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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15)

카지모도 2024. 11. 29.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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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흉

 

"몰라?"

공배네가 흰 눈을 깎아 뜨며 옹구네를 꼬아보았다.

"아 부모 같은 성님이 모르는 일을 내가 어찌 안다요?"

옹구네 목소리에도 비꼬인 가시가 박혀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녀르 예펜네, 적거이 꼭 무신 일이 있제. 내가 너를 어디 하루

이틀 저꺼 봤냐? 니 낯빤대기 속눈썹 꼬랑지 한나 까딱만 해도, 벰연헌지 일 있

는지 다 알제 짐작을 못허께미 시침을 띠여? 띠기를. 시방 허는 짓 탯거리가 벌

세 이 일 사단을 아조 모르든 않는 뽄샌디. 저 지랄을 허고 주데이 철벽을 딱

허고 자빠졌네이.

바로 조금 전, 바람 소리가 나게 우우 거멍굴로 들이 닥친 원뜸의 머슴, 종,

장정들이 춘복이 농막을 뒤집어 한바탕 소란스럽게 엎어치는 소리가 나더니, 무

슨 죄 지어도 단단히 지은 놈 끌어가듯이 에워싸며 춘복이를 끌어가자, 공배네

는 물론이고 평순네, 옹구네, 택주네, 당골네 만동이와 백단이들이 모조리 고샅

으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꺼북한 더벅머리가 쑤석쑤석 흐트러진 춘복이는 창황중에도 불퉁한 대가리를

꼿꼿이 치세우고, 붙잡힌 양팔에 뚝심을 주어 엉버틴 자세로 소 발굽 차는 시늉

을 하며 사람들한테 끌려갔다.

미처 어쩔 수도 없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난데없는 소동에 깜짝 놀라 데인 듯 간이 바싹 오그라진 공배네가 후들후

들 떨리는 속을 가누지 못하고 우두망찰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끄집혀가는 춘

복이 뒤꼭지를 눈으로 뒤쫓다가, 아이고 , 이게 먼 일이까잉. 저고리 앞섶만 부

둥키고 있었다.

근심바우 어귀에까지 몰려나온 거멍굴 사람들은, 포승줄만 없다뿐이지 꽁꽁

묶인 형국으로 잡히어가며 멀어지는 춘복이한테서 얼른 눈을 거두지 못한 채,

저저끔 웅성거렸다.

속이 탄 공배네가 무망간에 옆을 돌아보니, 옹구네는 지금 막 이대로 발걸음

을 놓아 춘복이 끌려가는 원뜸으로 내달으려는 기색과 냉큼 그러지는 못하여 멈

칫멈칫 망설이는 기색이 드러나게 뒤섞여, 옹다문 입귀가 옴직거리고 있었다.

혹시나 저년은 멀 알랑가도 모르는디.

문득 생각이 스쳤지마는, 제까짓것한테 다른 사람도 아닌 춘복이 사정을 물어

야, 싶은 아니꼬운 심사가 겹쳐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렇지만 궁금한 것을 참는 것이 더 어려웠다.

"아이, 옹구네. 이게 먼 일이여? 왜 저러고 원에서 부각시에 자를 호출허신당가?"

"내가 아요?'

"자네가 모르먼 누가 알어?"

"하이고, 참 성님도. 이 잡소? 눌러 쥑이겄네."

"넘의 말 아니먼 헐말이 없는 옹구네가 어찌 이런 큰일은 모르능고잉? 무신

짐작도 안 가? 참말로?"

"아아따아. 보통 때는 내가 저 사람 저테 비씩만 해도, 떡바구리에 솜 들으가

능 것맹이로 어마 놀래서 집어내 쩌어리 떤져 불라고 허드니만, 요런 때는 똑

비오는 날 나무깨신 찾디끼 나를 찾으시오?"

"옹구네 말 잘허능 것은 내가 앙게, 게걸음 치지 말고."

"나도 째보 깜보 속이요, 입안에 든 거이 깜밥인지는 알겄는디 씹혀야 속속을

알 수가 있제. 또 내가 안대도, 성님은 알먼 병이고 모르먼 약일 거이요."

"아 그렁게 병이든 약이든 말을 해 보랑게 그러네이? 옘병을 앓다 민대머리가

될망정 옹구네 머리크락 비여 도라고 안헐 거잉게."

"벨일이네에. 언제부텀 저 사람 일을 나한테 물었능고? 내가 머이간디."

옹구네는 입을 비쭉하였다.

이 말에 빈정이 팩 상한 공배네는 오살헐 년, 지럴허고 자빠졌네. 허든 지랄도

멍석 깔어 주먼 안헐다드니, 그래도 은연중 지년을 머이나 된 디끼 대접해서 물

어 봉게,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미는 꼴이그만잉.

오장이 거꾸로 뒤집혔다.

"주야장천 엿가래맹이로 처붙어 있을 때는 언제고, 지내가는 넘의 일맹이로 딴

동자 굴림서 나 몰른당 것은 또 웬놈의 억하심정이대?"

"아 내가 머 마느래요오, 부모요? 아니먼 성지간이요? 밥 따로 국 따로제."

"그럴람서 한 방에는 멋 헐라고 들앉었었어?"

"한 상에 뇌였다고 속도 같으까? 그륵은 다 각각이제."

"벨라도 가찹게 부닐 떠는 넘이 보까 숭잽히겄게 뒤엥기드니."

"사돈 넘 말 허시네. 아 넘 보기 가찹기로야 성님이 더 허제 내가 더허요? 삼

척동자도 다 아는 일인디?"

"머?"

"지 속으로 난 부모도 자식한테 그러든 못허게 왼갖 상관 다허고, 떡 벌어진

시커먼 장정을 기양 옴짝 못허게 찌고 돌드만 그려."

저녁 굶긴 시에미보다 더 암상스러운 낯색으로 온몸에 사기를 세우고, 행여

어쩔세라 까뀌눈을 뜨던 공배네를 이 참에 여지없이 무질러 주리라 작심한 것일

까, 옹구네는 소동 속에서도 말려들거나 서둘지 않으면서, 짐짓 한 자락은 알고

도 있다는 티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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