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식은 달리도 들으셨으려니와 가는 아이의 구전으로 자세히 들으실
듯 모두 줄이오며.” 이봉학이가 편지 비두에 적힌 사연을 읽은 뒤 황천왕동이
를 바라보고 “서울 소식 이야기할 사람을 서울루 돌려보내구 왔네그려.” 하고
한마디 말하자 다른 두령 오륙 인이 그 뒤를 이어서 “편지 가지구 오는 놈을
여기까지 왔다 가랬으면 낭패 없을 겐데 중간에서 보낸 게 잘못일세.” “중간
에서 보낼라면 서울 이야기나 다 듣구 보낼 게지.” 황천왕동이를 책망하는 사
람도 있고 “김선달이 처남인지 첩처남인지 보낼 때 서울 이야기를 가서 자세히
하라구 일러 보냈을 텐테 그 자식이 와서 이야기할 생각 않구 그대루 간 겔세그
려.” “고놈의 자식이 다리품 팔기가 싫어서 가라니까 웬 떡이냐 하구 간 모양
이오.” 김치선이의 처남을 욕하는 사람도 있고 또 “치선이두 치선이지, 지금
우리가 서울 소식을 어디서 들으리라구 ‘달리두 들으셨으려니와’가 다 무어
야.” “우리가 달리 들을 데 없는 걸 그 사람이야 알 까닭 있소.” “그러구 편
지를 안하면 모를까 이왕 할 바엔 대강은 편지에 적구 자세한 건 편지 가지구
가는 사람에게 들으라구 해야지 그러 덮어놓구 줄인단 말인가. 그렇게 줄일라거
든 숫제 편지를 하지 말구 사람만 보냈으면 좋을 것 아닌가.” 김치선이를 탓하
는 사람도 있었다. 여럿이 제가끔 지껄이는 통에 이봉학이가 편지를 읽지는 못
하고 혼자 보기만 하여 꺽정이가 여러 두령더러 지껄이지들 말라고 소리지르고
이봉학이를 돌아보며 “그 아래 적힌 사연이 다 무언가 어서 읽어보게.” 하고
편지 읽기를 재촉하였다. “좌포청 사건이 생긴 뒤 제가 손동지에게 통심정을
다하고 그의 힘을 보는 중이온데 어젯밤 그의 소실이 집에서 약주를 먹는 중에
동지가 저를 보고 너의 상전댁이 이번에는 뿌리빠지리라 웃음의 말씀을 하옵기
저 역시 웃으며 그것이 무슨 말씀인가 묻사온즉 좌포장댁 청직 한 사람이 무슨
청할 일이 있어 석후에 찾아와서 담화하던 끝에 서림이 이야기 났었는데 그 사
람의 말이 저의 주인 영감께서 서림의 지혜 많은 것을 신통히 보시고 특별 고호
하시므로 이번 순경사 나가서 쓸 계책까지 서림을 데리고 의논하시고 또 서림을
황해도 순경사에게 딸려보내실 의향이 계시다 하더라, 서림이 황해도 순경사를
따라가면 더 말할 것 없고 설사 따라가지 않더라도 아무개의 모사가 아무개 잡
을 계책을 내어 바쳤으니 그 계책이 범연하랴. 아무개가 이번에는 마산리에서와
같이 도망도 못하고 잡힐 터이니 두고 보라. 손동지의 말이 이러하더이다. 저의
생각에도,” “서림이란 놈이 제 요공하려구 우리를 잡으러 나온다. 그놈 참 죽
일 놈이다.” 하고 꺽정이가 별안간 볼멘소리를 하는 바람에 이봉학이는 편지
읽던 것을 그치고 “그놈이 우리를 잡으려구 하거나 안하거나 우리가 그놈을 잡
아 없애야지 후환이 없겠소.” 하고 말하였다. 곽오주가 이봉학이의 말끝을 달아
서 “잡아 없애야지, 그놈의 불여우을 세상에 남겨두면 사람의 오장 깡그리 다
빼먹구 말 게요.” 하고 말을 그만 그쳤으면 좋을 것을 짓궂이 “대장 형님, 불
여우한테 속은 게 인제 분하지요.” 하고 꺽정이를 오금박다가 “아가릴 찢어놓
기 전에 가만히 닥치구 있거라.” 꺽정이의 호령을 듣고 목을 음충맞게 움츠러
뜨리며 픽 웃었다. 곽오주의 웃는 꼴이 꺽정이 눈에 거슬려서 “꼴 보기 싫다.
여기 앉았지 말구 나가거라.” “밖에 동댕이치기 전에 냉큼 못 일어서겠느냐.”
하고 연거푸 천둥같이 호령하는데도 곽오주는 꿈질거리고 있는 것을 박유복이가
쫓아가서 등을 밀어서 밖으로 내쫓았다.
