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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7권 (42)

카지모도 2025. 1. 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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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표는 찌르는 눈빛으로 강호의 입시울을 쏘아본다.

"강모 강태는 학교에 입학하려고 합니다."

강호는 마치 어른들의 속심을 읽은 사람처럼 달래는 듯한 어조로 단호히 잘라

서 말했다. 그 말에 묻은 다른 상황들은 하찮게 떨어내 버리는 음성이었다.

"학교?"

의외의 말에 일변 놀라고 일변 안심하는 목소리가 이기채한테서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거기 학교도 있단 말이냐?"

"예."

"무슨 학교?"

"봉천 법률 전문학관이라는 학굔데요, 시칸방 근처에 있는 조선인 학관입니다.

학생수가 일학년 칠십 명, 이학년 칠십 명으로 총 백사십 명이 다니는 이년제

전문학관이지요. 그러니까 여기 조선에 전문대학 같은 학제고, 학교 분위기도 비

슷해요."

"그럼 거기서 그 애들이 법학을 공부하려고 한단 말이냐?"

"예."

"학생은 모두 어느 나라 사람들이고?"

"조선인이에요."

"허어."

이기채한테서 안도가 섞인 탄성이 새어 나왔다.

"선생들은?"

"역시 조선 사람입니다."

"설립자는 그럼."

"자세히 모르겠지만 그도 아마 조선 사람이 세운 것 같던데요? 그러니까 조선

말로 조선 선생이 조선 학생들한테 가르치는 학교지요, 그게."

"그러면 조선의 법을 배운다는 게냐? 그 만주땅에서?"

"그건 아닌가 봅니다. 만주에서 조선인들이 취업하기 위한 수단 과정으로 배우

는 법학이니, 만주 현지에 해당하는 법일 겝니다. 거기서 배우는 것은, 저도 수

박 겉핥기로 말만 듣고 건너구경만 한 입장이라 그 정도만 짚어 봤구만요."

"공부는 무슨 공부를 하며 몇 시간씩이나 하는지, 그렇게 해서 무엇에 쓰이는

지, 할 만한 공부를 하는지, 해도 쓸데없는 공부를 하는지."

기표가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하루 여섯 시간씩 한답니다. 아마 그렇게 공부하고 나서 졸업한 뒤에는 영농

합작사 만주주식회사 같은 데 취직을 하는 모양입니다."

"학교는 그것뿐인가?"

"왜요. 측량학원이라는 것이 또 있지요. 만주는 개척지라서 측량이 필수적이니

까 일본에서도 역점을 두는 학원이지만, 마적떼 들끓는 벌판에, 가도 가도 키를

넘는 수수밭이 끝없는 만주땅에 뽈대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일이란 게 무섭고 또

한심하다고, 기왕에 할 것이면 법학을 해 보자 했다 합니다."

"공부도 다 환경이 있는 법인데 그런 혼돈 시가에서 무슨 문리가 트일꼬."

"학교 건물은 빨간 벽돌 이층집이었습니다."

"가 봤느냐?"

"예."

"별다른 것은 없고?"

이기채는 이제 좀더 자상하게 강모의 주변을 묻기 시작하였다.

직접 가서 볼 수도 없고, 너무나 이곳과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 얼른 실감도

나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설명을 들어야 상상이나마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네가 죽지 않고 살아서, 혼몽중에도 어쨌든 '공부'를 택하여 근공하려

한다니, 불행 중 다행은 다행이다.

"아마 그 학교가 학교로 쓰이기 전에는 무슨 공장 건물이었던가 봐요. 교실은

도합 네 칸인데, 사실 교정에는 나무도, 꽃도, 단 한 그루도 없습니다. 살풍경이

지요. 학교 내에 있는 나무라고는 명색 운동장 귀퉁이에 참나무, 가죽나무 비슷

한 것이 똑 한 그루 서 있기는 있었습니다. 만주는 중국에서도 만족에 속하니까

문물이 성하지는 못했는데 그나마 전쟁을 치르고 난 후라, 꽃밭은 꿈도 못 꾸는

형편이지요. 그러니 자연히 그런 환경 속에서 어거지로 공부 흉내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부자는 부자대로 궁성을 이루고 살지만."

"입학은 언제 하고?"

"사월이지요."

"등록금도 있을 것 아니야."

"그게 십원 미만으로 다달이 낸다 합니다."

"그 돈은 대관절 어디서 어떻게 마련을 하며, 또 그 돈만 있어 가지고 살 수는

없을 것인즉, 도적질이나 비럭질을 안하고서야 어떻게 저희들끼리 버티어 갈 수

있을꼬."

이기채가 짐작으로 헤아리며 기표를 바라본다.

기표가 이기채의 시선을 받아서 강호한테로 건넨다 .

"졸업을 하면?"

"지방공무원에 해당하는 취직을 하는데요, 월급은 한 달에 육십 원에서 구십

원 정도 받고, 육 개월마다 승급을 하니까, 생활 염려는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하숙을 하자면 비용이 수월찮을 것인데."

"하숙비는 쌀 일곱 말 값인데, 소도 한 말에 삼십 전이니 대강 이십원 정도였

습니다. 말 듣기에 최고급으로 평양 기생이 하는 집이 그 일대에서 제일 좋은데

이십 원이라니, 하루에 칠 전이나 기껏 많아야 십오 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쿠

리에 비기면 제왕 같은 생활이겠지요. 상다리가 쓰러지게 반찬이 나오고, 쇠고기

가 끼니끼니마다 오르는 밥상이 그렇다 합니다. 그 아니고는 보통 상류라고 하

면 한 십이 원에서 십오 원 정도 주는 모양예요. 취업하고 봉급 받으면 생활에

궁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강호는 나직 나직이, 그러나 상세히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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