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는 세상을 괴멸하는 불과 물과 바람의 큰 재난으로,화재,수재,풍재를 말한다.
그뿐 아니라, 전쟁 난리 같은 도병재와 전염병이 창궐하는 질역재, 흉년을 당하
여 굶주리는 기근재도 이에 속하여, 참으로 불길하기 짝이 없는 운성이 머리 위
에 비치는 것이다. 이 같은 운수가 한번 침노해 들어오면, 그 살마의 만 삼 년
간을 흉화로 어지럽히니 뒤에라야 빠져 나가는데, 전해 오는 말로
"드는 삼재보다 나는 삼재가 더 무섭다."
고들 하는 것을 보면, 삼재 나가는 꼬리가 조용하지 않은 탓이리라. 마치 말발굽
으로 거칠게 뒷발질을 하는 것처럼 후려치고 나간다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팔난
이라면, 여덟 가지의 재난을 이름이니 곧 배고픔과 모진 추위,심한 더위,성난 불
길,큰 물, 병란,목마름,그리고 칼로 인한 재앙을 말한다. 인간의 지혜가 얼마나 영
철하여 그 같은 재난과 액운을 미리 헤아릴 것이며, 인간의 안목이 얼마나 형형
하여 앉아서 천리를 내다볼것인가. 더욱이 앞뒤를 헤아리지 못하는 중생들이야
일러 무엇 하리. 캄캄한 밤중에 뒷머리를 덮치는 이런 흉참한 일을 속수무책으
로 당할 수밖에 없지 않으랴.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미리 조심하고 미
리 피해 가면,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아 볼 수도 있는 일이기에, 율촌댁은 강
모에게 그의 금년 신수를 일러 주며 몇 번이고 같은 당부를 하고 또 했던 것이
다. 그리고, 부적도 한 장 호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이런 것은 비 올 때 우산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몸에 지녀 급한면을 하자는
게다. 보호가 되지, 천만 다행히도 너한테 삼재는 들지 않았지만 정이월에는 팔
패가 들고, 동지섣달에는 망신살이 끼었느니라. 허나, 망신이라 하면 여러 가지
살 중에서도 부끄러움이 겹친 것이 아니냐... 어쩌든지 조심해야 헌다. 네 몸을
네 스스로 지키기만 한다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날 것이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재
앙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나는 재앙이니, 네가 정신만 채리면 무사히 지내갈 고비
인즉, 강모야, 어미 말 명심해라. 꼭 명심해야 헌다. 그러고, 남자가 패가하고 망
신하는 것은 여자 때문인 수가 많으니."
어미 말을 명심해라. 어미 말을 명심해라. 강모의 귓속에 율촌댁의 음성이 쟁쟁
하게 울린다. 내, 어느 날은 곰곰이 생각을 좀 해 보았는데, 암만해도 너희 내외
남수여화로 만난 것이 아닌가 싶었더니라. 너는 스물하나, 임술생이니 납음이 대
해요, 네 아내는 스물넷 기미생 천상화라. 물과 불이 만났어. 내 생각에 같은 물
과 불이라도 산두화에 간하수라면, 산 머리에 불은 봉화불일 것이고 골짜기 물
은 벽계수이리니, 상극은 상극이라도 한 산에 들면 어찌 어찌 조화가 될란지 어
쩔란지. 하지만, 너희들은 바닷물에 하늘 위 불 아니냐. 바다와 하늘은 둘 다 너
무 커서 집안에 큰 마당이나 우물을 이루기엔 적당치 않다. 거기다가 하늘 위의
불이라면 구름 속의 번개라. 번개는 날카롭고 살기가 있다. 또 번갯불 치면 천둥
이 울게 마련. 천지가 깜짝 놀라 정신이 흩어지고, 사람들은 번개를 무서워하지,
그래서 너도 네 아내가 두려운가. 예로부터 남녀가 서로 만나 부부의 인연을 지
을 적에는 하늘이 살피고 땅이 도와서 연분이 되는 것이지마는, 삼생의 원수가
이 생에 만나졌던가, 서로 상극 상충하는 부부도 많고 많지 않으냐. 그래서 그
런 못된 운수를 피하려고 궁합을 미리 보는 것인즉, 납음을 살펴 자기한테 알맞
은 사람을 만나야만 한단다. 납음이란 무엇인고. 자기의 생년 육갑에서 나오는
오행을 가지고 남녀가 상생되는 것을 맞추어 보는 것이다. 오행별로 볼 때 상생
이 있는가 하면 상극도 있느니, 서로 기운을 도와 일어나게 하는 상생이라 함은
금생수,수생목,목생화,화생토,토생금을 말하지. 금은 물을 생하고, 물은 나무를 자
라게 하며, 나무는 불을 일으킨다. 그리고 불은 타고 남은 재로 거름을 만들어 흙
을 비옥하게 하며, 흙은 쇠를 품어 준다. 이 얼마나 좋은 사이이랴. 허나, 원수
같은 상극은, 금극목으로 쇠는 나무를 극하고, 도끼로 나무 찍고 톱으로 나무 자
르는 것 생각해 봐라. 짐작이 가지. 또 목극토로 나무는 흙을 무너뜨리며, 토극
수는 너도 생각해 본면 알리라만 서로 상극이 아니겠느냐. 물은 흙을 깎아 내리
고 흙은 물을 메워 물의 길을 막는 것. 서로 만나 좋은 일이 없고말고. 또 흙은
수극화도 마찬가지 이치라. 물로는 불을 끄고, 불로는 물을 말린다. 그리고, 화극
금이 서로 상극이다. 이 세상에서 쇠를 녹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불뿐인데 불과
쇠가 서로이 만나면 어찌 되겠느냐. 말로 하지 않더라도 손바닥을 보듯이 훤한
일이다. 여기에 네가 물이고 네 안이 불인즉. '남수여화'인데, 이는 화락봉서라.
