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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16)

카지모도 2024. 11. 3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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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간장 바튼 공배네가, 꼭 이럴 것 같아 아예 말을 꺼내지 않으려다, 미우네

고우네 해도 저 여편네는 혹 까닭을 알 수도 있겠지 싶어 물었던 것인데, 옹구

네는 팽돌아진 음성으로 말끝마다 콱콱 대갈을 박았다.

심정대로라면 이 총중에도 제 방석 넓히려고 대갈마치 휘두르는 저 따위 화냥

년하고 더 이상 대거리할 것 없이, 그냥 원뜸으로 줄달음 놓아 올아가 보고 싶

었지만, 필경 어마어마한 치죄가 벌어질 것이 분명한 이 정황에 무엇 무르고 끼

여들었다가 날벼락맞을까 겁이 나서, 공배네는 입을 그만 다물어 버린 채 돌아

섰다.

왜? 더 물어 보제.

무겁게 돌아서는 공배네 됫등허리 묵은 잿빛 남루한 잔등이를 훌기어 꼬나 보

던 옹구네는,

니가 머이나 된지 알었드니 앙 껏도 아니제? 아닝 거 알었제? 긍게 인자보톰

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 무단히 넘으 제상에 밤 놔라 배 놔라 허지 말고.

우리는 우리가 알어서 살랑게로.

입속말 뇌이더니 휙소리를 낼 만큼 재게 발을 떼었다.

도저히 여기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 저, 옹구네 멋 헐라고 매안으로 가능게비네. 겁도 없이."

백단이가, 이글거리는 화로에 숯 집으로 가는 손 붙잡는 말투로

"아서. 말어."

하듯이 화급하게 손사래까지 치며 옹구네 뒷 등에 대고 손을 까불었으나, 옹구

네는 돌아보지도 않고 잰 달음질을 하였다.

"내비두어. 모다 다 보라고 위세로 저러능 거잉게."

평순네는 평순이를 돌려세우며 백단이한테 넌즛 말을 던졌다.

"보라니? 머얼 보라고 저런당 거이여?"

" 그 속 몰르먼 백단이도 신장님허고 헛노는 거이고."

"벨소리 다 듣겄네."

백단이는 실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리고, 같이 섰던 만동이는 아들내미 귀남

이한테 무슨 말인가를 건네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은 금방 눈이라도 내릴 것처럼 두터운 회색으로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뒤엉킨 구름 한 덩어리가 거멓다.

"눈이 올랑가아, 비가 올랑가아."

매안의 아랫몰 임서방이 어서방하고 고샅 모퉁이 평평한 땅바닥에 뾰족한 막

대기 꼬챙이로 동그라미와 금을 그어 놓고, 잘 보이라고 골을 파냈다. 고누를

두려는 것이다.

"자, 한판 놀자."

말밭을 다 그린 임서방이 바둑돌같이 잘고 매끄러운 돌 몇 개를 추린다.

고누는 이 말을 가지고, 상대편의 말을 다 잡거나 집을 차지하는 사람이 이긴

다.

임서방과 어서방은 흰 돌 네 개, 검은 돌 네 개를 둘어서 나누어 쥐고 호박고

누를 두며 노는데, 번갈아 말을 한 칸씩 두어 가는 솜씨가 어서방보다 임서방이

월등 뛰어났다. 번번이 길이 막혀 더 이상 말을 둘 수가 없게 된 어서방이 몇

판 만에 모처럼 겨우 어찌 비기어서

"어, 거참, 쉽잖허네."

하며 몹시 아까운 입맛을 짭, 짭 다시는 모양은 옆에서 구경하던 아랫몰 타성들

과 임서방 딸내미 앵두를 웃게 만들었다.

고누는 아무나 놀 수가 있었다. 놀이 방법이 단순하고 소박하여 도구도 필요

없고 장소도 가리지 않았다. 아무 때 어느 곳에서나 손쉽게 판을 벌일 수 있어,

일꾼들이 잠시 고된 일손을 멈추고 쉬는 동안에 바로 금 몇 개 긋고 돌멩이 주

워서 놀면 되었다. 논두렁도 좋고 그늘진 정자 나무 아래도 좋았다. 또 동네 아

이들 같으면 마당 한쪽 구석지나 넓적한 바위 위에서 신나게 두고 놀 수 있었다.

"고누야 상놈들 놀이지 머. 양반들은 터억허니 점잖허게 앉아서 바둑두고 종경

도 놀고, 그래 그런 말도 있잖응게비?"

이야기 잘하는 임서방이 놀이게 따른 상대방의 신분과 대우를 빗대어

"바둑 둘 줄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가, 뭇한다 하면 한 단계 말을 낮추어

"자네, 장기는 둘 줄 아는가?"

하는데, 이번에도 못 둔다 하면 아예 말을 꺾어

"너, 꼬누 놀 줄은 아냐?"

한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누는 재미가 있었다.

말밭의 한가운데 말이 빠지면 안되는 우물을 정하고는, 각기 말 두 개씩을 가

지고 노는 우물고누는 강고누 혹은 샘고누라고도 하며, 가로 세로 네 줄씩을 그

어 아홉 칸 네모를 만들어 노는지라 발고누 선고누라고도 하는 줄고누. 거기다

가 곤지고누 꽂을고누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참고누들이, 옛 벼슬의 이름을 종

이판에 차례로 그려 놓고 놀이감으로 쓰는 '종경도 놀이'에 비겨 조금도 손색없

는 즐거움을 주었으니.

