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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9권 (2)

카지모도 2023. 8. 2.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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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문 큰 길을 좇아서 오다가 오정문까지 나가지 않고 옥장다리께서 파지동

앞으로 나가는 지름길을 잡아들 때, 바람에 나부끼는 가는비가 물을 뿜듯 사람의

얼굴에 끼치었다. 가는비에도 옷이 젖으니 유삼이 있으면 들렀을 것이지만,

유삼들은 안 가지고 우비라고 가진 것은 갓모들뿐이라 갓에 받

쳐 쓰고 오는 중에 가는비가 그치는 듯 굵은비가 시작하여 한 줄기를 제법 하였

다. 옷들이 함씬 젖었다. 미륵당이까지 오는 동안에 젖은 옷들이 몸에서 말라서

뿌득뿌득하여졌으나 아주 말려들 입느라고 미륵당이에서 한동안 늘어지게 쉬고

청석골로 나오는데, 골 어귀 동네 못 미쳐서 비가 또 시작하여 정생원은 웃옷자

락을 걷어들고 뛰었다. 동행 친구들보다 먼저 동네 와서 길가 집 처마 안으로

들어서는데 그 집 방안에서 “치명이.” 하고 정생원의 자를 부르는 사람이 있

었다. 방안에 평산 선비 네 사람이 들어앉았는데 방문턱에서 비오는 것을 내다

보던 사람이 정생원을 보고 알은 체하였다. “자네 왠 일인가?” “자네들이야

말루 왠일인가?” “어서 길목 빼구 들어오게.” 정생원이 봉당에서 갓모 벗고

웃옷 벗고 또 길목 벗는 동안에 뒤에 떨어진 동행이 다들 왔다. 먼저 와서 있는

평산 선비 넷과 나중 온 봉산 선비 넷이 다 같은 장참봉의 제자라 동문수학의

교분들이 자별하여 뜻밖에 만난 것을 서로 반기었다. 평산 선비 네 사람도 이번

과거에 초시에 붙고 전시에 떨어진 사람들인데, 그중의 한생원이란 사람은 행검

이 있어서 자기 앞도 잘 닦거니와 입이 발라서 남의 허물을 용서 않고 면박을

잘하는 까닭에 친구들 사이에 평산어사라는 별명이 있고 신진사란 사람은 풍채

도 좋고 문장도 좋고 언변까지 좋아서 어느 좌석에 끼이든지 한몫 볼 만하고 그

외의 두 사람도 다 평산 선비의 교초들이었다. 봉산 선비들이 방안에 들어와서

좌정한 뒤 신진사가 먼저 “자네들은 서울서 거재해 본다더니 어째들 내려오나?

” 하고 물으니 정생원이 “거재두 우리에겐 참례 안 오데.” 대답하고 곧 뒤이

어서 “자네들은 벌써 집에 갔을 사람이 어째 여기들 와 있나?” 하고 되물었

다. “우리는 서울서 내려올 때 송도 경숙이하구 동행이 됐었는데 그 사람이 붙

잡구 놓지 않아서 송도서 놀다가 인제 집으루들 가는 길일세.” 봉산 선비 하나

가 정생원더러 “경숙이가 누구던가?” 하고 물어서 “차식이라면 자네두 짐작

할 테지. 그 사람의 자가 경숙일세. 어느 해 연분인가 우리 선생님께서 복재선생

에게 갔다오셔서 복재 문인 차식이의 시라구 고시 한편을 내놓으시구 귀귀이 칭

찬하시는 것을 자네는 못 들었든가? 그때 나는 속으루 어떻게 하면 나두 저런

글을 지어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아보나 차식이가 부럽기두 하더니.” 정생원은

수다를 떨어서 대답하고 다시 신진사를 보고 “자네들두 오늘 송도서 떠났네그

려. 날씨 좋은 때 다 내버리구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떠났나? 경숙이도 우스운

사람이지. 친구들을 일껀 붙들어서 묵히다가 이런 궂은 날 붙들지 않구 보내더

란 말인가.” 하고 말하였다. “우리는 어제 송도서 떠났네.” “어제 떠나서 하

루 종일 겨우 여기를 왔단 말인가?” “어제 떠날 때 우리끼리 두문동을 보구

가자구 말하는 것을 경숙이가 듣구 두문동에다 시회를 차려서 글 짓구 술 먹구

다 저녁때까지 놀다가 경숙이 부자와 중적이는 부내루 들어가구 우리는 미륵당

이 와서 잤네.” 경숙이 차식인 줄을 잘 알던 정생원도 중적이 누구인 것은

생각이 잘 안 나든지 “중적이?” 하고 뇌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마희경이를

