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팔뚝만큼 한 것이 짙은 암청갈색 검은 빛을 띠는 등허리에 가로 한 줄로
무늬가 놓여 있고, 등 지느러미 양쪽으로는 여덟 개의 무늬가 점점이 박혀 있는
가물치의 저 허연 배, 돌이 지난 애기보다 더 무겁고 크고 탄탄한 것 그것은, 평
순네에게는 평생에 한 번만 먹어 보았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간절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청호의 물 밑바닥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노닐던 가물치
며 조개바위와 더불어 노니는 물고기는, 붕어새끼 한 마리일지라도 다치지 않는
것이, 이십여 년 동안 문중과 인근 사람들 사이에 말없이 지켜져온 불문율이었
다. 그러니 그 속에서 건져온 가물치라면, 산삼 못지않은 보약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가물치. 평순네는 입에 침이 돌았다. 지금까지 평순이를 비롯하여
연년생으로 자식 여섯을 낳는 동안 단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가물치였다. 산
모에게 그렇게 좋다는 것을. 크고 기름진 것은 그만두고라도 새끼 한 마리조차
고아 먹어 보지 못하였다. 그것을 어찌 감히 꿈에라도 언감생심 맛볼 수가 있었
으랴. 풀뿌리를 삶아 먹을망정 굶지만 않는다면 그것으로 하늘에 감사할 일이었
다. 더욱이나 평순이 아버지는 오른쪽 팔이 꼬부라져 붙은 채 쓰지 못하여 헝겊
쪼가리 한가지 아닌가.
"가물치여?"
안 물어도 되는 말이었지만, 평순네는 이상한 원한과 아니꼬움, 그리고 역겨움이
뒤섞인 한 마디를 뱉어냈다. 그네는 허리까지 구부리며 함지박 속을 들여다본다.
어느 새 그네의 눈은 함지박에 꽂혀 있었다. 그러나, 새벽빛이라고는 하지만 아
직은 어두운 속에서 그것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다. 옹구네는 대답 대신, 풀어
낸 또아리 끈을 입에 물고 또아리를 머리에 얹는다. 그리고는 함지박을 불끈 들
어올려 머리에 인다.
"옹구네는 재주도 참말로 좋네잉? 이 밤중에 맨손으로 어디 가서 그렇게 귀헌
가물치를 잡어 온당가아?"
그러자 옹구네가 돌아서려다 말고, 눈을 내리드며 목소리를 차악 낮추어 쏘아
붙인다.
"걱정도 팔짜여잉? 넘이사 어디 가서 무신 짓을 허고 가물치를 집어 오든 말든,
자개가 멋 헐라고 짚고 넘어 선디야? 왜? 어뜨케 잡어 왔으먼 어쩔라고 그리
여?"
"어매? 이 예펜네가 왜 새복부텀 사람을 밀어붙이고 이런데? 무신 짓을 어디 가
서 하고 왔간디, 매급시 언성을 높이고 그리여?"
평순네는 웬일인지 독이 올라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농판인 척하고 옹구네
의 입심을 그저 받아 삼켜 주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까닭을 알 수는 없었지만
밤새도록 샘가에 쪼그리고 앉아 물동이에 이맛전을 기대고, 졸며 깨며, 흙탕물
한 바가지 받아 이고 돌아오는 다리가 장작개비처럼 느껴졌었는데, 이제는 오장
과 가슴속까지 바싹 말라 부싯돌을 켜대면 화르르 불길이 일 것만 같다. 그 부
싯돌을 번쩍, 하고 옹구네가 켜댄 셈이었다. 갑자기 세상살이가 귀찮게 여겨지는
것은 또 웬일일까. 물 긷던 동이를 옆구리에 꿰어 차고 통통한 몸뚱이를 흔들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옹구네는 지금, 함지박에 가물치 한 마리를, 그것도 틀림
없이 볏단만한 것이 분명한 놈을 채워 들고 호기롭게 돌아오고 있다. 그런데 평
순네는 흙탕물 한 동이가 고작이었다. 옹구네는 평순네에게 다그친다.
"무신 짓은 무신 지잇? 넘으 상관 말으시고 어서 들으가서 밀지울이나 싯쳐 갖
꼬 한 숟구락 잡술 일이제. 아까막새는 바쁜 소리 혼자 다 허등마는, 왜 가는 사
람을 붙들고 찐드기맹이로 놓들 안하여?"
"하이고오, 오밤중에 어디 가서 가물치를 잡어 올 거이여어? 누가 그 속을 몰르
께미, 넘 밀지울 먹는 것을 약올리고 자빠졌당가?"
"무신 약을 누가 올려? 매급시 지가 몬야 눈꾸녁에다 쌍심지를 돋과 갖꼬 불을
씨고, 지내가는 사람을 불러 세웠잖응게비? 무단히 넘의 것을 넹게다보고 택도
없는 입맛을 다시능 거이 누군디?"
드디어 평순네가 침을 탁, 뱉어 버린다.
