꺽정이가 이봉학이더러 서림이와 의논하여 뒤처리를 하라고 맡기어 이봉학이
가 서림이를 불러가지고 둘이 서로 공론하였다.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좋겠소?
" "혜음령 사람을 오늘 밤에 다 도루 보냅시다." "나두 그 생각인데 죽은 사람은
거적에 싸서 지워 보낼 셈 잡구 저 사람은 어떻게 보내야 좋소? " "업혀 보내지
요." "내일 하루쯤 조리를 시켜 보내는 게 좋지 않겠소? “ "또 미친 사람같이
날뛰면 피차간 좋지 못하니까 오늘 밤에 보내는 게 상책입니다." "한번 나가자빠
진다구 고만 까물키니 그런 얼뜬 사람이 어디 있소? ” "뇌후가 깨졌습디다." "
몹시 깨졌습디까? “ "자세히 보든 않았어두 몹시 깨진 것 같습디다." "묵솜을
얻어다가 지져나 주구려." "보낼 때 지져주어 보내지요." "죽은 사람 장비는 주어
보내야지." "상목 두러너 필 주어서 장비두 쓰구 의약비두 쓰라면 되겠지요. ”
이봉학이가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더러 혜음령 사람을 불러모으라고 일렀더니, 삼
십 명 중의 남아 있는 사람이 칠팔 명밖에 더 되지 아니하였다. 혜음령패가 정
상갑이 죽은 것을 엿보고 엿들어서 알고 모두 도망질들을 치는데, 그 중에 정상
갑이, 최판돌이와 정의 깊은 사람이 하회를 보려고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봉학
이가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 정상갑이, 최판돌이의 화를 받은 것이 자취요, 반
은 수라고 누누이 말한 뒤에 정상갑이의 장비와 최판돌이의 의약비로 상목 세
필을 내주는데, 꺽정이가 상목을 있는 대로 다 주라고 하여 열 필의 쌀 바꾸고
남은 여덟 필을 통틀어 내주었다. 길막봉이가 최판돌이를 업어다 두고 오겠다고
하는 것을 꺽정이가 아무리나 하라고 시원치 않게나마 허락하여, 정상갑
이의 시체는 혜음령 사람들이 돌려가며 지고 가고 최판돌이는 길막봉이가 내처
업고 가기로 하고 밤중에 길들을 떠나갔다.
방을 치우고 조용하게들 앉았을 때, 서림이가 파옥은 파의하는 수밖에 업겠다
고 말을 꺼내다가 누가 파의한다더냐고 꺽정이에게 핀잔을 받고 다시 말을 못하
였다. 이봉학이와 배들석이는 파옥할 일이 근심되고 서림이는 초져녁 광경이 눈
에 발혀서 닭 울 녘까지 잠들을 이루지 못하고 꺽정이만은 자리에 누우며 바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새벽 다른 사람들은 아직 곤히 자고 꺽정이만 잠이 깨었을 때, 방 밖
에서 황천왕동이의 말소리가 나서 꺽정이가 일어나 방문을 열치고 내다보며 "너
웬일이냐? " 하고 물었다. 방안에 자던 사람이 다 일어났다. 황천왕동이가 방에
들어와서 절할 데 절하고 입인사할 데 입인사한 뒤 배돌석이가 비켜주는 자리에
와 앉았다. "어디서 자구 이렇게 일찍 왔나? 비선거리서 잤나? “ 배돌석이 묻는
말에 ”아니오. 어제 석후에 이천읍내서 떠나서 내처 밤길루 왔소." 대답하고 "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 “ 이봉학이 묻는 말을 "큰일이 하나 생겼세요. " 대답
하고 "큰일이 무슨 큰일이냐? ” 꺽정이 묻는 말에 “어제 백손이가 이천읍에
잡혀 갇혔습니다." 황천황동이는 비로소 밤길로 급히 온 연유를 말하였다. "무어