모르나?” “옳지, 마희경이의 자가 중적이네. 화담 문하의 문장은 경숙이가 첫

째구 학행은 그 사람이 제일일걸.” “그 사람의 학행이 무던하지만 화담 문하

의 제일은 마치 모르겠네. 행주 사람 민순이가 있으니까.” “지금 경숙이 부자

라구 말했지? 경숙이가 몇 해 전에 참척을 봤는데 웬 아들이 또 있던가?” “죽

은 아들 재생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나?” “재생이라니 무슨 소린가. 금시초문

일세.” “경숙이의 죽은 아들 이름이 은로지. 은로가 죽어서 장사 지내던 날 밤

에 경숙이 내외가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꿈에 은로가 와서 하는 말이 옥황상제

의 명령이 계셔서 아들루 다시 태어나러 왔다구 하더라네. 그 꿈을 꾼 뒤에 경

숙이 실내가 바로 태기가 있어서 은로 죽던 이듬해에 지금 아들 천로를 낳았는

데 은로의 요사와 재생이 막비천수라구 이름을 천자루 지어 줬다구 하데.” “

재생이구 아니구 천로란 아이가 지금 나이 몇 살인데 시회에 부자 같이 왔더란

말인가?” “지금 다섯 살밖에 안된 놈이 글자를 제법 많이 알데.” “그래 참

말 시를 지을 줄 알던가?” “다섯 자씩 한 귀 두 귀 자모듬을 해놓는 게 하두

신통해서 내가 시회에 데리구 가자구 했네.” 신진사와 정생원이 이런 수작 하

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은 대개 두 사람의 수작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신진

사가 다시 말끝을 고쳐서 화담 가서 시 지은 이야기를 꺼내는데 한생원이 신진

사와 정생원을 보고 “방안 사람이 여덟인데 자네들 둘이서만 이야기해서 되겠

나. 자네들은 고만 쉬게. 다른 사람두 이야기 좀 하세.” 하고 말하여 신진사는

두말 않고 이야기하던 것을 그치고 정생원은 “누가 다른 사람더러 이야기를 말

랄세 말이지. 이야기할 게 있거든 어서 하게.” 하고 한생원에게 말대답하였다.

