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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0권 (6)

카지모도 2023. 9.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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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새벽에 한온이가 자릿조반을 먹는 체 만 체하고 두패 교군을 타고 청

석골서 떠나서 송도 김천만이 집에 와서 아침밥을 시켜 먹고 장단읍에 와서 중

화를 하는 중에 복색이 선명하고 인물이 끼끗한 군사들이 객주집 앞으로 지나가

는 것을 보고 경군인 줄 알 뿐 아니라 순경사가 거느리고 오는 경군이려니까지

짐작하며 객주 주인을 불러들여서 점심밥을 재촉한 끝에 “문앞으루 군사들이

많이 지나가니 이 골에 무슨 일이 있나? ” 하고 물어보았다. “그게 경군입니

다. ” “글쎄 경군이 어째 내려왔나? ” “황해도 순경사 행차가 지금 읍에서

중화하는 중입니다. ” "옳지, 내가 송도서 들으니까 황해도와 강원도에 순경사

가 났다든군, 서울서 어제 떠난 모양일세그려." "어제 파주읍에 숙소했답니다." "

오늘은 송도 가서 잘 모양이군." "녜, 송도가 숙소참이랍디다." 한온이가 속으로

'내일은 청석골서 야단이 나겠다.' 하고 생각하며 "경군이 대체 몇명이라든가?"

"오십 명이랍디다." 한온이가 또 속으로 '오십 명쯤 가지구는 청석골을 감히 범

접할 생의를 못할 텐데 송도서 발병해서 합세할 작정인가?' 하고 생각하며 "향자

에 관군 오백여 명이 평산 땅에서 적당 일굽 명하구 접전해서 참혹히 패진을 당

했다는데 오십 명 가지구 적당 한 명하구나 접전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말이

올시다. 청석골 근처에 가서 어리대다가는 몰사 죽엄이나 당하지 별조 없을 겝

니다." "청석골 적당이 여기두 혹 더러 오나?" "서울 왕래 혜음령 왕래에 늘 지

나다닙지요." "지나다니는 줄 알며 관가에서 가만 놔둔단 말인가?" "관가에 고발

할 놈두 없지만 관가에 입문되기루 어쩌겠습니까. 섣불리 그 사람네를 건드렸다

가 무슨 일이 나라구요. 황해도 봉산전 등내가 어째 그 사람네 치부에 올랐든지

신연 맞아 내려가는 길에 임진나루서 죽을 욕을 봤습니다. 그 사람네가 하러 들

면 송도 유수나 황해 감사는 욕을 못 뵈일 줄 압니까. 그러니 각골 원님들이 그

사람네를 왕신처럼 꺼리는 게 당연한 일입지요." "그러면 청석골 적당이 드러내

놓구 다녀두 잡질 않겠네그려." "그 사람네가 어디 드러내놓구야 다니나요. 암행

어사 다니듯 하지요. 만일 출도할 일이 있으면 드러내놓겠지요." "그러면 각골

수령들은 적당 어사가 출도 않는 것만 다행으루 여기는 모양인가?" "꼭 그렇지

요. 올 여름에 파주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청석골 두령 중에 축지법하는 두령

하나가 서울 왕래를 자주 하는데 한번 서울 가는 길에 파주읍에 와서 점심 요기

하는 것을 얼굴 아는 사령이 보구 관가에 쫓아들어가서 목사 사또께 밀고를 했

더랍니다. 그때 목사 사또 말씀이 '너는 보구 못본 체하구 나는 듣구 못들은 체

하자. 그래야 파주가 조용하다' 그러셨답니다. 그 말씀이 퍼져나와서 관장은 듣

구두 못들은 체 관차는 보구두 못본 체란 말이 인근읍에서까지 동요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백성들이야 알구두 모르는 체할밖에 있습니까. 저두 십년

