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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2권 (2)

카지모도 2023. 12. 27.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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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죽 바닥에 물괴기가 기양 막 드글드글 헙디다. 시커매요. 인자 올농사는 다

틀려 부렀다고요. 가망이 없응게, 일찌감치 넘보다 한 발이라도 얼릉 가서 붕어

새끼 한 소쿠리라도 후딱 건지능 거이 지일이요. 하늘만 체다봐도 말짱 헛심만

씨이는 일잉게."

춘복이가 삼태기를 추스리자 붕어의 미끄럽고 검은 등허리에 관솔 불빛이 기름

비늘처럼 번뜩였다. 우물가의 아낙네들 눈빛도 따라서 번뜩였다. 옹구네는 춘복

이의 삼태기를 탐욕스럽게 넘겨다보더니, 덥석 손을 넣어 한 마리를 잡아 보려

고 한다.

"왜 이런데요?"

춘복이가 삼태기를 털어낸다.

"하이고오오... 가물치도 있네잉?"

옹구네의 손이 머쓱하게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간절한 탄식처럼 말꼬리를 뺀다.

그 말꼬리에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끈끈하게 묻어났다. 그러나 모른 척하고 춘복

이는 쩔걱쩔걱 발바닥에 물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 잠겨 앞길도 잘 보이지 않는

농막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떠꺼머리 총각으로, 거멍굴 산 비댕이 밭 기슭에 얽

어 놓은 농막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춘복이가 사라지는 쪽을 바라보고 있던 아

낙네들은 이미 우물물이 고이거나 말거나 그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내일 꼭

두새벽, 남보다 먼저 나서서 저수지로 달려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호랭이 물어갈 노무 예펜네들. 저수지 바닥 말르능 거는 걱정도 안 되고, 괴기

건져 먹을 일만 그렇게 신바람이 난당가? 청호으 물이 바닥나먼 그걸로 끝장이

나능 거이여, 끝장."

공배네가 못마땅한 듯 핀잔을 주자

"성님. 우리가 머 언지는 시작이고 끝장이고 딱부러지게 있었간디요? 거멍굴에

엎어져 삼서 무신 햇빛 볼 날이 있다요? 이런 년은 날 때부텀 그거이 아니라 끝

장 아닝교...? 눈구녁에 뵈이먼 먹고, 안 뵈이면 굶고, 닥치는 대로 사능 거이제.

무신 바랠 거이 있능교? 인물이 출중허드라도 청암마님이 될 수가 있소오. 행실

이 음전허다고 인월마님이 될 수가 있소. 생긴 대로 산다고, 나는 타고난 팔짜대

로 살라요. 눈앞에 물괴기 있으면 건져 먹고, 저수지 밑바닥 말르먼 목 태우고

살제 머."

웬일인지 옹구네는 흥이 나 있었다. 고개를 까딱거려가며 무어라고 주워섬기더

니, 물도 긷지 않고 빈 물동이를 옆구리에 끼고는 횅하니 자기네집 쪽으로 가

버렸다. 그 바람에 한 자리를 앞당겨 앉게 된 평순네는 속으로 (지랄허고 자빠졌

네. 먼 일이 있어서 물도 안 질어 갖꼬 저렇게 궁뎅이를 흔들어댐서 종종걸음을

치능고.)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옹구네가 급하게 일어나서 가느라고 빠뜨리고

간 또아리를 대신 챙겼다. 바람 한 점 없는 밤이었다. 사람의 속을 모르는 별의

무리만 쏟아지게 총총하여 공배네와 평순네는 서로 마주보며 한숨을 쉬었다. 별

이 기울면서 졸음이, 매캐한 생쑥 모깃불의 연기에 섞여 덤벼들었다. 어떤 아낙

은 벌써 물통에 얼굴을 묻고 엷은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새벽녘이 가까워서

야 한 동이의 흙탕물을 길어 올린 평순네는, 뜨물같이 부우연 머리 속이 흔들거

리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서 동이를 머리에 이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또아리를

옹구네에게 주고 갈까. 내일 날 밝으면 줄까, 궁리하였다. 옹구네는 평순네와 토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기 때문에 아무러나 무관한 일이기는 하였다. (이 빼빼

마른 가문 날에도 어디 이슬 맺힐 물끼는 있었등고.) 평순네의 다리에 잡초가 감

기면서 이슬이 느껴진다. (아이고오. 한숨 눈 붙일 새도 없이 날이 새 부리고 말

겄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참말로 이 노릇을 어쩌까잉. 눈에 뵈능 거는 머엇이

든지 한심 천만, 큰일이 나기는 날랑갑다. 난리가 날라먼 산천초목이 몬야 안다등

마는. 그나저나 동이 트먼 평순이 아부지라도 일찌감치 원뜸으로 올라가서 괴기

를 좀 건져 와야 할랑가. 그래도, 청호가 청암마님이 쥔이신디, 아무리 캉캄헌

새복에 몰리 건져 온다고는 해도, 그거이 도독질이제 사람 헐 일은 또 아니고잉.

