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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0권 (5)

카지모도 2023. 9. 19.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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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온이와 꺽정이의 문답이 끝난 뒤 박유복이가 꺽정이 나중 말의 말끝을 달아

서 “접전해서 이길 건 미리 알 수 없지만 이기두룩 준비는 미리 해야 하지 않

습니까?” 하고 말하는데 박유복이의 의사는 그럴 리가 만무하지만 언뜻 듣기에

흡사 꺽정이의 말을 책잡는 것 같아서 꺽정이는 미간을 잠깐 찌푸렸다가 다시

펴고 “준빌 누가 안한달세 말이지.” 하고 박유복이의 말을 대답한 뒤 곧 이어

서 “준비할 것이나 잘 생각해서 이야기들 해봐라.” 하고 여러 두령들을 둘러

보았다. 여러 두령이 다 각각 생각나는 대로 말한 것을 대강 추려보면, 군량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고 군기를 조수하여 만일 파손된 것이 있거든 속히

수보하고 탑고개 길목 지키는 것과 두령들 매일 행순하는 것을 중지하고 사산

파수꾼 수효를 곱절로 늘려서 안팎 장등에 겹파수를 보이고 광복산 졸개도 소환

하려니와 탑고개, 양짓말 등지에 나가 사는 두목과 졸개들도 거두어들이고 그리

하고 당보수를 멀리 내보내고 기외에 이목을 널리 늘어놓아서 관군의 동정을 일

일이 알아들이자는 말들이었다. 꺽정이가 여러 두령들의 말하는 것을 다 듣고

나서 이봉학이를 돌아보며 “모든 준비를 하나가 맡아 시켜야 일이 구김이 없을

테니 자네 맡아 시키게.” 하고 말을 이르니 이봉학이가 녜 대답한 뒤 “지금

말들 한 여러 가지 준비두 다 긴요하지만 제 생각엔 서울 소식을 더 좀 자세히

알아보는 게 제일 긴요할 것 같습니다. 순경사가 어떤 위인인지 경군이 얼마나

내려오는지 서림이가 과연 순경사를 따라오는지 안 오는지 다 알구 앉았으면 좋

겠구, 또 좌포장이 서림이 데리구 계책을 의논했다구 손동지더러 이야기한 좌포

장집 청지기는 그 계책이 어떤 것인지까지 혹 알는지 모르니 그걸 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그 계책을 대강만이라두 우리가 미리 알면 방비하는 데 힘이

여간 덜리지 않을 겝니다.” 하고 말하였다. “글쎄, 알아보는 게 좋지만 치선이

가 숨어 다녀서 만나보기가 어렵다니 어디루 알아보나?” “다른 사람은 몰라두

한두령이 가면 설마 그것쯤 못 알아오겠습니까?” 꺽정이가 고개를 돌려서 한온

이를 바라보며 “너 서울 가서 알아올 수 있겠니?” 하고 묻는 말끝에 “다른

건 알 수 있겠지만 좌포장이 서가 데리구 이야기한 걸 알아낼 수 있을까?” 하

고 미심쩍게 여기는 말을 더 붙이었다.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알아낼 길을 찾

으면 혹시 있을는지 모르지요.” “그럼 서울 한번 갔다 오너라.” “순경사가

금명간 떠난다구 하더라는데 서울 간 동안에 여길 와서 에워싸서 들어올 길이

끊어지면 어떻게 하나요?” “아무리 철통같이 에워싸기루 우리 드나들 길이야

없으랴. 그런 염려 마라.” “그럼 내일 곧 떠날까요?” “그래 봐라.” 꺽정이

는 대답을 한마디 말로 그치고 이봉학이가 그 뒤를 받아서 “지금 일이 벌써 급

했네. 내일 첫새벽 떠나게. 자네 서울 다녀오는 것이 하루 이르면 하루 이가 있

을 테구 한 시각 빠르면 한 시각 이가 있을 테니 한 시각이라두 빨리 가구 빨리

오두룩 하게.” 하고 여러 말을 하였다. “요새 서울이 살얼음판이라는데 오래

있기두 재미 없으니까 알아볼 것 대강 알아보구 곧 오지요.” “서림이 일은 아

무쭈룩 자세히 알아가지구 오게.” “알아보는 데 날짜가 많이 걸리더라두 자세

히 알아가지구 올까요?” “자네가 서울 가면 빨리 알구 자세히 알 길이 있을

겔세.” “글쎄요.” “자네 가는데 무얼 타구 가려나?” “교군 타구 가겠세요.

” “복색은 어떻게 할라나?” “복색을 어떻게 하다니요?” “상복으루 갈라느

냐, 화복하구 갈라느냐 묻는 말일세.” “상제 복색이 좋지요.” “그럼 교군은

소교를 꾸미래야겠구 교군꾼은 교군 잘 하구 발 잘 맞는 아이들루 두 패를 뽑으

라구 하겠네. 그러구 교구꾼 외에 다른 하인은 데리구 가지 말게. 그래야 길이

빠르네.” 이때 윗간 방문이 열리며 밥 먹으로 갔던 황천왕동이가 들어왔다.