꽃이 떨어지고 여름을 만난 격이다. 수화가 상극이매, 부부가 서로 불순하고 자
손이 불효하며 일가 친척이 화목치 못하여 자연 백년을 서로 근심해야 한다더
라. 재산이 태산과 같다 하더라도 어느새 새어나가 재물을 탕진하고, 부부 서로
이별수가 있으며, 혹 자손을 두어도 기르기 어려운 운수라. 부부가 항상 귀신같이
여기며 싸우니, 서로 죽이여 명이 짧아지리라, 했다. 이보다 더 참담한 꼴이 어
디 있을꼬. 아아, 끔직하여라. 토성 여인 또한 좋지 않아서, 남수여토면 만물봉상
이라. 만물이 서리를 만난 격이지. 물과 흙은 상극으로, 항상 재난과 액운이 끊
이지 않아 곤핍하고, 부부가 같은 집에 살아도 상서롭지 못해서 가내 화목을 바
라기 어려운데다가, 자손은 불효하고, 살림은 흩어져 티끌이 되니 우마와 재산의
흔적을 찾기 어렵도다. 관재와 재난이 앞길을 가로막아, 만사에 구설이 분분하니
조용할 날이 없구나. 부부 이별하여 독수공방을 면치 못하든지 남평의 상고를
당할 격일진저. 그렇지만 금성의 여인을 만난다면 크게 길하니. 남수여금은 삼객
봉제라. 나그네가 반가운 동생을 만나는 격이다. 금생수 하매 부부 서로 화합하
며, 부귀할 것이고, 옥과 구슬로 지은 집에서 백년을 해로하는 쾌란다. 자손은
창성하고 생애는 점점 흡족해, 일가 친척의 웃음 소리 넘치는데, 전답과 금은보
화를 어디에 다 두오리오. 목성의 여인도 좋지. 남수엽목은 교변위용, 상어가 변
하여 용이 된 격이야. 수생목하니, 이런 남녀의 결합은 자손이 번창하는 것이 나
뭇가지 우거짐 같고, 서로 자라서 무성함에 그늘이 도타워 남에게는 덕이 되며,
스스로 부귀 장수 복락이 그치지 않으리라 했다. 재산은 불어나 흥왕하며 노비
와 전답이 그득하여 영화가 무궁하고, 공명을 떨쳐 거룩한 이름은 세상을 비추
니, 평생에 기쁜 일뿐이라. 부부의 금슬인즉 어찌 아니 좋으리오. 끝으로, 수성의
여인도 대길하다. 남수여수는 병마봉침. 병든 말이 침을 만난 격이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이제는 완치 쾌차하게 되리라. 물과 물이 모이면 여울이 냇
물 되고, 냇물이 강물 되며, 강물은 바다를 이루듯이 기쁜 일이 날로 쌓이어, 지
위는 더욱 높아지고 덕망은 점점 깊어져 만인의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세사
의 재물이 모두 이 골로 모여 끝이 없도다. 부부 서로 자나깨나 잊혀지지 않는
것이 처음의 만남과 같느니, 효성이 지극한 자손이 집안에 만당하고 생기 가득
한 일생은 안락을 다 할리라. 너희 아버님은 마흔여덟, 을미생이라. 사중금이시
고, 나는 마흔셋, 경자생으로 벽상토여서, 금생토, 토생금, 서로 상생이란다. 남금
여토로 만나면 산득토목, 산이 흙과 나무를 만난격이니 얼마나 부요하냐. 평생토
록 좋은 집에서 부부가 해로 화락하고 자손이 번성한다 했다. 비단옷에 옥식이
가득하매 부러울 것이 없느니. 명예가 사해에 진동함을 만인이 칭송하리란다. 또
할머님은 올해 일흔둘, 경오생이시니 노방토로서, 비록 궁합을 맞추는 것은 아니
나, 모자지간에도 토생금, 금생토, 앞서 말한대로 상생하여 좋으신가 싶더라. 양
모 양자 사이가 저리 지극하기는 어려우니라. 자애와 효심이 고금에 없는 정경
을 보자면, 과연 두 분이 합이 들기는 단단히 드신 모양 분명하다. 모자지간만
그러한 것 아니라 나하고 고부간에도 좋으시다. 만일 이괘로 남녀가 만난다면
남토여토 아니냐? 이는 개화만지라. 가지마다 꽃이 핀 격인즉 양토가 상합하니,
자손이 창성하고 효도를 잘하면 무병장수할 것이란다. 부귀한 풍류객이 되어 고
