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은 포교가 노밤이의 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한참 만에 “여기가
자네 집 안방이 아니니 말대답을 조심해서 하게. ” 하고 타이르듯 말하니
“인제는 무슨 말을 묻든지 대답 안할 테요. ”
노밤이의 입술이 열닷 발이나 앞으로 나왔다. “대답을 안 하면 더 경치지
별수 있나. ” “무슨 물을 말이 더 있소? ” “있다마다. 인제 겨우 부리만 헌
셈인데. ” “사람을 기름을 내릴 작정이구려. ” “쓸데없는 소리 고만하구 물
을 말이나 좀 물어보세. 꺽정이 집종년을 아직두 데리구 사나? ” “그 집에서
나올 때 그년을 내버리구 나왔소. ” “그러면 지금은 홀아빈가? ”“그렇소. ”
부장청에 들어갔던 포교가 도로 나오더니 “부장 나리가 대장댁에 가서 지휘를
물어가지구 오실 테니 그 동안에 번난 사람들을 불러모으라구 하시구 만일 우변
사람이 알면 되지 못하게 가리를 들기가 쉬우니 알리지 않두룩 하라구 하십디
다. 그러구 저놈들을 앞장세우구 갔다가는 어수선한 틈에 도타할 염려가 없지
않으니 아직 남간에 접어 너두었다가 장통방에 갔다와서 다시 문초를 받게 하라
구 하십디다. ” 하고 말하고 노밤이와 졸개들을 굴속 같은 간으로 끌려들어가
게 되고 포교들은 번난 동무들을 부르러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얼마 동안 지
난 뒤에 포도부장 하나가 포교 이십여 명을 거느리고 장통방으로 나가는데, 이
때 밤은 이경 가까웠고 달은 대낮같이 밝았다.
장찻골다리에서 소홍이 집을 찾아가자면 다리 남쪽 큰 골목을 십여 간쯤 나가
다가 동쪽 실골목으로 꺽이는데, 그 실골목이 사람 서넛만 늘어서면 팔 놀리기
거북할 만큼 너비도 좁다랗거니와 길이 역시 짤막하였다. 실골목 안을 들어서면
바른손편은 큼직큼직한 집 뒷담이요, 왼손편은 작은 집들 문앞인데 맞은바라기
서향으로 문난 집은 치지 말고 작은 집이 모두 다섯 채에 안침 다섯째가 소홍이
의 집이었다.
소홍이의 집은 기역자 원채에 안방, 안방 부엌, 대청, 건넌방이 있고 일자 아
래채에 문간, 뜰아랫방, 광이 있는데, 서쪽 안방 뒤와 북쪽 대창 뒤와 동쪽 장독
대 담 너머는 삥 돌아 남의 집이요, 오직 남쪽 아래채 앞이 실골목이다. 아래채
가 광 있는 쪽은 막다른 집행랑 뒷벽과 나란하나, 문간 있는 쪽은 옆집보다 조
금 앞으로 나와서 문간과 안방 부엌 모퉁이에 조그만 기역자 담이 끼었는데 그
담 위에는 좀도적 방비로 두깨그릇 깨어진 것이 수북하게 얹혀 있었다.
소홍이 집을 찾아오는 손님이 수효도 많거니와 그 손님들이 열의 여덟아홉은
조신치 못하여 아닌 밤중에 드잡이놓을 때도 있고 오밤중까지 떠들 때도 많아서
이웃 불안이 적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소홍이 집 문이 일찍 닫히는 날 밤에는
드잡이도 안 나고 떠들지도 않으므로 이웃집 사내들은 “그 기집년 잘두 물어들
인다. ” 하고 웃고 여편네들은 “오늘 밤엔 조용하겠구먼. ” 하고 좋아하였다.