꺽정이는 서림이가 조정에 귀순한 줄을 안 뒤에도 서림이에 대하여 아직 용서
성이 많았었다. 서림이가 마산리 모임을 고발한 것은 용서하기 어려운 죄나 약
한 위인이 혹독한 단련을 받고 본의 아닌 소리를 지껄였거니, 서림이가 처자를
그대로 두지 않고 꾀바르게 빼간 것은 괘씸한 짓이나 저의 죄를 처자에게 연좌
쓸까 겁내기도 용혹무괴한 일이거니, 꺽정이가 이렇게 너그럽게 생각한 것은 서
림이를 자기의 제갈량으로 알아서 아니 들은 말이 없고 아니 쓴 계교가 없도록
종시 신임하였으므로 서림이 제 비록 조정에 귀순하였을지라도 자기의 은의는
잊지 아니하려니 믿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자기 잡을 계책을 내고 자기 잡으려
는 관군을 따라온다니, 이것은 분명 자기를 잡아서 저의 공명을 삼자는 것이라
꺽정이가 통분하기 짝이 없어하는 판에 눈치코치 모르는 곽오주가 분을 더 돋워
서 분이 꼭뒤까지 났었다. 아랫입술로 윗입술을 더받쳐서 입술 위아래 수염이
꺼칠하게 일어나고 숨쉬는 소리까지 씨근씨근하는 것 같았다. 다른 두령은 다들
입을 함봉하고 앉았는데 오가가 출반좌하고 좌중을 돌아보며 “오주는 서림이더
러 사람 아니구 불여우라구 하지만 오주 저두 사람은 아니야. 미련은 곰새끼구
우악은 억대우구, 오주가 우멍한 눈을 끔벅끔벅하는 걸 보면 나는 언제든지 탑
고개에서 뜸베질당하던 생각이 나네. 사람 치구 그 따위 무지하구 미욱하구 용
통하구 데퉁궂구 열퉁적구 별미없구 변모없는 위인을 우리 사위 양반은 무엇에
반했는지 처음부터 이날 이때까지 꼭 데리구 들어온 자식 두남두듯 속살루 은근
히 두남두느라구 애를 부둥부둥 쓸 때가 많으니 그게 아마 전생에 오주의 빚을
지구 이생에 와서 갚는 모양이야.” 하고 너덕거리었다. 오가의 너덕거리는 말도
우스운데다가 이봉학이가 오가더러 “오주가 웬 직함이 그렇게 많소.” 하고 실
없은 말을 정당한 말 묻듯 하는 것이 우스워서 여러 두령들이 혹은 소리내고 혹
은 소리없이 웃는 중에 꺽정이도 숨을 한번 크게 쉬고 나서 손으로 수염을 쓰다
듬기 시작하였다. 화가 나거나 분이 날 때는 수염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꺽정
이의 버릇이라 수염을 쓰다듬는 것이 곧 분이 가라앉은 표적이었다.
황천왕동이는 아직 저녁밥을 먹지 못한 까닭에 꺽정이를 보고 “가서 밥 좀
먹고 오겠습니다.” 하고 말하니 꺽정이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황천왕동이가 밖
으로 나간 뒤 얼마 아니 있다가 곽오주가 들어와서 두 팔 짚고 엉거주춤하고 엎
드려서 고개를 뻣뻣이 치켜들고 꺽정이를 바라보며 “대장 형님, 날 들어오라구
부르셨소?” 하고 물었다. “나는 부른 일 없다.” “모두 여기서 여러 이야기들
하는데 나 혼자 등 너머루 넘어갈라니까 걸음이 안 걸립디다. 그래 치운 밖에서
몸이 꽁꽁 얼었소. 천왕동이 형님이 나와서 하는 소리가, 대장 형님이 굵은 지겟
작대기 같은 매를 해가지구 들어오라신다구 합디다. 고만 들어오라구 부르시는
데 거짓말을 보태서 날 놀리는 줄 알았더니 백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했구먼요.”
곽오주의 주워 지껄이는 말을 꺽정이는 듣는 체 만 체하는데 오가가 너털웃음
을 웃으며 “여게 오주, 자네가 지레짐작한 것만두 매는 좀 맞아야겠네. 어서 가
서 작대기 한 개 가지구 오게. 내가 대장 몸받아서 때려줌세.” 하고 말하니 “
내 대신 작대기 가지구 와서 맞아보구려.” 하고 곽오주가 대꾸하였다. “저것
봐. 둘러쒸울 줄까지 아네. 자네 재주가 점점 느네그려.” “그 동안 좀 조신하
더니만 요새 왜 또 희룽희룽하우.” 곽오주의 말을 오두령이 받기 전에 꺽정이
가 곽오주를 보고 “지껄이는 소리 듣기 싫다. 네 자리에 가서 아가리 가만히
닥치구 앉았거라.”하고 소리질러서 곽오주는 얼른 녜 대답하고 먼저 앉았던 자
리에 가서 다시 앉았다.
곽오주가 그럭저럭 꺽정이의 용서를 받은 뒤 오가가 이봉학이를 보고 “곽두
령의 훼방이 인제 끝이 났으니 치선이의 편지두 마저 끝을 내시는 게 어떻소.
