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림이의 위인이 미덥지 못한 것은 김포장이 이순경사보다 더 잘 알지만 꺽정
이를 잡는데 유용한 인물로 김포장은 확신하는 까닭에 이순경사더러 데리고 가
서 잘 조종하여 써보라고 말하러 왔더니 이순경사가 소견이 부족하여 미덥지 못
한 것만 생각하고 유용한 것은 생각지 못하는 모양인데, 게다가 고집이 세어서
자기 소견을 좀처럼 고칠 리도 없으므로 김포장은 숫제 서림이 데리고 가란 말
을 입밖에도 내지 아니하려고 생각하다가 공사를 위하여 온 본의를 돌쳐 생각
하고 “서림이 같은 적당의 재정을 잘 아는 놈이 적당을 체포할 때 소용이 될
듯한데 영감 생각엔 어떻소?” 하고 데리고 가란 운만 떼어서 물으니 이순경사
입에서 “쓰기에 달렸지만 쓸데가 있다뿐이오.” 하는 대답이 나왔다. “그럼 서
림이를 맡아가지구 계시기가 주체궂어서 내게다가 전장하실 생각이시오그려.”
이순경사는 실없은 말을 하며 웃는데 김포장은 정색하고 “나는 포도 공사루 알
구 의논하는데 영감 그게 무슨 말이오.” 하고 책망하니 이순경사가 잠시 무료
하다가 곧 얼굴빛을 고치고 “내가 가봐서 서림이를 쓸데가 있으면 곧 영감께루
기별할 테니 그때 보내주시우.” 하고 말하였다. 김포장이 상의하러 온 일은 이
로 끝을 막고 작별 인사나 하고 일어서려고 “영감 내일 어느때쯤 떠나시겠소?
” 하고 물었다. “우리는 오늘 곧 떠나두 좋겠는데 병조에서 군사 겨우 오십
명 주는 것을 오늘 해전에나 뽑아주겠다구 해서 못 떠났으니까 내일은 일찍 떠
나게 되겠지요.” “내일 일찍 떠나시면 모레는 금교역을 들어가시겠소.” “먼
저 해주 가서 황해감사하구 대개 방침을 의논해 놓구 그러구 각군을 순력 할 작
정이오.” “먼저 금교역에 가 앉아서 적괴가 청석골 소굴에 있구 없는 것부터
기찰을 시키는 게 득책이 아니겠소?” “그놈이 타도루 내빼지 않구 황해도 경
내에만 있으면 설마하니 못 잡겠소.. 소굴에 들어 엎드렸으면 들어가서 잡을 테
구 다른 곳에 가 파묻혔으면 그곳을 쫓아가서 잡을 테니까 감사를 만나보구 수
탐하기 시작해두 늦지 않을 것이오.” “영감이 어련히 잘 생각하셨겠소. 어떻게
하든지 정선전이 끼쳐놓은 국가의 수치를 영감이 쾌히 설치하구 오시우.” “해
서 적환을 평정해서 특별히 위임하신 상의를 만분 일이라두 보답할까 생각하우.
” “양도 순경사가 일시에 동서루 떠나는데 누구는 나가 보구 누구는 안 나가
볼 수 없어 전송하러 나가지 않을 테니까 오늘 이렇게 작별하겠소.” “영감, 약
주 한잔 잡수시려우?” “아니, 나는 곧 일어나야겟소.” “왜 어느새 가시려구
그러시우?” “가다가 김순경사를 좀 보구 가겠소.” “좀더 기시다가 김순경사
가 오거든 아주 보구 가시구려.” “떠날 때 전송두 못할 텐데 집에까지 안 가
볼 수야 있소.” 김포장은 이순경사 집에서 김순경사에게로 오고 김순경사는 자
기 집에서 이순경사에게로 가다가 서로 만나서 둘이 다같이 탔던 말 위에서 내
려 노상에 서서 수어 수작하고 이내 작별 인사까지 주고받고 서로 헤어졌다. 김
포장이 바로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은 다시 말할 것 없고 김순경사가 이순경사
에게 왔을 때 좌정도 채 하기 전에 이순경사가 “좌포장이 영감께루 간다구 지
금 막 갔는데 길에서 교위가 된 모양이구려.” 하고 말하여 “지금 오다가 노상
에서 잠깐 만났소.” 하고 김순경사는 대답하였다. “포도 공사루 상의할 일이
있다구 다른 손들까지 쫓아놓구 급히 말하는 것은 꺽정이의 모주 노릇하던 서림
이란 놈을 나더러 데리구 가란 말입디다.” “그래 그놈을 데리구 가기루 했
소?” “데리구 가고 싶은 생각이 적어서 고만두었소.” “왜 데리구 가고 싶지
않소?” “그놈이 말할 수 없는 반복소인이라는데 그놈을 데리구 갔다가 도둑놈
들의 내응이나 해주면 긁어부스럼을 만드는 격 아니오?” 김순경사는 이순경사
와 소견이 달라서 적당의 내정을 샅샅이 잘아는 서림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 좋
을 줄로 생각이 들었으나 김포장이 하후하박으로 이순경사에게만 말을 하고 자
기에게는 말을 안한 데 심사가 틀려서 서림이 안 데리고 가는 것이 잘한 일이라