루거각에 앉아 영화를 누리는데, 해마다 경사롭고 일마다 이로우니, 녹봉이 갈수
록 두터워지리라... 듣는 귀도 오죽이나 보드라우냐. 이렇게 좋은 인연도 없는 것
이 아니건만, 너희는 어쩌다 그렇게 만났을꼬. 그런 것 다 쓸데 없다고, 선비의
집안에 인륜지대사를 잡술에 의존할 것이냐고, 아버님 엄중히 꾸중하시고, 문벌
보아 성씨 보아 정하니 이렇지. 내 너희 내외의 정경이 하도 보기에 딱해서, 지
난번에 사주 잘 보는 조생원이 사랑에 아버님 뵈오러 왔길래, 남모르게 부탁해
서 적어 놓은 괘가 여기 이렇구나. 아무 말도 안하고 내 혼자 속으로만 알고 있
으려다가, 기왕에 이러한 운수라면, 이제부터라도 명심 각골해서 어쩌든지 무사
히 극복하는 쪽이 더 낫겠다 싶어 너한테 하는 말이다. 하기는, 사주 속같이 기
묘한 것이 없어서, 궁합에는, 상극 중에 오히려 상생하는 명이 있나니. 사증금같
이 모래 속에 묻힌 쇠나 차천금같이 비녀와 팔찌를 만드는 쇠는 너무나 강한 금
이어서 불을 만나야 성취할 수 있듯이. 벽력화.천상화는 물을 만나야 복록과 영
화가 성취할 수 있다더라. 이 둘 다 번갯불이니, 물 먹은 구름이 모여야 번개를
치고, 번개 쳐야 큰 비가 오는 이치를 보면 속뜻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그렇게만 본다면 너희 둘, 괜찮은 것 같지만, 천하수와 대해수는 불보다 흙을 만
나야 더 좋다는구나. 망망대해 외로운데 흙이라면 섬이나 육지를 말하지 않으랴,
반가운 맘 그지없고 음양이 상합하련만. 네 안은 너 만나서 큰 덕을 보겠으나,
너는 네 안 만나 어찌 풀어 나갈는지. 아깝고, 애돌파라. 아들아, 내 아들아, 금
쪽같은 내 새끼야. 너는 임술생 개띠라, 생년에 천예가 들었단다. 참 이상도 하
지. 네가 난데없이 악기를 들고 와 동경으로 음악공부를 하러 가련다 했을 때,
온집안이 발칵 뒤집여 소동이 나고, 이 어미도 무한히 놀랐다마는, 너한테 '연천
예'가 들어 그러했던가. 속말로 팔짜 도망은 못한 더다니, 맞는 말인가. 아나, 한
번 읽어 보렴. (연입천예: 연에 천예서이 드니) (지모과인: 지혜와 꾀가 뛰어나도
다) (목교수기: 눈이 정교하고 손재주가 있으니) (일일홍재: 날로 재물이 늘어가
리라) (의식유족: 옷과 밥이 풍족하니) (안과세월: 편안히 세월을 보내리라) (백
년금궁: 백년의 금술궁이) (부조지탄: 고르지 못하니 한탄스럽다) (약불연야: 그
렇지 아니하면) (조자난양: 일찍 둔 아들을 기르기 어려우리라) (순유춘풍: 순하
면 춘풍이요) (역리추상: 거스르면 가을의 서리로다) 내가 너희 이씨 문중에 시
집와서 이날까지, 너의 누이 손위로 둘 있는 것, 하나는 상하고 하나는 잃었다
만, 금지옥엽 너를 얻고 모든 시름 다 풀리어, 저 앞엣말 하나도 과한 데 없이
살아왔단다. 헌데 이 무슨 괴이한 일인가. 네가 혼인하고 취처하여 새사람 들어
오고는 자고 새면 근심이 석 삼이니. 집안이 화락하지 못하면 자연히 몸과 마음
은 건공중에 정처없이, 바깥으로만 나돌게 되는 것을 어미가 왜 모르겠느냐. 바
깥이란 으레히 바람이 많은 법. 그 바람은 여자로 해서 일으키는 경우가 태반
아니냐. 음풍에 한 번 휘말리면 망신하기는 잠깐이라. 강모야, 내 아들아. 부디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조심하거라. 아무리 조신한 여염의 아낙일지라도 그 운수
에 망신살이 뻗치면 도리 없나니, 바람에 옷자락만 펄럭여도 샛서방을 보았다고
소문이 나는 법이란다. 아가, 너의 올 신수가 사나워 그 몹쓸 망신살이 들었느리
라. 조생원이 적어 준 것이다. 펴 보아라. (망신입명: 망신살이 명에 들어오니)