야? 백손이가 잡혀 갇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 "어제가 이천 장날이지오. "
"그래. “ "애기 어머니가 실인가 무엇을 사오라구 명녹이를 장에 보내는 데 백
손이가 장구경을 간다구 따라갔답니다. 저는 가는 줄두 몰랐지요. 아침에 누님을
뵈러 들어갔더니 누님이 말씀합디다." "그래 장에 가서 무슨 짓을 하구 잡혀갔단
말이냐? " "말 않구 간 것이 괘씸해서 곧 좇아가서 붙잡아오구 싶은 생각두 없
피 않았으나 이왕 간 걸 그렇게까지 할 것은 없기에 고만 내버려두었더니 해가
승석때나 되어서 명녹이 흔자 왔겠지요. 도련님은 어디 가구 너 혼자 왔느냐 하
구 물으니까 명녹이란 놈이 울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들어보니 백손이는 별루 잘
못한 것두 없습디다. " "잘잘못간에 일이 무슨 일이야? " "둘이 장에 가서 살 것
사구 구경할 데 구경하구 떡으로 점심 요기들까지 하구 돌아올 참인데, 백손이
가 애기 준다구 엿을 좀 사가지구 가자구 하더랍니다. 그래서 명녹이가 강엿하
구 밥풀엿하구 섞어 샀는데 강엿이 화독내가 나서 엿장사를 보구 마저 밥풀엿으
루 바꿔달라구 했더니 그 엿장사가 안 바꿔 주더랍니다. 엿장사 말은 이모저모
떼어먹구 가지구 와서 바꿔 달란 법이 있느냐구 하구, 명녹이 말은 물러 달라면
모르지만 바꿔 달라는데 못 바꿔 줄 것이 무어냐구 해서 말다툼이 났는데, 맨망
스러운 명녹이란 놈이 성깔이 나서 안 바꿔 줄라거든 네나 처먹어라 하구 강엿
쪽을 엿장사 얼굴에 내던져서 코피를 냈답니다. 여러 장꾼들이 와서 구경들 하
는데 백손이두 그 틈에 섞여 서서 구경하구 있었답니다. 이때 사령 한 놈이 어
디서 보구 구경꾼들을 잡아체치구 들어오더니 불문곡직하구 명녹이를 이 뺨 치
구 저 뺨 치구 하는데, 명녹이가 항거두 못하구 맞는 것을 백손이가 보구 구경
꾼 틈에서 쫓아나와 그 사령을 보기좋게 메어꽃았답니다." 황천왕동이가 숨을 돌
리느라고 이야기를 중간에 잠시 그치니 "그래 어떻게 돼서 뒤쪽으루 잡혀갔단
말이냐? ” 꺽정이가 이야기 끝을 재측하였다. "백손이가 명녹이더러 고만 가
자구 해서 둘이 바루 광복으루 나오는데 읍애서 불과 한 이 마장쯤 나왔을 때,
뒤에서 이놈들 게 있으라구 소리들을 지르며 사령 여닐곱 놈이 좇아오더랍니다.
명녹이가 빨리 도망가자구 한즉 백손이 말이 이런 때 서루 돌보다가는 낭패보기
가 쉬우니 각각 도망하자구 하더랍니다. 명녹이가 그 말을 곧이듣구 저 혼자 도
망질을 치는 중에 백손이 일이 종시 궁금
해서 차츰차츰 도루 가면서 앞을 바라본즉 먼저 도망하자구 말하던 그 자리에서
백손이가 사령들에게 붙잡혀 묶이는 중이더랍니다. 명녹이가 제 힘으루 뺏어을
수는 없구 같이 잡혀가기나 하려구 앞으루 더 나가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까 저
마저 잡혀가면 소식을 통할 수가 없어서 혼자 왔다구 하구 제 잘못으루 이런 일
이 났으니 치죄하여 달라구 대죄를 합디다." "그 자식은 나 잡아가거라 하구 가
만히 한 자리에 서 있었단 말
이냐? 그랬다면 그런 넉적은 자식이 어디 있단 말이냐? “ 하고 꺽정이가 쓴입
맛을 다시었다. 꺽정이 말끝데 황천왕동이가 고개를 외치며 "백손이가 넉적은 짓
을 한 게 아니라 깜냥없는 짓을 했어요." 하고 말하였다. "깜냥없는 짓이라니?