고 이순경사의 소견을 찬동하여 말하였다. 이러한 곡절이 있어서 서림이가 순
경사들 나갈 때 수행하지 못하고 좌포장 수하에 그대로 있게 되었었다. 이것이
청석골 꺽정이패에게는 한 가지 불행중 다행이었다. 꺽정이와 두령 여섯과
모두 합하여 일곱 사람이 마산리서 관군 5백여 명을 대항하고 무사히들 청석골
로 돌아온 뒤 승전을 축하하기 위하여 대연을 배설하자고 여러 두령이 공론들
하는 것을 꺽정이가 처음에는 “승전이 무슨 놈의 승전이냐. 간신히 목숨들 도
망한 것을 승전이라구 잔칠 하잔 말이냐. 창피스럽다. 그 따위 소리 하지들 마
라.” 하고 꾸지람으로 내리눌렀었다. 다른 두령들은 감히 다시 개구를 못하였으나
그중의 오가는 자기가 먼저 큰잔치를 하자고 발론을 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두
령들이 대장의 허락을 받으라고 내세우는 까닭에 꺽정이를 따로 와서 보고 “대
장께선 마산리 쌈이 승전이 아니라구 잔치를 말리신다지요? 홑일곱 분이 배루
치면 칠칠이 사십구 칠십 배가 훨씬 넘는 대적과 접전해서 그 기세를 꺾구 용맹
이 무쌍하다는 오위부장을 한칼에 벤 것이 어째 승전이 아닐까요. 우리는 훌륭
한 승전으루 알지만 대장 말씀을 좇아서 승전이 아니라구 하구요, 그러구라두
우리 도중의 우두머리 일곱 분이 사지에 들어갔다가 무사히들 나오신 것이 도중
의 막대한 경사가 아닌가요. 이런 경사에 왜 잔치를 못하게 하실까요. 대장께서
정히 도중 잔치를 못하게 하신다면 내가 좀 주제넘지만 수양딸에게 물려주려구
아껴둔 사천으루 일곱분을 위해서 한번 위로연을 떡벌어지게 차릴 테요. 이건
허락하시겠지요?” 하고 수다를 떨었다. 오가가 일자 상처한 후로 수다도 잘 떨
지 않고 너스레도 잘 놓지 않고 혼감과 수선도 잘 부리지 아니하여 걸의 딴사람
같이 되었었는데 이날 수다가 의외라 “나는 오두령 수다가 다 없어진 줄 알았
더니 그래두 좀 남았구려.” 하고 꺽정이가 웃었다. “오십여 년 동안 떨 대루
다 떨구 조금 남은 수다는 속에 간직해 두었다가 저 세상으루 가지구 가려구 생
각했더니 저 세상에 가선 그나마 떨지 못할 것 같아서 이 세상에서 마저 떨어버
리구 갈 작정이오.” “저 세상에 갈 날을 언제루 받아놨소?” “갈 날을 내손
으루 받지 않아서 똑똑힌 모르지만 그다지 멀진 않겠지요.” “저 세상에 가면
마누라님을 다시 만나볼 줄루 아우?” “마누라쟁이를 꼭 다시 만나볼 줄만 알
면이야 지금 당장이라두 이 세상을 하직하구 가지요. 가다뿐이오.” “죽은 마누
라 생각 고만하구 젊은 첩이나 하나 얻을 생각하우. 내가 얻어주리까? 소원만
말하우. 양첩이 좋소? 기생첩이 좋소?” “그런 심려는 두었다 하시구 도중 잔
치나 얼른 허락해 주시우.” “도망질해 와서 잔치했다면 청문이 사나워서 말라
구 했더니 오두령 청으루 허락하겠소.” 꺽정이가 마침내 대연을 배설하라고 명
령을 내리어서 두령으로부터 졸개까지 다들 좋아하였다. 돼지 잡고 소 잡고 떡
만들고 술 걸러서 도중 상하가 사흘 동안 연일 진탕 먹고 즐겁게 놀았다. 잔치
끝날은 한통속으로 지내는 근처 사람들까지 청하여 먹이었는데 그때 송도 김천
만이가 들어와서 경군이 청석골을 치러 내려온다는 주워 들은 소문을 전하여 꺽
정이가 진적한 조정 소식을 알려고 잔치 끝난 뒤 곧 황천왕동이를 서울로 올려
보냈다. 서울의 연락 맺고 지내던 곳이 거진 다 끊이었으나 남대문 밖에서 객주
하던 치선이 김선달은 서림이와 동치로 객주를 떠엎고 아직 윤영부사댁 도차지
손동지의 작은집에서 곁방살이를 하는데 곁방살이하는 중이라도 서로 연신을 끊
지 말자고 그 처남 된다는 사람을 전위해 보내서 기별한 일이 있는 까닭에 황천
왕동이가 서울 가서 조정 소식을 물어보려고 장대고 가는 사람은 곧 김치선이었
다. 황천왕동이가 서울 오는 길에 혜음령 고갯길을 돋우밟아서 마루턱까지 거
의 다 올라왔을 때 보행인 하나가 마루턱에 서서 내려다 보며 “청석골서 오십
니까?” 하고 알은 체하여 황천왕동이가 혜음령패의 망꾼이 보행인으로 가리고
나섰거니 짐작하고 선뜻 “그래.” 대답한 뒤 그 사람 앞에 올라와서 이목을 살
펴보니 당초에 낮모를 사람이라 황천왕동이가 그제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댁이 누구요?” 하고 곱지 않은 말씨로 물었다.
