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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1권 (38)

카지모도 2023. 12. 13.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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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은 묵묵히 반짇고리에서 저고리를 들어내어 접어 들고 건넌방으로 왔다.

그리고, 깊은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진정하여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한 번 더 숨

을 들이쉰 다음 침착한 손끝으로 동정을 뜯는다. 옷고름을 떼어 내고, 깃을 뜯어

낸다. 놋화로에 잿불을 담아다 놓고 인두와 인두판을 챙기면서, 저고리 모양을

유심히 눈여겨 보아 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길이, 품, 화장이야 본래 그대로

하는 것이어서 상관없지만, 어려운 것은 깃과 섶을 다는 일이었다. 깃과 섶의 모

양이 저고리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입은 사람의 멋과 품위를 살려 주는 곳

도 이 부분이다. 그래서 바느질 솜씨가 빼어난 사람은 바로 여기서 한껏 솜씨와

모양을 낸다. 또 성미가 까다롭거나 옷을 곱게 입으려는 사람이 트집을 잡는 부

분도 바로 이곳이다. 우선 그 명칭의 섬세함만 보아도, 잔손질이 얼마나 어려우

며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 수가 있다. 깃에는 겉깃 길이, 안깃 길이, 뒷깃,

깃 나비가 다른데, 그것이 섶에 이르면 더욱 복잡하다. 섶 길이, 섶 나비, 섶 아

랫나비, 섶 윗나비, 안섶 길이, 안섶 나비, 안섶 아랫나비, 안섶 윗나비... . 그런데

사람마다 깃과 섶에 대한 취향이 다른다. 어떤 사럇람은 둥글지도 모나지도 않

은 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날렵한 칼깃을 좋아한다. 깃에 따라 섶의 모양도

어울려야 한다. 그런 것을, 우둑우둑 그냥 뜯어헤쳤으니 그 일이 걱정이었다. 그

렇지만 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저고리를 하나 주시라고하여 그 본을 보면

되겠으나, 효원은 굳이 그러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어, 그냥 그네식대로 바느질을

해 나갔다. 설령 그네가 침선에 별 마음이 없었다 한들 시집온 지 두어 달 만에,

그것도 처음으로 짓는 시어머니의 저고리이니 있는 정성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

었다. 밤에는 일찍 등촉을 뜨고 자리에 들라는 주의를 들었지만 효원의 성미에

할 일을 두고 잠들 수는 없었다. 그네는 꼬박 밤을 밝히고 인두질을 하고 바느

질을 하였다. 어깨솔, 등솔을 하고, 겉깃, 안깃을 모두 인두로 꺾어 놓은 뒤, 겉깃

에 겉깃 길이를 대고 바늘을 꽂아 깃이 너무 곧지 않게, 또 너무 둥글지 않게

어여쁜 곡선을 만들며 풀로 붙인다. 섶머리 길이는 깃 나비와 비슷하고, 섶머리

의 나비는 깃 나비의 삼분의 일이 되게하여 역시 풀로 곱게 붙인다. 그리고는

풀 붙인 뒤를 헝겊으로 덮고 인두로 눌러서 잘 붙게 한다. 잠 안 오는 밤에는

바느질을 한다더니 과연 그러했다. 꼬박 앉아서 한 숨도 돌리지 않았는데, 창호

지에 버언한 새벽빛이 들었다. 등잔 불빛이 퍼져 버리며 빛을 잃는 무렵에야, 효

원은 놀란 듯 불을 껐다. 일부러 안방으로 불러들여서 일렀건만 하룻밤도 지나

기 전에 오히려 이번에는 아주 밤 내내 장등을 하였으니, 어른의 말씀을 받는

아랫사람으로서 도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딱히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러한 것도

아니고, 또 마침 저고리 짓는 일이 있었던 것이어서 그다지 큰 염려는 하지 않

았다. 날이 밝고, 해나절이 지나서 효원은 저고리 안팎을 뒤집어 부리를 맞추었

다. 그리고 부리, 도련, 섶을 돌아가며 인두질 하고, 등솔, 섶솔을 바늘로 떠 시침

을 하였다. 이윽고, 옷고름을 달고 동정을 달았다. 마지막으로 안 옷고름을 달아

놓고는 허리를 펴니, 벌써 새때였다. 그네는 왼쪽 소매를 접고, 그 위로 오른쪽

소매를 접어 올려 두 손으로 받쳐들었다. 다리가 저리며 휘청하였다. 한자리에

앉은 채로 밤을 세워 일을 한 탓이리라. 그러나 안방에서 저고리를 받아든 율촌

댁은 못마땅한 얼굴로 접어놓은 소매를 홱 젖히더니 댓바람에

"이게 저고리냐?"