사라진 왕조 조선의 벼슬 이름을 깨알같이 모두 한자로 박아 써서 수십 수백

열거하여, 우선 종경도를 순서 맞추어 정밀하게 그리고, 쌍륙이나 윷, 윷말을 준

비해서 편을 짜거나 혹은 혼자씩 노는 종경도.

그 벼슬 그림 놀이를 맨 처음 시작하는 곳이 '입문'인데, 여기서 윷을 높이 던

져 도가 나면 '유학'에 말을 갖다 놓고, 개가 나오면 '진사'에 , 걸이면 '무과', 윷

이면 '은일', 모가 나면 '문과' 벼슬에 각각 오른다.

그리고 나서 벼슬이 순조롭게 잘 올라가 던지는 윷마다 승승장구 높은 패가

터지면 쾌재를 부르며 일취월장하여서, 마지막 승리의 문, 나가는 곳 '퇴', '영의

정'에 이르게 된다.

관운이 좋으면 순풍에 돛단 듯이 순조롭게 벼슬길이 열리어 놓이 오르지만,

운이 사나우면 벼슬도 잘 오르지 않고, 또한 내직에서 바람 부는 외직으로 쫓겨

나기도 하면, 변방 멀리 밀려났다가 불행하게도 파직의 쓴 잔을 마시기도 한다.

놀면서도 벼슬을 못 잊어 가지고 노는 일은 글자를 몰라서도 못 놀고 벼슬 이

름을 몰라서도 못 노는 일꾼 상민들은, 땅밭에 말밭 그려 돌멩이 몇 개 주워들면

그만인 고누가 그저 쉽고 신명나고 흥겨웠다.

임서방의 재빠른 흰 말이 어서방의 어둔한 말을 한쪽으로 몰아붙여 누르고는,

복판의 집을 구멍마다 점령하며

"으야아앗, 추추추추."

얼싸춤을 추려고 어깨를 들썩이려는 순간. 임서방은 공중으로 치켜 올리던 손

을 멈춘 그대로 의아한 낯꽃으로 마을 어귀를 바라보았다.

거기 뜻밖에도 춘복이가 잡혀 오고 있었던 것이다.

자가 또 먼 일을 저질렀다냐.

놀라서 비켜서는 임서방의 고누판을 어지럽게 밟아 짖뭉개며 원뜸의 종가 머

슴과 종들은 춘복이를 잡아 끌고 올라갔다.

그 살기등등한 정황이 도무지 예사롭지 않아서, 아랫몰 사람들은 물론이고 중

뜸 지나 원뜸에 이르는 동안, 매안의 이씨들도 이 소란의 까닭이 궁금해 내다보

았다. 춘복이가 성질은 사나워도 아직까지 매맞은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앞 뒤 곡절 찬찬히 가릴 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춘복이를 덕석에 말아서 피

투성이 낭자하게 몰매 치는 소리가 마을을 울리었다.

"으으윽."

으아아으윽

춘복이의 피먹은 비명 소리와 함께

"네 이 천하에 죽일 놈."

모가지를 삼동으로 썰어 죽일 놈 같으니라고.

내 단박에 박살을 내리라.

더덕더덕 선지 엉긴 춘복이의 대가리 정수리를 향하여 그대고 내리 치려고 공

중으로 몽둥이를 치켜든 이기채의 창백한 팔목에 독오른 힘즐이 퍼런 지렁이처

럼 돋아 솟는다. 힘줄은 멍든 먹빛같이 보인다.

그것은 어쩌면 이기채의 오장 깊은 곳에서 일으킨 내출혈이 원통한 토악질로

팔목에 맺힌 것인지도 모른다.

"이 죽일 놈."

그냥 도굴만 하였대도 살아 남기는 어려운 판국에 투장이라니.

"감히 어디다가 네 놈이 그 더러운 뼈다귀를."

이기채는 있는 힘을 다하여 이를 갈며 몽둥이를 내리쳤다.

빡, 두개골이 두 쪽으로 빠개지는가 싶은 찰나, 춘복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앞으로 고꾸라져 나뒹굴었다. 몽둥이를 피한 것이다. 그 바람에 이기채의 몽둥이

는 춘복이 등판을 패며 튕겨져 나갔다.

"형님, 진정하십시오."

기표가 누마루에서 사랑마당으로 두두둑, 뒤어내려와 이기채의 팔목을 비끄러

붙들면서, 매질을 그만하라, 만류하였다.

"진정하라니. 저놈을 두고 내가 어떻게 진정을 해."

이기채의 눈빛은 갈기갈기 찢긴 춘복이의 피투성이 살점보다 더 참혹하고 참

담하게 찢긴 상처와 분노로 응혈이 져,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상한 불길을 일

으키고 있었다.

네 놈이 내 어머니의 산소를 더럽히다니.

그 어머니가 어떤 어머니시라고.

아아, 이 개 뼈다귀.

"형님, 고정허시고 어서 위로 올라가십시오."

기표는 다시 채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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