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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4권 (35)

카지모도 2024. 6. 12.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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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계 제 일천에서는 남녀가 서로 만났을 때, 몸을 부딪쳐 합궁하여야만 소망이

풀리고, 제 이천에서는 그 지경은 극복하였으나 그래도 서로 포옹은 해야 하고,

제 삼천에서는 그저 손만 잡고 있어도 충분하며, 제 사천에서는 드디어 그 손조

차 놓아 버리어 오직 미소만으로도 합일하여 향기가 가득한 곳이라."

는, 그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정토에까지 사바의 예토에서 오욕 칠정으로

뒤엉킨 육신을 무겁게 짊어지고 헤매는 인간의 그 무엇이 절실하게 가서 닿아,

도솔대선 미륵보살의 불력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월명사는 꽃을 뿌리

며, 뿌리며, 노래를 불러, 그 멀고 높은 도솔천에 기원을 보내었다.

"오늘 용루에서 산화가를 부르며 한 송이 꽃을 저 푸른 구름 너머로 솟구쳐 보

내노니, 꽃이여, 너는 부디 은근하고 정중하고 굳은 마음으로 네가 받은 명을

잘 받들어, 멀리 도솔천에 이르거든 미륵보살을 뵈옵고, 이 신라의 하늘을 어여

삐 보살펴 주옵시사, 괴이한 해 한 개를 거두어 주소서, 말씀을 여쭈어 다오."

월명사는 하늘을 우러러 빌었다. 노래로도 다 못한 인간의 곡진한 마음을 한 줄

기 꽃 향기에 실어 멀리멀리 간곡하게 보내는 것이다. 노래 가락은 꽃의 훈향을

타고 멀리 도솔천의 부처님 가슴 언저리에 가서 울리리니, 이는 향기와 소리를

다한 제사라. 꽃을 하늘에 던져 뿌리는 것은 곧 향을 피워 올리는 것이리. 그래

서 꽃이 피면 부처가 와서 앉는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향이란 그저

단순히 어떤 좋은 냄새를 이르는 것이 아니라, 갈 수 없는 먼 곳에 보이지 않게

있는 것을 간절히 부르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향은, 그 부르는 것이

이리로 오는 대답의 '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향내를 일컬어 말할 때는'냄새'

라 하지 않고

"향의 소리가 참 맑습니다."

"향이 소리가 참 은은하군요."

라 하는 것이다. 이기채는 처연히 무릎을 꿇고 앉아 이윽고 집사자가 따라 주는

술을 향로 아래 놓은 모사 위에 세 번으로 조금씩 나누어 붓는다. 작은 종지에

깨끗한 모래를 담고, 이 모래에다 띠풀을 짧게 잘라 붉은 실로 동여 매어 꽂은

모사는, 하늘의 기운이 이 띠를 타고 들어와 지상에 감응하신다는 상징이었다.

이제 여기에 술을 부었으니 천지의 기운이 서로 합하고 어머니 청암부인의 영은

이 자리로 내려와 강신하신 것이다. 이기채는 북받치는 설움으로 크게 곡을 하

며 재배하였다. 그리고는 아까 섰던 자리로 다시 물러서는 그의 등위에서 어느

결에 부옇게 동이 트고 있었다.

"진찬하라."

는 축의 지휘를 받으며 집사자가 올리는 제수들이 어동육서 홍동백서로 정연하

게 놓이었다. 머리에 주악과 단자를 얹은 녹두 백편,거피 팥 백편,흑임자 백편

의 떡 종류는 편틀에다 포개어 괴고, 검은 흑임자 강정에 흰깨 강정,백산자,다

식,약과를 놓은 옆에는 밤,대추,곶감,은행, 그리고 아래 위를 하얗게 도려낸 사

과,배가 붉은 감들이 진찬되었다. 또 삼적으로 쇠고기를 손바닥만큼씩 넓고 두

껍게 저미어 잔칼질을 하고는 양념하여 꼬챙이에 서너 장씩 꿰어 구운 육적과,

큰 마리 그대로 양념을 한 뒤 노란 지단과 실고추로 곱게 고명을 얹어서 찐 어

적들, 그리고 대가리 온전하게 달린 것을 손질하여 쪄낸 닭이 제자리에 올려졌다.

"제삿날에는 간납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집안에 풍겨야 비로서 신이 알고 오신

다."고 말할 정도로 꼭 있어야 하는 음식 간납은 쇠간이나 처녑, 그리고 쇠고기와

생선들을 얇게 저미거나 곱게 다져서 밀가루를 입히고 달걀을 씌워서 기름에 부

친 저냐다. 그리고는 탕이다. 쇠고기를 진진히 우러나게 고다가 다시마와 검문

어,두부를 함께 넣고 끓이어, 건더기는 각각 다른 그릇에 떠서 육탕,어랑,소탕

으로 하고, 국물은 따로 국그릇에 하나만 떠놓았다. 이것은 '갱'이다. 이 모든

음식을 어머님이 지금 살아서 잡수신다면 오죽이나 기꺼워하시랴. 허나 이제 그

형체는 천지에 흔적을 찾아뵈올 수 없고, 오직 보이지 않는 혼백만 쓸쓸히 영좌

에 앉아 다만 홀로 흠향을 하실 수 있을 뿐이니, 허망하다. 참으로 어머님은 여

기 오시어 이 음식들을 운감하기는 하시는가. 아이고오, 아이고오오. 영좌 앞에

초췌하게 선 이기채는 여윈 등을 구부린 채 두 손을 맞잡고 서럽게 목을 놓아

곡을 한다. 그의 목은 깊이 쉬어 있었다. 그 곡성에 실려 육포,어포,건문어,북

어포를 괴어 담은 제기들이 떠오르듯 상 위에 놓이고, 고사리,도라지,삼색 나물

과 김치, 그리고 떡을 찍어 잡수실 꿀이며 간장,초간장이 갖추어진다.

"메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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