“내가 이야기할 게 있어 한 말이 아닐세. 자네들 둘이만 맞붙어 이야기하는 게

여러 친구와 같이 이야기하는 것만 못하단 말이지.” 하고 한생원이 곧 시비나

차리려는 사람같이 다리를 도사리고 앉았다. 자리가 잠시 버성기어졌다. 신진사

가 좌중을 돌아보며 “비는 종일 오다마다 할 모양인데 우리가 여기서 잘 수야

있나. 금교까지는 가야지. 가다가 비를 만나거든 인가 있는 데선 그어가구 무인

지경에선 맞구 가세. 비 맞으면 추울 테니 술을 사다가 미리 한두 잔씩 어한하

구 나서 보세.” 하고 말한 뒤, 곧 그 집 주인을 불러서 “이 동네에 술 파는 집

이 있느냐?” 하고 물었다. “동네에는 술 파는 집이 없습니다. 술을 사자면 미

륵당이 주막이나 탑고개 주막에를 가야 합니다.” 하는 주인의 대답을 듣고 신

진사는 다시 좌중의 여러 친구더러 “가다가 탑고개 주막에서 술 몇 잔씩 사먹

구 금교 가서 오늘 밤에 금교 술에 실컨들 취해 보세.” 하고 말하였다. 비가

그치는 동안에 여덟 사람이 골 어귀에서 탑고개로 나왔다. 주막 앞에 와서

신진사가 주막 주인더러 술이 있느냐 묻고 들어앉아서 술들을 먹게 방을 치우라

고 일렀다. “방에는 먼저 오신 손님이 기십니다.” 하고 주인이 말할 때 방안에

있는 사람이 닫힌 방문을 열어젖혀서 방을 들여다본즉 상제 복색한 손 하나, 탕

창한 손 하나, 사람이 둘인데 상제 손은 나이 새파랗게 젊고 탕건 쓴 손은 나이

지긋하여 보이었다. 탕건 쓴 손이 한참 내다보다가 주인을 가까이 불러서 몇 마

디 말을 이르더니 주인이 신진사에게 와서 “다른 손님이 기셔두 상관없으시면

방 위루들 들어가십시오.” 하고 말하여 “역려과로에 잠시 한방 거처두 인연으

루 알면 고만 아니냐.” 신진사가 주인의 말을 대답하고 나서 여러 친구의 앞장

을 서서 방으로 들어왔다. 방안의 두 사람이 일시에 한옆으로 비켜앉았다. 여덟

사람이 다 방에 들어와서 좌정한 뒤에 넘너리성 있는 신진사가 먼저 두 사람을

보고 인사를 청하였다. “나는 서울 사는 엄오위장이오.” 탕건 쓴 손은 통성하

고 상제는 평인과 달라서 인사 절차를 차리기가 싫은지 성도 말하지 않고 그저

“나두 서울 삽니다.” 하고 말할 뿐이었다. 신진사가 “나는 평산사는 신진사

요.” 하고 인사한 다음에 “나는 봉산 정생원이오.” 정생원이 통성하여 인사하

고 그외의 다른 사람은 혹 앉아서 허리도 구부리고 혹 바라보며 고개도 끄덕이

어서 인사한 셈들로 쳤다. 신진사가 주인 불러 술을 들여오라고 하여 거섭안주

와 막걸리 술을 들여다 놓고 엄오위장과 상제더러 술을 같이 먹자고 청하니 둘

이 다 고사들 하였다. 여덟 사람이 한 방구리 술을 다 먹고 새로 한 방구리를

들여왔을 때, 정생원이 한 그릇을 떠서 엄오위장을 권하니 엄오위장은 사양하다

가 그대로 받아먹고 또 한 그릇을 떠서 상제를 주니 상제는 다 지우고 한 모금

쯤 마시었다. “여러분들 별시 보구 가시는 길입니까?” 엄오위장의 묻는 말

을 “그렇소.” 하고 정생원이 대답하여 주었다. “이번 별시의 장원 민덕봉이는

이 상제의 내종형이구 담화랑 정염이는 나하구 오촌척입니다.” “네. 그런 줄

몰랐더니 두 분이 다 새 급제들과 척분이 기시단 말이지. 사촌 오촌 척분두 절

척이구려. 그래 창방들 하는 것을 보구 오셨소?” “서울서 창방을 보구 떠나서

잠깐 황해도 땅에 왔다 갑니다.”엄오위장이 정생원과 이런 수작을 하고 잠시

밖에를 나갔다 들어오더니 얼마 뒤에 주인이 술 한 상을 들여오는데 술은 약주

가 한 양푼이요, 안주는 닭고기 전지가 상 대접에 가득하고 도야지 고기 저민

것이 쪽목판에 수북하였다. 주막 주인이 술상을 엄오위장 앞에 놓고 나가려고

할 때, 봉산 선비 하나가 주인을 불러세우고 “우리는 탁주나 먹을 사람이지 약

주는 못 먹을 사람인가. 우리두 탁주는 탁주 값 내구 약주는 약주 값 낼 텐데

어째 저 손님하구 충하를 하나?” 하고 꾸중 쇰직하게 말하였다. “약주술은 저

손님들께서 다른 데서 사오신 겝니다.” “닭하구 돼지두?” “닭고기 돼지고기

두 따루 사오셨습니다.” 주인이 발명하는 위에 “촌 주막에 왠 약주 술이 있구

고기안주가 있겠소? 주인은 잘못이 없으니 꾸지람 마시우.” 하고 엄오위장이

싸주기까지 하여 그 선비는 할 말이 없어서 “그렇다면 모를까?” 하고 말 뒤를

거두었다. 엄오위장이 여러 선비를 보고 “우리가 여러분의 술을 먹었으니 여러

분두 우리 술을 좀 자시우.” 하고 약주를 돌려 권하는데, 신진사가 첫쨋잔을 사

양 않고 받기 시작하여 다른 선비들도 잔을 주는 대로 받았다. 한생원이 눈살을

찌푸리고 “남이 자시려구 멀리서 가지구 온 술을 자네들이 다 먹을 작정인가?

염의들 좀 차리게.” 하고 친구들을 책망하니 정생원이 닭전지를 하나 들고 뜯

으면서 “그 말이 옳으이. ”하고 뒤로 물러나 앉았다. “자네 얼얼지육이 무언

지 아나? ” “맹자께서 인이후에 충기조라구 책망하신 진중자의 말이지 무어

야. " "논어의 오부영자란 구절을 생각하구 말하게. ” 한생원과 정생원이 유식

한 문자말을 주고받고 하는 중에 이때까지 별로 말이 없던 상제가 홀저에 엄오

위장더러 “알아듣지 못할 수작을 듣구 있느니 먹을 줄 아는 술이나 먹읍시다.

