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학이와 배돌석이는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데리고 앞을 서고 서림이는 백
손이와 함께 중간에 서고 꺽정이는 뒤에 서서 광복가는 길로 나오는데, 칼이며
창이며 활을 가진 장교와 사령과 군노들이 한 떼는 앞길을 가로막고 또 한 떼는
뒤에서 쫓아왔다. 관속 편에는 횃불이 있어서 활로 쏘고 돌로 치는데 겨냥대기
가 좋았다. 이봉학이의 활과 배돌석이의 팔매로 앞에서 쌈이 벌어졌다. 화살은
빨랫줄같이 건너가고 팔매돌은 별똥같이 홀러갔다. 관속 대여섯이 삽시간에 고
꾸라졌다. 횃불 있는 것이 불리한 줄 깨닫고 꺼버리는 듯 여러 자루 홰가 일시
에 다 꺼졌다. 저편에서 들어오진 못하나 이편에서 나가서 이편 저편의 동안이
가까워지며 웅긋쭝긋 섰는 것이 별빛 아래 보이었다. "살 받아라! " "돌 받아라!
" 웅긋중긋이 하나 줄고 둘 줄자, 나머지는 이리저리 다 달아났다. 앞에서 막는
것을 물리치는 동안에 뒤에서 쫓는 것은 쫓는 대로 내버려 두었건만 앞의 기제
가 꺾이는 데 뒤의 기세도 따라 줄어서 힘껏 쫓아오지 않고 멀찍이 따라오며 활
들을 쏘았다. 앞에서 막는 데는 살수가 많고 뒤에서 쫓는 데는 사수가 많았었다.
사수는 많으나 활솜씨들이 오죽치 아니하여 겨냥을 잘 잡고 쏘더라도 열에 한
대 맞칠 동 말 동한테 더구나 겨냥도 잡지 못하고 함부로 쏘니 살이 바로 나가
서 넘고 처지는 것보다도 어림없이 빗나가는 것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런 때 망령살이 바로 가 맞지 말란 법도 없다. 꺽정이는 뒤에서 활 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는 중에 오른쪽 견대팔이 흘저에 뜨끔하며 돌아보니 화살 하나가
와서 박혔다. 왼손으로 박힌 살을 뽑아버리고 맞은 자리를 색색 비빈 뒤에 칼을
검무 추듯 휘두르며 활 쏘는 관속들에게로 쫓아갔다. "이놈들, 목을 늘이구 칼
받아라!" 꺽정이가 호통을 지르며 달려드는 길로 관속 서넛을 꺼꾸러뜨려서 오
랫동안 피맛을 보지 못한 장광도에 고사를 지냈다. 이 관속 떼를 지휘하던 병방
이 칼을 두르며 꺽정이와 마주 싸우러 내닫는데, 칼과 창을 가진 장교와 사령들
이 병방을 조력하려고 전후좌우로 꺽정이에게 대들었다. 칼잡이 칼로 치고 창잡
이 창으로 찌르려고 여럿이 일시예 악 소리를 칠 때, 꺽정이는 어느 틈에 테 밖
에 뛰어나가 껄껄 웃고 있었다. 검술 모르는 칼잡이와 창법 모르는 창잡이가 대
적하려 대드는 것이 꺽정이 마음에 같지않았던 것이다. 병방이 꺽정이의 놀림을
받고 분하여 "이 도둑놈아, 내빼지 말구 내 칼을 받아라! " 하고 소리를 지르며
좇아왔다. 병방은 꺽정이의 장광도가 채가 짧은 것을 넘보고 멀쩍이서 긴 환도
를 앞으로 내들고 차츰차츰 나오며 어르다가 별안간 정면으로 내리쳤다. 꺽정이
가 정면으로 들어오는 환도날을 옆으로 흘리고 다시 끌어들여갈 사이 없이 뛰어
들어가서 병방의 어깨에 한 칼을 먹였다. 병방이 어깨에서 가슴으로 엇비슥 칼
을 받고 당장에 푹 고꾸라졌다. 여러 관속들은 모두 와 하고 도망질을 쳤다.