넘들은 다 가서 퍼올랑갑등마는 그나저나 어쩌끄나. 시상에도, 그 강물맹이로 시

퍼렇게 넘실대든 청호으 물이 바닥이 나서 괴기가 구물구물, 손으로 건져지다

니...) 평순네는 이마로 흘러내리는 물을 손으로 씻어 뿌려 버린다. 그네는 막, 옹

구네의 사립문을 지나쳐 가지 집 문간에 들어서려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 농막 쪽에서 오는 길이 분명한, 희뜩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아서였다. 그냥 들

어가도 좋았겠지만, 평순네는 그 자리에 서서 이마로 흘러내리는 동잇전의 물을

연신 손으로 훑어 뿌리면서, 눈에 모를 세우고 그림자를 기다린다.

"하이고매. 깜짹이야. 누구당가아?"

평순네는 짐짓 이제 막 사립문간으로 들어서는 시늉을 하다가, 놀랐다는 듯, 다

가온 그림자 쪽으로 화들짝 돌아선다. 그림자는 옹구네였다. 한들거리고 걸어오

던 옹구네는, 느닷없는 사람 소리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순간 머쓱하여

어쩔 줄 모르더니 들고 있던 함지박을 뒤쪽으로 감추려고 한다.

"하앗따아. 물동우만 옆구리에 뀌어 들고, 또아리도 내팽개치고, 무신 볼 일로 그

러고 갔당가? 대가리 벗어지게. 여그 내가 줏어들고 왔그만. 사방에다 그렇게 질

질거리고 댕길 거이 많아서 좋겄네."

평순네는 물동이를 붙들고 있는 두 손을 내리지 않은 채, 허리춤에 묶어 온 또

아리를 옹구네 보고 풀어 가라 한다. 옹구네는 실로 난색을 감추지 못했다. 들고

있는 함지박을 땅에 놓지 못하고 주춤거리기만 할 뿐, 선뜻 어쩌지를 못한다.

"아기갸, 얼릉 풀어 가랑게. 나도 후딱 집이 들으가서 밀지울이라도 싯쳐 갖꼬

한 숟구락 먹어야제잉. 왜 이렇게 사람을 문깐에다 촛대같이 세워 논당가아? 그

손에는 머엇 들었간디 그리여? 신주단지맹이로 뫼세 들고는? 으엉?"

평순네는 일부러 급한 소리를 한다. 자기가 속으로 눈치채고 있는 것을 기어이

알아내려고 하는 수작이 분명하였다.

"호랭이 물어갈 노무 예펜네. 무신 목청이 그렇게 때까치맹이로 땍땍거린디야?

지랄허고 자빠졌네. 누가 자개보고 또아리 챙게 돌라고 했능게비. 시키잖은 일은

허고 그려? 그께잇 노무 또아리, 시암 바닥에다 천날 만날 내부러 두먼 누가 가

지가께미, 잘났다고 받들어서 챙게 들고 댕기는고?"

옹구네는 뒤로 감추려던 함지박을 마지못하여 땅에 내려놓으며 한 마디 쏘아붙

인다. 그네는 평순네의 속셈이 어디 있는지를 눈치 못챌 만큼 둔하지는 않다. 이

럴 때는 맞붙어 버리는 것이 상수다.

"어이고오, 호랭이 물어가네에. 똥 뀐 놈이 썽 내드라고, 됩대 꼬깔을 씌우고 있

네잉."

"조께 지달러 봐."

옹구네는 캄캄하여 잘 보이지도 않는 평순네의 허리춤을 더듬어, 허리끈에 묶여

대롱대롱 매달린 또아리를 풀어낸다. 그러는 사이 평순네는 함지박에서 제법 묵

직한 무게로 자멱질을 하는 물 소리를 들었다. (그러먼 그렇제, 가물치 아니여?)

순간 평순네는 역겨움이 목에 꼬이는 것을 느꼈다. (허고 댕기는 지랄 좀 보라

지) 속으로 콧방귀를 킁, 하고 뀌었다. 그렇지만 다음 순간. 평순네의 눈앞으로

살진 가물치가 도대체 몇 년을 묵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탐스러운 몸채의 배를

커다랗게 뒤집으며 덤벼들었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영험한 물 속에서 배암과 흘

레하여 낳는다는 가물치, 그것은 실제로 방죽 옆의 나무에 기어 올라가, 그 가지

끝에서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퉁, 퉁, 떨어진다는 신묘한 물고기가 아닌가.

깊은 밤 정적 속에서 장단 맞추는 소리처럼 쿠웅, 쿵, 울려오는 난데 없는 소리

를 들으면,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린다지.

"가물치 승천 헐랑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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