서 이와 같은 말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에서 나왔었다. 서림이가 승교바탕이 오기를 기다리고 조바심을 하

는 중에 비탈 아랫길로 내려가는 사람들의 지껄이는 말이 들리는데, 길막봉이를

부산동 살인 범인으로 지적하는 말들이라 가슴이 선뜻하여 세 사람을 돌아보니

배돌석이,황천동이 두 사람은 다같이 빙글빙글 웃고 길막봉이 당자는 코방귀를

뀌고 있었다. 서림이가 손가락으로 황천왕동이의 몸을 직신직신하고 ”이 산 위

에까지 소문이 퍼졌을 때 젠 부중 안은 지금 발끈 뒤집혔을는지두 모르겠소. 아

무래두 우리가 이렇게 하늘만 쳐다보구 있다가는 큰코 다치겠소. 잠깐 내려가서

유수아문 동정을 좀 살펴보구 오시우. 내려가는 길에 교군꾼들을 만나거든 육

가각리까지 갈 것 없이 도루 올라오시구 육가각리를 가서 별반 동정이 없이 보

이거든 보은리까지 가서 교군바탕을 재촉하구 오시우.“ ”그래 봅시다.“ 대답

하고 곧 일러섰다. 황천왕동이가 부산동 뒷일이 궁금하여 한번 가보고 싶은 생

각이 있던 차이라 대답이 나갔던 것이다. 황천왕동이가 산 아래로 내려간 지 얼

마 아니 되어서 급한 걸음으로 도로 올라왔다. 서림이는 교순꾼을 만나서 도로

오는 줄만 여기고 오는 황천왕동이에게로 몇 걸음 나가면서 ”어디 옵니까?“

하고 물으니 황천왕동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큰일났소.“ 하고 대답 안

되는 대답을 하였다. ”큰일나다니 군관이 옵니까?“ ”언뜻 보기에 한 삼십 명

올라옵디다. 안식구들은 업든지 끌든지 하구 도망합시다.“ 배돌석이와 길막봉이

가 모두 일어섰다. 서림이가 손을 내저으며 ”지금 안식구들을 끌구 업구 도망

하다가는 창피만 더 볼 게니까 여기 앉아서 당할 도리를 생각합시다.“ 하고 잠

깐 동안 양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기울이고 있다가 ”자, 인제는 칼 물구 뛰엄