이날 소홍이 집의 저녁밥은 대중없이 늦어서 인정 친 뒤에 겨우 끝났으나, 문
만은 초저녁부터 닫아 걸고 오는 손님들은 모조리 따돌리었었다. 밤이 이경쯤이
나 되었을 때 누가 와서 문을 두들기는데 하도 몹시 두들기어서 조석해 주는 여
편네의 사내가 뜰아랫방 들창문을 치어들고 밖을 내다본즉 평량자 쓴 사람 하나
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며 문짝을 두들기다가 들창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뒤
로 물러나섰다. “누굴 찾소? ” “임씨 성을 가진 양반이 지금 여기 와 기시
우? ” “어디서 왔소? ” “그 양반의 친구 양반들이 알아오라십디다. ” “지
금 여기서 약주를 잡수시우. ” “몇 분이 기신가요? ” “세분이오. ” “네,
잘 알았소. ” 소홍이 집에 있는 사람이 들창문을 닫고 돌아서서 눈뜨고 누워있
는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내려다보며 “가서 말씀해야지? ” 하고 물으니 두
사람이 다같이 고개 끄덕이는 시늉을 하였다. 그 사람이 안방에 있는 꺽정에게
사람 왔다간 것을 말하러 간 동안에 신불출이와 곽능통이가 서로 돌아보며 “누
가 알러 보냈을까? ” “남소문 안에서 보냈는가베. ” “초상 상제가 설마 기
생방에 올라구. ” “그 외에는 여기 와 기신 줄을 짐작할 사람이 별루 없는걸.
” “우리는 남성밑골루 못 가구 여기서 자는데 서울 사람은 인정친 뒤에두 맘
대루 나다니는 모양일세. ” “순라에 잡히지 않는 무슨 표나 패를 가지구 다니
는 게지. ” 이런 말들을 지껄이었다. 꺽정이가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는 저녁들을
먹여서 남성밑골로 보내려고 한 것이 저녁밥을 다 먹기 전에 인정을 쳐서 순라
에 잡히지 않도록 보내려고 궁리하는 것을 소홍이가 보고 그대로 밤들을 지내고
가게 하라고 말하고, 조석해 주는 여편네는 늙은이와 아이년이 자는 건너방에
가서 자게 한 뒤 그 여편네의 사내와 셋이 같이 뜰아랫방에서 자게 한 것이었
다. 신불출이와 곽능통이가 왔다간 사람이 어디서 온 것을 물어보지 않은 탓으
로 꺽정이에게 불려 올라가서 꾸중 실컷 듣고 내려온 뒤, 한식경이 채 못 되었
을 때 안방 부엌 모퉁이에서 질그릇 깨어지는 소리가 나서 신불출이가 소홍이
집 사람보다 먼저 방문을 열치고 내다보니 기역자 진 담 위로 사람의 얼굴 하나
가 보이었다. “그게 웬놈이냐? ” 신불출이가 소리치자, 곧 그 얼굴이 아래로
내려가더니 한참 만에 다시 더 불끈 솟아오르며 담 위에 얹힌 깨진 그릇을 마당
으로 집어던져서 짜끈짜끈 소리가 나고, 또 한편에서는 문짝을 부수는 듯 우찌
끈 우찌끈 소리가 났다. 뜰아랫방의 사내들은 다시 말할 것 없고 안방의 사내들
까지 모두 마당으로 쫓아나왔다.
포도부장이 포교들을 거느리고 꺽정이를 잡으로 나올 때 꺽정이가 과연 소홍
이 집에 있는가 알려고 포교 하나를 앞서 보냈는데, 그 포교가 눈치를 들리지
아니하려고 고의적삼 바람에 평량자를 쓰고 갔었다. 포도부장과 포교들이 장찻
골다리 북쪽 천변에까지 왔을 때 앞서 보낸 포교가 겅충겅충 다리를 건너와서
부장을 보고 꺽정이와 그 동류 두 놈이 지금 소홍이 집에서 술들 먹더라고 고하
여, 이제 남은 것은 소홍이 집에를 어떻게 들어가랴뿐인데 문을 속여 열리자니
기생의 집이라 한번 닫은 문은 좀처럼 열어줄 리가 없고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니 흉악한 도둑놈 세 놈이 미리 준비를 차리고 있다가 싸우러 덤빌 것이라 다
신통지 못하고, 한 가지 된 수는 가만가만 담들을 넘어들어가서 세 놈이 미쳐
준비를 차리기전에 칼과 창을 앞으로 들이대고 꿈적 말라면 제아무리 신출귀몰
하기로서니 곱게 잡히지 별수 없을 것이다. 부장이 담 넘어들어갈 꾀를 말한 뒤
사다리 얻어올 공론을 내고 포교 중의 한 사람이 수표교 근처에 사는 친척의 집
에 사다리가 있다고 동무 포교 두엇을 데리고 그 집에 가서 사다리를 들고 왔었
다. 실골목 앞까지는 예사 걸음들로 걸어오고 실골목 안에 들어올 때는 부장이
단속하여 발자취 소리들을 내지 않고 사뿐사뿐 걸었다. 포교들이 부장의 지휘를
좇아 소홍이 집 부엌 모퉁이 담에 사다리를 기대어 세우고 가만히 넘어갈 준비
로 사다리 위에 서넛이 층층이 올라서서 도깨그릇 깨진 것을 집어 내리는 중에,
어떤 것이 위아래가 서로 엇걸려 엊히었던지 위의 것을 집어들자마자 아랫 것이
땅에 떨어져 요란스러운 소리가 나서, 이왕 발각난 바에는 얼른 깨진 그릇을 치
우고 담으로도 넘어가서 닫힌 문짝을 부수고 문으로도 들어가게 하라고 부장이
포교들을 재촉하였었다.
