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밤이가 소홍이 집에 와서 꺽정이를 보고 술값 줄 것을 저녁거리라고 말하고 달라다가
빈손으로 쫓겨나왔을 때, 골목 밖에서 기다리던 졸개가 쫓아와서 술값이 변통되었느냐고
물으니 노밤이는 고개를 가로 흔든 뒤 다른 데나 가보자고 남소문 안으로 같이 왔다.
한온이가 첩의 집에를 갔는지 사랑에 있지 아니하여 노밤이가 서사를 보고 “
상제님 작은 댁에 가셨소? ” 하고 물으니 서사는 무엇에 골난 사람같이 “난
몰라. ” 대답하는 것이 퉁명스러웠다. 서사더러 말을 더 물어야 말만 귀양 보낼
줄 짐작하고 노밤이가 사랑에서 나와서 중문밖에 세워 두었던 졸개를 데리고 한
온이의 가장 사랑하는 작은첩의 집에 와서 문간에서 하님을 불렀다. 누가 왔나
보러 나온 계집아이년더러 “상제님 여기 기시냐? ” 하고 물은즉 계집아이년이
대답 않고 들어갔다가 얼마 만에 다시 나와서 상제님 안 오셨다고 대답하는 것
이 한온이가 안에 있느며 없다고 따는 모양이나, 쫓아들어가서 치고 뺏지 못할
바엔 할 수가 없었다. 노밤이가 한온이에게 술값을 조르려고 장대고 온 것이 틀
리고 보니 다시 돌아서 말할 데도 없고 말할 데가 있다고 하더라도 더 가고 싶
지 아니하여 졸개를 보고 “인제 나는 집으로 가구 너는 동소문 안으루 가는 수
밖에 없다. ” 하고 말하니 졸개는 다짜고짜로 노밤이의 멱살을 잡고 “이놈아,
볼모 잡히구 온 사람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 ” 하고 소리를 질렀다. 노밤이가
멱살 잡은 졸개의 손을 뿌리치면서 “가만 있거라. 어디 다시 생각해 보자. ”
말하고 한참 만에 “칼 물구 뛰엄뛰기나 한번 해볼까. ” 혼자말하듯 말한 뒤
졸개를 끌고 남성밑골 박씨의 집으로 왔다. 노밤이가 박씨를 보고 “ 세분이 지
금 장찻골다리 소홍이 집에서 약주들을 잡숫는데 댁선다님께서 그 집 사람들에
게 행하를 주시려는지 상목 한 필 부담상자에서 꺼내 줍시사구 해서 가지구 오
라구 하십디다. ” 하고 능청스럽게 거짓부리를 하여 박씨가 속는 줄을 모르고
상목 한 필을 꺼내주었다. 노밤이와 졸개가 한달음에 술집으로 와서 그 집의 자
와 가위를 얻어가지고 두자치로 끊어서 그중에서 먼저 먹은 술값을 치러 주고
새로 먹을 술값까지 선셈하였다.
노밤이가 지난번 남성밑골서 등밀려 쫓겨난 것과 절에 갔다 들어오는 길에 길
에서 망신한 것이 다 잊혀지지 않는데다가 이번 기생의 집에서 꼭두잡이당할 뻔
한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꺽정이가 밉기 짝이 없었다. 미움이 쇠하여 악으로 변
하여 노밤이는 번히 포교가 않에 있는 줄 알면서 “너이 대장이 환장했더라. ”
“대적 소리를 듣는 사람이 다랍게 상목 한두 필을 아낀단 말이냐? ” “청석골
두 더 볼 것 없다. 너이두 진작 알아채려라. ” 이런 말을 드러내놓고 떠들었다.