뛰기니 세 분은 아무 소리 말구 나 하자는 대루 하시우.“ 하고 말하는데 세 사

람은 모두 잠자코 있었다. ”우리 상궁을 가보구 말 좀 해봅시다.“ 서림이의 말

끝에 ”상궁더러 무슨 청을 하실라우?“ 황천왕동이가 물으니 ”나중 보면 아실

테니 다들 나만 따라오시우.“ 서림이가 앞서 휘적휘적하고 대왕당으로 오는데

세 사람도 하릴없이 그 뒤를 따라왔다. 대왕당 문간에 앉았던 상궁의 교군꾼들

과 박수들이 우 일어나서 못 들어오게 막는 것을 서림이가 잡아제치면서 ”우리

가 상궁마마께 뵈일 일이 있어 왔는데 왜 못 들어간단 말이노?“ 하고 언성을

높이었다. 들어간다거니 못 들어간다거니 떠들썩할 때 무수리 한 사람이 문간방

의 외쪽 지겟문을 열고 내다보며 왜 그렇게 떠드느냐, 마마께서 떠들지 말라신

다 말하여 구종벌레, 박수들이 무춤하는 틈에 네 사람은 모두 대왕당 안으로 들

어왔다. 대체 대왕당 집이 어떻게 된 집이냐 하면 위채 삼 간,아래채 삼간, 도합

여섯 간 집으로, 위채는 대왕과 대왕부인의 목상을 뫼신 이간 전각이 있고 전각

한쪽 머리에 단간 곳간이 있고, 아래채는 문간이 한 간이요, 서편으로 마루방이

반 간이요, 동편으로 방이 간반인데 마루방에는 북향으로 외쪽 지겟문이 있을

뿐이고 방에는 북향으로 쌍바라지가 있는 외에 문간으로 난 외쪽 지겟문과 동쪽

으로 난 들창이 있었다. 지금 청석골 안식구 여섯이 모로 세로 누워 있는 곳은

어둠침침한 반간 마루방이요, 상궁이 무수리, 각심이들을 데리고 사처한 곳은 좀

명랑하고 통창한 간반 방이다. 서림이가 지쳐놓은 쌍바라지 앞에 와 서며 세 사

람에게 오라고 손짓하여 줄느런히 늘어세우고 ”상궁마마께 문안

드립니다.“ 하고 소리치니 먼저 외쪽 지겟문으로 떠들지 말라고 말하던 무수리

가 쌀바라지를 열어젖힌 뒤에 다른 무수리에게 다리를 치이고 누웠던 상궁이 무

당들의 부축으로 일어 앉아서 밖을 내다보며 ”너이들이 누구냐?“ 하고 물었

다. 배돌석이는 한편 다리를 앞으로 내세우고 얼굴을 되돌고 있고 황천왕동이는

반몸을 비틀고 딴 데를 보고 있고 길막봉이는 어줍은 모양으로 몸을 가지고 두

리번거리고 있는데, 서림이 혼자 두손길을 맞잡고 공손히 허리를 굽히었다. ”상

궁마마께서 해서대적 임꺽정이의 명자를 들어 기신지 모르겟습니다만, 저이는

임꺽정이 수하에 있는 두령들이올시다.“ 서림이의 말 한마디에 방안에 있는

상궁 이하 여편네들은 고사하고 당집 안마당에 들어섰는 교구꾼들까지도 모두

다 놀라는 모양이 현저하였다. ”이번에 임대장의 부인이 두령의 안식구 다섯을

데리구 굿구경을 오는데 저희는 보호하러 따라왔습니다. 보호할 직책을 가진 저

희가 한만히 다른 데 놀러간 틈에 잡놈을 십여 명이 떼를 지어 가지고 와서 대

장 부인과 안식구들을 때려눕히구 안식구 하나를 붙들어갔습니다. 일 다 난 뒤

에 저희가 비로서 알구 그놈들 뒤를 밟아서 부산동을 좆아가서 다 죽게 된 안식

구를 찾아왔습니다. 그놈들 십여 명이 수 많은 것을 믿구 저희에게 대들다가 몇

놈은 중상하구 한 놈은 죽었는데 말 들으니 죽은 놈이 지금 송도 도사의 아들이

랍니다. 도사가 제 아들이 죽어 마탕한 짓 한 건 생각 않구 아들 원수를 갚으려

구 송도부 금도군관을 있는 대루 다 풀어 내놓을는지두 모릅니다. 그런 줄을 알

면서두 저희는 대장 부인과 다른 안식구들이 꼼짝 운신을 못하는 까닭에 얼른

피신을 못하구 이러구 있습니다. 저희가 올 때 저희 대장 본부내에 대왕대비 치

성굿판에서 야료를 내지 않두룩 조심하라구 하셨는데, 지금 사세가 큰 풍파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만이면 대장 분부두 있구 하니 어찌 되든지

순순히 잡혀가기라두 하겠는데, 대장 부인과 다른 안식구들을 군관의 손에 넣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가 죽거나 군관들이 죽거나 끝장나두룩 싸울밖에 없습니다. 저희

네 사람에 저 하나만 오죽지 않지 하나는 고금에 드문 석전군이요, 하나는 비호 같

은 사람이요, 또 하나는 아까 그네터에서 사람 공기 놀렸다고 떠들던 천하 장사

니까 적어두 열 곱절 사십 명 사람쯤 죽이기 전에는 문문히 죽지 않을 겝니다.

대왕대비 치성굿이 아직 끝두 나기 전에 대왕당 안에 뭇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

은 저희의 본의두 아니요, 더구나 저희 대장의 분부두 아닙니다. 대왕대비 몸받

아 오신 상궁마마를 놀라시게 할 일이 황송해서 미리 말씀을 여쭙는 것이올시다.

“ 서림이의 말이 거침없이 흐르는 물과 같았다. 서림이가 말을 그친 뒤 한참만

에 상궁이 외면하고 ”쌈을 하더라도 당집 테 밖에 나가서 하면 어떻소?“ 하고

말하였다. ”대장 부인 이하 여러 안식구들이 저편 마루방에 와 있는 가닭에 여

기를 떠날수가 없군요, 도 당집을 성삼아서 의지하구 싸우는 것이 저희에게 유

리한 까닭에 다른 데루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럼 안식구들은 내가 담당하고

잡혀보내지 않을 테니 항거들 않고 잡혀가겠소.“ ”말씀하긴 황송하오나 마마

께서 담당하시는 걸 저희가 믿을 수 있습니까. 피차간에 좋을 도리는 꼭 한 가

지 있습니다.“ ”무슨 도리요?“ ”공사를 내가 어찌 막겠소.“ ”대왕대비의

몸을 받아오신 마마께서 대왕대비의 치성굿을 하시는 날이니 마마께서 당집에

들어온다구 말씀만 하시면 군관은 말할 것두 없구 송도유수라두 문안에 발을 들

여놓지 못할 줄 압니다.“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이오?“ ”저희가 오늘 밤

안으루 안식구를 모면하두룩 조처해 놓구 밝는 날 식전에 잡혀가겠습니다. 그러

면 치성굿은 무사히 끝나구 마마게서는 목전에 사람들 죽은 걸 보시지 않구 또

저희는 저희 직책을 다하게 될 테니 이리저리 다 좋지 않습니까.“ ”나는 굿이

끝나면 곧 산 아래로 내려갈 사람이오.“ ”오늘 밤 삼경까지만 여기 계셔 주시

면 저희 조처두 그 안에 다 될 듯합니다. 그러구 굿은 앞으루 걸립과 뒷전이 남

았다니까 마마께서 친히 굿자리에 내려가 보시지 않아두 좋겠습지요. 하여튼지

삼경까지는 마마께서 잠시라두 이 방을 떠나시면 안됩니다. 저희가 이 방 밖에

서 뫼시구 있겠습니다.“ 상궁은 한다 못한다 말이 없었다. 대왕당 성관이란 검

은 학골 늙은 무당이 상궁 옆에 가까이 가서 귓속말을 하듯 소곤소곤 여러

말을 지껄이고 상궁이 무수리 하나를 보고 나직나직 몇 마디 말을 이르더니 그

무수리가 곧 외쪽 지겟문을 열고 교구꾼과 박수들을 내다보며 ”마마 말씀이 없

이는 누구든지 당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시니 그리들 아우.“ 하고 말을

일렀다. 이때 당거미 어두워서 무당이 상궁 밖에 촛불을 켜고 일꾼들이 당집 바

깥마당에 큰 횃불을 놓고 또 안마당에 화톳불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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