꺽정이가 마당에 내려와서 휘휘 돌아보다가 광 앞으로 뛰어가서 발을 구르며
몸을 솟치었다. 손이 처마 끝에 닿자, 몸이 바로 지붕위에 올라갔다. 꺽정이가
뜰아랫방 지붕 댓마루 가까이 와 서서 밖을 내다보니 실골목 안에 포교가 가득
한데 칼과 창을 가진 자도 여럿인 듯 번쩍번쩍 빛이 났다. “이눔들 내 말 들어
라! 내가 지붕에서 지붕으로 뛰면 넉넉히 피할 수 있지만 너이눔들을 피해갈 내
가 아니다. 너이눔들이 나를 잡겠다구? 같지 않은 눔들 같으니! ” 꺽정이가 큰
소리를 지른 뒤에 지붕 댓마루의 수키왓장을 손에 닿는 대로 벗기어서 포교들을
내리쳤다. 포교 두서넛이 아이쿠지쿠 하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포표부장이
보고 “이애들, 빨리 골목 밖으루 나가자. ” 하고 소리쳤다. 포교들이 머리를
싸고 골목 밖으로 몰려나갈 때 그중의 담기 있는 사람들이 고꾸라진 동무를 잊
지 않고 끌고 나갔다. 꺽정이가 실골목 안을 두루 살펴보고 지붕에서 문 앞으로
뛰어내리며 곧 담에 세운 사다리를 들고 와서 뉘어서 길이로 뻗쳐들고 골목 밖
에 결진하고 섰는 포교들을 쫓아나가며 “사닥다리루 너이눔들을 모주리 때려죽
일 테니 내빼지 말구 게섰거라! ” 하고 호통하였다. 포교 대여섯이 앞으로 나오
는 사다리 끝을 붙잡아서 뺏으려고 하다가 꺽정이가 한번 흔드는데 모두 허깨비
같이 나가떨어졌다. 포교들은 차치하고 포도부장부터 속으로 겁이 나서 장찻골
다리 천변으로 뒷걸음을 치기 시작하였다. 이봉학이 황천왕동이 신불출이 곽능
통이 네 사람이 이때 비로소 꺽정이의 뒤에 쫓아나오는데, 이봉학이는 고양이
잡으려던 활과 화살을 가지고 나왔다. 포도부장이 뒷걸음으로 천변까지 다 나와
서 포교들을 돌아보며 “이러다가는 저놈들을 잡지 못하구 놓치겠다. 활을 안
가지구 온 것이 실책이다. ” 하고 말할 때 봉학이가 활을 포도부장에게 그어대
었다. 부장이 눈결에 이것을 바라보고 급히 몸을 굽히었으나, 몸 굽히는 것보다
살 오는 것이 더 빨라서 어깨바디에 살을 맞고 옆으로 비실걸음을 치다가 개천
에 떨어졌다. 활과 화살이 모두 못쓸 것이고 또 부장의 몸이 움직인 까닭에 산
멱통으로 들어갈 살이 어깨바디로 흐른것이었다. 부장이 살 맞고 나가떨어지자
포교들이 와 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하는데 기왓장 맞은 포교들은 멀리 도망
하지 못하고 개천에 뛰어들어가서 다리 밑에 엎드렸다.