꺽정이가 뒤쫓던 관속들을 물리친 뒤 일행을 쫓아와서 거침없이 광복산으로
나오는데 길에서 날이 밝았다. 백촌이가 꺽정이 옷소매에 피가 내밴 것을 보고 "
아버지 팔에 피가 났으니 웬일입니까? “ 하고 물어서 여러 사람이 비로소 꺽정
이의 화살 맞은 것을 알았다. 꺽정이가 병방 이하 관속들을 죽인 것은 이야기하
였지만, 화살 맞은 것은 상처가 대단치 아니하여 이야기도 하지 아니하였었다.
광복산에를 오니 벌써 조반 먹을 때라 들이닥치며 곧 조반들을 먹고 조반 먹은
뒤에는 뿔뿔이 잠잘 궁리들을 하였다. 하룻낮 하룻밤에 이백 리 길을 오고 또
작은 접전이나마 접전을 하고 온 까닭에, 평생에 피로란 것을 모르는 꺽정이까
지 소홍이의 시중으로 옷을 갈아 입은 뒤 누워서 다리를 치이다가 잠이 들어서
한숨을 옳게 잤다. 꺽정이가 잠이 깨어서 사람을 부를 때 안에 들어가 있던 소
홍이가 다시 쫓아나왔다. "냉수 좀 떠오라게." "양추하실래요, 잡수실래요? ” "
양추질한 냉수는 먹지 못하나." "잡수실라면 더운 숭늉을 갖다 드릴라고 여쭤 봤
세요." "냉수가 좋으니 냉수를 떠오라구 이르게." 소홍이 친히 물그룻을 쟁반에
받쳐 가지고 나와서 앞에 놓는데, 꺽정이가 먹여까지 달라고 입을 아 하고 벌리
니 소홍이는 웃으며 물그릇을 입에 대어주었다. 꺽정이가 뻘떡뻘떡 물을 들이켜
고 나서 소흥이의 손을 가리키며 "그 손에 묻은 것이 무엇인가? " 하고 물으니
"가루예요. " 하고 소홍이가 손에 묻은 가루를 비볐다. "무슨 가루야? “ "국화
전 좀 집었세요." "국화전? " "오늘이 구일이에요." "그래 구일이라구 오늘은 국
화전으루 점심들을 어일 텐가? " "우리는 벌써 점심들 먹었는걸요." "그럼 저녁
사이들루 먹을 작정인가? ” "우리가 먹을라구 만든 것 아니에요 여러분들하구
같이 잡수세요." "국화전은 안에서 노놔먹구 우리는 국화주나 해주게. " "국화주
도 해놨세요. " "국화주두 해놨다? 그럼 먹어야지." 꺽정이가 밖을 내다보며 "
게 아무두 없느냐? “ 하고 두서너 번 소리를 쳤다. 평시에 가까이서 도는 신불
출이와 곽능통이는 어디 가서 잠들을 자고 아랫도리 일을 하는 졸개 두엇이 긴
대답들 하며 들어와서 대령하였다. "이두령 배두령 서종사 세 분 다 오시라구 그
래라. " 하고 졸개들더러 말을 일러 내보낸 뒤, 한동안 지나서 세 사람이 같이
왔는데 서림이는 어떻게 몸이 고달프든지 눈까지 뙤었었다. "서종사는 실컨 자게
가만둘 걸 공연히 불렀군. ” "아까 주무실 때 밖에 한번 왔다갔는걸요." "왜 자
지 않구 돌아다녔소? “ "현감이 뒷일을 어떻게 하나 읍에 사람을 보내 보는 게
좋을 듯해서 여쭤보러 왔었습니다." "보내지. " "이두령께 말씀하구 보냈습니다.
" "현감이 뒷일을 어떻게 꾸미거나 우리는 청석골루 단취하는게 좋겠지? " "제
생각에두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떻게들 하는 것을 알구 앉았는 것이 좋지 않습
니까? ” "읍내 사람 보낸 건 잘했소." 꺽정이가 심기가 좋아서 자기 자는 틈에
사람 보낸 것을 미타하게 여기지 않고 도라어 칭찬까지 하였다.