하고 차갑게 말했다. 효원이 놀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아무러면 네가 시에미 저고리를 이렇게 허수롭게 안단 말이냐? 네가 어른을

어른처럼 대한다면 그러지는 못하리라."

율촌댁의 음성은 가시가 돋아 있었다. 평소에 소심한 편이며 별로 자기 주장

을 내세우지도 않은 율촌댁은 의외로 의뭉한 데가 있기는 했다. 그리고 한 번

맺힌 일은 결코 푸는 일이 없으며, 풀린 체하더라도 더욱 더 깊이 새겨 두는 성

격이었다. 거기다가 시어머님 청암부인 때문에 스스로 눌려 지내면서 그런 성격

은 더욱 더 안으로 파고들게 된 것 같았다. 율촌댁의 얼굴이 파르르 떨린다.

"감히 네가... ."

저고리를 움켜쥐는 손도 떨린다.

"나를 업수히 여기다니."

그러면서 움켜쥔 저고리를 들고 찬 바람이 나게 대청마루로 나가, 마당에 그

대로 패대기를 치며 내던져 버린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저고리는 희끗

희끗 잔설이 녹고 있는 질척한 마당 가운데 내동댕이 쳐진 것이다. 자주 고름이

진창에 젖어들어갔다. 차마 율촌댁의 서슬에 마당 가운데로 나서지 못한 채 행

랑에서 하인과 머슴들이 웅숭웅숭 내다보고, 안서방네와 바우네는 부엌에서 나

온다. 효원은 멋모르고 당한 일이라 얼떨결에 율촌댁의 뒤를 따라 대청으로 나

왔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는 얼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춤거리던 안서방네가

행주치마를 거머쥐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저고리를 집으러 가는 것이다.

"그만두게."

율촌댁이 싸느랗게 말한다. 안서방네가 멈칫 하더니 뒷걸음질을 친다. 안서방

네는 율촌마님이 저렇게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처음 보았으므로 우선 정신이 아득

하여 질정을 못한다. 효원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하인 비복들 앞에서 당하

는 수모로 인하여 그 기를 참지 못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내 이대로

이 자리에서 고꾸라져 죽으리라. 낚싯바늘 같은 갈퀴 고리가 효원의 가슴을 찍

어 할퀸다. 칵 고꾸라져 죽으리라. 첫날밤 신방에서 칠보장식 화관조차 제대로

벗지 못하고, 앉은 채로 밤을 세우면서 이를 악물었던 그때의 수모가 이만하였

던가. 너무나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눈자위가 붉어지면서 눈물이 싸아하니 돈다.

이윽고 그네는 마루에서 토방으로 내려서고 토방에서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리

고 진창에 던져진 저고리를 집어 들었다. 저고리는 검은 흙탕물을 흥건하게 머

금고 있었다. 율촌댁은 꼿꼿하게 선 채로 효원을 매섭게 내려다보았다. 효원은

율촌댁을 향하여 허리를 숙이는 시늉을 해 보이고 뒤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뒤안 우물가에 가서 앉은 효원은 침작하게 우물물을 길어 올렸다. 저고리를 빨

려는 것이다. 그때 황급히 부엌 뒷바라지를 밀고 나온 안서방네가

"이리 주시지요."

하면서 대야를 빼앗았다. 안서방네는 그저 민망하여 효원 쪽을 바라보지도 못

하고 안절부절 못하였다. 효원은 안서방네가 대야를 받아간 다음에도 한참을 그

러고서 있었다. 바람 끝에 차건만 추운 줄도 몰랐다.

"들어가시기요. 새아씨."

안서방네가 조심스럽게 다시 뒷바라지로 나와 일깨워 주었을 때야 효원은 정

신이 났다. 무슨 정신인지 모르고 건넌방에 들어와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그제야

비로소 차가운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린다. 몸이 얼음처럼 식어버리는 것 같았

다. 그러면서도 일변, 청암부인이 마침 중뜸에 마실 내려가 있는 사이에 이런 일

이 지나가 준 것이 다행스러웠다. 청암부인에게만큼 자신이 이렇게 참담하게 당

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네는 청암부인에 대하여

그만큼 깊은 경외의 심정을 품고 있었다.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할머님이 계시면 견딜 수 있으리라.)

효원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침착하

게 빨아 놓은 녹두색 명주 저고리를 다시 지었다. 율촌댁은 율촌댁대로 심경이

곤두섰다. 효원만 생각하면 가시 박힌 손가락 끄트머리처럼 소스라쳐지면서 가

슴이 우끈거린다. 효원의 기가 숨막히게 느껴진다.

(어찌할꼬... 저 기를 어찌할꼬. 지금 휘돌려 잡지 않으면 평생을 갈텐데. 강모

일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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