하방의 눈치꾸레기루 사람을 알아내는 것이 임진 사궁만 못지않지만 그저 알구

두 모른 체하구 지냅니다." 한온이가 경군 수효를 우선 좀 알고 싶어서 말을 묻

기 시작하였다가 주인이 수문수답을 잘하는 바람에 여러 말을 묻게 되었으나 아

닌보살하고 말 묻기가 낯간지러울 때 많았는데 주인의 알고도 모른 체한단 말을

듣고는 낯뿐 아니라 오장까지도 간질간질하여 말을 더 물을 뱃심이 없어져서 "

하여튼지 세상은 말세가 다 되었네." 하고 거짓 한숨을 한번 길게 쉬고 나서 "부

질없는 이야기에 길 늦겠네. 내가 길이 바쁘니 점심 곧 먹두룩 좀 해주게." 하고

말하여 객주 주인을 내보냈다. 한온이가 장단서 점심 먹고 떠날 때 일력은 파주

읍에 와서 자면 마침맞겠으나 한 시각이라도 빨리 가고 빨리 오란 이봉학이의 부

탁을 생각하고 내일 길을 단 십리라도 더 줄이려고 교군꾼들을 자주 쉬이지 못

하고 오래 쉬지 못하도록 들몰았다. 교군은 가볍고 교군꾼들은 세차서 소교가

나는 듯하였다. 겨울 짧은 해에 하루에 일백사십 리나 길을 와서 혜음령 못미처

혜음령패 괴수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늦은 아침때 반갑고도 서먹서먹

한 서울을 들어왔다.

남소문 안에 사는 강만손이는 늙은 부모와 저의 내외와 아들 남매와 조자손

삼대 여섯 식구가 안방.건넌방 방 둘 있는 집에서 살았다. 안방에 젊은 내외 건

넌방에 늙은이 양주와 손자 남매, 방 둘이 그 식구에 꼭 알맞았다. 이 집에 한온

이가 와서 묵자면 두 방에 거처하는 식구를 한 방으로 몰아야 할 터이고 그리하

고 또 교군꾼들을 재울 방은 달리 구처하여야 할 터이라 모두가 비편하였다. 한

온이가 비편한 줄 알면서 와서 묵으려고 작정한 것은 오로지 사람들이 미더운

까닭이었다. 만손이의 늙은 어미는 한온이 조모가 계집아이로 부리던 사람이요,

만손이의 안해는 한온이 어머니가 손때 먹여 기른 계집아이로 한온이 어머니 초

상에 거상을 자원하여 입었었다. 한온이가 지각난 뒤로 만손이의 안해를 특별히

생각하여 집을 사주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대주고 만손이를 남부사령으로 구실

까지 붙여 주었다. 한온이 탄 소교가 강만손이 집 마당에 들어와서 놓일 때 만

손이 안해가 헛간에 쌓인 장작을 부엌으로 안아 나르다가 교군꾼의 쉬소리를 듣

고 안았던 장작개비를 내던지고 쫓아와서 소교 안을 들여다보며 "아이구 상제

님!" 하고 소리치고는 "집안에 아무 연고 없나?" 한온이의 묻는 말도 대답 못하

고 어린 듯 취한 듯 정신 놓고 섰었다. 건넌방의 늙은이 양주가 방안에서 며느

리 소리치는 것을 듣고 방문 열고 마당에 놓인 소교를 보고 두 늙은이 다같이

진동걸음을 쳐서 나올 때 만손이 안해는 비로소 정신을 차려서 "어머님, 상제님

을 안방으루 뫼시구 들어오세요." 하고 말하며 곧 먼저 안방에 들어가서 방안에

지저분하게 벌여놓인 것을 거듬거듬하여 치우고 시조부모 제사때나 내어 까는

돗자리를 꺼내다가 아랫목에 깔아놓았다. 한온이를 두 늙은이가 안방으로 뫼셔

들여다가 아랫목 돗자리 위에 앉힌 뒤 바깥늙은이는 다시 윗목에 내려가서 한온

이에게 절을 하였다. "늙은이가 절이 무어요. 망령이구려." "그게 무슨 말씀입니

까? 여러 날 못 뵈어두 절을 해야 할 텐데 못 뵈인 지가 벌써 몇 달입니까. 구

월.시월.동지.섣달, 달수루 넉 달입니다." "이리 와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아니

