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불러라."
강모는 노비에게 명령하듯 짧게 말했다. 오유끼는 다소곳이 이마를 숙여 절을
하고는 샤미센의 줄을 고른다. 그네의 흰 손가락이 강모의 가슴에 닿는다. 강모
는 머리를 털어낸다. 자완무시와 떡국, 은어 요리들이 어지럽게 상 위에서 뒤섞
이고, 함께 앉은 사람들은 이미 샤미센의 가락 따위에는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
았다. 그들은 거나한 취기를 옆자리의 젊은 여자에게 부리며 허리를 끌어안고
낄낄거린다. 방안에는 자욱한 담배 연기가 전등 불빛을 가리워 모든 것이 몽롱
하게 보인다. 귀밑에서 들리는 희롱의 소리도 아득하고 멀어, 꿈결인가 저승인가
싶었다. 그런 와중에서 오유끼는 홀로 샤미센을 퉁기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 가락을 듣고 있지는 않았다. 그네도 누가 들으라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
다. 가락은 저 혼자서 금빛으로 번쩍이다가 유순해지고, 그러다가 또 혼자서 명
랑한 물 소리를 냈다. 물 소리가 귀를 젖게 한다. 그는 오유끼와 더불어 달빛 아
래 서 있었다. 용소에 부서지는 검푸른 달빛은 물배암처럼 소용돌이를 휘감고
있었다. 그것은 신비롭고도 광기 어린 빛깔이었다. 청동으로 빚은 것 같은 오유
끼가 강모에게 손짓을 한다. 무너질 듯한 암벽의 검은 그림자와 짙푸른 육도목
수풀이 어우러져 숨막히는 향기를 입김으로 뿜어낸다. 그리고 오유끼와 강모는
푸른 달빛 속에서 벗은 몸으로 시리게 찬 물살에 곤두박질치고 자멱질을 하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고 웃었다. 속이 허해질 만큼 웃었다. 웃음은 바람
인 모양이었다. 하품처럼 웃음을 토해 냈다. 눈귀에 눈물이 배어났다. 귓가에서
는 샤미센의 음률과 물 소리와 웃음 소리가 서로 엉키켜 젖은 눈물에 반죽이 되
고 있었다.
"너...,나하고 살래?"
새벽에 눈을 뜬 강모는 어슴푸레한 허둠 속에서 오유끼에게 물었다. 오우끼는
그 말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다만 나이답지 않게 그늘진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주인이 있어요."
"주인?"
"저는...팔린 몸입니다."
오유끼는 가까스로 웃으며 모찌즈끼의 주인 남자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묵묵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올가미를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네의 목소리는 낮았다. 강모의 머리 속에는 입술이 두툼하고 번질거리는 남자
의 천박한 면상이 떠올랐다. 낙지의 빨판 같던 붉은 손가락이 공중에서 열 개의
다리를 너울거린다. 그것은 오유끼의 목덜미에 흡착되어 감겨들었다. 오유끼는
비명도 없이 그 빨판이 붙은 다리에 목을 감기운 채 진을 빨리우고 있었다. 어
찌 보면 빨판은 야마시따의 입술이기도 했다.
"도망을 치지."
"평생 쫓기면서 살게 되겠지요."
"얽매여서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그렇지도 않아요. 저는 다시 이런 데로 가게 될 걸요. 어디서나 마찬가지예요.
먹고 살 길이 없답니다."
"굶는다는 말이냐?"
"죽고 말겠지요. 거리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는데?"
"저는 이미 물이 들어 버렸어요. 지워지지 않을 텐데요, 뭐....그냥 이 웅덩이에서
썩어 버리고 말 거예요."
"너는 아직 꽃도 피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썩을 궁리를 하고 있단 말이냐."
그때 오유끼는 체념과 포기에 길든 늙은 기녀처럼 말했다.
"피지 않고 시드는 꽃도 있지요."
꽃. 썩어들어가고 있는 꽃의 다리. 이리도 저리도 갈 수 없는 자리에서 서서히
뭉그러지고 있는 살과 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오유끼의 낮은 한숨 소리. 그
는 순간 그 꽃뿌리를 다가봉 아래 굽이치며 흘러 시퍼렇게 소용돌이 일으키는
용소에 담그어 주고 싶은 격렬한 충동을 느꼈다. 물살에 씻기는 흰 다리가 푸른
물그림자에 어려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정이라면 내 어쩌지 못하겠다만."
돈이라면 내가 너한테 줄 수가 있다. 너를 풀어 주고 싶다.
"풀어 주고 싶다."
그는 진심으로 간절하게 속삭였다. 마치 자기 자신의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것처
럼. 오유끼는 믿지 않는 것 같았다. 팔려 올 때는 보리쌀 한 말이나 치마 저고리
한 감 값이었으나 이제는 짐짝보다 무거운 빚무더기가 등을 짓누르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털어내 버릴 수가 있을까. 다만 오유끼는 잠깐 미소를 띄웠다.
"자주 오세요."
그것으로 고마운 일이었으므로 그네는 그렇게 말했다.
