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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13)

카지모도 2024. 11. 27.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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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놈이 겁도 나제, 머, 서 발 장대 휘둘러야 걸리는 게 없는대, 세상 천지

에 머이 무서서 걱젱이여? 걱젱이. 내가아."

"아 왜 없어? 옹구네 목숨이 있고, 몸뎅이가 있고, 마음이 있고, 인생이 있는

디. 거그다가 자식끄장 매달고 있음서. 그보돔 큰 거 머, 멋갖꼬 잡어서 그리여?"

"호성암에 댕게왔소? 부체님 말씀이네."

"온 세상이 다 있어도 나 없으먼 쇠용없고, 내가 있으먼, 내 인생이 바로 온

세상이여 . 가진 것 없다고 넘의 것 욕심 내지 말고, 욕심 내다 헛발 딛지 말어.

인생살이 외줄타기 목숨은 한 가닥인디, 외나무다리 건너가다 뒤퉁그러져 그 잘

난 뼉다구 박살나까 싶응게."

못 다 맬 밭 다 맬라다가

금봉채를 잃고 간다아

황아장사 다 죽었냐

금봉채는 내 사 줌세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오

월출동녘에 달 돋아오네

서 마지기 논배미가

반달만크음 남았구나

내사 좋네 내사 좋오아아

총각 낭군이 내사나 좋네에

말을 타고 꽃 속에 노니

말끝마동 향내가 나네

청강녹수 원아앙새애야아

어디를 갈라고

그리 슬피 울고 가느냐

너는 뉘기며 나는 뉘긴가아

성산땅에 조자룡이

청사초롱에 불 밝혀 들고

임의 방으로 놀러나 가세에

저 산 너머 임을 두고

밤길 걸키 난가암허다

땟깨칼을 품에다 품고오

속옷 가래 풀고서 가안다아

산천 초목 불질러 놓고

진주 남강 물길러 가안다아

얼사 좋다 내 사랑아

임의 방으로 놀러나 가아세에

날 오란다 날 오란다네

어야 어허야아

무엇 하자고 날 오라든가

막 재진 차조밥 새우젓 놓고

오호헤야 들들래기오

혼자 먹기가 심심타고서

둘이 먹자고오 날 오란다네에

어헐사 저리시고나아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어

공배네 핀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김을 매면서 늘어지게 한판 가락을 뽑는 옹

구네 뒤꼭지에 대고, 공배네는 까뀌눈을 박았다.

저노무 예펜네, 저것.

우멍헌 지 ㅅ이 있잉게 꼭 허는 소리마동.

빌어처먹을 년.

그 옹구네가 참 그네의 노랫가락 문자마따나 총각낭군 임의 방으로 놀러나 가

서, 차조밥을 먹었는지 새우젓을 먹었는지 그까짓 것 이제는 궁금할 것도 없어

서 따지고 싶지도 않았지만, 요사이 바짝 하고 다니는 뽄새가 수상쩍어, 공배네

는 안 보는 척하면서도 눈길을 늦추지 않았다.

지난 대보름 달맞이 이후로 옹구네가 춘복이와 수군거리거나 스치는 품이 기

금까지와는 무엇인가가 달랐던 것이다.

"춘복이란 놈이 뭐이 어쩌고 어째?"

이기채의 놋쇠 쪼개는 고함 소리가 벽력같이 터져 나왔다. ' 사랑채 누마루에

점심상 소반을 내려놓은채, 들이지도 못하고 물리지도 못하면서 이만큼 토방아

래 쪼그리고 앉아 있던 키녜가 소스라쳐, 뎅그만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훌떡

일어나 섰다.

아까 박달이가 황망히 튀어들어갈 때부터 사랑 큰방 방안의 동정을 살피면서

토방에서 서성거리던 안서방도 앞발굽으로 꼰지를 딛으며 소리없이 놀란 기색을

누르고는, 귀를 곤두세웠다.

그러나 박달이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상전이 묻는 말씀에 누구 앞이라

고 대답을 머뭇거릴 수는 없을 터인데, 바깥에까지는 안 들리는 것이 아마 속으

로 기어들어가게 작은 소리로 우물거리는 것 같았다.

박달이는 아까부터 혼겁을 하여 이미 얼이 반이나 빠져 나간 듯, 앞 뒤 서로

토막토막 잘린 말을 뒤섞어 더듬거리고 있었다.

"네 이놈, 이 주리를 틀 놈. 네가 정녕 죽고 싶으냐? 어서 소상히 이르지를 못

허겠느냐."

"지가 그날, 보름날 오밤중에 춘복이란 놈 맞닥디리기 전끄장은 맹세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샌님, 그런디 지 중정에도 참 요상은 요상허다 했어라우. 달밤

에 성묘라니 싶어서요."