낯모르는 사람이 알은 체하는데 황천왕동이도 속이 좀 떨떠름하였지만 그 사
람은 섣불리 말 한마디 붙였다가 경치는 줄 알고 겁이 났던지 슬금슬금 뒤로 물
러섰다. “댁이 대체 누구요?” 황천왕동이가 재차 물어도 그 사람은 얼른 누구
라고 대지 않고 서슴는 말로 “서울 김선달 아시지요?” 하고 물었다. 김선달이
란 치선이 말인 듯 황천왕동이는 속으로 짐작하면서도 짐짓 “서울 허구많은 김
선달에 어떤 김선달 말이오?” 하고 채치니 그 사람이 그제는 “남대문 밖에서
객주하던 치선이 김선달 말입니다.” 하고 똑똑히 명토를 박아서 말하였다. “김
선달 알구 모르는 건 왜 묻소?” “녜, 그이가 내 매형입니다.” “매형이라니?
” “누님의 남편이에요.” “녜, 그렇소.” 황천왕동이의 말소리가 비로소 부드
러워졌다. “내가 칠팔 일 전에 한번 갔었지요. 그때 마산리들 가시구 안 기시든
구먼요.” “다녀가셨단 말은 들었소. 그런데 전에 김선달 객주에서 나를 봤습디
까? 나는 본 생각이 안 나는데.” “전에 뵈인 일은 없지만 어림에 그런 듯해서
여쭤봤지요.” “어림잡는 재주가 용하구려.” “축지법 아신단 선성을 높이 들
었는데 지금 고갯길을 올라오는 걸음이 여느 사람 나려가는 걸음보다 더 빠르신
걸 보구 어림이 났습니다.” “그렇소. 그래 지금 어딜 가시는 길이오?” “매형
의 글월을 가지구 또 청석골을 가는 길입니다.” “나는 당신의 매형님을 만나
러 서울로 가는 길이오.” “지금 서울 가셔두 매형을 만나보시기 어려울걸요.”
“어째서 어렵소?” “그 동안 서울서 야단이 났습니다.” “무슨 야단이오?”
“청석골과 연락이 있을 듯한 사람들을 형조에서 잡느라구 지금 한참 야단입니
다.” “잡으면 형조보다두 포청에서 잡겠지?” “아니오. 형조에서 잡습니다.
들리는 말은 상감 처분이 형조루 나렸답디다. 우리 매형두 요전에 포청에서 잡
으려구 하던 것은 그동안 손동지의 힘으루 그럭저럭 어떻게 묵주머니가 되었는
데 새판으루 형조에서 이름을 지적하구 잡으려구 해서 그래 몸을 피했는걸요.”
“당신 매형님을 만나볼 수 없으면 나는 서울 가두 소용없소. 당신에게 서울 소
문이나 좀더 들읍시다. 경군이 청석골을 치러 나려온단 소문이 있으니 그런 소
문이 서울두 있습디까?” “순경사들이 오늘 떠난다더니 오늘은 어째서 못 떠나
구 내일 떠난답디다.” “순경사가 무어요?” “그 동안 황해도, 강원도 순경사
가 났습니다.” “순경사가 경군을 거느리구 나려올 사람이오?” “녜.” “내괴
이 고개 주인들이 눈에 뜨이지 않더라니, 요새 풍색이 좋지 않아서 꿈쩍들 못하
구 들어앉았는 모양이로군.” “황해도, 강원도에는 어디든지 다 그럴걸요.” “
나는 한 시각이라두 빨리 도루 가야겠소. 당신이 맡아가지구 오는 편지를 내가
가지구 먼저 갈 테니 당신은 뒤에 찬찬히 오시우.” “그럼 나는 청석골까지 가
지 않구 서울루 도루 갈랍니다.” “편지 전하는 것 외에 다른 부탁은 받은 것
없소?” “녜, 다른 부탁은 받은 것 없습니다.” “그렇거든 편지만 나를 주구
돌아가시구려.” 황천왕동이가 혜음령에서 우연히 김치선의 처남을 만나서 청석
골로 전하러 오는 편지를 중간에서 받아가지고 그날 해 진 뒤에 돌아왔다. 여러
두령이 저녁밥들을 먹고 꺽정이 사랑에 모여 앉았다가 황천왕동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웬일이오?” “웬일인가?” “웬일이냐?” 모두 웬일이냐고 물었
다. 황천왕동아가 꺽정이를 보고 중로에서 돌아온 곡절을 말하고 품에 지니고
온 편지를 드리니 꺽정이가 받아서 옆에 앉은 이봉학이를 주고 읽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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