(색정신지: 남녀간의 정욕을 삼가라) (관재구설: 관가의 재앙과 구설이) (간간유
지: 간간이 있을 것이로다) (수다노력:비록 노력은 많아도) (불신불성: 힘을 못
펴고 이루지 못한다) (장생동대: 만일 장생을 한 가지로 띠었으면) (귀인지격:귀
인의 격이로다) 어머니, 어머님. 그만하십시오. 이미 그 모든 경계의 말씀이 부질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나의 몸은 흙덩어리에 불과한데, 굽이치는 운수는 급류의
물살입니다. 흙이 어찌 물을 이기겠습니까? 이미 저의 허리를 깎아 먹고 있는
것을, 이제 한순간이면 중허리가 무너지며 내 몸뚱이는 내려앉고 말 것입니다.
그런 것도 모르시고... 이미 일은 일어날 대로 일어나 버리고 말았는데 ... 어머니
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시고...그다지도 구구한 여러 말씀으로 다짐을 하고 또 하
시오니, 꼭두각시처럼 처량하십니다. 어머니. 수명을 타고났으면 귀인의 격이라
한다지만, 오래 살면 무엇 하며, 설혹 귀인이라 한들 또 무엇 하리. 구구 절절이
자신의 모습과 짓거리를 있는 대로, 마치 명경으로 들여다본 듯이 적어 내놓은
조생원의 달필이 눈앞에 선연히 떠오른다. 그렇다면 강모가 오유끼를 만난 것은
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네는, 아무리 흉액일지라도 피할 도리가 없었던
운명의 가로막대였는지도 또한 모를 일이었다. 머리부터 길목을 가로막고 기다
리던 그네는, 고사정의 요리집 '모찌즈끼'에서 손님으로 온 그를 천연스럽게 맞
이하였을 터이니, 율촌댁이 강모를 앉혀 놓고 골백번씩 다짐한 말들도 한갓 부
질없는 바람 소리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남의 사주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조
생원의 경계도 쓸모 없는 휴지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고 만 셈이었다.
그날은, 강모가 근무하고 있는 부청 학교과에서 결산회식을 가진 날이었다. 강모
는 고보를 졸업하고는 바로 부청에 취직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숙부 기표의 주
선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기표는 자신의 아들 강태도 전주 부청에 심어 놓았
으며, 바로 뒤이어 강모 또한 과는 다르지만 같은 청사에서 일하게 서둘렀다. 그
때 연일 연야 계속된 정리 작업으로 지쳐 있던 직원들은, 결산이 끝난 날인 만
큼 처음부터 들떠서 야단스럽게 모찌즈끼의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
은 앉자마자
"여자."
라고 소리쳤다. 오래 기다릴 것이 없이 이윽고 술상이 들어오고, 화려하게 머리
를 빗은 여자 몇 사람이 따라 들어와,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였다. 모쯔즈끼는
이급 요리점으로, 뚱뚱하고 작달막한 일본인이 경영하고 있는 집이었다 .그곳은
유다르게 술맛이 좋다거나, 요리 솜씨가 뛰어난 집은 아니었지만, 모찌즈끼의 여
자만큼은 소문이 난 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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