"네가 그날 이전에는, 언제 산소를 돌아보았는데?"

"열낟날, 보름 쇠기 전에 저어 욱에 도선산부텀 한 위 한 위 다뵈었지요. 그때

는 참말로 암시랑토 안했는디요잉. 마님 산소는 더더욱이나 이놈이 꼽꼽허게 잘

살펴뵈었는디... "

그것은 그랬다. 엄동설한에 얼어붙은 땅을 파고 쓴 묘는, 속으로 삭풍이 스

며 봉분이 버슬버슬 부스러지기 쉽고 뗏장도 착근하기가 어려워서 뚝똑 떨어져

나가기 십상인지라, 박달이는 각별히 청암부인 새무덤을 바늘눈으로 살펴보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히 아무런 잘못도 뜨이지 않았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오늘 아침 느지막이 시래기죽 한 대접을 후루룩 둘러마시고는, 작대기 하나

챙겨들고 휘이 묘역을 한 바퀴 둘러보러 나갔다가, 청암부인의 묘 한쪽 귀퉁이

에서 그만 청천 하늘에 날벼락 맞을 일을 발견하고만 것이었다.

만동이와 백단이의 솜씨가 아무리 귀신을 빰치고 속여 먹을 수 있다하더라도,

산지기로 대를 물린 박달이 눈은 속일 수가 없었던가. 봉본에 덮어씌운 뗏장의

아랫부분 한쪽이 수상하게 다른 빛깔로 누리끼리 시들어져, 한 번 뜯어냈다 붙

인 자국이 역력했으니, 그것은 마치 밥보자기만한 떼를 따로 갖다 나중에 꿰매

얹은 것처럼 보였다.

모골이 송연해진 박달이는 등줄기에 찬 소름 훑어내리는 손을 후루르 털어내

며, 우선 무덤에 짐승 지나간 자국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늑대나 여우나 두더지가 어지럽힌 흔적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래서 얼릉 산소에 뗏장을 살째기 건드러봉게 뿌랭이가 떠서 그거이 기양

시루떡맹이로 일어나 부러요. 그 엎엣것은 그새 벌세 착근을 웬만치나 해 놔서

뽑히는 힘이 달부고요."

이기채는 하도 놀랍고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망연자실, 박달이 주둥이만 놀리

는 대로 바라볼 뿐, 호령조차 하지 못하였다.

"이거이 대관절 무신 일잉가. 사람 손 탄 거이 분명헌디, 머어 와서 이런 기가

맥힌 짓을 했이꼬."

손이 덜덜 떨린 박달이가 뗏장 들어낸 ㅎ자리를 조심조심 더듬어보니, 헐었다

다시 메운 감촉이 확실하였다.

도둑놈이 왔다 갔구나.

이런 쳐쥑일 놈.

순간 박달이는 뇌리에 펀득 떠오르는 춘복이 낯바닥을 짓이기며, 그러먼 그렇

제. 니께잇 놈이 머 어쩌고 어쩌?

내가 언지부텀 여그 한 번 꼭 와서 참배 한 번 해야겄다, 속으로만 벨르고 벨

렀다고? 머? 나느 어매도 아배도 모르는 천하 불상놈이라 어디 부모 묏동이라고

찾어가서 엎어져 절해 볼 만헌 디도 없고? 그거이 그렇게 늘 서럽드만요오?

에라이, 배은망덕허고 추접시런 놈아.

나같은 놈이야 나 내지른 어매 아배 덕이라고는 머리크락만치도 본 일 없는

디. 그래도 요만치라도 한말은 허게 큰 것은 다 매안 문중 덕분아닝교오? 허이

구우, 너 구변 좋다이? 어디서 그렇게 천연시럽게 착착 갱기게 배워 갖꼬, 눈구

녁 깜박도 안허고, 이 박달이를 쉭여먹어? 어림없다, 어림없어. 내가 참 그래도

아조 죽든 안헐라고 그날 너를 정통으로 봐부렀제. 안 그랬으먼 이 도적놈아, 너

때미 내가 죄도 없이 생죽음헐 뻔했다. 응? 이런 찢어 쥑일 놈.

박달이는 춘복이가 감쪽같이 둘러붙이던 것을 되짚으며 씨근씨근 분을 못 이

겼다.

"작년 시안 동짓달에 그 마님 돌아가시고는, 나 참, 부모 잃은 설움은 안 저꺼

봤잉게 모리겄고, 내 그렇게 설운 일, 살다가 첨이요. 그렇게도 허퉁허고 허망헙

디다."

하면서, 살아 생전에는 언감생심 한 번도 표시해 볼 수 없었던 충정을, 대보름밤

달빛 아래 절 한 자리 올리는 것으로 보은 분향을 대신하려 했다는 춘복이 말이

의심쩍게는 느껴지지 않았었다. 차라리, 거칠게만 보았던 춘복이한테 저런 진정

도 있었던가, 고개를 끄덕이게까지 했었다. 그래서 그에게 되레, 고양이보고 생

선 잘 있냐고 물은 꼴이지,

"산에 벨일 없제?"