” "그 깜냥없는 아이가 혼자서 맨주먹으루 사령 예닐곱 놈과 마주 싸웠답니다.
그래두 제법 이놈 치구 저놈 치구 해서 사령들 중의 몸에 상채기 하나 안 나구
성한 놈이 두어 놈뿐이었다니, 저딴엔 난생 처음으루 큰 쌈을 해본 셈이겠지요.
한참 치구 달쿠 하는 중 에 사령 한 놈이 살그머니 백손이 뒤에 가서 몽치루 골
통을 내려 패서 고꾸라뜨려 놓구 여러 놈이 대들어서 묶었답디다." "골통이 깨졌
으면 죽기가 쉽겠구나." "그렇게 몹시 깨지지는 않은 모양입디다." "읍에 와서 김
좌수를 찾아봤느냐? " "지금 말씀한 이야기두 김좌수에게 들었습니나. 명녹이의
말을 듣구 곧 옵으로 쫓아내려와서 김좌수를 찾아보구 백손이를 빼주두룩 힘 좀
써달라구 청했더니 김좌수가 자기 힘으루 어떻게 할 수 없는 형편을 자세 이야
기합디다. 백손이가 사령들에게 뭇매를 맞을 때 청석골 임대장의 아들이라구 말
을 했다나요? 이 말을 사령들이 이방에게 고하구 이방이 원에게 고해서 원이 백
손이를 잡아 들여다가 문초를 받는데, 우리가 광복산에 와 있는 것까지 다 바루
댔답디다. 원이 큰 공명할 수나 생긴 줄 알구 백손이를 큰칼 씌워서 옥에 가두
게 하구 옥쇄쟁이게만 맡겨두는 것이 허소하다구 장교들을 시켜 옥을 지키게 했
답디다. 그러구 서을 포청과 강원 감영에 보내는 보장들은 오늘쯤 띄우게 되리
라구 합디다. “ 황천왕동이는 이야기를 다하고 끝으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구
경 저의 불찰인즉 무슨 죄책을 내리시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하고 식구 보호할
책임 다하지 못한 것을 인책하여 말하니 "네게는 과실이 없는 걸 무슨 죄책이란
말이냐? " 하고 꺽정이는 황천왕동이를 책망하지 아니하였다. 황천왕동이가 그제
야 길막봉이 없는 것을 괴이쩍게 생각하여 옆에 앉은 배돌석이더러 "막봉이는
어째 아니 왔소? " 하고 물었다. "다른 데 갔네." "어디를 갔소? ” "바눌티. " "
바눌티라니 정상갑이 집 말이오? 거기는 어째 갔소? “ "이야기하자면 자네 이
야기만 못지않게 길걸세. " 배돌석이는 이야기가 길다고만 하고 고만 덮어두는
것을 서림이가 간단하고도 조리 있게 혜음령패 불러왔다가 도로 보낸 사정을 이
야기하여 황천왕동이에게 들려주었다. "막봉이가 혜음령패에게 욕이나 보지 않을
까요?" "혜음령패가 저이 괴수의 복수를 할는지 모른단 말씀이지요. 그럴 리는
만무하우. 상갑이의 유족들이라두 우리에게 복수할 생각은 먹지 못할 게요." "판
돌이가 대장 형님께 욕설하며 대들기까지 했다먼요?" "일시 미쳐서 날뛰었지 맑
은 정신 가지구야 될 말이오. 설혹 우리에게 복수할 맘을 가진 자가 있더래두
저희들끼리 못하게 말릴게요 왜 그런고 하니 패 중의 하나가 섣부른 짓을 하는
날이면 일불이 살육통으루 전패가 망할 걸 잘들 아니까." 서림이가 황천왕동이와
수작하는 것을 그친 뒤에 꺽정이를 보고 "어떻게 하실랍니까. 이천을 곧 가보셔
야지요? ”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혀를 한번 쩟 차고 "할 수 있소, 가봐야지."
