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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4권 (10)

카지모도 2024. 5. 8.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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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서러운 소원은

 

캄캄한 한쪽 구석에 모로 누워 잔뜩 몸을 움추린 채 꼬부리고 있던 우례는,

어둠이 천장까지 들어찬 방 밑바닥에 깔린 듯 눌리어 물 먹은 사람처럼 더는 참

지 못하고, 뭉친 숨을 후우우으 바트게 뱉어낸다. 안 그래도 칠흑인 방안에 우

례가 뱉어 낸 바튼 숨이 검은 멍울로 덩어리진다. 그것은 낮은 곳에 무겁게 떠

있다가 들이 쉬는 우례의 숨에 거멓게 엉기며 숨을 막는다. 그것이 갑갑하여 우

례는 입을 깊이 벌리며 숨을 삼켜 보려 하지만 오히려 숨은 명치에 걸려 버린

다. 댓진 같은 숨이었다.

"우례 그거이 애기를 뱄담서."

"아이고, 사참해라. 거 무신 소리여? 가는 아작 댕기 꼬리 걷어 올리도 못했는

디, 누구 씨를 받었이까잉."

"받었능가, 뿌ㄹ능가."

"허기는, 가 생긴 거이 반드로옴 헝 거이 어찌 위태위태허드라."

"얼마나 되얐능고?"

"낯바닥이 뇌에러니 똑 가문 날 외꽃맹이로 시들어져 갖꼬 밥도 못 먹고 보대끼

능 거 보먼 서너 달 안되얐이까?"

원뜸의 종가 뒤안 마당에 돌아앉아 귓속말로 수군거린 말이 한 입 건너 두 입을

지나갈 때, 우례는, 그 말이 불어나는 그만큼 무거워지는 한숨을 이기지 못하여

가까스로 낮을 견딘 채, 밤이면 벌겋게 뜬 눈으로 참았던 숨과 씨름하며 뒤척이

었던 것이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대문간의 양 옆으로 붙은 행랑채, 바깥 호

제 집들의 방방에 모두 불빛이 꺼지고, 먹장 같은 밤의 어둠이 물 밑바닥보다

더 깊어진 삼경. 됫박만한 방 두칸의 윗간에 잠든 어미 아비 막손이 내외의 숨

소리와 아랫간에 우례와 나란히 누운 소례, 그리고 저쪽에 작은 네 활개를 벌리

고 자는 머슴애 동생 막둥이의 된 숨소리가 우례를 더욱 막막하게 하여 캄캄한

천장을 바로 보고 누웠다가, 숨소리와 뒤섞이어 까우룩이 내리누르는 어둠을 밀

어내듯 후으으으 숨을 뱉으며 모로 누웠다가, 밀어낼 수 없이 밀려와 고여 있는

어둠을 피해 후으으으 다시 돌아누워도, 착찹하게 가로막는 어둠은 단 한 치도

물러가지 않았다. 물러가다니, 그것은 오히려, 뒤척이고, 모로 눕고, 돌아누울

수록, 엉겨 붙으며 조여 오는 차꼬 같았다. 돌아눕는다고 세상이 달라지랴. 어

찌하지 못하는 우례는 드디어 때묻은 무명 베개를 끌어안고 새우처럼 꼬부리며

엎드린다.

마을은 괴괴하고, 이따금 먼 곳의 개짖는 소리가 밤이 삼경으로 쓸려 들어간 것

을 절감하게 하는 시각, 우례네말고 다른 호제집들도 깊은 먹물 속에 잠기어,

오직 고단한 숨소리들만 어둠의 물살같이 채어 올랐다가 내리박히면서 이어지는

데. 우례는 저혼자 삼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대개의 노비들이 혼인하기 전에는, 상전 댁의 바깥 행랑방이나 안 행랑방에 기

거하다가, 혼인을 하고 나면 상전의 집 주위, 대문에서 한 걸음 나서는 바깥 좌

우쪽이나 후미진 뒷담 언저리, 혹은 담 옆구리들과 그 아래 올망조망 세워 주는

집으로 솔가하여 살게 되는데, 이 집을 그냥 '호제집'이라고 하였으며, 여기 사

는 사람들은 '호제것'이라고 말 끝에 꼭 '것'자를 붙여 불렀다. 이 호제것들은

비록 대문 바깥에 딴채를 얻어 살게는 되었지만, 겨우 이곳에서 잠만 잘 수 있

을 뿐, 먼동이 버언히 터올 무렵이면 벌써 상전의 집 마당이며 헛간, 외양간,

나뭇간, 정지, 뒤안, 제 일할 자리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신분이 낮아 사람 대

접을 못 받고 하는 일이 험한 이들의 집은, 상전의 인품이나 살림 규모, 또 노

비 대하는 도량에 따라 모양새도 다 각각 조금씩은 달랐다. 명색이 집이라고는

하지만 거칠고 보잘 것 없는 황토 흙벽에 볏짚이나 얼기설기 얽어 놓은 움막에

돼지 우리 한가지로 통간의 방 한 칸이 전부여서 우굴우굴 온 식구가 들어앉은

곳도 있고, 장지로 칸을 막아 위아랫간 분별을 두어 내외 거처는 따로 할 수 있

도록 해 준 곳도 있으며, 규모는 비록 손바닥만하나 안방, 건넌방에 마루까지

갖추어 집의 시늉만큼은 다른 서인의 것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곳도 있었다.

모양이나 좌향이야 어떠하든 그들은 상전의 집 주위 코 닿는 곳에 도래도래 모

여, 주인이 마당에서

"아무개야아."

부르면 하시라도 달려가 대령하고, 만일에 무슨 위험한 일이 있을 때에는 주인

댁을 보호하는 방패막이가 되면서 상전의 집을 에워싸고 있었는데, 거처만 따로

하지 한 집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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