점심 요기들 하란 입맷상과 술먹으란 주안상이 안에서 나오는데 소홍이가 주
장하여 차리어서 음식이 안목이 있었다. 입맷상에는 온면, 편육, 실과, 정과, 수
란, 국화전이 놓였고, 주안상에는 연계찜, 도야지 순대, 마른 안주가 놓였다. 입맷
상의 놓인 것은 여러 상이 다 같으나, 고인 높이는 꺽정이의 상이 다른 상보다
더 높았다. 입맷상들은 놓아두고 주안상으로 국화주들을 먹는 중에 배돌석이가
안주 좋은 데 술탐이 생겨서 여기 있는 술은 여기서 다 없애고 갈 것인즉 오늘
구일날 낮에서 밤까지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느런히 앉은 이봉학이가
돌아보면서 "이번 반이에는 내행 배행이나 짐 영거할 사람이 자네하구 난데 우
리가 청석골을 몇 고팽이씩 할는지 아나. 갈 때두 먹구 갔다 와서두 먹구 두구
두구 먹어야 할걸 오늘 한꺼번에 다 먹어서 쓰겠나. “ 말하고 웃었다. 이봉학이
의 말끝에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이번 반이하는 데는 여러 날 두구 띄엄띄엄
떠날 것 없이 한날 한꺼번에 떠나두룩 하시지요." 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그럴 이
유를 묻는 눈치로 물끄러미 바라보니 서림이가 다시 "요전 여기를 올 때는 우리
가 여기 와 있는 것을 아무조록 남에게 알리지 않으려구 띄엄띄엄 왔지만 이번
에 가는 데는 알려두 좋구 안 알려두 좋구 아무래두 좋은데, 지금 이두령 말씀
마따나 가깝지두 않은 길에 여러 차례 내왕들 하시게 할 것 있습니까. 한꺼번에
가면 번폐스럽지두 않구 또 길에서 다른 염려두 되려 적을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반이할 이야기는 나중 하구 지금은 술이나 먹자구." 꺽정이가 술을
재촉하여 잔이 한동안 빨리 돌았다. 술이 밤까지 가지 않았으나 배돌석이도 마
음이 느긋하도록 술을 많이 먹었다. 입맷상 음식의 안주 될 만한 것 외에는 거
의 저들도 대지 아니하였는데, 그중의 국화전만은 꺽정이가 소홍이의 정성을 받
느라고 자기도 먹고 다른 사람도 권하였다.
이튿날 식전에 읍애 보낸 쫄개가 돌아와서 읍내 소식을 들었다. 관속의 상한
사람은 넷이요, 죽은 사람은 그 곱절 여덟이고, 읍내 장정은 반상을 물론하고 다
군총으로 뽑아서 순경을 돌린다, 파수를 보인다, 큰 난리가 난 것 같고, 또 서울
과 감영에서 포도군사들이 내려오리라고 하였다. 읍내 소식을 들어보았자 조금
도 겁날 것이 없으나, 꺽정이는 빨리 반이를 시켜놓고 다시 전옥 파옥을 경영하
려고 마음을 먹고 광복산서 곧 떠나기로 작정하였다. 개 잡고 돼지 잡고 술을
있는 대로 걸러서 두목과 졸개들을 먹이게 한 뒤, 바로 짐을 묶기 시작하여 이
틀 동안에 다 묶어가지고 사흘 되는 날 떠나는데 사람 탄 말, 짐 실은 소 짐승
이 십여 필이요, 상하 남녀 사람이 오륙십 명이었다. 안식구 몇 사람이 오가 마
누라 장사 때 청석골 가서 눌러 있고 오지 않고 광복산은 아직은 아주 비우지
않으려고 두목, 졸개 십여 명을 뒤에 남겨두고 가는 까닭에 올 때보다 사람이
많이 줄었었다.