졸개들이 기가 막혀서 “이 자식이 술취했나? ” “저녁때 다 되었네. 고만 일
어나세. ” 둘이 먼저 일어서서 옷에 묻은 먼지들을 떠는데, 노밤이는 좌우손으
로 졸개들의 옷소매를 잡고 “먹든 술이나 마저 다 먹구 가자. ” 하고 일어서
지 아니하였다. 졸개들이 노밤이에게 붙들려 다시 주저앉아 남은 술을 다 먹고
남은 상목을 나뉘서 허리춤에 지르고 술집에서 나서니 이때 해는 벌써 서산에
걸치었었다. 술집에서 나와서 두어 간 동안도 채 못 왔을 때 뒤에서 “여보 이
분들 술값 내구 가우. ” 하고 소리를 지르며 수건으로 머리 동인 하나가 쫓아
와서 셋이 다같이 돌아섰다. “술값이 무슨 술값이오. ” 노밤이가 물으니 “당
신들 술 먹구 언제 술값 냈소? ” 그 사람은 바로 목자를 부라리었다. “
우리는 술값 선셈하구 먹었소. 정신 없는 소리 하지 마우. ” “술값 선셈이란
게 다 무어요? 세상 천하에 선셈하고 술먹는 놈두 있습디까. ” “긴말 하기
싫으니 술집 아낙네에게 가서 자세히 물어보우. ” “지금 나더러 술값을 받아
달라는데 무얼 자세히 물어보란 말이야! ” “우리 먹은 술값을 정녕 안 받았다
구 합디까? ” “술을 두 차례 먹구 먼저 한 차례 값만 냈다구 합디다. ” “그
집 아낙네의 조카 되는 포교가 받았으니 그 포교를 이리 불러가지구 나오. ”
“포도군관은 벌써 자기 집으로 갔는걸. ” “그 포교가 받아가지구 안 내놓구
간게요. 내놓았거나 안 내놓았거나 그게야 우리가 알 배때기 있소. ” “무엇이
어째! 포도군관이 중간에서 술값을 훔쳐먹었단 말이야? 별 웃은소리 다 듣겠네.
” “웃은소리라두 훔쳐먹은 걸 어째란 말이야! ” “포도군관을 불러올께 삼주
대면합시다. ” 이렇게 술값으로 실랑이가 벌어져 세 사람이 다시 술집에 와서
포교 불러오기를 기다리는데 가까이서 산다는 포교가 부르러 간지 한식경이 되
어도 오지 아니하여, 얼마 안 되는 술값이니 재징이라도 물어주고 가자고 셋이
공론하는 중에 포교 사오명이 일제히 손에 방망이들을 빼어들고 풍우같이 들이
닥치었다.
그 안침술집 안여편네의 친정 조카는 포교 구실을 다닌 지 불과 몇 해 안 되
는 애송이나 사람이 워낙 영리하여 좌포청에서 한몫 보는 포교이었다. 이날 우
연히 저희 고모를 보러 왔다가 공술 먹고 도망하려던 술꾼 셋을 붙들어서 술값
을 받아내는데, 그 술꾼들의 인물이 아무리 보아도 좀 수상하여 잡아서 등을 치
며 뜻밖에 밥을 토할 것 같으나 그래도 혹시를 몰라서 손댈 마음을 먹지 못하고
있던 차에 저희들 아가리에서 대장이니 대적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듣고
곧 잡아 옭히려니 혼잣손에 셋이 버거워서 동무 포교들을 데리러 가는데 눈치를
들리지 아니하려고 문으로 나가지 않고 안 뒷담을 넘어 나가고, 또 갈 때 근처
의 막벌이꾼 하나를 얻어서 술꾼들이 가려고 하거든 시비를 붙든지 쌈을 걸든지
수단껏 하여 자기 오기 전 못 가게 하라고 이르고 갔었다. 이리하여 노밤이와
졸개들은 술집에서 좌포청으로 들려오게 되었다.