꺽정이가 사다리를 들고 천변까지 쫓아나와서 위로 광제교쪽과 아래로 수표교
쪽을 이리저리 바라보더니 포교들의 도망하는 꼴이 우습든지 한번 껄껄 웃고 사
다리를 개천에 내던졌다. 개천가 건바닥에 환도 하나가 떨어져 있어서 황천왕동
이가 집어오려고 뛰어내려가는 것을 화살 맞은 자가 죽었는가 보러 가는 줄로
꺽정이가 생각하고 “그깐눔 죽었거나 살았거나 들여다봐 무어하느냐. 고만두고
올라오너라. ” 하고 말을 일렀다. “아니오. 칼 집으러 내려왔세요. ” “그게
그눔의 칼인가 부다. 이왕 칼을 집을 바엔 그눔의 몸에 칼집이 있나봐라. ” 황
천왕동이가 환도를 집어서 손에 든 뒤에 사지를 뻗치고 있는 부장에게 화서 허
리에 찬 환도집을 떼었다. 부장은 어깨바디에 화살을 맞을 때 과녁박이 자리를
얼른 비키려고 할 정신까지 있으면서 자시 선 곳이 다리와 천변의 어름인 것을
생각을 못하고 그대로 옆으로 비켜나가다가 한 길이 넘는 개천 속에 모로 나가
떨어지는데, 옹이에 마디로 머리를 빨랫돌에 부닥뜨리고 기절하여 다 죽은 송장
같이 되어 있었다. “화살 맞구 죽은 눔 외에 다리 밑에 숨어 있는데 어떻게 할
까요? 마저 다 죽여버리까요? ” 황천왕동이가 아래서 묻는 것을 “그깐눔들 내
버려두구 얼른 올라오너라. ” 하고 꺽정이가 대답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천변에
올라와서 “이 칼 형님 드릴까요? ” 하고 집에 꽂은 환도를 앞으로 내미니 꺽
정이는 받아서 날을 뽑아 달빛에 비추어보며 “그대루 쓸 만한가 보다. ” 말하
고 집에 도로 꽂아서 허리춤에 지른 뒤 “인제 고만 들어가지. ” 하고 이봉학
이를 돌아보았다. “다시 들어가는 것이 부질없지 않아요? 바루 가시지요. ” “
의관이나 해야지. ” “불출이 능통이더러 가서 가지구 나오랬습니다. ” “다른
데루 간다면 어디루 가는 게 좋을까? ” “내 생각엔 지금 바루 성 밖으루 나가
는 게 제일 상책일 것 같습니다. ” “월성하잔 말인가? ” “월성할 것 없이
오진수 구녕으루 나가 봅시다. ” “동소문 안에 있는 아이들은 어떻허구? ”“
그놈들은 나중에 소문 들으면 저이대루 오겠지요. ” “오늘 밤 동소문 안에 가
서 자구 내일 아주 다 데리구 가는 게 좋지 않을까? ” “내일은 성문에서 기찰
을 심하게 할걸요. ” “그두 그래. 그럼 긴말할 것 없이 밤에 오간수루 나가세.
” 꺽정이와 이봉학이가 수작하는 동안에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는 세 사람의 옷
깃을 나눠 들고 나와서 한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길에서 의관들을 자리는 중
에 “대체 우리가 소흥이 집에 와 있는 걸 포청놈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꺽정
이가 말하여 “어떤 놈이 밀고한 게지요.” 이봉학이가 대답하는데 황천왕동이
가 옆에서 “밀고한 것이 놈인지 년인지 어떻게 아시우?”하고 말깃을 달았다.
“년이라니 자네 맘에 의심나는 기집이 누군가?” “나는 첫째 소흥이가 의심나
는걸요.” “나두 처음엔 그런 의심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렇지 않
는 성싶어.” “소흥이가 우리보다 더 놀라는 걸 보시구 그러지 않은 줄루 생각
하셨나요? 거짓 울기두 잘하구 거짓 웃기두 잘하는 기생년이 거짓 놀라는 시늉
은 못하겠소?” “아니야, 만일 소흥이가 미리 밀고해 두었으면 형님 기시구 안
기신 걸 알러 왔을 리가 있나. 나는 의심이 낮에 왔던 노가에게루 가네.” “노
밤이가 미덥지 못한 놈이지만 그래두 소흥이에게 대면 되려 미더울걸요.” 황천
왕동이와 이봉학이가 각자 자기 소견 말하는 것을 꺽정이는 잠자코 듣다가 “소
흥이두 아니구 노밤이두 아닐 게다. 나중에 알아보면 어떤 눔의 한 짓인지 알
수 있겠지. 고만 가자.” 하고 말하였다. 꺽정이가 활 가진 이봉학이를 맨 앞에
세우고 아무것도 안 가진 황천왕동이와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중간에 세우고
자기는 맨 뒤에 서서 수표교 천변으로 내려오는 중에 뒤에서 “잠깐만 기다리세
요.” 소흥이가 소리쳤다. 꺽정이가 돌아서니 다른 사람도 다 따라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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