대답하고 나처 바로 황천왕동이를 돌아보며 "우리는 이천으루 갈 테니 너는 문
안에 들어가서 한온이를 찾아보구 이사두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려니와 전옥 옥
사가 어느때쯤 결말이 날까 알아봐 달라구 해라. 알아보는 데 날짜가 걸린다거
든 며칠을 묵든지 아주 똑똑히 알구 오너라. 그러구 바눌티 가서. 막봉이보구 이
리 다시 오지말구 바루 청석골루 가라구 말해라." 하고 말을 일렀다.
꺽정이가 외아들 백손이의 일이 급하여 전옥 파옥은 중지하고 이봉학이, 배돌
석이, 서림이 세 두령과 신불출이, 곽능통이 두 시위를 데리고 총총히 이천으로
회정하였다.
꺽정이의 일행 여섯 사람이 첫날 백여 리 연천 와서 자고 이튿날 백리 놋다리
고개를 해동갑하여 넘어와서 촌가에서 저녁밥들을 시켜 먹고, 석후에 달빛을 띠
고 다시 사십리길을 걸어서 이천읍내를 대어오니 밤이 벌써 삼경이었다. 사직단
위에 지는 달이 걸리고 성산 허리에 자는 구름이 둘렀는데, 어디서 개짖는 소리
가 나다가 그치도 인적은 괴괴하였다.
읍내를 들어서기 전에 일제히 준비를 차리는데 짐에 든 병장기들은 꺼내고 웃
옷들은 벗어 짐에 넣었다. 꺽정이는 검술 선생에게서 받은 장광도를 뻬들고 이
봉학이는 전주 감영에서 장만한 일등 좋은 각궁을 내들었다. 이것은 다 서울 가
서 전옥을 깨칠 때 쓰려고 가지고 갔던 것이다. 배돌석이가 팔매돌을 한줌 가득
쥔 것은 말할 것도 얼고 서림이까지 환도 하나를 손에 잡았다. 신불출이와 곽능
통이는 가벼운 짐이나마 짐을 진 까닭에 접전할 준비는 고만두고, 그 대신 한
사람은 화살을 많이 가지고 또 한 사람은 팔매돌을 보에 싸들고 이봉학이와 배
돌석이의 뒤에 각각 붙어 다니기로 되었다.
옥쇄쟁이가 초저녁잠 한숨을 늘어이게 자고 나서 옥을 한번 돌아보고 들어오
려고 하던 차에. 개짖는 소리에 외심이 나서 초롱불도 안 가지고 옥으로 나오다
가 병장기 가진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바라보고 꺽정이가 아들을 찾으러 온
줄 선뜻 짐작하고 뒷길로 빠져서 장청으로 달려갔다. 꺽정이가 옥 앞에 와서 "백
손아! " 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또다시 “백손아! " 하고 불렀다. 두번째 목
소리는 첫번보다 훨씬 컸다. 백손이는 마침 잠이 들었다가 잠결에 아비의 목소
리를 듣고 "아버지. " 하고 불러서 꺽정이가 "오냐. " 하고 대답하였다. 반가운
마음이 복받쳐서 아버지 소리는 굵고 급하였고, 자애가 흘러나와서 오냐 소리는
부드럽고 길었다. 옥문은 튼튼한 자물쇠로 잠갔지만, 꺽정이가 자물쇠를 쥐고 비
트는데 배목이 부러져서 잠근 보람이 조금도 없었다. 꺽정이가 갈문을 열어젖히
고 옥 안에 들어가서 백손이의 칼을 벗기고 끌고 나오며 "너 걸음을 걷겠느냐?
" 하고 물으니 백손이는 "그러먼요. " 대답하고 옥 밖에 나와서 겅충겅충 뛰어
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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