오. 여기 앉았겠습니다." "그러지 말구 가까이 와서 앉으우." "아니올시다." 하고

바깥늙은이는 윗목에 앉아 있으려고 하다가 상제님이 가까이 오라시는데 안 오

는 건 되려 도리도 아니고 또 인정도 아니라고 안늙은이에게 사설을 듣고 아랫

목에 와서 한온이 앉은 자리에서 모를 꺽고 앉았다. 안늙은이는 처음부터 한온

이 옆에 와 붙어 앉아온 한온이의 한 손을 두 송으로 잔뜩 붙잡고 있다가 “상

제님, 웬일이시우?” 하고 묻고 한온이가 미처 대담할 사이도 없이 곧 뒤를 이

어서 “이렇게 뵈입는 것을 나는 죽기 전 다시 못 뵈일 줄 알았지.” 하고 질금

질금 울고 눈물을 씻느라고 비로소 한온이의 손을 놓았다. 이 동안 만손이 안해

는 한구석에 가 비켜서서 한온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입가

에는 웃음이 떠돌았다. 반가운 말을 억제 말고 맘대로 하라면 미친 사람같이 웃

다 울다 울다 웃다 웃음과 울음이 종작없을을 것이다. 안늙은이가 며느리를 돌

아보며 “이애, 너는 그러고 섰지 말고 얼른 나가서 점심 진지를 지어라.” 하고

이르는데 한온이가 시장하지 않다고 점심은 고만두고 교군꾼들이나 어디좀 들여

앉히라고 말하니 “우선 건넌방에 좀 들어앉힙지요.” 하고 바깥늙은이가 일어

서려고 하는 것을 안늙은이가 가만히 앉았으라고 말하고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며 “여보 대감네, 저 건넌방으로들 들어가시우.” 하고 소리쳤다. 만손이의

아들 놈이가 밖에 놀러나갔다가 들어와서 한온이를 보고 “아이구 상제님 오셨

네!” 하고 절을 너푼 하니 벌써부터 저의 어미 치마꼬리에 와 붙어 섰던 만손

이의 딸 이뿐이도 제풀에 나와서 절 한번 납신 하였다. 안늙은이가 놈이를 보고

“너 얼른 마을에 가서 네 아비더러 오늘 일찍 나오라고 하고 일찍 못 나오겠거

든 잠깐 다녀가라고 해라.” 하고 이르고 또 “마을에 가서 상제님 오셨다고 떠

들진 마라.” 하고 이르니 놈이가 녜 녜 대답하며 바로 뛰어 나갔다.

만손이의 안해가 밖으로 나가서 오래 들어오지 아니하더니 그동안에 국수를

사다가 장국을 말아서 들여왔다. 한온이가 상을 받으며 “점심은 안 먹어두 시

장치 않을 텐데 장국은 왜 끓였어.” 하고 말하니 만손이 안해는 시아비 앞을

막아서지 않으려고 상머리에서 뒤로 물러서며 “저녁때가 상기 멀었는데 요기를

좀 하셔야지요.” 하고 대답한 뒤 “편육도 없고 김치맛도 좋지 않아요. 그러나

마 오래간만에 제 손으로 끓여 드리는 장국이니 좀 많이 잡수세요.” 하고 권하

는데 말은 차치하고 말소리까지 디정하였다. 한온이가 식성이 온면을 즐기기도

하지만 며느리가 정답게 권하는 외에 시어미 늙은이가 무작정 강권하여 국수 한

그릇을 거의다 먹어갈 때 놈이가 들어왔다. “아비가 못 온다느냐?” 하는 할미

묻는 말에 “같이 나왔세요.” 하고 손자가 대답하였다. 한온이가 놈이더러 “어

디?” 하고 묻자 곧 만손이의 헛기침 소리가 방문 밖에서 났다. 한온이가 상을

밀쳐서 물리고 방문을 내다보니 뜰에 섰던 만손이가 하정배를 깍듯이 하였다.