"나랑 살자."
그러나, 그 말에는 대답을 안하고 그네는 엉뚱한 질문을 한다.
"몹시 속이 상하셨던가 봐요?"
"언제?"
"어제."
"왜?"
"많이 취하셨어요. 쥐어 짜면 주루루 술국이 쏟아지게. 술자리 파할 때까진 그냥
앉아 계시기는 했는데요. 일어서질 못하시데요."
"토했어?"
"많이."
그러고는 무어라고 말을 이으려다 그만둔다. 어슴푸레하던 방안의 빛이 어느 사
이 희어졌다. 그래서 오유끼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또 어쨌는데?"
"아니예요."
"무슨 일이 있었구나. 말을 해라."
그러나 그네는 아니라고만 하며 돌아 눕는다. 성급하게도 이 여자는 꽃값을 계
산하려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밤새도록 소릴 지르셨어요."
"소리?"
그럴 리가.
"다 부숴 버리겠다구, 다 소용 없다구 그랬어요. 막 으르릉거려서 무슨 말인지
들을 수는 없었는데요, 늑대가 우는 것 같던데요? 그러구는..."
강모는 의아하여 반쯤 일어나 앉았다. 뒷머리를 잡아당기는 두통이 번개를 친다.
쇠꼬챙이 같은 통증이었다. 그는 비명을 삼키며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머리
를 감쌌다.
"마지막엔, 차라리 날 잡아먹어라, 차라리 날 뜯어먹어라, 그러셨어요. 벗어 젖히
구는, 새빨간 몸뚱이 하나뿐이라구, 이거뿐이라구, 이게 다아라구, 마음대로 하라
구 그러시더니요... 왜 가만 있느냐구, 너 이 년, 왜 가만 있느냐구... 나를 짓밟으
라구... 안 그러면 내가 널 죽여 버리겠다구 그러면서."
생각난다. 그랬었다. 내가 이 여자를 움켜쥐었다가 방바닥으로 패대기를 쳤지.
나가떨어지는 오유끼를 일으켜 세워 다시 벽 쪽으로 메다붙였다. 그리고 몰매질
하듯 후려쳤다.
"꿈인가 싶더니만, 그게 너였느냐?"
오유끼는 온몸이 멍이 든 채로 새벽녘에야 강모에게 옭죄이게 안겨 잠이 들었
다. 강모가 때린 것은 오유끼가 아니었다. 메다붙이고, 후려치고, 패대기치며, 물
어뜯으며, 짓이긴 것은 오유끼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실의 혼행에서 맞닥뜨린 태
산 같은 효원의 그림자였다. 집어삼킬 듯 우뚝하던 효원의 어깨였다. 어찌 보면
그것은 강실이이기도 했다. 무너지며 괭괭거리는 징소리가 귀에 울려, 그 소리를
몰아내려고 길길이 뛰어로를 때, 텃밭에 낭자하던 꽃대 부러지는 소리와 강실이
의 등뼈가 내려앉던 소리. 방바닥에 쓰러지는 오유끼는 안개마냥 자욱한 강실이
였다. 그런가 하면 강실이가 아니라 청암부인이기도 했다. 서리 맺힌 눈매를 서
늘하게 뜨고 있는 할머니의 허이연 머릿결이 가슴에 얹힌다. 암키와 수키와가
서로 이를 맞물고 그물코같이 단단하게 얽혀 단번에 덮어 씌울 듯 거대한 날개
를 펼치던 지붕, 괴조의 주둥이처럼 허공으로 치솟아 솟구치던 용마루가 순식간
에 자기에게로 내리꽂히는 아찔함에 강모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날카로
운 아픔은, 수천 숙부 기표의 눈빛이 쏘는 화살을 맞은 자리가 찢기는 통증이기
도 했다. 그리고 부친 이기채의 놋재떨이 두드리는 금속성. 네 이노옴. 네 이 천
하에 못된 놈, 뒤통수를 때리는 퇴침. 산산 조각이 난 채로 튀어오르던 바이올린
의 몸통. 그 몸통에 맞아 흩어진 담배통과 타구. 강모가 오유끼를 두들겨 팬 장
작은 샤미센이었다. 노래를 불러라. 덕석에 말어라. 짐승만도 못한 놈. 몰매를 쳐
라. 나는 떠나고 싶었어요.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덜미를 잡지 마시오. 내 목을
매지 마십시오. 동경으로 보내 주세요. 생긴 대로 노래 부르며, 악기를 두드리며,
떠돌아 다니며 살게 해 주세요. 제발.
"도망가지 왜 밤새도록 맞었느냐."
강모는 가까스로 오유끼에게 묻는다. 목이 잠긴 소리다. 그는 몹시도 무안하였
다.
"우시길래."
"많이 울더냐?"
오유끼는 대답 대신 누이처럼 강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따뜻하게, 오
히려 밤새도록 맞은 쪽은 강모였던 것같이. 강모는 그네를 와락 끌어안는다. 끌
어안은 그의 팔에 눈물이 돈다.
"내가 망령이 씌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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