서울 처음 온 졸개는 사람이 제법 다부져서 잡힐 때 순순히 잡히지 않고 뒤트
레방석으로 포교들의 면상을 냅다 쳐서 포교 두서너 사람 얼굴에 생채기까지 내
주었으나, 그 대신 포교들 방망이에 머리가 깨졌었다. 포청에 온 뒤에 포교들이
이 졸개를 맨먼저 끌어다가 제잡담하고 방망이로 사다듬이 한 차례 하고 비로소
말을 물었다. “너이가 대장이 있을 젠 뜨내기 좀도둑놈이 아니구나. 너이 대장
이란 게 어디 사는 어떤 놈이냐? 죽더래두 곱게 죽구 싶거든 얼른 바루 대라.
” “멀쩡한 양민을 도둑놈으루 모니 이게 무슨 일이오? 대장이란게 무언지 난
생전 듣두 보지 못했소. ” “이놈 양민 봐라. 옳지, 대장이란 건 듣두 보두 못
했겠다. 네가 얼마나 안 불구 배기나 어디 보자. ” 말 묻는 나이 많은 포교가
포교 중 영수인 듯 다른 포교들을 돌아보며 “올곧게 불기까지 사그리 조기게.
” 하고 일러서 툭툭한 보병것이 피투성이 되도록 몹시 얻어맞았거난, 이 졸개
는 줄곧 불지 아니하였다. “이놈은 치어놓구 다른 놈을 조겨 보세. ” 그 졸개
는 묶어서 한구석에 처박아놓고 다른 졸개를 밖에서 끌어들여왔는데, 이 졸개도
방망이로 한 차례 톡톡히 얻어맞고도 먼저 졸개와 같이 도둑놈이 아니요, 대장
이 없다고 잡아떼었다. “너이놈들이 방망이찜질은 무서워하지 않는 모양이니
학춤을 한번 추어 봐라. ” 나이 많은 포교가 다른 포교들을 시켜서 이 졸개를
두 활개 벌려서 동그마니 매어달고 아랫도리에 잔채질을 하였다. “묻는 대루
다 말할테니 끌러놔 주시수. ” “너이 대장이 누구냐 대라. 그러면 끌러놔 주
마. ” “임꺽정이요, 임꺽정이. ” 포교들이 모두 놀라는 얼굴로 서로 돌아보는
중에 “이놈 거짓말이지? ” 나이 많은 포교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거짓말
이라면 할 수 없지요. ” “꺽정이가 지금 어디 있느냐? ” “청석골 있소. ”
“너이는 어째 서울에 와 있느냐! ” “서울 심부름 왔소. ” “무슨 심부름? ”
“물건 사러 왔소. ” 나이 많은 포교가 다른 포교들을 보고 “말이 맞나 한 놈
마저 물어보세. ” 하고 말하여 그 졸개도 먼저 졸개와 같이 묶어서 한구석에
처박아 두고 맨 끝으로 노밤이를 끌어들여왔다. 노밤이는 방망이로 두서 너 번
얻어맞은 뒤 곧 “때리지 마루. 내가 다 이야기해 주리다. ” 하고 말하였다. “
너이 대장의 성명이 무어냐? ” “저기 저놈들은 대장이 있어두 나는 내가 대장
이오. ” “네가 저놈들의 대장이란 말이냐? ” “아니오. 저놈들의 대장은 임꺽
정이오. ” “그럼 너두 꺽정이의 부하지 네가 대장이란 게 다 무어냐? ”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우. 나는 본래 강원도 철원서 사령 다니던 사람인데 상처
하구 홧김에 난봉을 부리다가 천량두 까불리구 구실두 날리구 살 수가 없어서
작년에 서울에 올라봐서 벌잇자리를 이리저리 구하는 중에 어떤 사람의 인권으
루 어떤 집에 가서 비부를 들었었소. 처음에는 주임이 임선달인 줄만 알았더니
차차루 알구 보니까 그 임선달이란 게 곧 해서 대적 임꺽정입디다. 대적의 집인
줄 안 뒤에야 하룬들 거기서 살 수 있소? 그래서 나는 그 집에서 나와서 따루
사우. 그 집에서 두서너 달 있는 동안에 저놈들하구 얼굴이 익었는데 오늘 길에
