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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9권 (1)

카지모도 2023. 8. 1.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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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9권

 

4. 피리

 

이 해는 팔도가 거진 다 흉년이 들어서 삼남의 벼농사도 말이 아니고 양서의

조농사도 마련이 없었다. 삼남에는 오월 한 달을 내처 가물어서 고래실 땅에도

호밋모를 낸 데가 많았고, 엇답, 건답들은 거지반 메밀 대파를 하였었다. 가을에

와서 지주와 작인 사이에 도조 재감으로 말썽이 많이 생겨서 된내기 온 뒤까지

벼를 세워놓고 베지 않은 땅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삼남은 곡향이라 수한병식

하는 좋은 땅도 많거니와 밭곡식이 잘되어서 양서같이 참혹하진 아니하였다. 양

서는 첫가뭄이 들고 늦물이 가고 게다가 풍재에 박재까지 겸친 데가 있어서 두

태도 많이 줄었지만, 주장세우는 서속이 소출이 가량없이 줄었었다. 밤에 바심하

는 머슴들이 밤참 투정할 경도 없었고 북섬이를 숨치는 여편네들이 웃고 지껄일

흥도 없었었다. 평년에 백 석 하던 사람이 이삼십 석만 하여도 잘한 양으로들

말하였다. 청석골서는 매삭 도중 공용으로 쓰는 석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대장

과 두령들은 녹을 먹고 두목과 졸개들은 요를 태우는데 대장은 백미가 일 석이

요, 황두가 십 두요, 두령 십인은 매인 백미가 십 두요, 황두가 오 두요, 두목 이

십여 명은 매명 요가 쌀 닷 말, 서속 닷 말이요, 졸개 백여 명은 매명 요가 쌀

서 말, 서속 서 말이요, 이외에 마소먹이 콩이 두어 섬씩 나가서 육십 석 곡식을

가져야 한 달을 부지할 수 있었다. 청석골서 평양 봉물을 뺏은 뒤로 관서, 해서

감영과 각읍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진상과 인정을 대개 중간에서 가로채고 또 근

거와 해서의 여러 골로 돌아다니며 크면 읍을 치고 작으면 촌을 떨어서 모은 재

산이 적지아니 끼쳤었지만, 봄 이후로 벌어들이진 않고 쓰기만 한데다가 반이

부비, 역사 부비 같은 모개용을 누차 써서 한온이가 재산 반을 들여놓지 않았다

면 다음 달 녹과 요도 자라지 못할 뻔하였었다. 목전에 있는 두목과 졸개들도

흉년에 먹이기가 어려운데 먹고 살 수 없어서 입당하러 오는 사람이 하루 한둘

없을 때가 없었다. 그나마 들뜨기로 오면 안 받겠지만, 도중과 연락 있는 사람의

인권을 받고 오거나 두령과 친분 있는 사람의 청찰을 가지고 오는 까닭에 안 받

지도 못하였다. 어느 날 석후 여러 두령이 꺽정이 사랑에 모여 앉아서 담화를

하는 중에 배돌석이가 졸개들의 초막을 사방 등성이 너머까지 지어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하고, 그 다음에 또 김산이가 도중의 곡식이 항상 백여 석씩 준비