” 하고 말하여 엄오위장이 상제와 둘이만 약주를 권커니잣거니 먹으면서 옆에

선비들은 본 체도 아니하였다. 한참 오래 그치었던 비가 다시 시작하며 바람도

같이 나서 바람소리 같은 빗소리와 빗소리 같은 바람소리가 어울려 들리는 속에

가을이 시시각각으로 깊어지는 것 같았다. 여러 선비들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

고 무료하게들 앉았는 중에 신진사가 봉산 선비들을 돌아보며 “헛방 창방할 때

아는 친구의 성명이 나오니까 핫방일망정 반갑네그려. ” 하고 말하니 “헛방

말 말게. 나는 헛방 까닭에 실해를 착실히 봤네. ” 하고 정생원이 신진사의 말

을 받았다. “무슨 실해를 봤나? ” “삼관 관원들이 헛신래를 부를 때 거기 정

신이 팔려서 현제판 밑에 좋은 자리 잡았던 것을 영남 선비들에게 빼앗기구 뒤

루 밀려나갔었네. 그게 실해 아닌가. ” “장중의 자리쌈은 당연히 금할 일인데

금하지 않으니 별일이야. ” “자리쌈을 금해야 하다뿐인가. ” “우리는 장중에

들어가기두 남 뒤늦게 들어갔지만, 자리쌈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글제이 글씨가

겨우 보이는 데 가서 앉았었네. ” “우리 나중 잡은 자리 옆자리에 도희령이란

사람이 앉았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곤작인지 우리가 설폐.구폐 다 해놓구 편

마감들을 하려구 할 때, 그 사람은 겨우 허두 내놓구 조대를 못해서 쩔쩔매는

모양이더니 그 사람이 방에 붙어두 높이 넷째루 붙었네. ” “북소리 난 뒤에라

두 납권만 했으면 고만이지 곤작이 무슨 상관 있나? ” 이때 비바람 소리가 그

치는 듯하여 방문 가까이 앉았던 평산 선비 하나가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

다. 봉당에 장정 너덧이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방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죽 일

어나서 방안을 들여다보는데 목자들이 불량하였다.

선비들이 재물 안 가진 것을 믿고 또 사람수 많은 것을 믿으나, 대

개는 송구한 마음이 없지들 않더니 엄오위장이 그 장정들을 내다보며 “비 그치

면 가겠다. ” 하고 말하는 것이 엄오위장과 상제의 하인인 듯하여 마음들이 놓

였다. 그 중의 정생원이 말을 못 참아서 엄오위장을 보고 “밖에 있는 사람들이

하인이오? ”하고 물으니 엄오위장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나는 임꺽정이가 나

온 줄 알았소. ” “임꺽정이가 무섭소? ” “그놈이 흉악한 대적놈인데 어째

무섭지 않겠소. ” “임꺽정이가 사람을 터지게 났답디다. ”“꺽정이패의 속내

를 잘 아시우? ” “내가 적당이 아닌데 속내를 잘 알 까닭이 있소. ” “꺽정

이는 힘만 세지 꾀는 없는 없는 놈인데 그 밑에서 창귀 노릇하는 서가 성 가진

놈이 갖은 못된 꾀를 다 내어 바친답디다. 서가놈이 꾀가 어떻게 배상한지 가짜

루 금부도사를 못 꾸미나 멀쩡한 감사의 사촌을 못 맨드나 갖은 짓을 다하우.

” 엄오위장은 슬며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고 상제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같이

웃고 있었다.

이때 청석골 두령 중의 무예 있는 사람은 대개 다 난데 나가고 대장 꺽정이

외에 오가. 서림이. 김산이. 한온이 네 두령만 도중에 남아 있었다. 이 날이 장날

도 아니요, 날도 궂어서 탑고개 순 도는 것을 그만두기로 하였더니 서울로 물건

하러 가는 도부장수 십여 명이 금교역말서 자고 간다고 금교서 기별이 와서 두

목. 졸개 수십여 명을 탑고개로 내보내게 되었는데, 두목. 졸개들을 한온이가 거

느리고 나가보겠다고 자원하여 꺽정이가 허락하였으나 남의 재물을 강탈하는 데

한온이는 경력 없는 사람이라 서림이와 같이 가자고 둘을 함께 내보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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