"던지러라. 누가 그께잇 노무 가물치, 먹고 자퍼서 환장헌 줄 아능게비. 그거 온
전한 거이 아니라, 농막에 가서 치매 걷고 얻어 온 거인지 내가 머 몰르께미?"
"허엉."
옹구네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팽팽하게 약이 오르는 것이 보인다.
"무신 챙견이여? 헐 일도 잔상도 없등갑다. 내 몸땡이 갖꼬 내 밥 벌어서 새끼
랑 먹고 살겄다는디, 누가 왜 나서서 간섭이셔?"
"하앗따야. 자식 생각 한 번 오지게 잘했다. 더러운 노무 거 부정 타서 나 같으
먼 자식한티는 못 맥일 거이다."
"부정을 타도 내가 탈 거잉게, 걱정을 말드라고오."
"늙어감서 그거이 먼 짓이여? 동네 사람 남새시럽게."
"그런 소리 말어. 썩어 죽으면 흙 되는 노무 인생, 수절헌다고 누가 열녀문을 세
워 준다등가? 그것 다 속절없는 짓이라고 나 같은 상년의 팔짜에 과부된 것만도
원퉁헌디, 거그다가 소복 단장하고 그림자맹이로 앉어서 지낼 수도 없는 것을,
무신 수로 뽄 냄서 산당가아? 수절 열녀, 그거 다 양반들이 매급시 뽄 내니라고
그러능 거이여, 머. 내가 무신 인월마님이간디? 누가 나를 멕에 살려준대? 인간
의 한 펭상, 구녁여. 벨 것 있는지 알어? 곰배팔이 영갬이라도 있는 사람은 천방
지축 등불도 없고 질도 없는 이런 년의 팔짜를 귀경험서, 하기 좋은 말이라고
되나캐나 넘 말헐 재격이 없다고오."
옹구네는 탄식조로 오금을 박아 놓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핑하니 들어가 버
린다. 보란 듯이 머리에다 함지박을 떠받쳐 이고. 평순네는 기가 차서 한참을 그
대로 서 있다가, 옹구네 마당 쪽으로 길게 눈을 한 번 흘기고는, 그 눈길을 걷어
들여 하늘을 본다. 검푸르게 개는 새벽 하늘에 밤새도록 메말라 물기가 빠진 별
의 무리가 힘없이 깜박인다. 오늘도 비 오시기는 틀렸구나. 식구들은 아직도 깊
은 잠에 빠진 채 부엌에서 나는 물 쏟는 소리에도 깨어나는 기척이 없다. (청호
으 괴기 건지먼 죄로 갈랑가? 아이고, 아서. 그거이 어뜬 물이라고... 신령님이
참말로 화를 내시먼 어쩌게. 청암마님이 아시먼, 또 가만 두든 안허실 거이고오.)
나 좀 바라, 내가 시방 무신 생각을 허고 있다냐, 평순네는 망설이면서도, 눈앞
에 어른거리는 가물치를 지워 버리지 못하였다. 그때 그네의 귀가 쫑긋 일어섰
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죽이며 담장을 끼고 고샅을 지나가는 소리 때문이었다.
(저 예펜내가?) 순간 평순네는 반사적으로 삼태기를 찾아들고 사립문을 나섰다.
벌써 하늘은 보랏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어두컴컴하여 사람의 얼굴
이 얼른 분별되지는 않았다. (한 마리만 고아 먹어도 초벌, 재벌, 세 번, 네 번,
열 번은 고아 먹겄그마는, 저 노무 예펜네, 그걸로는 성이 안 차서 청호까지 지
발로 쫓아가 건져 올랑갑다. 오냐, 너만 먹겄냐? 너 혼자만 홍자 만나겄냐고.) 평
순네는 순간적으로 마음에 까닭 모를 앙심을 품으며 발 끝에 힘을 모으고 고양
이 걸음을 걷는다. 옹구네는 제 뒤를 따라오는 평순네를 본 체도 안한다. 평순네
가 옹구네의 궁둥이를 바짝 뒤쫓고 있는데, 원뜸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네
들 둘만이 아니었다. 걸음걸이만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거멍굴의 사람들이 웅
성웅성 소리를 낮추어 수군거리며, 옆구리에 물통이니 대야니 물동이 같은 것들
을 하나씩 끼고 줄을 지어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남이 알까 몰래 눈치 보며 한
사람씩 나섰겠지만, 몇 사람이 모여지자 아주 마음 놓고 한 패가 된 것이다. 그
들이 실핏줄까지 말라 버린 도랑을 지나 논배미와 밭머리를 기고 자갈밭이 드러
난 아랫몰 냇물을 건널 때, 매안의 지붕들은 다소곳이 엎드린 채 어둠 속에서
눈을 어슴프레 뜨려 한다. 사람들이 인월댁의 초가 모퉁이를 돌아설 때, 고샅 쪽
으로 난 북향 창문에 젖은 듯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옹구네는 그
불빛에 눈빛이 부딪치자 도톰한 입술을 샐쭉해 보였다. 일부러 평순네 보라는
시늉인 것 같았다. 그러나 평순네는 모른 체하고 걸음을 재게 하여 그네를 앞지
르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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