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여 졸개는 늘고 양식은 딸리는 것이 화제가 되었

을 때, 서림이가 버릇으로 헛기침을 한번 한 뒤 꺽정이를 보고 “각처에서 방곡

들 하는 올 같은 흉년에 양식이 딸리는 것은 큰 두통거립니다. 흉년에는 조정에

서 백관의 녹을 감하는 전례두 있으니 우리 도중의 녹과 요를 일체루 감하면 어

떻겠습니까?” 하고 의향을 물으니 꺽정이는 웃으면서 “가령 한 달 지낼 걸 가

지구 두 달을 지낸다구 하구 두달 뒤에는 어떻게 할 테요?” 하고 되물었다. “

그때가서는 달리 변통해야 하겠습지요.” “그때 가서 변통할 걸 지금부터 미리

변통하면 못쓰나. 그 따위 구차스러운 소리는 하지 말구 방곡한 골에는 가서 뺏

어 오구 방곡 안한 골에는 방을 붙입시다. 방을 붙여서 안 가져오거든 방 붙인

놈의 집은 말할 것두 없구 그놈 사는 데가 읍이면 읍, 촌이면 촌을 아주 뿌리를

빼옵시다.” 꺽정이의 말 끝에 여러 두령들이 이구동성으로 “대장 형님 말씀이

지당합니다.” “대장 형님 말씀이 좋습니다.” 하고 떠들었다. 그 이튿날부터

서림이는 방을 쓰기가 바쁘고 황천왕동이는 방을 붙이러 다니기가 바빴었다. 이

봉학이의 좌군과 박유복이 우군이 번차례로 나가기도 하고, 일시에 같이 나가기

도 하였다. 곡식 바리와 상목 바리가 꾸역꾸역 청석골로 들어왔다. 경기도 한쪽

과 황해도 한쪽은 조포섬 하는 사람이 살 수가 없었다. 청석골에 오가가 혼자

있을 적에는 주장 벌이가 금교 장꾼을 떠는 것이었는데 장꾼이 서넛만 함께 와

도 감을 못 내서 떠는 것보다 그대로 보내는 것이 더 많았었고, 박유복이가 와

서 있게 된 뒤에는 사람이 여럿이 온다고 그대로 보내는 법은 없었으나 대개 금

교 장날 탑고개를 지키는 것은 오가 혼자 있을 적과 별로 다름이 없었고, 곽오

주와 길막봉이와 배돌석이가 와서 모인 뒤에는 박유복이까지 넷이 돌려가며 매

일같이 나와서 장꾼이고 행인이고 만나는 족족 떨었는데 떠는 자리가 탑고개인

것만은 전과 같았었고, 서림이가 와서 평양 봉물을 금교역말서 뺏어온 뒤로는

난데 나가서 불한당질을 많이 하게 되었으나 그래도 탑고개는 두목과 졸개들을

내보내서 지키고 난데 나가지 않는 두령이 순을 돌았었고, 꺽정이가 대장이 된

뒤로는 탑고개를 여전히 지키긴 지키되 황해도, 평안도에서 서울로 올려보내는

봉물과 뇌물을 뺏어들이고 촌장꾼이나 보행인은 그대로 보내게 하였었다.

오월 이후로 지키지 않던 탑고개를 다시 지키기 시작할 때,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물건을 많이 가진 장꾼이나 노수를 넉넉히 가져 보이는 행인들은

탑고개를 지나가는데 세를 바치게 하자고 말하여 꺽정이가 그말을 좇아서 장꾼

과 행인에게 세를 받되 대개 십일조로 받고 불쌍한 것들은 그대로 보내라고 명

령을 내렸다. 촌장꾼과 보행 행인은 일체로 침책하지 마라는 때도 두목과 졸개

가 심심풀이로 말썽들도 부리고 술잔들도 뺏어 먹었거든 세를 받으라는 명령이

있으니 장꾼과 행인을 못살게 굴 것은 정한 일이다. 불쌍하게 보고 안 보는 것

이 사람의 눈대중인데다가 누가 보든 불쌍하게 볼 만한 사람도 배주머니에 의송

들었는지 모른다는 이유를 붙여서 보따리도 뒤지고 몸도 뒤졌다. 그러나 두목과

졸개들이 귀찮은 생각이 나거나 순 돌러 나온 두령이 가만 두란 처분을 내리면

세를 톡톡히 받을 만해도 받지 않고 그대로 보내었다. 금교 장날 탑고개로 나

가는 장꾼은 대개 청석골서 십 리 이십 리 이내에 사는 사람들이라 청석골 도중

일을 새로 입당한 졸개들보다 더 잘 알았다. 졸개들이 장사꾼의 길을 막고 세를

내라고 할 때 장꾼들 중에 “임대장은 우리 촌장꾼의 것을 뺏으시는 법이 없는

데 이게 혹 자하루들 하시는 일 아니오?” 하고 묻는 사람이 있어서 “쓸데 없

는 잔소리 마라.” 하고 두목이 윽박질렀다. “세라니 무슨 명목으루 세를 받소?

” “탑고개 지나가는 세야.” “길세란 말이오?” “아따 그 사람 잔소리 되우

하네.” “알 건 알아야 하지 않소?” “자네네 장이 늦지 우린 상관없네. 알구

싶은 건 실컨 다 알구 가게.” “세를 내자면 어떻게 내우?” “자네 자루 속에

든 게 무언가?” “콩이오.” “몇 말인가?” “두 말이오.” “그럼 여기 되가

있으니 두 되만 떠내놓게.” “십일조를 떼는구려. 십일조 뗄 수 없는 저 나무

같은 건 어떻게 받소?” “팔러 갈 때 받을 수 없는 물건이면 팔구 올 때 받지.

” “그래 이게 참말루 임대장 명령이오?” “대장 명령이 아니면 어쩔 텐가?”

“등장 가겠소.” “등장 갈라거든 가게. 여기 두령 한 분이 와 기시니 가서 뵈

입구 말씀해 보게.” 이날 순 돌러 나온 두령은 황천왕동인데, 주막에 앉아 있다

가 두목과 졸개들의 일하는 것을 보러 나왔다. 그 장꾼이 황천왕동이 나오는 것

을 바라보고 “황두령이시군.” 말하고 앞으로 나가서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

하였다. “왜들 이렇게 섰나? 어서어서 세를 내구 가지.” “길세를 받으신다니

이 길이 언제 도중에서 내신 길입니까? 세를 무슨 턱으루 받으십니까. 이전처럼

그대루 지나다니게 해주십시오.” “대체 자네들 가진 게 다 무엇무엇인가?”