한온이의 집 이사는 한 머리가 이왕 벌써 왔고 내행이 광복산 일행과 어금버
금 같이 들어오고 그 뒤에 한온이가 황천왕동이와 작반하여 내려왔다. 황천왕동
이는 광복산으로 갈 작정인데, 한온이에게 끌려서 청석골로 온 것이 도리어 헛
걸음을 안 하고 잘되었었다. 전옥에 갇힌 다섯 사람 중의 원씨는 포청에 잡힌
뒤로 물 한 모금 아니 먹는 것을 전옥에서 억지로 한번 미음을 먹였더너 미음
먹이던 날 밤에 혀를 깨물어서 이내 죽었고, 박씨와 김씨는 원씨 죽은 뒤에 형
조 장래사로 넘기라고 위에서 처분이 내려서 장차 관비들로 박히게 되었고, 두
졸개만은 처참을 당하게 되리라고 한온이가 소식을 알아가지고 왔었다. 꺽정이
가 전옥을 파옥하려고 결심한 것은 주장 세 여편네를 살릴 마음이었는데, 하나
는 이미 자결하여 죽고 둘은 장차 관비가 되어 살게 된 바엔 구태여 위험을 무
릅쓰고 어려운 일을 할 까닭이 없어서 중지한 전옥 파옥을 아주 파의하기로 하
였다. 장통방 사건이 생긴 고동을 한번 노밤이에게 물어보고 노밤이를 죽이든지
살리든지 하려고 꺽정이는 광복산에서 온 뒤 아는 체 않고 내버려두었던 노밤이
를 도회청 조사 끝에 잡아들여다가 뜰 아래 꿇려놓고 전후 전말을 일호 기이지
말고 바로 아뢰라고 호령하였다. "소인이 그날 낮에 대장께서 동소문 안에 기신
가 하구 뵈이러 갔솝더니 소인 쓰던 행랑방에서 두 놈이 쫓아나와서 서울 구경
을 시켜내라구 조릅디다. 졸리다 못해서 두 놈을 데리구 나와서 위아래 대궐을
구경시켜 주구 북촌에서 남촌으로 건너와서 회동서 초 전골루 내려오는 중에 그
놈들이 술을 사먹으러 가자구 끄옵기에 소인은 그놈들이 술값 줄 것을 가졌나
부다 태평 믿구 술집에를 가지 않았겠습니까. 급기 술을 몇 잔씩 먹구 나서 그
놈들더러 술 값을 주라구 하온즉 그놈들은 소인을 믿구 왔다구 소인더러 주랍니
다. 세 놈이 다 빈손이니 어떡헙니까. 할 수 없이 몰래 일어서
나오려다가 포교놈에게 붙들렸습니다. 나중 알구 보너 그 포교놈이 술집 주인
마누라의 조카랍디다. 창피한 걸 무릅쓰구 가서 술값 치를 걸 가지구 오마구 빌
다시피 사정하구 나오는데, 소인이 혼자 뺑소니칠까 봐 한 놈이 같이 가자구 따
라나서서 한 놈만 볼모루 술집에 남겨두구 두 놈이 나왔습니다. 대장께 황송한 말씀을
여쭈려구 이리저리 찾아다니옵다가 장찻골 가서 뵈입긴 뵈었지만 꾸중만 들었습
지요. 한서방께나 말씀해 보려구 대소가 여러 댁을 쫓아다녔었는데, 따구 보시질
않습지요. 할 수가 있어얍지요. 그대루 쭐레쭐레 가서 만날 사람을 못 만나서 변
통을 못했으니 우리를 믿구 보내주면 술값을 내일 보내줄 게구 못 믿어서 못 보
내주겠으면 욕을 하든지 뺨을 치든지 맘대루 하라구 배짱을 부렸습지요. 그러다