꺽정이가 황천왕동이 들어와 앉는 것을 보더니 눈살이 당장 곱지 않아지며 “

밥 먹구 곧 오지 않구 무어 했느냐? 밥 먹으러 간 제가 언제냐. ” 하고 꾸짖는

데 황천왕동이는 대답을 못하고 머리 뒤만 긁적긁적하였다. 오가가 황천왕동이

를 바라보고 웃으면서 “대장 말씀에 왜 대답을 못하나. 밥 먹구 나서 어린 놈

재롱 보느라구 좀 늦었습니다구 대답하지. ” 하고 농담을 걸어서 황천왕동이도

역시 농으로 “귀뚜리 영신이요, 어찌 그리 용하게 아우. ” 하고 대거리하였다.

꾸지람을 듣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농지거리하는 것이 꺽정이 비위에 거슬렸다.

“밥 먹구 무어 했느냐? 자빠져 자다가 왔느냐? ” “잠깐 누웠다 일어난다는

것이 잠이 깜박 들었었세요. ” “무엇이 어째? 우리가 지금 사생 결단할 일을

앞에 놓구 의론하는데 너는 혼자 가서 자빠져 잤단 말이냐. ” 꺽정이는 언성을

높이고 “어젯밤에 어린 것이 자지 않구 보채서 잠을 못 자구 오늘 길을 걸어서

피곤한데다가 배고픈 끝에 밥 한 그릇을 먹었더니 온몸이 나른해서 갱길 할 수

가 없습디다. 그래 잠깐 누웠었습니다. ” 황천왕동이는 발명을 부산히 하였다.

그러나 꺽정이가 황천왕동이의 발명을 세워 주지 않고 “지금 네 모가지에 칼이

들어간다면 식곤증 난다구 누워 있지 못하겠지. 도중 일을 네 일루 안 알기에

맘을 태평 먹는 것 아니냐. ” 하고 인정 없이 꾸짖었다. 꺽정이의 꾸지람이 끝

난 뒤 한온이가 꺽정이를 보고 “제게 더 부탁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더 부탁할 말이 있거든 말하란 눈치로 이봉학이를 돌아보았다.

“다른 거 없네. 그저 서림이 뒤만 잘 캐어보구 오게. ” 하고 이봉학이 말한 뒤

에 박유복이가 “서림이 타구 간 얼룩말이 어떻게 되었나 치선이 보거든 한번

물어보게. 요전 왔던 치선이 처남더러 물으니까 모르겠다구 하데. ” 하고 말하

였다. 오가가 박유복이를 돌아보며 “자네는 그 말이 그렇게두 아까운가? ” 하

고 핀잔 주듯 말하여 박유복이는 남의 속 모르는 말 하지 말라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는데, 이것을 오가는 그 말이 아깝지 않단 뜻으로 빗알았다. “그럼 왜 말

이야길 지재지삼 하나? ”“대장 형님이 그 말을 얻어가지구 오셨을 때 하두 좋

아하시던 게라 도루 찾을 수 있으면 찾을라구 그러우. ” “얼룩이 대신 황부루

가 생겨서 대장 타실 말이 있는데 무얼 그러나. ” “두 마리 말구 이십 마리

이백 마리라두 좋지. 그렇지만 얼룩이는 벌써 속공돼서 지금쯤 사복에 들어가

매었을지두 모르는 걸 물어보면 무어 하나. ” “그래두 혹시를 몰라서 물어보

란 말이지요. ” 박유복이의 맘이 충직한 것을 꺽정이는 새삼스럽게 느껴서 박

유복이더러 “네 맘은 무던한 맘이나 말은 오두령 말이 옳다. 얼룩이는 다시 찾

기 틀린 걸 물어보면 무어 하느냐. ” 말하고 나서 곧 “여보 오두령, 서가놈 맘

이 유복이 맘의 반의반만 해두 훌륭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겠지. ” 말하고 서

글프게 웃었다. 한온이가 다시 꺽정이를 보고 “제게 다른 말씀 하실 것 없으면

저는 일찍 가서 자겠습니다. ” 하고 말하니 꺽정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라. ” 하고 허락하였다. “내일 식전 기침하시기 전에 떠나기 쉬우니까 지금 아

주 하직하구 가겠습니다. ” “첫닭울이에 떠나더라두 우리가 일어나서 떠나는

걸 볼 테니 하직이구 작별이구 다 고만두구 그대루 가거라. ” 한온이가 꺽정이

사랑에서 나와서 작은 첩의 집으로 자러 오는 길에 큰집에 들러서 서울 가는 것

을 말하고 큰집 앞 초막의 개미치를 불러내서 데리고 왔다. 권개미치는 서림이

의 편지를 맡아가지고 왔을 때 청석골 와서 살 허락을 얻고 처자를 끌고 와서

다시 한온이 집 그늘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한온이가 방에 들어앉아서 밖에

세운 개미치를 내다보며 “내가 내일 서울을 갈 텐데 서울 가서 뉘 집으루 들어

가는 게 좋을까? ” 하고 물었다. “글쎄올시다. ” “덕신이 집이 어떨까? ”

“덕신이 부모는 댁 음덕을 잊지 못하겠습지요만 덕신이놈이 믿지 못할 놈입니

다. ” “문성이는? ” “문성이는 말씀두 맙시오. 그놈이 최가의 집에 댁 대령

하는 놈입니다. ” “집이 협착해서 가서 있긴 좀 비편하지만 만손이게루 가는

수밖에 없군. ” “부모 자식 다 미덥기가 만손이 집이 제일입니다. ” “치운데

오래 섯지 말구 가게. ” “내일 어느때 떠나실 텝니까? ” “첫새벽 떠날 텔세.

” “새벽에 오겠습니다. 안녕히 주뭅시오. ” 개미치가 나간 뒤에 한온이는 바

로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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