서 만나서 술 한잔 사내라구 자꾸 조릅디다. 저놈들은 무서울 거 없지만 저놈들
뒤에 있는 임꺽정이가 무서워서 저놈들을 얼렁얼렁 어루만져 배송낼라구 술집에
를 데리고 갔었소. ” 노밤이가 힘도 안 들이고 수월수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포교 다니는 사람은 버릇이 양민도 도적놈으로 보려고 하고 참말도 거짓말로
들으려고 하여 양민을 도적놈으로 그릇 알망정 도적놈을 양민으로는 좀처럼 그
릇 알지 않고 참말을 거짓말로 속을 망정 거짓말을 참말로는 좀처럼 속지 아니
하므로, 노밤이의 힘 안들이고 하는 거짓말이 흡사 참말 같았지만 그 말을 곧이
듣고 흉물스러운 화상을 양민으로 여기는 넉적은 포교는 하나도 없었다. 나이
많은 포교는 곧이듣는 것처럼 연해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네가 도둑놈의 동류
아니구 긴것은 나중에 자연 핵변이 될테니 발명 고만하구 꺽정이 집이 어느 동
넨가 그게나 일러주게. ” 해라하던 말투까지 하게로 고쳐 말하였다. “집구경을
가실라면 몰라두 꺽정이를 잡으러 가실라면 그 집에 가서 소용없소. ” “꺽정
이가 지금 그 집에 없나? ” “그 집에 없으니까 말이지요. ” “그럼 어디 가
있나? ” “꺽정이를 잡으면 나두 상금을 후히 주실라우? ” “우리가 상금을
후히 준다구는 말할 수 없지만, 후히 받두룩은 해줄 수 있네. 염려말게. ” “그
럼 좌우포청 사람을 한 백 명 모아 가지구 나하구 같이 갑시다. ” “좌우포청
이 쏟아져 나가거나 오위군사가 풀려나가거나 그건 자네가 아랑곳할 것 없구 꺽
정이가 있는 데만 말하세. ” “글쎄, 내가 가르쳐 줄테니 같이 갑시다. ” “같
이 갈 때 같이 가더래두 우리가 먼저 알아야겠네. 말하게. ”“꺽정이가 장통방
에 사는 기생 소홍이 집에 있기가 쉽소. 거기 없으면 두서너 군데 다른 데 가
보면 영락없이 있을 게요. ” “꺽정이가 기생방에 갔으면 저 혼자 갔겠지? ”
“그건 알 수 없소. 부하를 너더댓 데리구 갔을는지 모르우. ” “꺽정이 부하가
서울 안에두 많은가? ” “아니오. 청석골서 데리구 온 놈들이오. ” 나이 많은
포교가 술집 여편네의 조카 되는 포교를 옆으로 오라고 손짓하여 불러가지고 “
우선 시급히 대장댁에 가서 품할까, 더 자세히 문초들을 받을까 자네 들어가서
부장나리께 여쭤 보게. ” 하고 이른 뒤 다시 노밤이를 보고 “자네 참 성명이
무어냐? ” 비로소 성명을 물으니 노밤이가 본성명은 감추고 전에 들은 철원 사
령의 성명 하나를 빌려서 “김춘선이오. ” 하고 대답했다. “나이는 몇살인가?
” “마른이 이마 위에 와닿았소. ” 노밤이 옆에 가까이 있던 젊은 포교가 노
밤이의 귀싸대기를 철컥 우리고 “이놈이 서른 아홉이면 서른 아홉이라구 마흔
이면 마흔이라지 이마 위에 와닿은 건 다 무어냐! ” 하고 꾸짖었다. 노밤이는
얻어맞은 귀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비비다가 손바닥을 떼고 고개까지 흔들어본
뒤 “귀가 먹먹해 죽겠네. 귀창이 떨어졌나 보우. 그만 말에 그렇게 손찌검할 거
무어 있소? ” 하고 두덜두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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