편지 끝에 또 무슨 말이 있나 들어봅시다.” 하고 말하니 이봉학이가 “끝에는
별말 없습디다.” 하고 대답하며 옆에 접어놓았던 편지를 다시 펼쳐 들고 먼저
읽다 그친 구절에서부터 내리읽었다. “저의 생각에도 서림이와 같은 도중 내정
과 산중 지리를 잘 아는 자가 순경사를 도우면 큰일이 올 듯 염려 적지 않사외
다. 조변석개하는 조정 일이 오래 갈 리 없사오므로 순경사는 불과 몇 달 안에
소환되올 듯 그 동안 어디로든지 피신들 하심이 득책아니오리까. 염려되는 맘에
말이 넘난 데까지 미쳤사외다. 제가 처자들 몸붙여 있는 방에 와보온즉 마침 처
남아이 와서 있삽기 한번 걸음 더하라 이르옵고 등하에 수자 적사오며 내내 첨
위의 천금귀체를 만만 보중하심을 축수 바라나이다.” “편지가 어느 날 난 게
요. 연월일두 좀 보시우.” 하는 오가의 말에 “경신 납월 초삼일야라구 했으니
까 바루 어젯밤에 쓴 것이오.” 하고 이봉학이는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이봉학이
의 접어 주는 편지를 받아서 머리맡 손궤 위에 놓아두고 여러 두령들을 둘러보
며 “김치선이는 지금 이리저리 피신해 다닌단 사람이 우리게 기별해 줄 걸 잊
지 않았으니 고마운 사람이다. 아니 김치선이는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하고
김치선이를 의리 있다고 칭찬하는 말에 서림이는 의리 없는 놈이라고 타매하는
뜻이 나타났다. 이봉학이가 꺽정이의 말뜻을 받아서 “서림이 같은 의리 없는
놈이 천하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니 다른 두령들이 그 뒤에 연달아
서 서림이를 죽일 놈 살릴 놈 하고 제각기 한두 마치씩 말하였다. 이때까지 서
림이 말을 몹시 안하던 오가가 천참만륙하여 마땅한 놈이라고 큰소리로 떠들 뿐
아니라 여럿이 떠들 때 흔히 잠자코 듣기만 하는 박유복이와 서림이 위인을 잘
알지 못하는 이춘동이까지 다 말참례를 한몫 들었다. 그런데 말 한마디라도 지
독하게 모지락스럽게 해붙일 듯한 배돌석이가 평일의 박유복이 대번을 보는지
잠자코 듣기만 하더니 여럿의 떠드는 것이 한거품 꺼진 뒤에 비로소 꺽정이를
보고 “서림이놈을 속히 잡아 죽일 도릴 생각해야지 죽이느니 살리느니 헛소리
만 해서 무어 합니까. 우리가 백날 입으루 죽인다구 서림이놈이 죽습니까. 그러
구 여기 있는 서림이놈의 자식은 지금 당장이라두 죽여버립시다.”하고 말하는
것을 꺽정이는 듣고 한참 있다가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내 말이 어디가 그릅
니까?” “서림이 자식은 아직 볼모루 두구 그놈의 애두 태워 주려니와 이 다음
그놈을 잡는 날 그놈 보는 데서 죽일 테다.” 곽오주가 별안간 손뼉을 딱 치고
“대장 형님 소견이 내 비위에 꼭 맞소.”하고 소리를 지르니 박유복이가 눈을
흘기었다. 여러 두령중의 한온이는 임진대적을 하기는 고사하고 구경조차 한 일
이 없는 사람이라 위험한 일을 겪어보고 싶은 맘도 바이 없진 아니하나 안전한
것을 좋게 여기는 맘이 더하여서 김치선이 충고대로 피신들 하기를 바라는데 피
신하자는 의론이 나지 않는 게 답답하여 “김치선이의 말이 유리한 말인 듯한데
어떻게 생가하십니까?” 하고 꺽정이의 의향을 물으니 꺽정이는 마치 시침 떼듯
“무어가?” 하고 되물었다. “피신을 하란 말이 유리한 말이 아닐까요?” “피
신할라니 할 데가 있어야지.” “광복산은 여기와 어떤가요?” “강원도에두 순
경사가 났다니까 광복 있는 아이들을 다 이리 오라구 해야겠다.” “광복은 그
렇겠구먼요. 평안도에두 피난처를 여러 군데 만들어 두셨다지요?” “우리 도중
상하 다솔이 지금 평안도를 갈라다간 길에서 낭패보게.” “그럼 순경사가 나오
면 어떻게 하실랍니까?” “어떻게 하긴 무얼 어떻게. 접전하는 게지.” “접전
하면 승산이 있을까요?” “승부는 접전을 해봐야 알지 그걸 어떻게 미리 알 수
있나.” 꺽정이는 한온이를 미경사 소년으로 알아서 묻는 말을 일일이 대답하여
주는데, 그 대답이 다 수월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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