“저는 콩 두 말입니다.” “그 다음은?” “달걀 세 꾸레미뿐이올시다.” “달

걀 뒤는 나뭇짐, 나무 뒤는 숯짐, 숯 뒤는 무언가?” “거피팥이 한 말두 못 됩

니다.” 황천왕동이가 장꾼들의 가진 물건을 강 받듯 물어본 뒤 두목을 불러서

장꾼들을 다 그대로 보내라고 분부하였다. 그 다음 장날 길막봉이가 탑고개에

나와서 두목과 졸개들을 친히 지휘하여 장꾼에게 세를 받을 때 지난 장날 달걀

을 가지고 가던 사람이 장마다 망둥이 난 줄 알고 도중에서 내지 않은 길에 무

슨 턱으로 길세를 받느냐고 말하다가 길막봉이 주먹에 대가리가 터지고 가지고

가던 물건을 송두리째 빼앗기었다. 법 없는 천지라 세 받는 법도 이와 같이 대

중이 없었다. 나라에서 팔월에 왕세자의 관례를 지내고 구월에 별시로 과거를

보이었는데, 과유 천여 명 중의 육백 명이 초시에 뽑히고 초시 육백 명 중의 십

팔 명이 전시에 뽑히었었다. 과거의 부정한 행이 이때도 아주 없진 않았겠지만,

조선의 공도는 오직 과거뿐이란 속담까지 있던 때라 후세와 같이 급제될 사람을

미리 정하여 놓고 과거를 보이진 아니하였었다. 그러나 백에 한둘 뽑히는 급제

에 참례하기는 하늘에 오르기만 못지않게 어려워서 노사숙유라고 일컫는 포부

많은 선비들도 거지반 다 낙방거자들이 되었다. 황해도 평산, 봉산에서 과유 사

오십 명이 과거를 보러 왔었는데, 이 중에는 평산 신희복 신감사의 문인도 더러

있었고 또 사수없이 독학한 사람들도 혹간 있었으나 열의 일곱여덟은 봉산 장가

순 장참봉의 제자이었다. 경학들은 유여하여 강경에는 대개 통 아니면 약이었으

나, 시부표책의 제술들이 부족하여 삼중이 많고 삼하도 적지 아니하였다. 사오십

명의 태반은 초시 시부에 떨어지고 그 나머지는 용인방법을 물은 전시 책문에

떨어졌었다. 과거들을 보러 올 때는 떼를 지어 왔지만 과거들을 못하고 내려갈

때는 뿔뿔이 내려갔다. 초시에 뽑히고 전시에 떨어진 봉산 선비 중에 소과는

이미 하고 대과를 아직 못한 생원 두 사람과 소과 않고 바로 대과하는 비렴급제

를 바라고 온 유학 두 사람이 성균관에 거재해 볼 생각으

로 서울에 남아 있으며 거재할 길을 자세히 알아본즉, 동서상제는 백 명 정원이

차지 아니하여 사람을 더 들일 만하건만 경비관계로 금년내에는 새 사람을 들이

지 않는다 하고 하재의 유학은 상재의 생원, 진사와도 달라서 자원을 받지 않고

동서남중 사부학당에서 취재를 뽑아올리는데 사학에 들어가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모양이나 동서하재의 백 명 정원이 다 차서 성균관으로 올라갈 가망이 없

었다. 시골집에들 내려가 있다가 명년 식년 과거나 다시 보러오자고 의논들이

되어서 넷이 같이 작반하여 서울서 떠났다. 첫날 파주 와 자고 다음 날 송도 와

잤는데, 송도까지 오는 동안 봄날같이 따뜻하던 일기가 밤 사이에 변하여 날이

음산하고 비가 오다말다 하고 때아닌 우뢰 소리까지 났었다. 급한 길도 아닌데

모우하고 갈 까닭이 없어서 아침밥을 먹고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앉

아서 이야기들 하였다. 네 사람 중의 정생원이란 사랍이 입이 재어서 거의 혼자

떠들다시피 하고 다른 세 사람은 간간이 몇 마디씩 지껄일 뿐이었다. 동쪽 들창

에 햇발이 비치어서 정생원이 떠들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들창을 열고 내다보니

검은 구름이 터지고 해가 나왔었다. “날은 갤 모양일세. 밥값 셈해 주구 떠나

세.” 여우볕이 난 것을 개는 줄로 날고 정생원이 뒤설레응 쳐서 숙소에서 불불

이들 떠나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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