“방으루 들어오게. 어서 들어와.” 한온이의 재촉을 받고 만손이는 방에 들어와

서 두 손길 맞잡고 섯는 것을 한온이가 또 앉으라고 권하여 윗목에 쪼그리고

앉았다. “요새 오부에 일이 많은가?” “네, 요새 좀 분주합니다.” “오늘은

못 들어오겠다고 아주 말하고 나왔습니다.” “잘했네.” “이 험난한 때 무슨

일루 행차하셨습니까?” “내 이야기는 차차 하구 서울 이야기를 먼저 좀 듣세.

요새 서울이 시끄럽다지?” “네 대단 시끄럽습니다. 위의 처분이 깁셔서 형조

에서 자꾸 사람을 잡습니다. 잡혀갔다 곧 도루 놓여나온 사람은 말 말구 지금

잡혀 갇힌 사람만 수십 명이랍니다.” “잡혀 갇힌 사람 중에 우리 친한 사람두

많겠지?” “댁에서 서울 떠나신 뒤루 저는 예전 알던 사람과 일체 상종을 안해

서 누가 어떻게 된 것을 통히 모릅니다. 일전에 덕신이가 와서 하루를 같이 자

는데 몇 사람 이야기만 대강 들었습니다.” “덕신이가 왜 제 집을 두구 자네게

와 잤어?” “저희 집에 들어가면 잡힌다구 하룻밤만 재워달라구 하니 인정에

어떻합니까. 놈이 어미를 건너방으루 보내구 이 방에서 재워 보냈습니다.” “덕

신이 어른은 어떻게 됐다던가?” “어떻게 된 셈인지 저의 부모는 집에 있어두

상관이 없다구 합디다.” “덕신이가 그래 잡히지 않았나?” “시골루 내뺀다구

했는데 잡히지 않았을 겝니다.” “덕신이게 뉘 이야길 들었나?” “댁의 서사

보던 최서방하구 호상이 호불이 형제하구 문성이하구 녹쇠하구 함께들 잡혀갔다

구 이야길 합디다. 녹쇠 같은 것이 다 잡혀갔으니 저두 구실을 다니지 않았더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아니 최가가 잡혔어? 그놈이 좌포청에 일긴이라는데 어

째 잡혔을까?” “최서방이 무슨 수루 포청에 일긴이 되겠습니까. 한껏해야 포

교들에게 술잔 값이나 뺏겼겠습지요. 설혹 포청에 긴한 줄을 대구 있었기루 형

조 일에 그 줄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포도대장이 주선해 주면 놓여나올 수

야 있겠지.” “포도대장이 주선해 주었으면 곧 놓여나왔지 전옥에까지 들어갈

리 있습니까. 최서방 호성이 호불이 문성이 족쇠 다 지금 전옥에 가서 갇혀 있

답니다.” “하여튼 그놈이 포청 세를 믿구 우리 빕 팔구 세간 팔구 빚 투심 한

걸 죄다 집어먹었네.” “댁 재산을 그놈이 다 집어 먹었세요? 저런 죽일 놈 보

게. 저는 그걸 모르구 그놈을 가엾게 여겼습니다그려. 그놈 원악도 귀신 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지금 전옥게 갇힌 놈들은 대개 다 원악도루 가리라고 합디다.”

“그놈도 원악도루 가게 된단 말만 들어두 내 속이 좀 시원할 것 같애.” 하고

한온이가 속이 참으로 시원한 거같이 숨을 길게 내쉬는 것을 만손이 아비가 보

고 “상제님 기신 데 호걸이 많다니 그런 놈은 진작 죽여 없애게 하시지 왜 이

때껏 가만두셨습니까? ” 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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