가 포청으루 끌려갔소이다. 술값 동티루 뒤에 그런 큰일이 벌어질 줄은 꿈애두
생각 못했소이다. 능구렁이 다 된 포교놈들은 소인들을 수상하게 보구 등을 치
는데 줄곧 잡아떼면 별일 없을 것을 그 못생긴 놈들이 방망이찜질 한바탕에 혼
신이 나갔든지 할 소리 안할 소리 다 지껄인 모양입디다. 그놈들이 청석골서 대
장을 뫼시구 왔다, 동소문 안 대장 부인댁에서 묵었다, 대장이 낮에 장찻골다리
기생집에서 약주를 잡수셨다, 이 따위 소리 지껄인 것을 딴 방에 잡혀 앉았던
소인이 알 까닭이 있습니까. 말 맞춰보느라고 묻는 것을 소인이 아니라구 잡아
때다가 학춤까지 추어봤습니다. 학춤 추이던 젊은 포교 한 놈이 소인더러 병신
이 급살한다구까지 욕합디다. 어떤 포교놈이 밉살스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고놈
은 창 정말 밉살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장찻골 기생 아가씨댁과 동소문안 김씨
댁은 두놈중에 어떤 놈 한놈이 댔솝구 원씨와 박씨는 김씨가 물귀신 심사루 불어
넣솝구 남소문 안 한서방은 김씨, 원씨, 박씨 세 분 초사에 들쳐났소이다. 소인
은 동소문 안 김씨댁과 남성밑골 박씨댁을 가르쳐 준 것밖에 잘못한 것이 꼬물
두 없소이다. 이건 소인이 말씀을 안 여쭤두 뒤루 알아보셔서 대개 알구 기실
듯하외다." 노밤이가 길게 지껄인 말이 열의 여덟아홉은 거짓말이건만, 그 거짓
말을 분명히 발기잡을 사람이 없었다. 거짓말이 으레껏 많이 섞였으려니 꺽정이
가 짐작하고 "우리가 장찻골 가 있는 것두 네가 대구 한서방과 우리의 사이두
네가 다 불었다는데 이눔 누구를 속이려구 거짓말이냐! " 하고 넘겨짚고 꾸짖으
니 노밤이는 기가 막히는 모양을 하고 한참 있다가 "어떤 놈의 입에서 그런 말
이 나왔는지 그야말로 거짓말이올시다. 소인이 그런 말을 불었으면 다른 데루
내뼘 궁리를 하지 이리루 오겠습니까? " 하고 발명하였다. “ "전옥에 갇힌 눔이
여기까지 오긴 어떻게 왔느냐? " "소인은 처음에 귀양이나 보벌 줄루 짐작했솝
더니 전옥에 갖다가 스물닷근 칼을 씌워서 가두는 품이 잘못하다간 얼뜨게 죽을
것 같솝기에 역적 고변한다구 거짓말하구 금부루 넘어가구 대장 대부인을 잡아
바친다구 거짓말하구 금부 나장이, 나졸 들을 끌구 여기까지 왔소이다. 소인이
거짓말한 것두 기이지 않구 다 바루 아룁니다. " "백골이 된 지 오랜 우리 어머
니를 들쳐내서 빈말루라두 욕을 보였으니 그 죄만 하더래두 너는 당연히 죽일
것이지만 간신히 살아온 걸 죽이기 불쌍해서 특별 용서하니 그리 알아라." 하고
꺽정이는 노밤이를 용서하여 주었다.