물었던 것이다.

"달이 참 좋습니다."

춘복이는 그렇게 말하였다.

"대체나 달 좋그만."

박달이가 춘복이 말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에라이 썩을 놈, 죽어라, 죽어. 이름값도 못허고 박달방맹이가 도적놈허고 짜

란히 서서, 막 도적질허고 낼오는 놈 때레잡든 못허고 달타령을 했었다니. 아니

근디 이 일을 어쩐당 거이냐. 대관절.

황급히 정신을 추리고 뗏장을 대강 덮은 박달이는 얼른 발걸음을 떼지 못하면

서 골똘히 궁리를 하고 또 하였다.

그는 춘복이가 청암부인 무덤을 도굴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직접 춘복이란 놈을 쫓어가서 볼문곡직 내놓으라고 덜미 잡으멈 지놈이

잘못했다고 허겄제? 그러면 도적놈은 잡고 나는 꾸중을 면헐 것 아닝가. 만일에

이 사단이 원뜸에 샌님한테 알려지먼, 산지기 너멋 허고 있었냐고. 대박에 나도

덕석몰이 당헐 거인디. 내 책임잉게. 아이고, 이게 어지간헌 일이어야제.

그랬다가, 그럴 수는 없다고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춘복이가 도독질헌 걸 내놨다 치자. 그러먼 그 물건을 내가 어쩔 거이여? 어

뜨케 간수를 허며 처리를 해야능 거이여?

안될 일이었다.

만일에 춘복이가 순순히 자백을 하여도 그 뒷감당을 박달이는 해낼 수 없었

다. 또한 호된 꾸중을 면할 길도 없었다.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는 거이 불을 보디끼 훤훤 일인디 멀 망설여? 맞을 매

는 얼은 가서 맞는 거이 낫제. 암만 그렇다고 나를 쥑이기야 허실라고? 죽을 것

아니먼 매맞고 마는 거이 제일 낫다. 나는 매만 맞으멈 됭게. 매맞어 불먼, 그

담 일은 대가리 터져도 나는 몰라도 됭게.

그러고는 단걸음에 매안으로 내달려온 박달이였다.

"이런, 모가지를 삼등으로 쳐죽일 놈 같으니라고, 춘복이란 놈을 당장에 잡어

오너라.지금 당장, 당자앙."

이기채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샛노랗게 질려서 설렁줄을 흔들며 발을 굴

렀다. 그리고 대들보가 쩌릉쩌릉 울리게 호령을 하였다.

기표는 안서방한테 덕석을 내오라고 잘라 말했다.

"내사 고금에 없는 불효자식이라 어머니를 산소에 뫼신 지 몇 날 되지도 않아

서 유택을 소란스럽게 해 드리고, 더러운 때 타게 해 드렸으니, 상당했다고 슬퍼

애곡하는 이 꼴이 가증스럽기 그지 없네그려. 허허어,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대

관절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그렇지 않아도 부모 잃은 죄인이라 하늘

보기 부끄러운데, 이런 괴악한 일이 겹치다니. 내가 무슨 낯을 들고 어머니를 뵈

올꼬."

순식간에 사랑마당에는 소동이 나서, 안팎 노보과 머슴 호제들이 대소가로 줄

달음을 치고, 이기채는 사랑 큰방으로 들어와 기표를 마주하고 허공을 쳐다보며

혼자말로 탄식을 터뜨렸다.

"도적이 든 것뿐이올시다. 도적은 잡으면 되고."

"그게 어디 예사 도적인가."

"도적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훔칠 것만 있으면 가고 못 가는 데가 없는

것이 그것들 아닙니까?"

"아무리 그렇다기로소니, 다른 놈도 아니고, 핏덩이 때부터 내 집 밥 얻어먹고

연명허는 놈이 은혜도 모르고,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르고.

"주인 뒤꿈치 무는 개가 어디 한두 마리여야지요. 그놈도 그런 놈 중에 하나일

뿐, 그까짓 것한테 사람 대하듯 심정 두고 대거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소 육축

같은 종자들인즉, 치죄만 엄혹하게 하면 되는 게지요."

"엄혹?"

"제가 전에 그러지 않았어요? 춘복이란 놈, 그놈 눈썹이 칼눈썹이라, 검미 첨

도미여서 성질이 사납고 포악한데다가, 성급허고, 또 고집까지 있을 거라고. 뿐

아니라 눈썹 꽁지에 회오리 가마까지 터억 있어 놔서 그놈이 반골 기질이 강할

것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왜."

이기채도 그 말은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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