꺽정이가 한온이 부자의 와주 노룻한 공로를 생각하여 한온이를 두령을 시키
고 처음 와서 전접하는 데 모든 편의를 보아주었다. 첫째 거처할 집만 하더라도
오가더러 마누라의 제청을 끌고 박유복이 집으로 가고 그 집을 한온이에게 내주
라고하고, 그 집 한채만 가지고 한온이의 수다 권솔이 지낼 수가 없으므로 조금
조금한 집을 서너 채 새로 세우기로 하고 새집들을 짓기 전까지는 초막 중의 가
장 깨끗한 것을 치워서 쓰게 하였다. 한온이가 아비의 제청과 서모와 형의 식구
와 저의 본안해는 오가의 집에 몰아 있게하고 두 첩과 여러 심부름꾼은 초막들
에 갈라 들게 하고 세간을 대강 정돈한 뒤 가지고 온 재산의 절반을 도중에 출
여놓고, 또 자기가 부비를 내서 한번 호군을 하겠다고 하는데 꺽정이가 호군은
아직 좀 기다리라고 중지시키었다. 기다리란 것은 박유복이가 평안도에서 올라
오고 길막봉이가 혜음령에서 돌아와서 원만히 모인 뒤에 하라는 말이었다. 박유
복이도 올라올 기한이 지났거니와 길막봉이가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아니하여 혹
시 무슨 변고가 생기지 않았나 의심들까지 들게 되었다. 황천왕동이가 가보고
온다고 꺽정이에게 말하고 내일 식전쯤 떠날 터인데, 오늘 밤에 길막봉이가 혜
음령패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길막봉이는 정상갑이의 장사를 보고 곧 오
려고 한 것이 최판돌이가 뇌후의 상처보다도 파상풍이란 병으로 금일 금일 하여
그대로 눌러 있다가 죽어서 장사 지내는 것을 마저 보고 혜음령패들을 모아놓
고, 그중애서 나이 지긋한 사람을 하나 뽑아서 괴수로 정하여 주었는데, 데리고
온 사람이 곧 해음령패의 새 괴수이었다. 꺽정이는 그 사람을 특별히 후대하고
갈 대 상목 수십 필을 짐꾼에게 지워주며 가지고 가셔 정상갑이와 최판돌이의
유족들을 구휼하여 주라고 당부하였다.
길막봉이 돌아온 지 불과 이삼 일 후에 박유복이가 평안도 역사를 끝마치고
올라왔다. 역사는 괄월 그믐 전에 끝날 줄 안 것인데, 성천에 늦장마가 져서 역
사도 애초보다 늦어졌거니와 양덕, 맹산, 성천 새 군데 새집에 각각 두목과 쫄개
를 십여 명씩 남겨두고 몇 달 동안 먹을 양식들을 변통하여 주고 오느라고 더욱
늦어졌다고 박유복이가 이야기하여 꺽정이가 듣고 "역사 부비를 다 쓰구두 상목
이 그렇게 많이 남았드냐? “ 하고 물으니 "여기 하기를 닦아왔으니까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져간 상목은 역사 부비루 다 들어가구 올라올 노비두 남지 않았었
습니다." 하고 박유복이가 대답하였다. "그럼 양식은 어떻게 변통해 주구 노비는
무얼루 썼느냐? " "성천, 맹산, 순천 등지 밥술 먹는 놈의 집에서 우려냈습니다."
"응. " 하고 꺽정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급한 때 동에 가 번쩍, 서에 가 번쩍 종적을 황흘하게 하려는 준비로 완전한
소굴을 여러 군데 만들어 두자고 서림이가 계책을 낸 뒤, 사오 삭 만에 양덕, 맹
산, 성천 세 군데 소굴이 완성되었다. 소굴이 더 생기고 두령이 더 늘어서 도중
의 경사라고 도중에서 큰 잔치를 하고 그 뒤에 한온이가 조중 잔치만 못지않게
큰잔치를 하여 며칠 동안 청석골 안에 혜진 것이 술, 고기 ,떡이었다.
두령들이 맡은 소임이 그 동안 뒤죽박죽이 되어서 꺽정이가 서림이와 상의하
여 새로 작정하는데, 한온이는 도중 재산을 관리시키고, 김산이는 미곡, 포목을
출납시키고, 배돌석이는 사산 총찰을 맡기고, 황천왕동이는 각항 전령을 맡기고,
좌군과 우군을 새로 만들어서 이봉학이와 박유복이는 좌우군의 정두령을 시키
고, 길막봉이와 곽오주는 좌우군의 부두령을 시키었다. 서림이가 모사로 주모설
계할 직책을 맡은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고, 오가는 소임이 없어 사무한신이로
되 꺽정이가 출타할 때 대장 대리할 권한을 오가 홀로 가지게 하였다.
8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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